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134화 (135/251)

< 33. 재앙(災殃), 강림(2) >

고폭탄을 장착한 러시아 전차부대가 포구를 겨눴다. 동시에 수백 개의 포탄이 발사되자 순간 안개가 생길 정도로 짙은 연기가 피어났다. 천둥이 치듯 지축이 울리고대기가 찢어지며 포탄이 그물처럼 촘촘히 ‘그’를 덮쳤다.

쾅!

최초의 폭발. 우주의 기원과 같은 폭발이 일어났고 연쇄적으로 수많은 포탄이 굉음을 내며 폭사했다. 산을 부수고 대지를 파괴하는 그 장면은, 감히 신이라도 죽일 수 있을 듯 강렬하고 장렬했다.

쉬이이익!

굉음이 멈추고 버섯모양의 구름이 피어나며 모두가 종말을 예감했다. 아무리 초인이라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저러한 폭발 속에서 살아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놈이라길래 긴장했는데 별 거 아니잖아?”

나는 새는 전투기를 뜻했다. 해치를 열고 하늘의 상황을 살피던 군인들이 혀를 차며 승리를 자축했다.

“······ 저게 뭐야?”

“뭐, 뭐가 떨어집니다!”

하지만 기쁨의 함성도 오래가진 못했다.

구름안개를 헤치고 한 인영이 낙하하고 있었다.

콰앙!

그리고 정확히 전차 위로 떨어진 그 인영은 그을린 갑옷을 한 차례 털어내곤 그대로 검은색의 검을 쥐었다.

그리고 마치 춤을 추듯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검을 놀렸다.

스르릉.

터어억!

전차의 외피에 실선이 생기더니 그대로 미끄러지며 정확히 반으로 분리되었다. 반으로 분리 된 전차가 고꾸라진 채 형편없이 포구를 바닥으로 떨구자, 조종간을 쥔조종수가 입을 크게 벌린 채 ‘그’를 바라바고 있었다.

탄약을 정비하던 탄약수와 포수, 그리고 전차장. 모두의 시간이 멈췄다. 검으로 전차를 쪼개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합판으로 이루어져 어지간한 폭발에도 견디도록 설계된 게 전차였다. 헌데 그것을 인간의 힘으로 나눠버린 것이다.

‘아, 악마의 눈이다!’

하늘에서의 폭발 덕분에 ‘그’의 투구에 구멍이 생겼다. 오른쪽 눈이 마치 악마의 그것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눈을 본 사람들은 영혼이 빨리는 느낌을 받으며 몸을휘청거렸다.

“쏴, 쏴라!”

겨우 그 공포에서 벗어난 군인 몇 명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입을 열었다.

해치를 닫고 다시금 전차부대가 기동했다.

하지만 부대의 중심부에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은 그를 향해 다시금 고폭탄을 쏠 수는 없는 노릇. 즉시 철갑탄으로 포탄을 갈고 재차 포구를 들이밀었다.

철갑탄은 전함, 군함 등의 장갑을 관통시키는 데 사용되는 포탄이다. 강철판도 뚫고 들어갈 정도로 단단하고 두꺼운 철갑탄마저 막아내진 못하리라.

철갑탄을 직격으로 맞은 ‘그’가 뒤로 주욱 밀려났다. 검으로 철갑탄을 막을 생각을 하다니, 무식하고 단순하며 그렇기에 괴기스러운 놈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확히 20m가량을 밀려나더니 철갑탄을 반으로 쪼갰다.

“말도 안 돼!”

“괴물이냐?”

그것을 지켜본 모두가 전율했다.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현대전을 치룰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불가능한 일이 실현되고 있었다.

헤라클레스와 같은 신화적 존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허상이다. 가짜, 이야기 속에서만 숨 쉬는 자들.

툭. 투욱.

‘그’가 걸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러나 그 걸음걸음마다 느껴지는 중압감은 지옥의 왕과 비견됐다.

쾅!

포탄이 발사됐다. ‘그’가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보였을 때 전차 한 대가 종잇장처럼 잘려나갔다.

발사될 때마다 한 대씩.

그렇게 열 대, 백 대······ 모두가 해치를 열고 도망갔다.

총을 버리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그’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일 리가 없었다.

“아아, 신이시여!”

