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114화 (115/251)

< 28. 이그닐(5) >

잦은 전이, 특히 시간 차이를 얼마 두지 않은 이전은 몸에 큰 부담을 끼친다. 영혼이 신체에 잘 정착하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잠시 넋이 빠졌다.

이후 찾아온 급격한 울렁거림에 화장실로 달려가 토악질을 해대곤, 애써 괜찮은 척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움직였다.

던전과 이어진 ‘문’을 향해.

나는 세계수와 암흑문을 이용해 던전을 지구와 연결시킬 수 있었다.

이는 두 곳의 좌표를 어느 정도 숙지한 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좌표가 알아서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아마도 이그닐의 ‘권한’이 내게도 조금은 적용이 되는 듯싶었다.

‘단순히 심상만이 이어진 게 아니었구나.’

그때 깨달았다.

이타콰와 이그닐의 힘은, 나의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둘이 내게 더욱 많은 걸 느끼고 배우듯 나 역시도 적용되는 현상이 있는 모양이었다.

‘문의 위치도 내가 설정할 수 있게 됐지.’

문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세계수의 권한과, 이그닐 덕택에 좌표를 읽을 수 있게 되어 내가 원하는 장소에 문을 만들 수 있었다.

대전에 있는 폐교.

을씨년스럽게 낡아버린 학교의 옥상에 생겨난 ‘문’을 본 민식이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검은색······ 문이라고?”

검은색 문!

바로 심연과 이어졌다는 뜻이다.

과거 검은색 문은 기피대상 1순위였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안으로 들어가선 안 된다.

잘못 들어가면 결코 살아 돌아올 수 없다. 그곳은 그야말로 어둠의 세계이며 종말의 공간이었으므로.

하지만, 던전은 심연과 연결되어 있었다.

던전의 10층은 바로 ‘우리엘 디아블로’의 영지와 연결된다.

우리엘 디아블로의 영지는 감히 심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도 떨리는군.’

나라고 안 떨리겠는가.

그나마 ‘잠든 별의 던전’을 중간에 다리로 놓아서 연결한 것이지, 아니었다면 절대로 연결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인류가 던전의 10층을 밟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인류는 아래층에서 성장하고, 천연자원을 발굴하는데 집중하는 게 최선이었으니.

“여기를 혼자 들어갔단 말이지?”

“이 학교. 우리 부모님이 다녔던 학교잖아. 그냥 와봤는데 검은색 문이 있는 게 있지?”

민식이가 경악하며 나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검은색 문은 절대로 들어가지 말고 제보하라고 그렇게 홍보를 했는데.”

“미안하다.”

“다음부턴 아포칼립스 길드에 먼저 신고해. 아니면 나한테라도 말하던가.”

“그래, 그러도록 할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입에 담자 민식이가 긴장하며 입을 열었다.

“이 안에 무슨 괴물이 있는지 확인은 한 거냐?”

“1층엔 슬라임이나 이상하게 생긴 뱀 같은 것밖에 없어. 전부 확인은 안했지만.”

“그······ 이그닐은 어디서 구한 거고?”

“나도 잘 모르겠어. 가스 같은 게 올라와서 취한 듯이 걸었거든. 나간 것도 이그닐이 길을 알려줘서 나올 수 있었어.”

이그닐은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내 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조용히 있는 게 나를 돕는 길이라는 걸 파악한 듯 내 냄새 같은 걸 각인시키는데 바빴다.

“일단 들어가 보는 수밖엔 없겠군.”

민식은 완전무장 상태였다.

팔라딘의 망토와 다르한의 검, 그 외 못 봤던 장비들을 몇 가지 착용하고 있었다.

심안을 열어 녀석의 상태창을 살펴보았다.

[정보가 갱신됩니다.]

이름: 김민식(value-지배불가)

직업: 마검사

칭호:

● 능숙한 경험자(4Lv, 힘+5)

● 괴물 학살자(5Lv, 힘+7)

능력치:

힘 57(45+12)a 민첩 45(42+3)a 체력 50a 지능 42(40+2)b 마력 63(60+3)s 잠재력(237+20/433)특이사항:

-검법에 대한 깨달음이 잠재력을 소폭 상승시켰습니다.

-많은 영약의 흡수로 체질이 변했습니다.

