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137화 (138/251)

< 33. 재앙(災殃), 강림(完) >

영원히 살 것만 같았던 가주 일리야 블라디미르가 죽었을 때, 세르게이 대통령은 비명을 내질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짓말이다!

일리야 블라디미르는 세르게이 대통령의 든든한 뒷배였다.

그가 있었기에 세르게이 대통령도 있었던 것이다. 내전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도 모든 배후에 일리야 블라디미르가 있었기 때문이다.

“죽여! 죽여! 놈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죽이란 말이다!!!”

세르게이 대통령은 눈이 뒤집혔다.

평소에는 절대 보이지 않던 광기에 찬 모습.

침착함을 잃고 이성이 날아갔다.

어찌 안정할 수 있겠는가.

족히 십만이 넘는 병력이 투입되었음에도 아르켄, 그놈 하나를 잡지 못했다.

“대공미사일을 미사일을 쏴라! S-400이든 Kh-31이든 있는 대로 마구 갈겨버려!”

세르게이 대통령이 길길이 날뛰었다.

아직 진 것은 아니다. 현재 그는 대통령이었고, 민심은 잃었으나 군권을 잡고 있었다.

일리야 블라디미르가 죽고, 부쉬코브 가문의 가주 역시 죽었다. 오로지 데미도프 가문만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데미도프 가문은 이미 군력을 상당부분 잃어버린 상태였다.

최고지휘자는 여전히 세르게이 대통령이었다.

‘빌어먹을 놈! 너는 절대 이곳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내전의 주동자들이 죽으며 나머지 여론이 아르켄에게 흐르고 있었다. 그는 신, 혹은 마왕, 혹은 로스트 킹, 혹은 다크나이트라 불리며 생각 이상의 지지를 얻는 중이었다.

특히 수많은 실종자들이 실험실의 충격적인 인체실험에 동원되었다는 의혹이 진실로 판명되며 여론이 급격히 쏠렸다.

고위군 간부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내전으로 인해 시민들의 힘이 축소되고 군부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아르켄이 등장하며 급격히 균형이 무너진 탓이다.

여기서 반응은 군부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살기 위해 시민들의 편에 서서 아르켄을 지지, 인륜을 저버린 세르게이 대통령을 잘라내도록 반란을 도모할 것이냐, 아니면 아르켄을 죽여서 다시금 군권을 회복할 것이냐.

‘아르켄을 죽이면 다음은 네놈들이다. 이 쓸모없는 권력의 개 같으니!’

충성을 버리고 생존을 택한 자들은 이 상황이 정리되면 가장 참혹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그래. 아르켄만 죽이면 모든 게 정리된다.

뒷배도 필요 없고, 유일무이한 왕이 탄생하는 셈이다.

절대권력!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차라리 잘 됐다.’

위기를 기회로!

세르게이 대통령의 눈에 탐욕과 광기가 들어찼다.

결국 아르켄이다. 놈만 죽이면 모든 걸 덮을 수 있다. 아직 기회는 남아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사냥개도 분명히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의 궁전 주변으로 수많은 지대공 미사일이 배치되었다.

최대 40~50km 바깥까지 요격이 가능한 미사일은 아무리 용을 타고 날아온다 하더라도 격추시킬 수 있을 터였다.

특히 Kh-31과 같은 경우는 최대 200km까지 타격이 가능하고 소형전투기에도 장착이 가능할 정도로 가벼워서 다가오기 전에 적을 처리하는 게 가능했다.

‘어디 끝까지 가보자, 이 빌어먹을 노옴!’

그리고 얼마지 나지 않아 아르켄이 사정권에 들어왔다.

세르게이 대통령은 총공격을 명령했다.

녀석의 폭사를 예상하며.

하지만 예상은 깨졌다.

“그, 급보입니다! 미, 미사일들이 되돌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아르켄을 향해 쏜 미사일들이 웬 일인지 이쪽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쾅!

콰콰콰콰콰쾅!

지축이 흔들렸다.

세르게이 대통령의 표정이 굳었다.

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 * * * *

이타콰가 빠르게 허공을 배회했다.

이타콰는 최대 음속의 속도로 하늘을 날 수 있었고, 이는 용들 중에서도 상당히 빠른 편에 속했다. 그 비대한 몸집을 날개와 마력에 의지해 움직이는데 그 속도가 아무리 빨라봐야 한계가 있는 탓이다.

하지만 이타콰의 날개는 매우 특이하다.

칼날처럼 얇고 뾰족했으며 바람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는 구조였다.

약간의 마력으로도 추진력을 얻을 수 있고, 펄럭이지 않아도 속도유지가 가능하도록 성장한 것이다.