잔혹한 죽음의 신이 사형을 선고했다.

* * * * *

2,475m

2009년 세계기네스에 기록된 저격 거리다.

영국군이 탈레반 기관총수들을 저격 소총으로 저격하는데 성공한 사건으로, 바람도 불지 않고 날씨가 맑아서 저격하기에 최적의 날이었다고 전해진다.

‘고작 2키로? 난 4키로 넘게도 가능하다.’

붉은 늑대 소속, 그중에서도 ‘검은 이리’라고 불리는 남자가 도심의 가장 높은 건물 위에 자리를 잡고 미소 지었다.

붉은 늑대는 모두 각성자로 이뤄졌고, 베테랑이 아닌 자들이 없었다.

검은 이리는 특히 저격에 특화 되어 있었는데 그를 위해 제조된 특수 저격총을 사용하면 최대 4,344m까지 저격이 가능했다.

4km 바깥에서 쏘는 총에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과 조건만 주어지면 세계정상들도 쉽게 암살하는 것이 가능한 게 그였다.

인간만을 한정하지 않아도, 그의 손에 걸려 죽지 않은 괴물은 없었다. 거대한 오우거조차 뇌를 쪼개 즉사시킨 바가 있었던 것이다.

이번 임무 역시 마찬가지다.

‘전투기를 떨구고, 전차부대를 혼자 전복시켰다지?’

혀를 내둘렀다.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괴물 중의 괴물이다. 그가 아는 초인 중 가장 강한 붉은 늑대단의 단장도 혼자서 전차를 전복시키고 전투기를 이길 순 없었다.

한 마디로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놈이다. 어쩌면 인간이 아닐지도 모르고. 그가 무수하게 죽였던 괴물과 같은 게 아닐까?

정면으론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쨌거나. 머리가 뚫리면 죽겠지.’

머리가 꿰뚫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코끼리도, 오우거도 머리가 뚫리면 죽는다. 지금 그가 쥔 저격총은 오로지 관통을 위해 만들어진 특제 총알을 사용한다. 합금조차 간단하게 뚫어버릴 수 있었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인지하지 못하는 곳에서 날아온 총알까지 어찌할 순 없으리라.

‘옳지. 사자의 입 안인지도 모르고 잘도 걸어오는구나.’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가 거리를 활보했다. 도시의 사람들은 이미 모두 대피한 상태였다. ‘그’는 아주 정석적인 경로를 통해 느긋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 패기는 좋았다.

‘하지만 패기가 너무 좋았어.’

이곳에 있는 건 자신만이 아니다. 붉은 늑대 외에도 수많은 용병들, 군인들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자 숨어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저격실력이 좋은 게 자신이었다.

정면으로 돌파하는 건, 불가능하다.

초인이 아니라 초인 할아비가 온다 해도 말이다.

‘그럼······.’

검은 이리가 미소를 지었다.

미션 석세스. ‘그’가 당도하기 전에 이미 도시의 모든 구조를 파악하고 ‘그’가 걸어올 장소까지 계산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제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끝이다.

검은 이리가 방아쇠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 순간.

“······!!!”

기겁했다. 침을 꿀꺽 삼켰다.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일순간 ‘그’가 이쪽을 바라봤다.

‘4,300m 바깥에서 나를 인지했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4km 이상 차이가 나는 거리에서의 저격을 인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정확히 방아쇠에 손을 가져감과 동시에!

‘착각······ 그래, 착각이겠지.’

검은 이리가 애써 침착해했다.

이번 의뢰의 성공보수는 천문학적이다. 러시아를 농단한 녀석. 전투기를 때려잡고, 전차부대를 깨부순 걸로 현상금이 어마무시하게 붙은 덕이다.

숨을 고르며 다시금 스코프에 눈을 가져갔다.

‘이 새끼는 또 어디로 간 거야?’

스코프 너머에 ‘그’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 사이에 사라진 걸까?

검은 이리가 혀를 찼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표물이 향하는 장소는 일목요연했다.

블라디미르 가. 이 도시는 그 중간에 놓였고, 그가 가는 곳이 명확하다면, 다시 저격 장소를 잡으면 그만이었다.

푹.

막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검은 이리는 일어나자마자 몸이 뒤로 젖혀짐을 느꼈다.

