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몬스터 콜(2) >
공영방송 프로그램 중 ‘오늘의 각성자!’라는 이름의 채널에 유서희가 게스트로 초청된 이후 시청률이 10%이상 급증하는 기적과 함께 그녀는 모든 방송파의 러브콜을 받게 됐다.
어린나이, 천사같이 귀여운 외모와 시원스러운 입담은 유서희를 ‘국민요정’으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요즘 급부상하고 있는 길드, ‘바람의 노래’에 관해서인데요. 특별히 모셨습니다. 국민요정으로 세간이 떠들썩하죠? 바람의 길드를 책임지고 있는 유서희양!”
짝짝짝짝!
MC와 게스트, 방청객 모두가 열렬하게 박수를 보냈다.
오후 10시. 보통이라면 가장 핫한 드라마가 방영되어야할 시간이지만 특별편성 된 ‘초인시대’가 그 자리를 빼앗았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금주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초인’을 소개하며 그들과 함께 입담을 나누는 시간으로, 평균 시청률만 15%를 달하는, 말 그대로 ‘효자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리고 무려 세 달의 러브콜 끝에 유서희가 이 자리에 초대된 것이다.
“와~ 진짜 예쁘네요. 국민요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그녀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이보다 더 깜찍할 수가 있을까? 정말 요정이 내려온 듯했다.
“감사합니다.”
안내된 자리에 앉은 유서희가 가식적인 미소를 흘려보냈다.
“카메라 계속 유서희양만 찍을 거예요? 저도 진행해야 할 거 아닙니까.”
유서희를 비추던 카메라가 급히 MC에게 돌려졌다. 주변이 한바탕 웃음거리가 되었고, MC는 능숙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진행을 계속했다.
“유서희양. 많은 분들이 오늘 이 자리를 기다렸는데요. 모두 아시겠지만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주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유서희입니다. 나이는 열다섯이고요, 바람의 노래 길드의 마스터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이야. 방송이 많이 익숙해지셨나 보네요. 카메라 보고 말 잘하네!”
“처음에는 사람보고 말했다가 혼났어요.”
최대한 귀엽게 유서희가 배시시 웃어보였다.
‘작은 악마’라고 불리는 유서희의 이런 모습을 주변이들이 봤다면 혀부터 내두르겠지만 이곳은 방송이었다. 그리고 유서희는 이미지메이킹에 강했다.
“그럼 더 부드럽게 진행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초인시대’에 발을 들인 이상 피해갈 수 없습니다. 시작해볼까요? ‘세 개의 질문!’ 코너입니다!”
샤라라~
부드러운 노랫소리와 함께 거대한 화면 위에 촛불과 저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개의 질문’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코너는 초대된 초인의 의혹이나 이야기를 묻는 시간이었다.
유서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첫 번째 질문입니다. 유서희양은 나이로 따지면 이제 고작 중학생 정도인데, 괴물들을 상대하는 게 무섭지 않나요? 너무 어린 초인들이 괴물과 싸우는 걸 금지하자는 소리가 여러 곳에서 들리고 있는데요.”
“무섭죠. 하지만 어리다고 안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힘을 악용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저는 이 힘을 제 주변사람들과 모든 분들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거든요.”
“오, 그럼 무서운데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다?”
“맞아요.”
“감동스럽군요. 그럼 두 번째 질문입니다. 최근 괴물들이 곳곳에 출현하기 시작하고 혼란이 과중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아포칼립스 길드와 바람의 노래 길드의 빠른 대처 덕분에 한국만은 그 상황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하지만,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괴물 탓에 모두가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요. 바람의 노래 길드는 어떠한 해결방책을 가지고 있나요?”
엄밀히 따져보면 하나의 길드에게 물을 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요즘에는 군대에서도 초인부대를 운용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지만 단순한 ‘빠른 대처’에선 민간의 길드를 따라올 수가 없었다.
덕분에 요즘엔 군대보다 길드가 더 믿을 만 하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으니 이러한 질문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유서희는 눈에 힘을 꽉 주곤 말했다.
“먼저······ ‘문’을 발견하면 즉시 통합길드 홈페이지에 신고하세요. 최대한 ‘문’에다가가지 마시고, 괴물이 출현하면 최대한 집에서 나오지 마세요. 집에서 나와 도망가면 오히려 괴물들이 먹이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유서희가 앙증맞은 입술을 꽉 깨물며 이어서 입을 열었다.
“저희 ‘바람의 노래’ 길드는 출현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보라색 문’을 중심으로 길드원을 전개하고 있어요. 최근 갑자기 생겨난 ‘검은색 문’들에 대한 대처는 아포칼립스 길드보다 떨어지지만, 대신 민간의 보호를 최우선하여 움직이고 있답니다.”
“믿음직합니다. 국민요정이 아니라 국민보호자라 불러야겠군요.”
“별말씀을요.”
“벌써 마지막 질문입니다.”
“긴장되네요.”
“하하, 이번엔 좀 긴장해야 할 질문입니다. 혹시 첫사랑이 누구인가요?”
“처, 첫사랑이요?”
