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마계옥션(7) >
“‘뒤섞인 공포’는 주변의 모든 걸 잠식하고 증식합니다. 주어진 숙명 자체가 ‘증식’에 있는 듯 순식간에 포식한 존재를 언데드로 만들어버리지요. 그 언데드에게 죽은생명체는 또 다른 언데드가 되어, ‘뒤섞인 공포’의 의지를 따릅니다.”
공작은 아주 느긋하게 설명했다. 어제와 같은 어조가 아니다. 과장도, 축소도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도 먹힐 거라는 걸 그는 자신하고 있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찌하여 이런 ‘악의’가 존재하는지, 저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전염속도는 감히 상상을 초월하며, 설혹 엘더 리치라 할지라도 이러한 증식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게다가 자아가 없기 때문에 혹여나 생길 수 있는 ‘문제’도 없지요.”
뒤섞인 공포.
녀석이 원하는 건 그저 멸망이다.
그것만을 위해 만들어져서 자아가 필요 없다.
오로지 저것이 ‘모체’다. 뒤섞인 공포를 죽이면 녀석이 만든 모든 언데드가 죽지만, 죽이지 못하면 눈 깜빡할 사이에 군단이 불어난다.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는 괴물이었다.
“5만 포인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 쓰임새에 관해서는 로드분들께서 각자 판단해주시길.”
우아하게 예의를 차리며 공작이 미소를 지었다.
다들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도 관심이 있었다. 대체 저 마왕의 살점을 어떤 미친놈이 한국에 투하했는지 말이다. 뒤섞인 공포만 아니었다면······ 적어도 그토록 허무하게 한국이 멸망하진 않았을 터였다.
내가 목숨을 걸고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억울하고, 화가 나고, 그래서 슬픈 건 한국이 멸망하고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 때문이었다.
‘나는 무력했다.’
당시의 패배감이 전신을 짓누른다.
한국이 멸망하고 난 뒤의 지옥도가 머릿속에 다시금 재생됐다.
제기랄. 이건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남은 트라우마다. 내가 그저 ‘영웅’이 되고자 했었던 이유였다. 동시에 영웅이란 단어의 부질없음을 깨달은 계기이기도 했다.
‘허나 이제는 아니다.’
떨리는 손을 애써 쥐었다. 이를 악 다물며 전장을 바라봤다.
저 거대한 살점. 저조차도 아직 다 성장한 게 아니다. 먹이만 있으면 끊임없이 성장하는 게 뒤섞인 공포였다.
한국이 멸망했을 땐 서울도심을 전부 덮어버릴 수준이었으니.
“5만.”
“안달톤님! 간만의 참여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안달톤 브뤼시엘.
내 바로 옆에 있는 중립의 데몬로드.
설마 녀석일까? 우리엘 디아블로의 죽음 이후 뒤섞인 공포를 한국에 투하한 게?
“6만.”
“버뮤안님께서 6만 포인트에 입찰하셨습니다!”
활발한 참여는 아니지만 가격이 조금씩 상승했다.
나는 심안을 열어, 공포의 진실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름: 뒤섞인 공포(value-269,000)능력치:
힘 90 민첩 90 체력 90
지능 90 마력 90
잠재력(450/450)
특이사항:
-자아가 없는 괴물입니다.
-끊임없이 먹어치우고 성장하며 또한 증식합니다.
-모든 감염원의 모체입니다.
스킬: 감염(9lv), 종양 생성(9lv), 거대화(8lv)능력치도 능력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스킬의 레벨이다. 특히 ‘감염’과 ‘종양 생성’ 스킬은 준권능이라 칭해지는 9lv에 도달해 있었다.
암흑상인들도 이만큼의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르는 듯싶었다.
알았다면 그러한 방향으로 설명을 했을 것이고, 더욱 많은 데몬로드의 참여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 입맛이 썼다.
“16만.”
“카르페디엠님! 확실히 뒤섞인 공포는 ‘멸제’의 이름에 걸맞은 괴물이라 할 수 있지요!!”
나는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누가 이 괴물을 사들이는지 알고 싶었다.
“더 안 계십니까? 더 안시면 16만 포인트에 로드 카르페디엘님에게 낙찰됩니다.”
더는 나서는 자가 없었다.
그저 ‘설명’만으로 뒤섞인 공포의 저 가공할 능력을 모두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자는 이곳에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저 심안만으로 뒤섞인 공포를 파악했다면, ‘대단하다’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경악하며 몸을 떨어대진 않았을 것이다.
헌데······ 카르페디엠이라.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군.’
설마 멸제의 카르페디엠, 녀석이 한국으로 저 살점을 보낸 걸까?