몇 마하의 속도로 날아가는 전투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애당초 공중전 자체가 시속 1,000km 안에서 진행된다. 무엇보다 무한정 연료를 먹는 괴물보다 이타콰는 연비가 매우 좋은 편이었다.

이 상태로 체력만 받쳐준다면 몇날며칠을 날아다니는 것도 가능했으므로!

‘가장 중요한 건 가속력, 선회력, 상승력 등이지.’

마력은 물리규칙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타콰의 마력은 타 용종에 비해 형편없는 편이지만 대신 최적의 효율로 사용하는 법을 안다.

단번에 가동하고 제동하며 좁은 폭으로 선회하는 게 가능한 것이 이타콰였다.

전투기와의 근접교전이라면 상대가 몇이든 해볼 만했다.

‘장거리 미사일이라.’

하지만 장거리 미사일의 경우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이타콰의 동체는 12m에 달했고 표적이 되기에 좋다.

하지만, 작게 미소를 지었다.

세르게이 대통령이 목숨을 지키고자 발악하고 있는 듯싶었다.

멀리서 날아오는 다수의 미사일들. 하늘을 가득 채울 정도로 그 숫자가 압도적이었다. 수천 개의 미사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나를 죽이고자 달려드는 중이었다.

과연 과거에도 이만한 공격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사용할 때가 됐군.’

이런 경우를 상정하지 않은 건 아니다.

상정했고, 대비도 되어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손바닥을 펼친 채 앞으로 내밀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폭식.’

[칠대 죄악, ‘폭식’의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폭식을 얻은 이후 나는 여태껏 제대로 이 기능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쉴 새 없이 찾아오는 허기는 같은 사람조차 맛있게 보이도록 만들 수준이었다.

위험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허기는 더욱 강해졌다.

하여, 봉인해두고 있었다.

무의식이 일을 저지르기 전에. 폭식을 완벽하게 제어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애써 의식하지 않으며 기능자체를 비활성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몸이라면 폭식의 제어가 가능할 터였다. 이제는 그 기능을 해제할 차례였다.

쫘아아아악!

손의 중심부가 갈라진다.

중심부에서 구의 모양으로 암흑이 넓어진다.

이빨이 나타나고, 녀석이 탐욕적으로 입을 벌렸다.

동시에, 미친 듯이 배가 고팠다. 그간 비었던 배를 채우기 위함일까? 정말 무엇이든 다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폭식은 매우 허기가 진 상태입니다.]

[조심하십시오. 허기가 진 폭식은 주인을 집어삼킬 수도 있습니다.]

[93.6(78*1.2)이하의 마력으로 사용되는 모든 스킬, 혹은 능력치총합 468(78*6)이하의 모든 존재를 삼키고 뱉어낼 수 있습니다.]

[24시간이 지나면 소화가 시작되며 최대 48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자신보다 강한 적을 소화 시킬 때, 일정량의 잠재력을 획득합니다.]

요건은 갖춰졌다.

과연 저 미사일들을 어느 정도나 폭식이 삼킬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능만큼은 무척이나 탁월한 게 폭식이었다.

저 모든 미사일이 어느 정도의 판정을 받을 지는 나조차도 몰랐다.

하지만 기대는 되었다. 이만한 숫자의 먹이는 좀처럼 구할 수 없는 탓이다.

‘먹어치워라.’

쫘아아아악!

마치 블랙홀과 같았다

녀석은 모든 걸 집어삼켰다.

공기, 바람, 대기에 존재하는 ‘빛’마저도.

그 이름대로 폭식이었다. 폭식의 영향을 받는 모든 공간이 까맣게 물들고 텅텅 비었다. 미사일들도 그를 피할 수는 없었다.

꿀꺽! 꿀꺽!

이타콰의 머리 위에서 폭식을 전개하자, 수천 개의 미사일이 폭식의 입 안으로 흡입되기 시작했다.

[50개의 미사일을 흡입했습니다.]

[폭식은 매우 배가 허기가 진 상태입니다.]

[150개의 미사일을 흡입했습니다.]

[폭식은 어느 정도 허기가 진 상태입니다.]

······.

[3,488개의 미사일을 흡입했습니다.]

[폭식은 배가 부른 상태입니다.]

[3,488개의 미사일에 대한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A랭크, 능력치총합 430수준입니다.]

[소화할시 잠재력이 극소량(0.1) 상승합니다.]

과연. 미사일도 이만큼이나 섭취하니 꽤 좋은 판정을 받는 듯싶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대공미사일 등이 이 정도인데, 핵은 어떨까?