“최근 국민요정으로 급부상한 유서희양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어서요.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음······.”
유서희가 망설이며 고민했다.
그 모습마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는지라, 모두가 황홀한 눈빛으로 유서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엽다!’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세 글자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귀여울 수가 있을까?
생김새만이 아닌 행동 하나하나에 귀여움이 듬뿍 묻어났다.
어리고 가녀린 저런 소녀가 어떻게 산만한 괴물들을 도륙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선생님이에요.”
“선생님? 초등학교나 중학교 선생님을 말하는 건가요?”
“비슷해요.”
유서희가 방긋 웃어보였다.
저마다 자기도 모르게 심장을 쥘 정도의 폭력성이 그 미소엔 담겨있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스승과 제자의 사이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게 정설인데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오······ 유서희양, 이거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다는 건 아시죠?”
“네!”
당돌한 모습에 MC가 잠시 기겁하는 눈초리를 지었다. 제자의 스승 사랑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아픔이다. 하지만 유서희는 거기서 한 발자국 나아가 그 금단의 사랑을 쟁취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럼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유서희양이 좋아하는 그 선생님이란 분이 누구인지!”
“그건 비밀이에요.”
유서희가 코에 손가락을 대고 귀여움을 발산했다.
MC가 훈훈하게 웃어보였다.
“아~ 아쉽습니다. 하긴 유서희양이 밝혔다면 그 선생님이란 분에게 저주의 편지가 수백 통씩 갔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깊이 파고들어봤자 그렇게 좋은 주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MC가 작게 헛기침을했다.
“그럼 바로 다음 코너로······.”
쿠르르릉!
그 순간이었다.
MC가 막 입을 열려던 순간 건물이 흔들리며 지진이 났다.
콰아앙!
하지만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벽이 부서지며, 거대한 손이 안쪽을 휘저었다.
두 명이 그 손에 끌려가자 모두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괴, 괴물이다!”
“어, 어떻게? 이 주변엔 ‘문’이 없을 텐데?”
“꺄아아아악!”
혼비백산.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방송국 주변은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고, ‘문’ 역시 없어서 느닷없이 괴물이 출현할 리 만무했던 것이다.
하지만 저 거대한 ‘자이언트 고릴라’가 허상의 존재일 리는 없었다.
“아, 씨······ 잘하고 있었는데.”
유서희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의 요정이나 천사와 비견될 만한 앙증맞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주우욱!
활동이 편하도록 원피스의 허벅지 부분을 찢고, 허벅지에 덧대어 놓은 단검 한 자루를 쥐었다. 동시에 단검에서 바람이 솟아오르며 유형의 기운을 덧대었다.
완전한 검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검사로서 그 실력이 매우 출중하다는 방증.
“이번 방송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데······ 넌······ 죽었어!”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그으며 상대에게 ‘너는 끝이다’라는 사인을 준 뒨, 유서희가 빠르게 무너진 벽면으로 뛰었다.
이미 경비를 맡고 있던 각성자들이 자이언트 고릴라를 막아서곤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거대한 동체에서 뿜어내는 힘은 그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도감에서 봤어. 6레벨의 괴수랬나?’
6레벨. 능력치총합 250~300선의 괴물을 뜻한다. 유서희 혼자서는 버겁지만 아주 못해볼 수준도 아니었다.
촤아악!
이윽고 바람의 결로 고릴라의 손을 베어낸 유서희가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그 크기만 5m에 다다르는 자이언트 고릴라가 비명을 내지르며 쥐었던 사람들을 손에서 놓았다.
“거기 멍 때리지 말고 사람 받아요!”
각성자들이 부랴부랴 사람들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에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그런지 모두 당황하여 유서희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화가 머리끝까지 찬 유서희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아! 진짜 어리바리하네! 이게 장난으로 보여? 어? 튀라고요! 방해되니까!”
크아아아아!
쾅!
자이언트 고릴라의 몸을 타며 이리저리 움직이던 유서희가 고릴라에게 발목을 잡히고 그대로 벽에 던져졌다.
“쿨럭!”
반쯤 벽에 처박힌 유서희가 각혈을 했다.
그대로 바닥에 추락한 뒤, 겨우 머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상태가 좋아보이진 않았다.
“너~! 진짜 죽었어!”
슈아앙!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자, 유서희의 등에서 날개가 솟아났다. 인공날개, ‘아우리엘의 깃털’이다. 하루에 한 차례 하늘을 날개 해주는 마도구였다.
이어 바닥을 차고 도약한 유서희가 그대로 검을 그었다. 가장 확실하게 숨통을 끊을 수 있는 부위인 목을 노렸지만, 가죽이 생각보다 단단했다.
크아아아아!
그러나 타격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유서희는 상처를 입은 몸으로도 신묘하게 움직이며 검술을 펼쳤다. 그 모습조차도 아름다워 마치 요정의 검무를 보는 것만 같았다.
크오오오오오-!
