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125화 (126/251)

< 30. 너와 나의 연결고리(6) >

모두가 숨을 멈췄다. 적어도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이 너무나도 의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빛을 가져오는 자, 루시퍼!

사탄이 타락하기 전 천계에 있을 적의 이름이었다.

가장 강력한 죄악이지만 내게는 더더욱 와 닿았다.

‘루시퍼가 될 것인가, 사탄이 될 것인가.’

마치 운명처럼 다가왔다.

빛이냐, 어둠이냐. 내게는 두 가지 성향이 공존하고 있었다. 만약 ‘위대한 별’의 몸을 취한다면 나는 어느 쪽으로 완성될까?

그런 의문이 막 들려난 찰나, 에기르가 격하게 반응했다.

“타락한 왕자! 빛도 어둠도 아닌 유일무이한 모순. 그리하여 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 왕자라면 충분히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군.”

“바로 그렇다. 이제야 이야기가 통하는구나, 해양왕이여.”

“하지만 인간이 어찌 그 그릇에 담길 수 있단 말이냐?”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반려와 함께 공존하는 또 다른 왕이다. 나의 반려는 잠에들면 왕이 되어 수많은 별을 헤아리지.”

요르문간드가 이 정도로 흥분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별을 헤아린다는 고풍스러운 표현까지 써가며 나를 칭찬하는 걸 보니. 평소 칭찬에 인색한 그녀답지 않은 언행이었다.

하지만 ‘위대한 별’의 정체가 루시퍼라는 소리에 나도 잠시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데몬로드가 싸울 수밖에 없는 원천적인 이유가 튀어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분명히 있었다.

“‘위대한 별’이 루시퍼라면, 어째서 다른 악신들이 왕들을 후원하는 거지?”

바로 이것이다.

악신들. 대표적으로 우리엘을 후원하는 디아블로와, 브뤼시엘, 혹은 제로 등이 그렇다. 정말로 72명의 데몬로드가 싸우는 게 루시퍼의 힘을 취하기 위함이라면, 굳이 악신들이 자신의 이름을 빌려줘 가면서 싸움에 참여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신이다. 신의 격을 지닌 위대한 존재.

아무리 루시퍼가 빛과 어둠 양면성을 지닌 신이라지만, 그와 비견될 신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닐 것일진대.

요르문간드가 내 턱을 천천히 쓸었다.

“악신들이 참여했다면 그건 간단한 이유니라. 침략을 위해서지.”

“침략?”

“예전, 모든 차원은 하나였다. 하지만 신화전쟁으로 차원이 나뉘며 ‘균열’ 또한 태어났지. 악신들은 그렇게 나뉜 크고 작은 세계의 주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그들은 ‘균열’의 위험 속에 있노라. 균열의 침식으로 언제 세계가 없어질지 모르지. 그 균열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 그게 침략이다?”

“반려는 누구와 다르게 말이 잘 통하는군? 그래. 루시퍼는 단순한 빛과 어둠이 아니다. 그 존재만으로도 능히 압도적이다만, 그는 세상의 ‘중심다리’이기도 하지. 또한 동시에 모든 ‘균열’에서 유일하게 자유롭다. 왜냐하면······ 그는 ‘허무’의 주인이기 때문인즉.”

루시퍼가 모든 차원을 잇는 ‘문’과 같은 역할이라는 건 알겠다.

루시퍼를 얻는 자는 유일한 공격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허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그러나 그 두 글자를 입에 담을 때의 요르문간드는 무척이나 신중해보였다. 해양왕 에기르 역시 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허무가 뭐지?”

하여,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세계의 비밀이다. 내가 몰랐던 이면의 이야기.

알아야 대처한다. 알아야 뭐든 할 수 있다. 모르면 언제나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나는 과거의 경험으로 깨닫고 있었다.

요르문간드가 고혹적으로 입술을 훑으며, 말했다.

“내 존재력이 회복되고 있는 데에 대한 답례로 말해주마. 허무는 신들의 무덤이다.”

“신들의······ 무덤?”

“혹은 신이 되지 못한 자들의 감옥이 바로 허무이니라.”

꿀꺽!

목울대가 울렸다.

요르문간드가 아주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후후후! 루시퍼의 신체는 그 허무의 주인 되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그러니 탐이나지 않겠느냐? 허무의 힘을 가질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할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듯.

그때, 에기르가 입을 열었다.

“문제는 이것을 계획한 자가 누구냐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느냐, 요르문간드여?”

“오.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냐?”

“네가 말하는 게 정말 루시퍼라면 나의 복수에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악신들은 그 뒤가 구리지 않는 놈이 없다. 그들이 참여한 전쟁이라면, 이 전쟁을 뒤에서 기획한 자들의 의도가 심히 염려되는군.”

