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마계옥션(完) >
하지만, 이 역시 내색해선 안 된다. 나는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잔잔하게 던전이 담긴 구슬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떠한 정보도 던져줄 필요가 없기에.
‘다량의 천연자원. 그리고 특별한 힘을 지닌 보석.’
하나하나를 되짚어보면 ‘데몬로드’의 입장에선 그다지 좋은 편성은 아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천연자원이 필요하겠으며, 아무리 특별한 보석이라 할지라도 그 쓰임새는 ‘인간’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어떤 데몬로드도, 심연의 어떠한 괴물들도 ‘특별한 보석’으로 인한 능력치의 증가를 받지 않고 있었다.
루비, 토파즈, 에메랄드,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차례대로 힘과 민첩, 체력, 지능, 마력을 나타내는 보석의 종류였지만 이것을 가지고 활용할 수 있는 건 적어도 심연의 괴물들은 아니었다.
‘구할 수만 있다면.’
반면에 인간에게 있어선, 나에게 있어선 미칠 듯이 탐나는 던전이다.
다량의 천연자원은 현 시국에서의 힘이 된다. 앞으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면 바다에 배를 띄우는 것조차 힘들게 되며, 하늘 역시 수많은 괴물들에게 유린당할 것이었다.
‘외교의 단절. 이상 집단들의 발생.’
흔히들 한국은 기름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외교가 단절되면 가장 문제시되는 게 자국 스스로가 자생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과거엔 그게 안 돼서 이상 집단들이 수없이 발생하고 치안문제가 극도로 예민하게 대두되었다.
허나 식량 문제는 지금부터라도 농작지를 넓혀 가면 된다. 하지만 천연자원은 아무리 보관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던전에서 다량의 천연자원을 구할 수 있게 된다면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석은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해야 한다.’
괴물을 잡으면 극한의 확률로 나오는 보석의 종류.
나 역시 돌아온 뒤로 ‘최하급 루비’ 하나만을 구해봤을 뿐이다.
보석은 장비를 강화시켜주며 인간의 한계능력을 넓힌다. 구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구해야할 ‘특별한 보석’이건만, 그게 던전에 묻혀 있다고?
“3만.”
“안달톤님께서 입찰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번에도 안달톤님이 던전을 낙찰하실 수 있을까요?”
공작은 다소 도발적인 언행으로 안달톤 브뤼시엘을 불렀다.
여태껏 모든 던전을 그가 구매했기 때문이다.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태껏 안달톤 브뤼시엘이 사용한 포인트는 45만 남짓.’
얼마나 남았을까?
계속해서 다 구매할 정도의 여력이 있는 건가?
데몬로드들의 평균 포인트 보유현황은 4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모든 데몬로드들이 소유한 포인트의 합계는 고작 288만 정도라는 뜻이다. 아마도 10만 이상의 포인트를 보유한 데몬로드는 열 명 남짓일 것이었다.
‘지난 이틀간 진행 된 경매에서 대부분의 데몬로드들의 한계점을 알아봤지. 안달톤 브뤼시엘과 나를 제외한 데몬로드들이 대략 230만 포인트를 소유하고 있을 터.’
입찰경쟁은 그들이 보유한 포인트를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모든 이들의 ‘한계점’을 보다 자세히 살폈고,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안달톤이 못해도 30~40만 포인트를 지니고 있으리라는 걸.
도합 70~80만 포인트 이상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어마어마하군.’
계산을 끝내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만한 포인트를 대체 어디서 구한 걸까?
나도 상회를 운영하며 많은 포인트를 구했다고 하지만, 오로지 ‘포인트 모으기’에혈안이 되어서 가능했던 수치다.
하지만 안달톤이나 다른 데몬로드들은 내정에, 영지의 유지에, 혹은 더욱 강한 힘을 보유하고자 계속해서 투자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
‘내가 가진 포인트는 15만.’
하여간 확실한 건 정면으로 싸워선 상대가 안 된다.
수를 내야 했다.
“4만.”
“로드 나플림님께서 입찰하셨습니다.”
“5만.”
“로드 안달톤님이 빠르게 재입찰하셨습니다! 자자, 더 없으십니까?”
확실히 경쟁자가 없다. 찔러보는 자도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아예 던전의 경매에 흥미가 없는 데몬로드도 있었고, 단순히 ‘넓기만 한 던전’을 굳이 구매하려고 하는 자는 더 적었다.
“더 없으시면 이대로 이 던전의 낙찰이 결정됩니다. 셋을 세겠습니다. 하나, 둘.”
“6만.”
“로드 우리엘님! 왜 안 나오시나 했습니다!”
“7만.”
“다시 안달톤님!”