스킬: 월광(3lv), 원소마법(5lv), 심판자(4lv)착용한 장비: 다르한의 검(마력+1, 월광), 팔라딘의 망토(민첩+3), 태양빛 반지(마력+2), 지혜의 귀걸이(지능+2)

[전후비교]

힘 35 민첩 24 체력 30 지능 20 마력 15 잠재력(123+1/399)힘 57 민첩 51 체력 50 지능 42 마력 63 잠재력(237+20/433)가파른 성장. 굳이 나와 비교하지만 않으면 굉장히 준수했다. 무엇보다 잠재력의 한계치가 늘어나 있었다. 그간 나 몰래 좋은 걸 많이 먹은 듯싶었다.

영약으로 올릴 수 있는 한계치는 450전후. 그것도 약이 잘 받는 체질이어야 하고, 조화롭게 섭취해야 한다. 그 이후로는 아무리 먹어도 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과도하게 섭취하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마저 있었다.

“조심히 내 뒤를 따라와라. 깊게는 안 들어갈 거다.”

아무 준비도 없이 검은색 문에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다.

근처만 확인하고 바로 돌아와야 했다.

극도의 긴장.

민식은 천천히 검은 문 안으로 발을 옮겼다.

나도 이어서 문 안으로 들어서자 순식간에 주변 배경이 바뀌었다.

[‘잠든 별의 던전(5lv)’에 입장했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민식이가 주변을 살폈다.

“쉿.”

“쉬잇.”

검지를 코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행동을 취하자, 이그닐이 고개를 끄덕이곤 내 행동을 따라했다.

귀엽지만 그래도 용이다. 민식이가 이그닐의 대동을 허락한 건 그 본질이 용이란 걸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봤자 1층에 그다지 위험한 괴물은 없지만.

‘기껏해야 슬라임과 에일 스네이크 같은 허접한 괴물뿐이지.’

급하게 풀어놓느라 많지도 않다.

500마리 안팎. 던전의 크기를 생각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민식이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대부분의 죽음은 방심으로부터 온다. 특히 이런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어두운던전 안에서는 단 1초의 방심이 죽음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물론 애당초 이 던전의 주인이 나이니 나는 그다지 긴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긴장을 한 척을 할뿐이었다.

한참을 걷던 민식이 웬 작은 호수를 발견하곤 멈춰 섰다.

“이건······ 설마 석유인가?”

까만 호수였다. 지하에 매장된 석유가 지면 바깥으로 유출된 것이다.

만져보고, 비벼보며 냄새를 맡은 민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석유로군.”

던전의 지하 깊숙한 곳에는 석유가 매장되어 있었다. 나도 그 총량은 정확히 모르지만 엄청난 양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나라가 10년 이상은 충분히 사용할 수있는 양이라고 추측되었다.

정확한 건 시추를 해봐야 알겠지만, 이 값어치의 막대함을 민식이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하지만 석유는 구하는 게 아주 불가능하진 않다.

여러 ‘문’들을 통해 석유 등이 매장 된 장소를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자주 연출되어 그다지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었으나 가능은 하다는 말이다.

허나 더 놀라운 건 석유 호수 근처에 있는 돌이다.

“마나석!”

민식이의 눈이 커다래졌다.

마나석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심연에선 너무 많아서 쳐다보지도 않는 마나석이지만, 인류에겐 굉장히 중요한 재원 중에 하나였다.

정령과의 계약, 혹은 마법의 강화, 마법이 담긴 스크롤의 제작, 건축이나 장비를 만들 때에도 마나석이 사용되곤 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너무 적어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 지금 민식이가 저만큼 놀라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석유보다 더 중요한 게 마나석이지.’

과거 지구에선 마나석을 가지고서 전쟁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리고 이 던전에 있는 마나석은 심연에 널린 것들보다도 품질이 좋았다.

내겐 그다지 필요가 없지만 인류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건 분명했다. 특히한국이 ‘힘’을 갖는데 열쇠가 될 것이다.

민식이의 눈이 크게 떨렸다.

“어떻게 이런 곳이······.”

주변이 다 보물이었다.

민식이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어쩌면 녀석의 고민 하나가 이곳에서 풀린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왜 과거에 이런 곳이 알려지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있겠지만, 있다가도 없어지고 하는 게 ‘문’이었으니.

“한성아. 바로 돌아가야겠다.”