그렇다면 정말로 찢어 죽여야 할 악연이었다.
그림은 그려졌다. 우리엘 디아블로와 카르페디엠은 적대적이었고, 우리엘 디아블로가 한국으로 도망을 가자 그 뒤를 잡기 위해 카르페디엠이 저 살점을 보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피해는 인간이 보았다. 하기야 인간 따위는 아예 신경도 안 썼겠지만.
“3을 셀 동안 안 나오면 그대로 낙찰하도록 하겠습니다. 3, 2······.”
“17만.”
“오호호! 우리엘님이 입찰하셨습니다!”
카르페디엠이 나를 노려봤다.
나 역시 놈을 바라봤다.
놈과의 내기에서 승리한 덕분에 여유자금이 22만 포인트가 불었다. 반대로 카르페디엠은 그다지 여유가 있지 않을 것이었다.
‘내가 손발을 다 잘라버렸으니까.’
이미 카르페디엠과 나는 전쟁 중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녀석의 손과 발을 잘라먹었다. 흔히 말하는 돈줄과 구원타자들. 야금야금 갉아먹어 지금 카르페디엠은 여유가 없다.
카르페디엠이 나를 알 듯, 나도 카르페디엠을 안다.
여기서 괜히 더 질렀다가 낙찰이라도 되면 아예 경매에 참여자체를 못하게 될 것이다.
놈이 가졌던 것 중에 가장 값어치가 나갔던 휘장은 내가 팔아버렸으므로.
‘어찌할 테냐?’
나는 어깨를 쓸어보였다. 카르페디엠이 휘장을 걸쳤던 위치.
그러자 카르페디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예전과는 다르다.
가벼운 도발에도 반응할 정도로 나에 대한 증오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처음 나를 보았을 때 보였던 능글맞음과 여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자, 17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더 안계시다면 17만 포인트에 뒤섞인 공포가 낙찰됩니다!”
공작은 보란 듯이 카르페디엠 쪽을 향해 말했다.
애당초 ‘뒤섞인 공포’의 구매를 위해 입찰을 하는 데몬로드 자체가 적었다.
그저 비대한 살덩이. 먹어치우고 전염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기준으로 ‘격’이 있어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커다란 슬라임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게다가 자아가 없으면 편하기도 하지만 불편하기도 하다. 그저 무작정 주변의 생명체를 공격한다면 주인이 되는 의미가 희미하다.
‘네가 멸망을 지시한 괴물로, 너를 멸망시켜주마.’
그러나 뒤섞인 공포를 경험해본 나만이, 그 살점을 토막냈던 나만이 뒤섞인 공포의 제대로 된 활용법을 안다. 약점과 어찌 움직여야 할지도.
카르페디엠은 노려볼 뿐이었다. 더 참여하진 못했다.
나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과거에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지금의 나는 그 과거의 공포마저 내 스스로 조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한국을 멸망시켰던 저 비대한 살점을 데몬로드의 사냥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으리라!
“17만 포인트에 ‘우리엘’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두근! 두근!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이제는 처음처럼 마냥 아프지만은 않았다.
나는 나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내가 겪었던 공포를, 그 모든 것들을, 적에게도 알려줄 것이었다.
오로지 그 하나만을 위해 나는 이 자리에 서있었다.
경매는 계속 진행됐다.
구하고 싶은 모든 걸 구매할 순 없었지만, 아홉 번째로 진행된 경매에서 내 이목을 끄는 게 나왔다.
“혹시 미믹을 아십니까? 상자처럼 생긴 이 괴물은 아주 낮은 확률로 특별한 보물을 품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미믹이 특정한 상황에서 ‘균열’을 열 수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데, 균열 속에 흘러 다니는 무언가를 상자 안에 품게 되는 것이지요.”
미믹이라 칭해지는 괴물은 그 숫자부터가 매우 적다.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아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다만, 미믹의 안에서 무엇이 튀어나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보물, 혹은 괴물, 어쩔 땐 알 수 없는 잔해 같은 게 튀어나올 때도 있었다.
공작은 미믹을 내놓았다.
하지만, 평범한 미믹은 아니었다.
“‘카오스 미믹’이라고 불리는 괴물입니다. 지저 중의 지저에서 우연치 않게 구해온 특등품이지요. 안에 무언가를 품고 있는 것은 확인했습니다만, 그게 무엇인지는 저희조차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결코 평범한 게 들어있진 않을 겁니다.”
말하자면 도박이다.
꽝이 나올 수도 있고, 당첨금액이 얼마 안 될 수도 있지만, 보통 도박에 사용한 원금 이상의 이득을 볼 확률을 매우 적었다.