“설령 이것이 기획이라고 한들, 모든 변수를 계산하는 것 역시 불가능 하노라. 내가 부활하고, 그대가 참전하며, 설마 ‘왕의 힘’을 지닌 자가 진짜 인간이라는 걸 그 누가 예상하겠느냐?”

변수는 또 다른 결과를 낳는다.

지금 나와 내 주변은 오로지 변수뿐이었다. 이러한 변수들을 모두 계산하는 건 그야말로 신이라도 불가능한 일.

요르문간드는 ‘변수에 의한 승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자신도 있는 듯했다.

하기야 한때는 세계를 집어삼켰던 뱀이다. 누가 그녀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차아앙!

하지만 그 순간 요르문간드의 목에 검이 겨눠졌다.

검은 색의 검, 마검 검은 태양.

그것을 쥔 이는 당연히 라이라 디아블로였다.

라이라는 무척이나 무미건조한 얼굴로 요르문간드에게 살기를 날리고 있었다.

아아. 이곳엔 라이라도 있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야기들에 잠시 정신을 빼앗긴 탓에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검을 바라보며, 요르문간드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궁금했노라. 이 버릇없는 계집은 무엇이냐?”

“그러는 그쪽은 로드의 무슨 관계인 거지? 인간 모습의 로드를 알고 있는 듯한데······.”

“그는 나의 것, 나의 반려이니라.”

“말도 안 되는 소리!”

라이라의 음성이 올라갔다.

나는 내심 탄식을 흘렸다. 일이 생각보다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을 듯했다. 흔히 말하는 막장드라마가 연상되는 건 왜인지.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

“로드는 로드이시다. 인간의 모습은 그저 잠시 빌리신 것일 뿐. 위대한 용마족의 후예가 인간일 리 없으니, 그쪽이 진짜 반려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

묘한 고집이 엿보였다.

라이라는 인간의 모습인 나를 약간 꺼려하는 기색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으나, 그녀가 몰랐던 인연들에 당황한 것 같았다.

그녀의 말투에선 약간의 배신감도 느껴졌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나는 마검에 손을 대며 자리를 물렸다. 급속도로 마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내가 이야기하마.”

“로드시여.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저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이는혓바닥을 잘라내겠으니!”

“하하! 깨어나고 들은 가장 재미있는 말이로다. 묘한 게 섞인 마족의 계집아. 삼키면 비린내 하나 안 날 것 같은 것이 내 혓바닥을 잘라내겠다니?”

차앙!

마검이 요르문간드의 정수리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급히 흑풍검을 들어 막았지만, 전신이 저릿했다. 인간의 몸으로 당장 라이라를 이기는 건 힘들다. 능력치의 차이도 차이거니와 아직 그러한 ‘격’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마지막에 라이라가 힘을 빼지 않았다면 손목이 부서졌을 것이다.

“막지 마십시오.”

“내가 이야기한다고 했다.”

“허나······.”

“그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후 요르문간드에게 시선을 옮겼다.

“요르문간드. 라이라를 놀리는 걸 그만두어라. 정말로 내 힘이 필요하다면, 내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후후, 알겠다. 오늘은 너의 장단에 맞춰주지. 지금의 짐은 기분이 매우 좋도다.”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방치했다간 산에 번지는 불처럼 크게 타오를 수도 있었다.

나는 잠시 해야 할 말을 정리하곤 입을 열었다.

“요르문간드는 내가 인간의 모습일 때 ‘계약’한 마수다. 서로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서로를 돕는 협력관계 같은 것이다. 결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다.”

“굳이 저런 것과 계약할 필요가 있습니까? 로드께선 지고하신 존재입니다.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 암흑상회에서 경매가 열렸을 때, 안달톤 브뤼시엘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라고 언질 했던 이유가 무엇이냐? 혼자선 힘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냐.”

“절대로 그런 의도는······.”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이라가 입을 닫았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엘 디아블로. 그 혼자만의 힘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음에.

지금에야 또 다른 모습으로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당시의 라이라는 우리엘이 오로지 ‘하나’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라이라를 이해했다.

갑작스러운 것들이 속속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당장 나 하나만으로도 벅찰 텐데, 요르문간드와 에기르는 무엇이며 그 이면의 이야기는 따라갈 수조차 없는 상태겠지.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구나.”

“저는······ 모르겠습니다.”

라이라가 솔직하게 말했다.

이게 그녀의 장점이다. 적어도 나를 대함에 있어서 그녀는 항상 솔직 하려고 노력한다. 가면?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다.

“보아히니 치정싸움인 모양이군.”

“치정싸움만큼 재밌는 게 또 없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듯 에기르와 요르문간드가 말했다.

이윽고 에기르가 박수를 한 차례 쳐보였다.