“더 안 돌아봐도 되겠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리고 고맙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우면 나중에 그 하몽? 그거 하나 더 사오던지.”

“열 개, 백 개도 사다주마.”

민식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마나석을 이용하면 아포칼립스 길드의 힘이 단번에 배가 될 거다. 나도 눈 뜬 장님은 아니었다. 현재 세계의 모든 이목이 한국에 쏠린 것쯤은 알고 있었다.

많이 힘든 상황일 것이다.

아포칼립스 길드 본사에도 사람이 그토록 없었던 걸 보면 엄청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 열심히 해라.’

하지만 마나석이 있으면 최소의 숫자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다. 녀석이 잘 활용만 한다면 말이다.

녀석의 성격상 잠시간은 이 던전을 독식하려 하겠지만 나로서도 반기는 일이었다. 나도 던전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더불어 이 던전으로 하여금 인류를 강화시킬 장대한 계획도 세울 수 있게 되었다.그러려면 역시나 시간이 필요하다.

‘내 성장도 도모할 수 있다.’

이 던전은, 말하자면 인류의 성장발판이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나 ‘오한성’의 강화를 위한 장소였다.

세계수로 말미암아 빠르게 성장하고 번식하는 괴물들. 인류가 끼어들어 완벽한 ‘순환의 고리’를 만들면 나는 숨겨둔 이점들을 하나씩 빼어먹을 작정이었다.

심연에서 나에게로 물건을 옮기는 것도 한층 수월해지겠지.

마치 퍼즐 조각처럼 세계수가 나타나고, 이그닐이 각성한 덕분에 예전부터 구상만 하던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다.

다시금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온 민식이가 말했다.

“이 던전. 아포칼립스 길드가 선점할 거야. 그래도 괜찮지?”

“던전에 주인이 있나. 그런 걸 나한테 왜 물어?”

“네가 최초발견자니까.”

“마음대로 해.”

시원스럽게 말하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제안은 여전히 유효해. 우리 길드는 언제나 너를 환영한다.”

“뭐야, 술 취해서 까먹은 거 아니었냐?”

“······ 혼자 위험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야.”

“생각해볼게.”

“그래주면 고맙고.”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졌다.

처음 아포칼립스 길드 본사에서 보았을 때 삭막하기 그지 없던 그런 말투가 아니었다.

어깨가 많이 무거웠으리라.

그저 ‘기억’만을 가지고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량의 마나석과, 그를 활용할 기억이 만나 활로가 생겼다. 이제야 조금은안정을 취한 듯싶다.

“가자. 데려다 줄게.”

“혼자 갈게. 너 엄청 바빠 보이는데.”

녀석이 나를 쳐다보며 고민을 했다.

지금 이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기냐에 따라서 세계의 정세가 바뀐다.

이윽고 녀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 이해해줘서 고맙다.”

“친구 좋다는 게 뭐겠냐. 어서 가라.”

“그래. 갈게.”

손을 흔들며, 다시금 민식이가 학교 앞에 세워둔 차에 올라탔다.

그러곤 부아앙! 소리와 함께 빠르게 도로를 질주하며 사라졌다.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었다.

‘그럼.’

나는 이그닐을 바라봤다.

이그닐은 여전히 검지를 콧잔등에 올리고 있었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엄마한테 갈까?”

* * * * *

그냥. 올라가보고 싶었다.

이 던전의 10층은 심연과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내 이름으로 만들어진 던전이기도 했고, 어차피 1층을 제외하면 텅 비어있으니 그다지 위험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미 던전의 탐색은 끝낸 뒤였다. 우리엘 디아블로의 몸으로 나만이 아는 비밀루트까지 만들어둔 뒤였다.

그래서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별 일 없을 거라고.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냐고.

그저 심연과 내가 가까이에 있음을 느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기대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너무 안일했나보다.

추악!

가시가 돋아났다.

뒤에서 돋아난 거대한 가시 하나가, 내 등을 찌르고 피부를 꿰뚫으며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울컥!

피를 토했다.

갑작스러운, 인지조차 하지 못한 기습에 정신이 어지러웠다.

“아빠!”

이그닐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뚜벅. 뚜벅.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내 지척에서 멈춰선 발자국 소리의 주인이, 그 차갑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눈빛을 나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그 더러운 벌레에게서 떨어지세요, 이그닐.”

< 28. 이그닐(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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