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너와 나의 연결고리(2) > 끝< 30. 너와 나의 연결고리(3) >
자신을 알고 있는 것만 같은 눈초리.
바로 뒤에 우리엘 디아블로가 잠들어 있었다.
누구지?
누구인데 이 성역까지 발을 들였단 말인가.
분명히 본 적이 없다.
‘평범한 괴수는 아닐진대.’
마치 데몬로드를 앞에 둔 기분이다. 눈앞의 괴물에게선 그만한 격이, 마력의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섞이고 또 섞여서 불순하지만 그럼에도 평범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한 괴물이 심연에 있다는 소린 들어본 적도 없다.
분명히 그 틀은 마족인데, 마족이 아니다.
‘용마족? 아니다. 저 정도로 이질적인 용마족은 존재하지 않아.’
진짜 용마족이었다면 단번에 알아봤을 것이다.
같은 용마족이라 할지라도 그 형태는 각자 조금씩 달랐으니까.
허나 저건 그 수준을 넘어섰다.
새하얗게 머리가 새어버린 용마족이 존재한다는 말도 금시초문이다.
게다가 저 눈.
저 눈만은 묘하게 익다.
분명히 어디선가······.
“경계하지 마라. 이 모습 역시 우리엘 디아블로의 한 부분이니.”
“무슨 소리지?”
“그건······ 쿨럭!”
피가 역류했다. 괴물이 애써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이윽고.
투둑!
뚝!
뚜두두둑!
괴물의 모습이 위태로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전신에 붙은 날개인지 손인지 모를 것들이 말라비틀어지며 바닥에 떨어지고, 얼굴 반쪽을 차지하던 깃털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전신의 피부가 팽창했다. 뼈가 부서지고 다시 맞춰지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끄어억······!”
바닥에 양 손을 짚은 괴물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 광경은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괴로웠다.
괴로움에 사무치는 모습에 동정심이 일 정도로.
까득.
까드득.
얼마나 세게 이를 악물었는지 철을 긁는 소리 같았다.
그는 이마를 바닥에 댄 채로 미친 듯이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거다.
바닥을 적실 정도로 많은 땀이 흘러나오고, 몸을 웅크린 채 그저 인내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라이라도 그의 처리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엘 디아블로의 한 부분이라니. 대체 그가 말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일까?
하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그러기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처절했던 탓이다.
“아빠야!”
문 뒤에서 그 장면들을 바라보던 이그닐이 동동 발을 굴리며 다가와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도 인간을 보며 아빠라고 부르더니,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지.
“이그······.”
라이라가 이그닐에게 그 연유를 물으려고 입을 연 순간이었다.
괴물의 외형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조금씩 하얗던 머리카락이 검게 물들었다.
피부가 원래의 것으로 돌아오고, 근육이 줄며 전신이 본래의 형태로 돌아갔다.
그것은 라이라의 기억 속에도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너······ 는?”
인간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가시’로 찔렀던 인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죽음이라는 절대명제를 고작 인간 따위가 이겨냈단 말인가?
설령 이겨냈다고 하더라도 왜 자신의 앞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괴물의 모습을 한 채.
“허억! 허억!”
남자가 거친 숨을 몰아셨다.
그러곤 자신의 양 손을 확인하고, 배를 내려다보며 변형된 모습을 확인했다.
촤륵!
그리고 라이라의 손에서 가시가 뻗어나갔다.
뻗어나간 가시는 남자의 목에 겨눠졌다.
라이라의 표정이 한없이 굳었다.
“말해라. 너는 누구냐?”
“우리엘 디아블로.”
“뭐?”
“또 다른 이름은 오한성이다.”
“······ 장난하는 거냐?”
아그작!
이그닐이 라이라의 옆구리를 깨물었다.
있는 힘껏.
“읍! 읍읍! 으으읍!”
뭐라고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그닐이 라이라의 행동을 저지하려는 의도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남자가 땀을 훔치며 말했다.
“지금 이 모습으로는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찰나.
툭!
