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129화 (130/251)

< 31. 몬스터 콜(完) >

약을 고루 펴바르자 빠르게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았다. 약의 효력이 피부 안으로 침투하여 흐트러진 장기를 바로잡고 내부의 출혈도 멈추게 만들었다.

마력을 이용한 모든 물약은 ‘본연의 상태’, ‘자연스러운 상태’를 만드는 데 효과가 집중되어 있다. 원래 없던 것을 새로이 만드는 건 힘들지만 부자연스러운 것을 고치는 정도는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아······.”

유서희가 빠르게 회복되는 신체를 보곤 감탄사를 흘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하기야 심연에서 가져온 물약을 지금 현대에서 구할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하급의 물약 정도나 간신히 구하고 있을 텐데, 그걸 먹느니 현대의학의 힘을 빌리는 게 낫다.

“핏기가 도는군.”

“힘이 생기는 거 같아요. 대체 뭐죠? 팔면 금방 떼부자되겠다.”

부모님이 거대기업의 CEO임을 알고 있기에 피식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신체의 회복이 완료되기까지 대략 30여분.

볼을 불그스레 붉히며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은 유서희가 말했다.

“그런데 괜찮아요? 거기 방송사였는데.”

창피하긴 한지 살짝 눈을 내리깔며 물어본다.

방송사. 카메라를 찍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이르면 오늘 저녁, 늦어도 내일 아침엔 미친 듯이 뉴스가 떠오를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의 노래 길드가 움직여줘야겠다.”

“설마 저희 길드랑 함께하시게요? 잘됐다. 안 그래도 사람 부족해서 죽을 것 같긴 했어요. 오늘 방송 출현한 것도 길드 PPL이었거든요.”

유서희가 직접 출현해 능력 있는 재야의 각성자들을 긁어모으기 위한 야심찬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도움을 줄 수는 없다.

‘균열석을 찾아야하니까.’

다른 데몬로드의 수하들이 그것을 찾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내야 한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나 역시 수백의 괴물들을 은밀히 풀어놓았다.

“이타콰와 아르켄의 모습을 보았으니 한동안 세계의 모든 매체가 시끄러울 거다.이슈를 선점해 길드를 키우는 건 너의 몫이다.”

“세상에. 생각해보니 엄청난 일이네요?”

그다지 긴장하는 기색은 없었다.

유서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 방방 튀는 모습 덕에 모여든 사람도 많았고, 결속력 역시 강했다.

천생 리더 스타일이다.

천천히 턱을 쓸었다.

“그 와중에도 은밀히 해야 할 일은 ‘변이체’를 찾는 것이다.”

“변이체요?”

“유독 강력한 개체, 혹은 돌연변이를 뜻하는 건데······ 녀석이 이 모든 일의 ‘원인’이 되는 것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으음, 저 혼자서는 힘들 거 같은데.”

데몬로드들에게는 없는 것.

나를 제외한 그들이 지구에서 결코 가질 수 없는 힘!

바로 인간의 정보력이다.

지금은 21세기다. 디지털 시대. 정보의 빠름에 있어서 심연의 괴물들은 절대로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

‘반대로 나는 그 정보의 중심에 있다.’

나 역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이슈를 선점한 유서희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그 힘을 토대로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강력한 정보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유서희 혼자선 힘들다. 아무리 그녀가 천재라 하더라도 나이에 따른 능숙함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마라. 너를 도와줄 사람이 있으니.”

그를 위한 안배도 당연히 해놓았다.

나는 유서희를 데리고 무인도의 중심부로 들어갔다.

중심부엔 동굴이 하나 있었고, 안으로 들어서자 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대기하는 중이었다.

그가 나를 발견하자 즉시 팔짱을 풀고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뭐에요. 저 사람? 깡패?”

작게 속닥이며 유서희가 경계했다.

내가 눈짓을 하자 남자가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유서희에게 건넸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어······ 전 국정원장 이윤수?”

명함에 적힌 글자를 읽은 유서희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허걱. 국정원장!”

“전, 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국정원장이 뭐하는 사람이에요?”

몰라서 놀랐던 건가?

천진난만하게 묻는 유서희를 위해 그가 설명했다.

“······ 대통령 직속의 국가 최고정보기관을 국가정보원이라고 부릅니다, 아가씨.”

