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113화 (114/251)

< 28. 이그닐(4) >

격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오한성이었다.

김민식에게 있어선 오래된 친구이자, 과거의 미련과 같은 존재.

그런 존재가 느닷없이 들어오더니 여자아이의 ‘아빠’라고 한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고를······.’

잠시 헛된 망상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지워버렸다.

일단 저 여자아이. 인간이 아니다.

등에 날개가 솟은 인간이 있을 리 없으므로.

날개도 일반적이지 않다. 느껴지는 마력의 향이 무척이나 짙었다. 질긴 가죽의 황금색 날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용의 날개.’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분명히 용의 그것이다.

착각할 리 만무했다.

‘용’에 대해서만큼은 그 지식이 어지간한 이들보다 자세한 게 그였다. 결코 잘못 보았을 리 없었다.

오한성과 김민식의 눈이 서로 허공에 얽혔다.

“어떻게 된 일이지?”

수상쩍은 눈초리로 오한성을 바라본다. 오한성은 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준수한’ 수준에 들어가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키도 180가까이 되는 편이었고, 특유의 서글서글한 미소를 좋아하는 여자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특유의 서글서글한 미소가 없다.

어느 정도 긴장한 기색.

분명히 평범하게 살 줄 알았건만, 평범하지 않은 생명체를 대동하게 된 원인에 대하여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산책시키다가 잠시 잃어버려서. 하하, 미안하다.”

“산책을 시켰다고?”

오한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부우우우.”

그러거나 말거나 이그닐은 오한성의 가슴팍에 얼굴을 들이밀고 마구 뺨을 비비는중이었다.

애써 이그닐의 얼굴을 떼어놓은 오한성이 이어서 말했다.

“내가 테이머인 거 너도 알지?”

“그래서 그 여자아이가 테이밍의 결과물이다?”

“그래. 외견이 사람이랑 똑같아서 얼마나 놀랐는지.”

“놀만 테이밍 할 수 있는 거 아니었나?”

김민식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냉랭했다.

여자아이의 날개로 보아 평범한 생명체와는 거리가 먼 탓이다.

솔직히 과거에도 저런 종족이 존재한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인간과 99.9% 흡사한 외모를 가지며, 용의 날개가 있는 종족이 있었다면 진즉에 화자가 되었을 것이었다.

용의 날개를 가진 인간이라니!

오한성이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 네가 나한테 테이머의 재능이 있다고 했잖아?”

“그게 무슨 종족인지는 아는 거냐? 정말 테이밍을 했다면 어디서 구했는지도 알고 싶군.”

테이밍을 했다면 테이밍한 대상에 대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대답여하에 따라서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오한성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한 낌새가 더욱 의심을 증폭시켰다.

잠시 후 오한성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 * * * *

“······ 오한성?”

망했다.

내심 땅을 치고 후회했다.

좌표를 읽어 들여서 이그닐이 지구로 향했다는 건 확신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이었고, 지혜의 나무 근처였다.

즉시 ‘전이’하곤 이그닐의 뒤를 가파르게 쫓았다. 이타콰와 이그닐은 나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흔적을 따라가는 게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흔적이 ‘아포칼립스 길드 본사’로 이어진다는 걸 알고는 좌절했다.하필이면 민식이 녀석이 이그닐 근처에 있다는 것도 절망감을 증폭시켰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러게 말이다.’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모르겠다.

누가 나한테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분명한 건 이그닐이 모든 ‘문’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문’과 ‘문’을 연결해 아예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권한을 획득했다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는 노릇.

“산책시키다가 잠시 잃어버려서. 하하, 미안하다.”

“산책을 시켰다고?”

‘그야 의심스럽겠지.’

나는 최대한 침착했다. 조그마한 허점이라도 보였다간 괜한 의심만 사고 만다.

슬쩍 녀석을 살폈다.

‘피곤해 보이는군.’

수척해 보이는 얼굴. 아마도 엘프가 지구에 온 것과 관련해서 엄청난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는 듯싶었다.

저런 자리에서 일을 주도하는 건 처음일 테니 많은 혼란을 겪고 있겠지.

아니, 그보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 된 이상 내 임기응변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부우우우.”

이그닐은 처음 만난 ‘이 모습’에 감격이라도 한 듯싶었다.

킁킁 냄새를 맡고 얼굴을 비비며 어떻게든 나를 각인시키려고 했다.

나도 반갑긴 했지만, 장소가 장소였다.

이그닐의 얼굴을 천천히 떼어놓은 뒤 침착히 입을 열었다.

“내가 테이머인 건 너도 알지?”

“그래서 그 여자아이가 테이밍의 결과물이다?”

“뭐, 비슷해. 외견이 사람이랑 똑같아서 얼마나 놀랐는지.”

“놀만 테이밍 할 수 있는 거 아니었나?”