“특별히 1만 포인트에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과연 이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는 저도 매우 기대가 되는군요!”
이런 ‘도박성’의 물건은 첫째 날의 경매에서도 몇 개 나왔다.
애당초 마계옥션 자체가 날카로운 안목이 없고선 대부분이 도박과 같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를 넘어섰다.
[강력한 마력의 방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심안’으로도 제한적인 내용만을 확인하는 게 가능합니다.]
이름: 카오스 미믹
종족: 미믹
특이사항: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있습니다.
하물며 내 ‘심안’조차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내 심안이 먹히지 않는다면, 다른 데몬로드들의 관찰계열 스킬 역시 먹통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역시나.
주변의 반응은 냉랭했다.
아무리 1만 포인트라 할지라도 물 쓰듯 포인트를 쓸 수는 없었다. 그들 역시 포인트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안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면······.’
또 다른 수가 있긴 있었다.
우리엘 디아블로의 권능. 운명의 장난.
그로 인해 간단한 ‘확인’은 가능할 것이었다.
‘5만 포인트 이상의 가치가 있나?’
[100:0]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확인은 가능한 모양이었다.
최대한 깔끔하게 안의 내용물이 가진 ‘가치’를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하여간 5만 이상이라면, 입찰을 할 수준은 되었다.
운명의 장난은 하루에 세 번 사용이 가능하니 더 확인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20만 포인트 이상의 가치가 있나?’
[90:10]
일부러 크게 불러서 적정수준을 맞춰볼 생각이었건만, 20만 포인트 이상의 가치가 있는 물건일 가능성이 무려 90%라고 한다.
가치라는 게 기준을 무엇에 두냐에 따라서 달라지긴 하지만, 확실히 평범한 것이 들어있진 않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30만 포인트 이상의 가치가 있는가?’
[50:50]
30만 포인트면 어지간한 건 다 살 수 있다. 당장 내가 가진 것 중에 30만 포인트에 가장 가까운 게 ‘라이라 디아블로’였다. 다 성장하면 모르겠지만 아직 이그닐도, 이타콰도 그만한 가치를 가지지는 못했다.
헌데 30만 포인트 이상일 확률이 50%라고?
‘꼭,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야한다!
물론 안에 든 것이 나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걸 놓쳐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4만 포인트까지 나왔습니다. 역시 확인이 안 된 물건이다 보니 참여율이 저조하군요! 하지만 진정한 대박은 이런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공작이 열심히 입을 놀렸다.
공작은, 암흑상회는 정말 카오스 미믹 안에 든 게 무엇인지 모르는 걸까?
그들이 하는 말을 모두 믿어선 안 된다고 몇 차례나 확인을 했다. 하지만 쉽게 놓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더 없으십니까? 그러면 이대로 4만 포인트에······.”
“5만.”
“아아, 우리엘님! 굉장히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6만.”
“타릴놈님! 갑작스러운 출현이군요!”
“7만.”
“구아하르님! 오오, 무슨 일일까요?”
나의 참여로 인한 간보기는 이미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카오스 미믹은 육안으로도 스킬로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완전한 도박에 과연 어디까지 참여가 가능할까?
데몬로드의 입장에서도 만 단위의 포인트는 확실히 큰 지출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은, 그 도박에서의 승률을 확실하게 높여준다.
턱을 쓸었다. 약간이라도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 역시도 확실하지 않다는 인상을 조금이라도 주기 위함이다.
이러한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내 저의를 헷갈리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 8만.”
“좋습니다! 우리엘님! 자자, 더 안 계십니까?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작게 긴장했다.
더 이상의 경쟁은 무의미한 지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참여했던 두 데몬로드는 나를 보고, 내 모습을 보며 조금 더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더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사.
“우리엘님께서 8만 포인트에 카오스 미믹을 낙찰하셨습니다!”
낙찰이 확정되고 내심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다른 이들은 그런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볼 따름이었다.
내가 구매하는 게 좋은 것이라는 확증은 아직 아무 것도 없었다. 어쨌거나 이건 내가 처음 참여하는 공식적인 첫 경매였으니. 몇 가지의 소문과 심증만을 가지고 그저 도박을 할 순 없는 것이겠지.
물론 이 경매가 모두 종료되면 그 시선들은 어느 정도 확신으로 바뀌겠지만, 이미경매는 끝난 다음이다.
이번에 얻은 이득으로하여금 최대한의 효율을 얻고, 그리하여 격차를 벌리며 더 빠르게 달리면 그만이었다.
감히 쫓아오고 싶어도 쫓아올 수 없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