마치 실 끊긴 인형처럼 남자가 쓰러졌다.
창백한 안색. 갑자기 기절이라도 한 걸까?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곤 눈을 감았다. 너무 난데없어서 도리어 라이라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라이라.”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묵직한 중저음.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의 출현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갑지는 않았다.
“······ 로드시여, 깨어나셨군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지금 이걸 치우겠습니다.”
“치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 인간은 나의 아바타다.”
“아바······ 타요?”
라이라가 눈을 깜빡였다.
아바타. 말하자면 분신이다. 자신을 대신해서 움직여줄 존재. 하지만 정신과 정신을 연결해야하는 굉장히 고난이도의 기술이라 좀처럼 아바타를 사용하는 자는 없었다.
게다가 아바타가 있다는 말을, 그녀는 지금 이곳에서 처음 들었다.
“나는 잠이 들면 그 인간이 된다. 반대로 깨어나면 그 인간이 잠들지.”
“잠깐. 하지만, 인간이지 않습니까?”
그들은 명예 높은 용마족의 일족이다. 마족은 모든 생명체를 오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물며 인간은 벌레보다 아래로 취급한다.
너무 약해 쉽게 부서지고, 저열하며, 그런 주제에 숫자만 많은.
하여 라이라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인간은 나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다치면 나 역시 다치고, 아마도 그 인간이 죽으면 나 역시 죽을 테지.”
“주, 죽는다고요?”
실제로 우리엘 디아블로의 몸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피부의 살점이 떨어진다는 건 모습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마력의 상태가 최악이라는 뜻이다.
라이라가 급히 쓰러진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니······ 반드시 살리도록. 그 뒤에 이야기하마. 지금은, 상당히, 버티기 힘들군.”
우리엘 디아블로가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그의 신체가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인간남자의 숨소리도 점차 작아지는 중이었다.
라이라의 머릿속에 경적이 울렸다.
“으으으읍! 으으으읍!”
이그닐이 입을 크게 벌린 채 라이라를 물고 놔주질 않았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이그닐이 이 남자를 아빠라고 불렀던 이유.
이그닐과 우리엘은 심보가 날 정도로 서로를 잘 알았다. 알 수 없는 유대. 라이라의 그것보다 훨씬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알아본 것이리라.
‘살려야한다.’
우리엘이 거짓말을 입에 담을 리 없었다.
라이라가 쓰러진 인간남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다가, 닿기 직전 잠시 주저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내젓곤 남자를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에 눕혔다. 세계수의 잎들이 치유작용을 하며 회복을 시켰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게다가 인간 모습으로 돌아간 순간부터 심연의 어둠이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분명히 창고에 엘릭서가 있었지.’
라이라가 빠르게 움직였다.
시간이 없었다.
라이라의 표정이 굳었다.
‘없다.’
엘릭서. 신의 음료라 불리는 그 치료제는 창고에 없었다.
뒤늦게야 남아있던 엘릭서가 라이라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었단 사실을 깨달았지만, 지금 당장 구할 방도가 없었다.
‘엘릭서는 암흑상회에서도 좀처럼 취급하지 않는 물품인데.’
암흑상회로 갔다와야하나?
그때까지 과연 남자가 버틸 수 있을까.
심연의 독은 실시간으로 그를 죽이는 중이었다. 하물며 괴물의 모습에서 돌아온 이후로 모든 게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그때, 성 바깥에서 물건을 옮기고 있는 야차들이 보였다.
거대한 수레를 몇 개나 이용하여 움직이는 중이었다.
“구화랑.”
라이라가 야차들의 우두머리인 구화랑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구화랑이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어, 깨어나셨네. 역시 쉽게 죽지 않을 거 같더라니.”
안도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을 지껄이며 웃어버리는 구화랑이었다.
“이것들이 다 뭐지?”
“그거 있잖수. 멸제의 카르 뭐시기. 녀석의 창고를 다 털어오는 길입니다만. 왜요?”
“그 안에 치료제가 들어있나?”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물병들은 많더군요.”