아주 북극이 따로 없다. 팬티 한 장만 걸치고 얼음덩어리 위에 서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일단은 내가 테이머임을 부각시키는 게 중요했다.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 네가 나한테 테이머의 재능이 있다고 했잖아?”

“재능. 그래, 너는 재능이 있지. 그런데 그게 무슨 종족인지는 아는 거냐? 어디서구했는지도 알고 싶은데.”

하지만 녀석은 즉시 본론을 원했다.

내심 제기랄,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도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날개를 봤지.’

녀석이 썩은 동태 눈깔이 아닌 이상 이 날개가 평범한 게 아니라는 걸 눈치 챘을 것이다.

어쩌면, 용의 날개임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었다.

날개는 민간인이 보아도 현묘할 만큼의 마력을 품고 있었던 탓이다.

특히 녀석의 반응을 보아 그럴 가능성이 더 높아보였다.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야할 판이었다.

“일단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나도 던전에서 구했어.”

“던전? 혼자 들어간 거냐?”

“어. 여태까지 흥미 없는 척 했지만, 엘프의 세계와 지구가 연결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몸이 간질간질해서. 이 아이도 그 던전에서 구한 거야.”

“어느 던전이지?”

민식이도 한국에 있는 웬만한 던전은 다 알고 있을 터.

어중간하게 답했다간 본전도 못 찾는다.

이럴 땐, 정말로 민식이가 알 리 없는 던전을 알려줘야 한다.

마침 그런 던전이 하나 있었다.

“‘잠자는 별의 던전’이라는 이름인데. 들어본 적 있어?”

“잠자는 별의 던전?”

들어본 적 없겠지.

내가 지은 이름이니까.

나는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우연히 발견했거든. 아, 이 아이 이름은 ‘이그닐’이야. 갇힌 걸 구해줬더니 날 굉장히 잘 따르는 거 있지?”

“그래서, 정확한 정체가 뭐지?”

“여기서 말하긴 뭐한데.”

조금만 더 내게 창작성이 있었다면 정말 그럴싸한 소설을 한 권은 쓸 수 있을 테지만.

모든 것을 속일 순 없다.

그 정도로 나는 타고난 거쟁말쟁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진실을 그럴싸한 이야기로 포장하는 방법뿐이었다.

나는 이어서 녀석에게 눈치를 줬다.

“그런데 앉아있을 만한 조용한 장소 없냐? 아까부터 뛰었더니 피곤해서. 후! 이 땀 보이지?”

전신에 땀이 범벅이었다.

엄청 뛰기도 했지만, 이중 절반은 식은땀이라 봐도 무방했다.

또한, 이는 내가 민식이에게 보내는 사인이었다.

녀석도 그렇게 눈치가 없진 않았다.

“그래. 자리를 옮겨야겠군.”

민식이가 고개를 돌려 남자안내원을 바라봤다.

“기자회견 취소하고, 앞에 스케줄 모두 비워놓도록.”

“예? 외신들도 엄청 온다고 하던데 괜찮습니까?”

“내가 괜찮다는데 누가 뭐라 하지?”

“그건 그렇죠.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안내원이 천천히 나를 주시했다. 아포칼립스 길드 마스터의 주변인물 중에 나 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겠지.

아마도 민식이 녀석은 여태껏 ‘나’라는 존재를 극구 숨기고 있었을 것이다.

“이야. 민식이. 기자회견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야? 진짜 많이 컸네!”

내가 다소 놀리듯 말하자 남자 안내원의 얼굴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민식이 녀석은 마왕 같은 건가보다.

하지만 정작 민식이는 피식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여기선 내가 왕이다. 적어도 이 건물 안에선 대통령도 나한테 함부로 못해. 마찬가지로 이 건물 안에서 내가 하는 말은 이뤄지지 않는 게 없지.”

짜식, 허세는.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소 과장된 면모가 있었다.

그 사정을 내가 모를 리 없지만 친한 친구 앞에서의 객기다. 작게 웃으며 동참해주었다.

“대박이네.”

“하여간······ 따라와.”

민식이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곤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민식이가 나를 안내한 곳은 자신의 집무실이었다.

나름 편안한 의자가 몇 개 있었고, 밖에서 자판기 커피 두 잔을 꺼내온 녀석이 앉아있는 나를 향해 진지하기 짝이 없는 눈초리로 말했다.

“한성아. 나는 네가 나를 속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각한 말투. 무거운 분위기.

그렇게 말하는 민식이의 얼굴은 한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결코 보이지 않는 표정.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걸 100% 서로 공개하면 좋겠지만, 녀석도 알 것이다.

그럴 수 없음을.

애당초 민식이부터가 내게 숨기는 이야기들이 있지 않나.

우리가 모든 걸 터놓을 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의심의 종류가 다르다.’

녀석의 말을 듣고, 내심 안심했다.