세계에 있는 모든 핵을 포식하면 498의 잠재력이 500대로 발돋움할지도 모른다.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어차피 핵은 이점보다 단점이 많았다. 전쟁 억제력이 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협박의 용도로 사용될 때가 더욱 많아졌다. 강력한 괴물이 출현하여 핵부터 날렸다가 망해버린 나라가 한, 두 곳이 아니다.

‘그 전에.’

폭식은 만족해하고 있었다. 녀석은 나와 같은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소화를 시킬 생각은 없었다.

‘뱉어내라.’

폭식의 기능, 그중에는 먹은 걸 그대로 ‘뱉어내는’ 기능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도 단순히 뱉어내는 게 아닌 ‘반사’에 가까웠다.

폭식의 미소가 지워졌다. 녀석은 매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입을 크게벌렸다.

그 순간.

슈아아아앙-!!

도합 3,488개의 미사일이 먹은 순서대로 발사되어 그대로 튕겨나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정확히 미사일이 날아왔던 장소로 말이다.

* * * * *

‘핵! 놈을 죽이려면 핵을 쏴야 한다!’

핵은 마지막 카드였다. 모든 걸 파괴하는 탐욕스러운 폭탄.

급히 방공호로 대피한 세르게이 대통령이 특정 방에 들어갔다.

온갖 기계장치와 세계의 위도 등이 나와 있는 지도가 실시간으로 상황을 비추며 나타나 있었는데, 이곳은 핵의 발사코드를 보내는 장소였다.

즉시 그는 마스터키를 꽂고, 코드를 입력했다.

‘같이 죽자. 절대로 나 혼자선 죽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게 파괴됐다. 더 이상 뒤가 없었다. 남은 건 공멸뿐이었다.

하지만······.

-거부.

-거부.

-거부.

붉은 불이 들어왔다. 핵을 쏘려면 관리자들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핵을 관리하는 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반대파에 서 있었다.

쾅!

철판을 내리쳤다.

“내가 명령했다! 최고권력자인 내가! 발사하란 말이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 같으니!”

“생각대로 안 된 모양이군.”

“······!!”

어떻게?

세르게이 대통령은 죽은 사람이라도 본 듯이 크게 놀라고 말았다. 고개를 돌린 순간 몇몇 경호원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말을 걸 때까지 세르게이 대통령은 그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아, 아아······.”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뒷걸음질을 칠 장소가 없었다.

세르게이 대통령이 그대로 주저앉아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현실이 아니다.

꿈이다. 망할 꿈!

“이게 전부인가?”

모든 힘을 동원하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르게이 대통령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비웃고, 짓밟으며, 다시금 코앞에 당도했다.

“대, 대체 왜, 왜 나한테 이러는 것이냐!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정말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는 걸까?

그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모든 걸 총괄하고 있었다. 일리야 블라디미르가 아무리 잘났어도 세르게이 대통령의 암묵적인 허락 없이는 대규모의 인체실험이 가능할 리없었다.

세르게이 대통령은 더욱 절박하게 그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돈, 명예, 여자, 모든 걸 주마. 너와 내가 힘을 합치면 이 러시아에서 우리를 당할 자는 없다. 네가 원하는 모든 걸 내가 해주겠다.”

그는 답하지 않았다.

세르게이 대통령은 바닥을 기었다.

“왈! 왈! 개가 되라면 개가 되겠다. 주인이 바뀌는 것뿐이다. 내 원래 주인은 일리야 블라디미르였으니. 나는 꽤 충직하고 말도 잘 듣지. 아, 아니면 혹시 시리아라는 여인을 핍박해서 그러냐? 자, 잘못했다. 내가 백 번, 천 번 잘못했으니, 부디······!”

툭!

데구르르.

세르게이 대통령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죄인은 말이 없다.’

검을 털어낸 그, 오한성이자 아르켄인 그 남자가 조용히 방공호를 떠났다러시아 전역을, 세계를 경악으로 물들인 끔찍한 재앙이 막을 내린 것이다.

다음날.

세계의 모든 눈이 러시아로 모였다.

모든 통제와 억압이 사라진 러시아는 발가벗은 공주님과 다를 바가 없었다.

러시아의 가장 큰 민간신문사 ‘밀리(милый)’는 이러한 기사를 쓰며 마침표를 찍었다.

-재앙의 신이 강림했다. 신께서 죄지은 자들을 벌주셨도다. 이는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이니, 우리는 결코 그 경고를 허투루 받아들여선 안 될 것이다.

< 33. 재앙(災殃), 강림(完) > 끝

ⓒ 온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