“아아. 그런 곳이구나. 그럼 거기 짱이 아저씨에요?”

“이젠 아니지만 말입니다.”

“으, 죄송해요.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는데.”

“괜찮습니다. 익숙합니다.”

유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면 꽤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으니 모를 법도 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분이 왜 이런 외딴섬에 있어요?”

“마스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스터요?”

“오한성님이 저의 마스터입니다.”

“······??”

유서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곤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전 국정원장 이윤수. 과거에도 그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유능한 사람이지.’

정치색 이전에 중립을 지키려다가 원장자리에서 잘려나간 사람이다. 세계가 요지경이 된 이후 그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세계각지의 지도와 괴물 출현 빈도 등을 계산해 ‘몬스터 로드맵’을 만들고, 모든 정보를 통합하여 투명하게 공개하는 ‘트루 위키’를 만든 것 또한 그였다.

나는 찾고 찾은 끝에 그를 발견했고, 즉시 ‘지배자’의 권능을 사용했다. 천천히 이야기를 진행시키기엔 사건이 너무 촉박했기 때문이다.

“설명은 아까 한 대로다.”

“아가씨를 도와서 정보부를 신설하는 것 말이지요.”

“그래. 바람의 노래 길드 직속 정보부가 되어 나의 눈과 귀가 되어줘야겠다.”

“마침 괜찮은 친구들을 몇 명 압니다.”

아예 새로운 걸 만들긴 어렵다.

하지만, 기존에 있는 것을 덮어씌우는 건 비교적 쉽다.

이윤수는 의욕을 보였다. 비록 지배자에 의한 강제성이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천재성은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국정원장이 저를 돕는다고요?”

“전, 이지만 말입니다. 아가씨,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에이. 그래도 연세가 있으신데······.”

“그리고 오늘부터 아가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제가 관리하게 됩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부터 누구를 만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 지까지 모두 제가 준비해놓겠습니다.”

“······ 화장실은 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건가요?”

“거기까지 터치해도 된다하면 저야 고맙습니다만.”

“여러분! 여기 변태가 있어요!”

유서희가 경악한 표정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이어 한숨을 내쉬며 나를 쳐다봤다.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고 했어.”

“인생엔 굴곡이 있기에 더욱 빛나는 법이지.”

“하여간에······ 에휴, 말을 말죠. 괜히 두근거렸네.”

어깨를 으쓱한 유서희가 툭툭 발을 차며 신경질적으로 동굴을 빠져나갔다.

“마스터. 쫓지 않으셔도 됩니까?”

“알아서 풀리겠지.”

“소녀의 마음을 너무 모르시는군요.”

“그쪽은 상당히 오지랖이 넓군?”

지배된 상태임에도 본연의 성격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전 국정원장 이윤수. 그가 원래부터 이런 성격이었던가?

사람들이 그 이름을 칭송하는 건 여러 번 들어봤다. 나도 먼발치에서 몇 번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직접 대화를 나눈 건 손에 꼽혔다.

그러나 능력만은 확실하다. 그가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린다면 유서희는 금세 훌훌 날아 하늘로 비상할 것이었다.

더불어 내 눈과 귀가 확실하게 생기는 셈이었다.

‘놈들에겐 없고, 나에게만 있는 것.’

데몬로드들이 균열석을 찾고자 수하들을 내보냈다.

하지만 이곳은 본디 그들의 땅이 아니다.

이 구역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을 듯싶었다.

* * * * *

다음날부터 모든 신문과 뉴스, 인터넷 매체에서 용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메인으로 떠올랐다. 은빛의 기사와 바람의 노래 길드의 마스터인 유서희가 함께하는 모습도 있었으니, 순식간에 이야기가 퍼질 수밖에 없었다.

동영상엔 유서희가 TV프로에 출현한 것부터 모든 게 가식이었음이 드러나는 장면, 자이언트 고릴라를 상대하다가 은빛의 기사가 나타나는 것까지 모두 담겨있었다.

-백룡의 출현. 멸망의 징조인가, 희망의 등불인가.

-하얀 용이 세상을 휩쓴다.

-은빛의 기사. 그는 누구인가.

-바람의 노래 길드의 마스터 유서희, 은빛기사와의 관계는?