적어도 ‘회귀’에 따른 의심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요컨대 녀석은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그닐을 얻었음에도 함구하고 있었던 것에.

친구인 자신에게도 숨길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빠······ 죠아······.”

쿠우울!

이그닐은 이미 내 무릎 위에 엎어져선 잠들어 있었다. 나는 이그닐의 배를 토닥였다. 기가 막히다는 듯 민식이가 나를 쳐다봤다.

“너를 잘 따르는구나.”

“귀엽지?”

“다른 사람들이 귀엽다면 귀여운 거겠지.”

녀석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이 이상하게 말을 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그닐은 잠자는 별의 던전이라는 곳에서 발견했어. 너도 봐서 알겠지만 평범한아이는 아니지.”

“그렇지. 특히 그 날개는······.”

“용의 날개지.”

“······!”

아예 선수를 쳤다.

어중간하게 간을 보면 오히려 의심만 키운다.

예상대로 민식이의 반응은 격했다.

탁!

책상을 치며 고개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용··· 인가?”

“맞아.”

진실 하나를 섞는다.

이 파격적인 진실은 내 모든 거짓을 가려버릴 것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어설픈 거짓이라 할지라도.

파르르르!

민식이의 전신이 떨렸다.

“하지만······ 사람의 모습인데?”

“변하는 게 특기인 거 같더라고. 이그닐. 한 번 변해볼래?”

“우웅.”

눈을 비비고 일어난 이그닐이 퍼엉! 소리와 함께 터졌다.

짙은 안개 속에서, 황금색의 꼬리가 치켜 올라간다.

“황룡······!!”

눈이 튀어나올 듯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용이라니!”

녀석은 경악하고 있었다. 놀라움의 수준을 넘어서서 믿기지 않는다는 눈초리였다.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사람의 모습을 빌릴 수 있는 용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말했잖아. 갇혀 있었다고.”

민식이가 나와 이그닐을 번갈아 돌아봤다.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욕망이 드러났다.

하지만, 민식이는 이겨냈다.

퍼억!

자신의 뺨을 손으로 세게 때린 것이다.

“왜, 왜 그래?”

“아니, 아니다. 그래······ 황룡을 얻었구나. 황룡은 아주 귀한 종류의 용이지. 백색의 용만큼이나.”

백색의 용, 이타콰.

아마도 녀석은 아르켄이 이끄는 이타콰와 내가 기르는 이그닐을 분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민식이는 약간의 기대를 담아 입을 열었다.

“그 던전이라는 곳에 다른 것도 있었나?”

“있긴 있었지. 그런데 오늘따라 말투가 굉장히 무겁다? 역시 용이라서?”

“······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용의 모습을 보이지 마라. 그 가치를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나는 너를 지켜줄 수 없을 테니까.”

굳은 얼굴로 말했다.

괴물들의 침공이 잦아질수록.

보라색 문이 열리고 더욱 강한 괴물이 쳐들어올수록.

‘사람이 다루는 용’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세계 모든 이들의 이목이 쏠리며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나를, 이그닐을 얻으려고 할것이다.

민식이도 그것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

“알았어. 그런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말로 설명하기보다 직접 가볼래?”

“지금 바로 말이냐?”

“아니, 바로는 아니고.”

나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쨌거나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계획하고 있었던 일들을 연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슬쩍 눈치를 보는 척을 하며 입을 열었다.

“한 세 시간만 자도 될까?”

* * * * *

세 시간만 자도 되냐고 물은 건 피곤해서가 아니다.

물론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정말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전이가 완료되었습니다.]

전이가 완료되었다는 문구를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문구와 함께 ‘우리엘 디아블로’로서 자각을 가지게 되었다.

‘여섯 시간.’

지구의 오한성이 잠든 3시간, 심연에서의 6시간 동안 나머지 일을 끝내야 한다.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벅차고 성의 바깥으로 나갔다.

“아, 로드시여······.”

던전 근처에 있던 라이라가 나를 반겼다.

이그닐을 잃어버린 후 다소 창백해진 얼굴이었다.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완전 밀가루처럼 변했다. 그동안 이그닐에게 상당한 정을 쏟았던 모양.

“예의는 되었다. 그보다 ‘문’을 열 것이다. 이그닐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정말 이그닐이 있는 곳을 알아내신 겁니까?”

순간 파리하게 죽어가던 라이라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게 있다.”

“말씀만 하십시오.”

라이라의 눈에 활기가 돌았다. 반드시 이그닐을 되찾아오겠다는 집념. 이게 모정이라는 건지.

나는 던전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던전을 채워 넣기 위한 괴물들이 필요하다.”

물론 단순히 속이기 위함만이 아니다.

이 던전은 인류를 보강시킬 계획의 첫 걸음이며, 심연과 지구의 ‘첫 접촉’을 위한 장소이기도 했다.

신경을 써서 더욱 정교한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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