묘하게 템포가 빠르다.
재입찰이 무섭게 이뤄지고 있었다.
안달톤 브뤼시엘. 설마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건가?
‘던전의 정보를 파악하는 능력이라도 지녔나?’
데몬로드에 관해선 ‘심안’도 만능이 아니다. 제한적인 정보만을 출력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스킬은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전부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지녔다면 굳이 전부를 살 필요가 없다.’
그는 모든 던전을 다 구매하고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첫째 날, 둘째 날 경매엔 아예 관심도 안주고서 말이다.
“7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더 입찰하실 분이 안 계시면······.”
“8만.”
“휘유! 우리엘님, 작심하셨군요! 확실히 넓은 던전이 하나쯤 필요하긴 하지요.”
“9만.”
“뜨겁습니다! 안다톤님께서 다시 재입찰을!”
빠르다. 묘하게 빠르다.
이전 경매에서의 재입찰 속도보다 반박자정도 빨랐다.
나는 시간을 다 소모하여 고심하는 척을 하며 행동에 옮겼지만, 그는 반드시 이 던전을 구매할 것처럼 보였다.
‘과거 그는 던전을 통한 이득을 보았다. 유일하게.’
그런데 다른 데몬로드들의 참여가 저조하다.
왜?
빈 던전을 사봤자 공간만 차지할 뿐이기 때문이다.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수고로움 등을 계산하면 거기서 이득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골칫덩어리겠지. 다른 데몬로드들이 굳이 입찰에서의 유도를 안 시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본래라면 찔러보기 식으로라도 입찰가를 올렸을 그들이다.
하지만 그런 의도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던전을 구매하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관리비용 등의 이유로 가만히 놔둬도 힘이약체화되니.
헌데, 안달톤 브뤼시엘은 이득을 봤다.
그리고 이번 경매에서도 이득을 취하려 한다.
언뜻 보면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계속해서 무모하게 복권을 사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무런 확신도 없이 그저 뛰어든 것뿐일까?
‘뒤에 남은 던전들을 정말로 모두 구매할 생각이라면.’
10만 포인트 이상은 그도 부담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까지 도박을 할 정도로 어리석은 자는 아니었다. 그저 무모했을 뿐이라면 라이라가 굳이 그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을 것이므로.“10만.”
나는 안달톤 브뤼시엘에게 시선을 옮겼다.
어찌 나올 것인가. 자존심 싸움처럼 보이기도 해서 다른 데몬로드들이 꽤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러자, 그는 공작이 입을 열기도 전에 말했다.
“13만.”
······ 아.
단번에 내 한계영역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자. 안달톤 브뤼시엘.
그는 나처럼 다른 데몬로드들을 살피고, ‘한계점’마저 계산을 완료한 게 분명했다.
동시에 나의 ‘200만 포인트설’이 가짜임을 간파하고 오히려 지금 부른 13만 포인트 근처가 한계일 것이라고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던전의 값어치 역시 알아본 게 틀림없었다.
‘데몬로드들에게 그다지 득이 될 건 없을진대.’
당장 위에 나온 천연자원과 보석은 데몬로드들에게 ‘하등 쓸모가 없는’ 것들이었다.
헌데도 안달톤 브뤼시엘은 이 던전을 구매하고자 한다.
‘숨겨진 특별한 코어.’
그것을 나보다 더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건가?
진정한 값어치가 거기에 있노라고 말하는 듯싶었다.
제기랄.
이제 내가 입찰할 기회는 한 번 뿐이다.
14만을 부르고, 그가 다시 15만으로 재입찰을 한다면 더 이상 참여할 기회조차 없다.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
안달톤 브뤼시엘이 모든 던전을 사려고 하는 이유.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다. 이제야 알았다. 그 역시 심리전을 유도하고 있다는 걸.
이런 특수한 정보는 오로지 나만 알아볼 수 있다고 자만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더욱 노련하게 발악하며 조금씩 포인트를 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낮은 가격에 낙찰을 받고, 그래서 자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갔다면······.
내심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현실도피일 따름이었다.
“치열합니다! 13만 포인트가 나왔습니다. 어쩌면 이 던전엔 엄청난 게 들어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더 안 계십니까?”
공작은 노골적으로 나를 바라봤다.
안달톤 브뤼시엘. 그가 구매를 작정했다면, 내가 어떠한 심리전을 걸어도 소용이 없다.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보이든 그는 던전을 구매할 것이다.
“14만.”
“후호오오! 좋습니다. 14만 포인트! 저희는 이런 열기를 원했습니다!”
공작이 과도하게 액션을 취했다.
그저 입찰가를 높여 1만 포인트라도 안달톤 브뤼시엘이 손해를 보도록 만드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런데······.