그것을 본 기자들이 쉴 새 없이 기사를 쏟아냈다.

한쪽에선 은빛의 기사가 ‘아르켄’이라며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싱크홀 속, 경합의 장에서 그를 본 각성자들 모두가 증인이었다.

혹은 던전에서 만난 자들도 있었다. 무리하게 4층까지 올라갔다가 살아나온 용병등이 ‘검신 아르켄’이라며 추켜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날 오후, 유서희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바람의 노래 길드는 백룡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검신 아르켄은 저희 길드와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는 세계를 수호하는 수호자입니다.”

아르켄을 전설 속의 영웅마냥 늘어놓았다.

백룡을 보았으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유서희는 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기반을 다졌다.

백룡의 축복이라는 건 그만한 파급력이 있었다.

순식간에 ‘바람의 노래’길드가 ‘세계의 수호자’마냥 비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역시 이미지메이킹이었다.

덕분에 태풍처럼 순식간에 급부상했다.

길드가 세계로 뻗어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을 아포칼립스 길드보다 먼저 통과한 셈이다.

그리고 그 뒤에서 ‘정보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인의 눈과 귀가 되어줄 그림자들이.

* * * * *

제로.

심연의 절대지배자 중 하나이며, 가장 많은 데몬로드를 다스리는 그가 수정구를 내려다보았다.

수정구가 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문’을 통과한 모든 괴물들이 죽었다는 뜻.

덕분에 그는 심기가 매우 좋지 못했다.

“왕 중의 왕이시여. 근심이 많아보이시는군요.”

그러던 와중 휘하의 데몬로드 하나가 제로를 찾아왔다.

「바훔헨.」

바훔헨의 머릿속으로 제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지만 그 목소리 속에는 절대적인 힘이 녹아있었다.

바훔헨 아르타니아.

얼마 전 소멸한 카르페디엠보단 한 수 위의 실력자였다.

“‘균열석’ 때문입니까?”

「그렇다.」

“허나 많은 로드들이 최후의 결전지인 ‘지구’에 대해서 모르고 있지요. 지금의 결계로는 고작해야 중급 정도의 괴물을 통과시키는 게 전부이니, 답답할 만도 합니다.”

「답이 있느냐?」

“옮기는데 제한이 있다면, 그 제한에 맞추면 그만일 뿐.”

바훔헨이 미소 지었다.

여덟 개의 팔, 여덟 개의 다리를 지닌 그는 흡사 거미와 비슷했다.

그가 자신의 몸 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투명한 알 하나를 꺼냈다.

“‘유령거미’의 알은 무엇보다 빠르게 부화하며 강해집니다. 주변의 생명체에게 기생하며 그 힘을 빨아들이지요. 알을 낳고, 번식하며 자체적으로 ‘여왕’을 만듭니다.”

그렇다면 부화 직전의 알들을 보내 그곳에서 성장시키면 그만이었다.

거미들은 바훔헨과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곳이 어디든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바훔헨이 자신 있다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왕 중의 왕이시여. 저를 믿고 맡겨주십시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기회를 주마.」

“영광입니다.”

제로의 관심을 받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가 위대한 별을 삼키고 심연의 진짜 주인으로 거듭날 때 바로 측근에서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므로.

또한 더욱 많은 지원이 약속될 것이었다.

‘그래봤자 지구다. 하등한 인간밖에 없는 장소!’

바훔헨은 다른 데몬로드보다 지구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의 인간들이 얼마나 허약한지도 말이다.

이번 기회에 다른 데몬로드보다 먼저 균열석을 찾아내면, 명예와 실리 두 가지를 모두 챙길 수 있었다.

‘멍청한 카르페디엠 같으니. 나는 절대 이 자리에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카르페디엠과 바훔헨은 어느 정도 경쟁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카르페디엠은 고작우리엘 따위에게 소멸 당했다. 제로의 원조를 받았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허나 놈은 몇 번이나 기회를 차버렸다.

그토록 아둔하고 멍청한 녀석이 자신의 경쟁관계였다는 게 창피할 지경이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를 통해 어떻게든 제로의 눈에 들어 더욱 위로 올라가리라!

바훔헨의 눈동자에 불꽃이 스몄다.

< 31. 몬스터 콜(完) > 끝

ⓒ 온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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