자이언트 고릴라의 전신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유서희가 모든 공격을 피해내자열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피부가 달아오르며 자이언트 고릴라의 속도 또한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
장장 오분 여의 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유서희가 발목을 삐끗하며 자이언트고릴라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처음 사람들을 대피시키느라 방심했던 때에 얻은 타격이 너무 컸다.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였다면 결코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꽈드득!
“으으윽!”
각성하여 신체가 강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이언트 고릴라의 악력을 버티긴 힘들었다. 유서희가 이를 악물었다.
“못생긴······ 고릴라······ 이거 안 놔!”
자이언트 고릴라가 유서희를 빤히 바라봤다. 손으로 찌그러트려서 숨통을 끊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문제는 유서희 혼자서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
‘이럴 줄 알았으면 김혜윤 언니도 데려오는 건데!’
홍염의 마녀. 김혜윤을 데려왔다면 상황이 반대였을 것이다.
가식적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일 자신이 없어서 일부러 혼자 온 게 패착이었다.
방송국을 지키는 각성자라는 놈들도 당황한 탓에 대부분이 도망갔다. 지원이 오려면 앞으로 몇 분은 더 걸릴 것이었다.
‘선생님······.’
의식이 흐릿해졌다. 그리고 주마등을 보았다. 부모님과 함께했던 시간, 망령에게빙의당해 괴로웠던 시간, 그리고 선생님이 나타나 자신을 어두운 우리에서 꺼내준 사건이 떠올랐다.
푹!
스르륵.
자이언트 고릴라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이윽고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몸을 눕히기 시작했다.
쿵! 소리와 함께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나갔고, 유서희는 가까스로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았다.
자이언트 고릴라의 등에 올라타 심장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검을. 까맣기 그지없는 검을 든 은빛의 기사를!
유서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반가움에 사무쳐선 목소리를 높였다.
“선생님!”
유서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걸으며 은빛의 기사에게 다가갔다.
이어 입술을 쭉 내민 채 양 손을 뻗어 은빛의 기사를 안으려고 하자, 은빛의 기사가 유서희의 이마를 손으로 밀며 행동을 방해했다.
“움직이는 거 보니 멀쩡한 모양이군.”
“아니에요. 저 많이 다쳤어요. 흐에엥. 호, 해줘요.”
“······ 가자. 이야기할 게 많으니.”
“흥. 짠돌이.”
“이타콰.”
쿠우우웅!
하늘에서 흰색의 용이 강림했다.
이윽고 은빛의 기사가 백룡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곤 천천히 유서희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 짠돌이라는 말 취소! 완전 멋져요!”
유서희의 눈이 몽환적으로 풀리다가, 급히 정신을 차리곤 기사의 손을 맞잡았다.
펄럭! 펄럭!
백색의 용이 날갯짓을 하자, 거대한 바람이 일며 방송국 일대가 폭풍이 친 듯 나풀대기 시작했다.
이후 상공으로 날아오른 백색의 용은 눈 깜빡할 사이에 모든 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 *
이타콰를 끌고 이름 모를 섬에 내렸다.
방송국 일대에 모습을 드러낸 건 위험했지만, 의도한 것이었다.
‘이 사태는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다.’
혼자서 움직이는 건 한계가 있다.
그러니 이슈를 몰아야 한다.
이슈를 모는데 가장 적합한 건 ‘검신 아르켄’으로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더불어 ‘바람의 노래’길드를 통한다면 조금 더 입지를 확대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쿨럭!”
유서희는 파리한 안색으로 쓰러진 상태였다.
괄괄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환자였던 것이다.
폐와 내장이 망가져서 현대의학으로는 살리기 힘든 수준이었다.
“괘, 괜찮아요. 이런 아픔은 익숙하거든요.”
“멍청하긴. 벗어라.”
“예? 아무리 그래도 순서라는 게.”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치료하기 위해서다.”
사람이 없는 무인도.
“조, 좀 벗겨주시겠어요? 이상하네. 왜 힘이 하나도 없지.”
전신에서 식은땀이 났다.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
유서희가 바닥에 쓰러져 골골댔다.
고개를 내저으며 유서희의 웃옷을 벗겼다.
정말 한 점도 사심이 없었다. 어린애의 몸을 봐서 흥분하는 그런 어른이 아니었다.
‘내 취향은 라이라나 요르문간드 쪽이지.’
모든 게 다 큰 그녀들이 내 이상형에 가깝다.
잠시 후 맨살을 보인 유서희를 앉힌 채, 나는 품에서 물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용의 가루. 약효가 너무 강해서 마시기보단 바르는 게 낫다.’
암흑룡의 마력이 담긴 살점을 모아 세계수의 잎과 요정의 눈물 등과 함께 갈아 넣은 것이다. 효과는 끝장이었다. 조금만 발라도 어지간한 상처는 순식간에 재생되고, 잘린 것도 강제로 붙일 수준의 효력이 있었다.
“앗흥!”
“이상한 소리 내지 마라.”
“이제 저 시집 못가요.”
유서희가 죽어가는 상태에서도 농담을 던졌다.
이럴 때 보면, 역시 검신 아르켄인가 싶었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정신력이었으니.
< 31. 몬스터 콜(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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