조용했다.
즉시 재입찰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왜지?’
재차 안달톤 브뤼시엘을 바라보았다.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명백하게 나를 바라보며.
언뜻 보면 비웃음이지만 비웃음이 아니라는 걸 안다.
저건 흥미의 미소다.
재미있다는 듯.
“우리엘님께서 14만 포인트에 입찰하셨습니다! 더 안계십니까?”
마지막까지 지켜봤다.
저 흥미가 농락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셋을 세겠습니다. 3.”
1초가 굉장히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2.”
왜 참여를 안 하는 거지?
왜 그런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보느냔 말이다.
내가 진짜로 200만 포인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그는 알고 있을 것이었다.
싸우면 자기가 이긴다고 확신 또한 하고 있으리라.
“1.”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14만 포인트에 우리엘님께서 던전을 낙찰 받으셨습니다!”
낙찰을 받았다.
동시에, 안달톤 브뤼시엘이 말했다.
“우리엘 디아블로. 역시 너는 흥미로운 녀석이로군.”
위대한 별에서 마주쳤을 때 그는 내게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경매가 종료될 때까지, 나는 안달톤 브뤼시엘의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양보했다.’
그가 나에게 ‘양보’했다는 것.
알고 있으면서도 넘어가줬다는 것.
모든 걸 쥐어짜낸 데에 대한 나름의 예의였다는 것······.
‘안달톤 브뤼시엘.’
나 역시 그 이름을 더욱 철저히 새겨 넣었다.
라이라의 말마따나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을 듯했다. 그러나 그가 적으로 돌아선다면 매우, 매우 피곤해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 * * *
마계옥션이 끝났다.
총 3일간 내가 낙찰 받은 건 네 가지.
푸른 번개의 정령 프투가, 뒤섞인 공포, 카오스 미믹, 그리고 이름 없는 던전.
영지로 돌아오자 낙찰 받은 모든 물건이 이미 전달되어 있었다.
「크투가의 냄새를 풍기는 이여. 우리의 신이 어디 있는지 그대는 아는가?」
“여기엔 없다.”
불과 푸른 번개의 정령 프투가.
나는 그와 계약을 했다. 그리고 적잖게 놀라는 중이었다.
‘능히 최상급 정령에 비견되겠군.’
최상급 정령은 과거에도 몇 차례 본 적이 없다. 일단 인류가 최상급 정령과 계약을 맺은 일 자체가 없었고, 유일하게 엘프의 여왕이었던 엘더 엘프가 최상급 대지의정령과 계약을 맺은 바가 있었다.
순식간에 산 하나를 만들어내는 가공할 능력. 십 수 킬로미터의 땅을 단번에 파내어 적들을 유린하는 모습을 보곤 전율한 적마저 있었건만.
프투가는 그에 비견될 만했다.
계약과 동시에 느낀 불과 번개의 힘은, 마음만 먹는다면 모든 것을 태우고 불사를수 있을 듯했다.
「그럼 어디에 있지?」
“내가 아는 건 그의 힘이 담긴 돌뿐이다. 그 돌이라도 원한다면 머지 않은 시기에볼 수 있을 것이다.”
크투가의 힘이 담긴 돌.
지금은 지구에서 모루로 쓰고 있었다.
「알겠다.」
프투가가 순순히 물러났다.
나와 계약을 하게 된 이상, 내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걸 그도 알고 있을 터였다.
다음은······ 뒤섞인 공포.
산처럼 거대한 살덩이가 성 외곽에서 꾸물거리고 있었다.
‘멸제의 카르페디엠을 상대할 히든카드.’
야차나 용병들에게도 최대한 가까이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근처에 가면 적군, 아군 관계없이 다 먹어치우려는 습성이 있었다.
말도 안 듣는다.
굳이 말하자면 뒤섞인 공포는 ‘폭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폭발시키길 바라는 지역에, 그저 투하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 터지고 주변을몰살시키는 게 바로 저것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카오스 미믹.’
바로 옆에 비치해 둔 검은 색깔의 상자.
‘운명의 장난’으로 점친 결과, 30만 포인트 이상의 가치를 가진 물건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50%였다.
대체 무엇이 들어있을지 상상도 되질 않았다.
이득이 될지, 이득이 되지 않을지 확신조차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열어봐야 한다는 점은 변할 바가 없었다.
‘일단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열어봐야겠군.’
뒤섞인 공포처럼 그저 파괴만을 일삼는 무언가가 나온다면 애써 지은 성이 날아가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나는 카오스 미믹을 통째로 들고,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지를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의 중심에서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카오스 미믹을 열었다.
< 27. 마계옥션(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