“그럼 연회를 열어야겠군. 연회에선 모두가 솔직해지는 법.”

“흐음, 그대는 신들의 연회도 자주 열었었지. 이건 조금 기대되는구나. 듣기로는 모두가 ‘연결’되는 자리라고 하던데?”

“모두가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는 장소이니라. 나는······ 내 딸아이와 연결되어 잠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에기르가 살짝 침울해진 표정으로 블로두가다의 손을 바라봤다. 에기르가 손을 뻗자, 유유히 블로두가다의 손이 떠올라 그의 품으로 향한 것이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럼, 왕의 연회를 시작하겠노라.”

에기르.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성이 나타나고, 주변 지형이 숲으로 바뀌었다.

성의 안에는 온갖 진귀한 것들이 산처럼 쌓여있었으며 듣기 좋은 노래와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공간결계.

그의 권능인 ‘왕의 연회’였다.

연회장에 들어선 순간 모든 감정이 부드러워졌다. 모든 분노와 불신과 같은 감정들이 해소된 것이다.

크릉. 크르릉.

이타콰가 골골대더니 배를 보이고 드러누웠다.

이그닐은 이타콰의 배에 올라가 퐁퐁 거리며 장난을 쳤다.

요르문간드조차도 술잔을 홀짝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엄청난 효과였다.

아무리 적대적인 존재라도 이곳에서 전투를 벌이긴 여간 힘들 듯싶었다. 싸우고 부딪히질 않으니 다른 의미에서 무척 견고한 결계라 할 수 있었다.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는 장소.’

술을 한 모금 머금자, 깊은 풍미와 함께 다시금 모든 게 변했다.

이타콰는 백발의 어린 남자아이가 되어있었고, 이그닐은 여전히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내 주변을 뛰어놀았다.

나는 작은 상가를 가지고 있었다.

1층엔 빵집과 카페가 있었고, 너나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고자 줄을 섰다.

아내와 함께 주변인들로 인해 작게 운영하는 곳이었지만 항상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행복하다.

이런 삶을 살고 싶었노라고, 이런 소소한 삶이 좋다고, 은연중 나는 바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내의 얼굴은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나 역시 그런 아내를 사랑했다. 부풀어 오른 배를 바라보며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산에 누워 별을 보고, 도란도란 모여앉아 바비큐 파티도 하고, 낚시도 하고,가끔 여행도 다니며 소소하고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 늙어감에도 서로 의지하고 어깨를 맞댄 채 웃을 수 있는 그런 나날이계속되어가길 바랐다.

하지만 환상은 계속되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다.

‘라이라.’

그러자, 바로 반대편에서 라이라가 묘하게 상기 된 표정을 짓고선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내가 본 환상은 최종적인 나의 ‘꿈’이었다.

이뤄지지 않았던, 이뤄질 수 없었던, 그런 꿈.

그럼 라이라는 환상을 통해 무엇을 보았을까?

< 30. 너와 나의 연결고리(6) > 끝이타콰가 골골대더니 배를 보이고 드러누웠다.

이그닐은 이타콰의 배에 올라가 퐁퐁 거리며 장난을 쳤다.

요르문간드조차도 술잔을 홀짝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엄청난 효과였다.

아무리 적대적인 존재라도 이곳에서 전투를 벌이긴 여간 힘들 듯싶었다. 싸우고 부딪히질 않으니 다른 의미에서 무척 견고한 결계라 할 수 있었다.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는 장소.’

술을 한 모금 머금자, 깊은 풍미와 함께 다시금 모든 게 변했다.

이타콰는 백발의 어린 남자아이가 되어있었고, 이그닐은 여전히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내 주변을 뛰어놀았다.

나는 작은 상가를 가지고 있었다.

1층엔 빵집과 카페가 있었고, 너나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고자 줄을 섰다.

아내와 함께 주변인들로 인해 작게 운영하는 곳이었지만 항상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행복하다.

이런 삶을 살고 싶었노라고, 이런 소소한 삶이 좋다고, 은연중 나는 바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내의 얼굴은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나 역시 그런 아내를 사랑했다. 부풀어 오른 배를 바라보며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산에 누워 별을 보고, 도란도란 모여앉아 바비큐 파티도 하고, 낚시도 하고,가끔 여행도 다니며 소소하고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 늙어감에도 서로 의지하고 어깨를 맞댄 채 웃을 수 있는 그런 나날이계속되어가길 바랐다.

하지만 환상은 계속되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다.

‘라이라.’

그러자, 바로 반대편에서 라이라가 묘하게 상기 된 표정을 짓고선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내가 본 환상은 최종적인 나의 ‘꿈’이었다.

이뤄지지 않았던, 이뤄질 수 없었던, 그런 꿈.

그럼 라이라는 환상을 통해 무엇을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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