그대로 몸이 날아가 건물의 벽에 장신구마냥 꽂혔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절명한 뒤였다.

그저 경악이 가득 담긴 눈으로 저 너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꿰뚫은 검은색의 검 한 자루.

검은 이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 검의 검자루뿐이었으니.

툭.

머지않아 ‘그’가 나타났다.

그는 머리에 꽂힌 검을 회수하고, 다시금 건물의 아래로 뛰어내렸다.

* * * * *

올-레드.

하나, 둘 줄어들던 통신은 이내 모두 사라졌다.

저격수가 모두 죽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도합 102명의 저격수가 도시에서 은신한 채 대상을 노리고 있었으나 102개의 통신이 모두 끊긴 것이다.

정면으로도, 숨어서도 싸움이 안 된다.

군부가 요동쳤다. 군인들은 겁에 질렸다.

건드려선 안 될 상대를 건드렸다며 탈영병이 속출했다. 아예 ‘그’를 신격화하는 이마저 있었다.

살아있는 신. 전장의 화신. 러시아로선 눈엣가시다.

수많은 헬기를 띄웠다. 쇠그물이 담긴 탄을 가득 실은 헬기가 ‘그’의 상공을 배회하며 무수히 미사일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미사일은 쏘아진 즉시 터지며 사방을 포위하는 그물을 떨궜다. 지름만 수백m에 이르는 그물이 무수히 지상을 덮었다.

갇힌 이상 누구도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그’를 가두기에 저 정도도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군부는 즉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액화로 만들어진 질소가 쇠 그물 위로 무수히 쏟아졌다.

-196℃에 이르는 상태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그것은 닿는 즉시 모든 것을 얼리는 절대영점의 위용을 보여주었다.

대지가, 공기가,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제아무리 괴물이라 할지라도 저 안에서 생존하는 건 불가능하다.

폭탄과 총이 통하지 않는다면 아예 생명 그 자체를 없애버리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얼어붙었다.

“된 건가?”

“액체질소를 퍼부었으니 이제 가까이에서 놈을 볼 수 있는 건가?”

모두가 기대했다.

이제는 단순한 전쟁이 아니다.

얼어붙은 ‘그’를 옮겨 실험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의 세포 하나까지 사용하여 초인들이 합성되리라. ‘그’의 힘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출처만 알아낼 수 있다면 러시아는 미국조차 가볍게 뛰어넘는 군사강대국으로발돋움할 수 있었다.

쩌적!

갈라진다. 얼어붙은 대지가, ‘그’의 상태 역시도.

이윽고 그의 전신이 변형하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얼음을 깨고 날개가 튀어나왔다.

수많은 날개는 불로 이글대고 있었다.

마치 태양의 신이 강림한 듯 모두가 눈부심에 눈을 감았다.

투구의 절반이 깨졌다.

그의 얼굴, 보이는 절반은 깃털로 가득 덮여있었다.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더욱 문제다.

그 모습을 본 모두가 경악을 담아 입을 열었다.

“정말······ 신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얼어붙은 순간.

심장이 멈췄다.

그러자 멸제와 암령의 힘이 깨어났다.

이대로 숙주를 죽일 순 없다.

멈춰버린 심장에 필요한 건 ‘불’이었다.

둘은 잠시간 전쟁을 멈추고 협의했다.

불을 피우기로.

그래서 숙주를 살리기로.

그러기 위해선 변형해야 한다. 인간의 몸으로는 둘의 힘을 받아들일 수 없다.

마침 숙주의 몸에는 악마왕과 반신 발키리의 피가 흐른다.

변형한 즉시 다시 숙주의 심장이 뛰었다.

예전보다 더욱 강하게, 더욱 화려하게!

멸제와 암령이 피운 불꽃이 점화하며, 세상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 * * * *

나는 본래 바람과 물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변형하며 불 역시 깨우치게 되었다.

[샛별의 힘이 각성하기 시작합니다.]

[업화(業火)의 불은 모든 것을 지우고, 재생시킵니다.]

[죽음의 시련을 파훼하여 그 경계에 걸친 자, ‘타오르는 샛별’의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내가 시선을 돌린 순간.

세상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33. 재앙(災殃), 강림(2) > 끝

ⓒ 온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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