“잠시 뒤져봐야겠다.”
“마음대로 하쇼.”
구화랑이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말렸겠지만 라이라 디아블로다. 우리엘 디아블로의 바로 아래 있는 최고계급. 이미 그를 따르기로 했으니 구화랑으로선 막을 명분도 없었다.
라이라가 수레들을 뒤지며 몇 개의 물병들을 골라냈다.
‘인간에게 들을 만한 약은 이게 전부다.’
치유력을 올려주는 물약 몇 가지.
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용은 어떡합니까?”
“······ 용?”
“검은 용 한 마리를 포획했습니다. 일단 밖에 묶어뒀습니다만, 좀처럼 말을 안 들어서요.”
“카르페디엠이 기르던 암흑룡을 말하는 모양이군.”
“예. 그거랑, 아직 못 옮긴 수정만 마저 옮기면 전부 가져온 셈입니다.”
암흑룡이라면 커스를 말하는 것일 테다.
수정은 아마도 망령대왕의 묘에 있던, 카르페디엠이 봉인을 풀고자 했던 것이겠지.
라이라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용의 심장은 최고의 치료제지.’
암흑룡의 심장이라는 게 걸리긴 하지만 모든 용의 심장은 비슷하다. 감히 최고의 치료제라 할 수 있었다.
암흑상회에 들러서 있을지 없을지 모를 엘릭서를 찾는 것보단 이게 빠를 것이었다.
“심장을 뽑아야겠군.”
“예?”
“암흑룡의 심장을 뽑아야겠다.”
“어마어마한 소리를 별거 아닌 듯이 하는 재주가 있으시군요.”
용의 심장을 뽑는단다. 그야 용의 심장이라 하면, 엄청난 가치를 내포하고 있긴 했다. 구하고 싶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살아있는 것만 못하다.
굳이 살아있는 걸 죽여서까지 얻을 가치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크게 없었다.
하지만 라이라의 의지는 확고했다.
“따라와라. 너의 칼솜씨가 필요하니.”
“설마 용을 해체하라는 소리는······.”
라이라의 험악한 눈을 보고 구화랑이 뜨악했다.
“······ 맞군요. 세상에. 나찰각에서 용의 배를 가르다가 걸리면 최소 천년면벽행인데.”
야차들과 나찰들에게 있어서 그만큼 신성하게 여겨지는 짐승이 용이었다.
만에 하나 용을 죽인다면 그대로 천년면벽행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형벌을 받는다.
하지만 거부권은 없었다.
이미 심연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에게는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라이라의 눈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살기.
죽음의 기운이 스멀스멀 구화랑을 향해 흘렀다. 농담이 통할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다.
결국 구화랑은 양손을 들어올렸다.
“못한다고 했다간 내 목이 날아가겠네. 알겠습니다. 한 번 해봅시다.”
* * * * *
펄떡이는 용의 심장을 들고서, 라이라와 구화랑이 조용히 방에 입실했다.
용의 해체와 만약의 상황에서 구화랑의 지식이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함께 들어온 것이다. 구화랑은 약재나 치료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수의 잎사귀 위에 눕혀있는 남자를 보곤, 구화랑은 눈을 휘둥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놈이 우리엘 디아블로라고요?”
“무엄하군. 죽고 싶은 게냐?”
“아니······ 분명히 로드를 치료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다.”
“아닌데. 얘 오한성인데.”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구화랑은 나찰각에서 이 남자를 본 적이 있다.
요주의 인물이었다. 혹시 몰라 귀 뒤를 살피니, 검은 야차의 인도 그대로 있었다.
“이 인간이 로드이시다.”
“그러니까, 우리엘 디아블로가 오한성이다? 오한성이 우리엘 디아블로다?”
“그렇게 되겠군.”
우리엘 디아블로. 그 악의 중추가 어떻게 오한성이고, 오한성이 우리엘 디아블로란다.
꽤 오랜 시간을 살면서 별의별 경험을 다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허!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야?”
구화랑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