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마계옥션(4) >
설명만 들어도 저 검은 돌의 값어치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은 돌의 신’, 무려‘신’의 이름을 단 물건인 것이다.
세상의 종말을 알릴 정도의 격 있는 물건이라면 모두가 노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주변의 열기를 느낀 공작이 짙게 미소를 지었다.
“시작가는 5만 포인트로 하겠습니다.”
“5만.”
“로드 카카님께서 5만 포인트에 입찰하셨습니다.”
“6만.”
“로드 피아님!”
“7만.”
“가파릅니다! 로드 가가멜님!”
쉴 새 없이 입찰을 부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입찰가는 10만을 넘어, 15만을 향하고 있었다.
시작부터 대단한 열기였다.
나는 가만히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검은 돌의 신, 골-고로스. 설명만 들었다면 나 역시도 손을 들고 입찰 경쟁에 참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심안’으로 살핀 결과는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검은 돌의 신, 골-고로스(value-150,000)>
-생명체에게 유해한 빛을 뿜어낸다.
-산제물을 바치면 깨어나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언한다.
-검은 박쥐와 두꺼비로부터의 신앙을 얻는다.
『아득히 먼 옛날에 떨어진 골-고로스는 소수부족들의 숭배를 얻고 약간의 신격이 생겼으며, 그때 종말을 예언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며 골-고로스의 이야기가 누군가에 의해 ‘전설’처럼 퍼져나갔지만 수만 년 이상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종말의예언은 실행이 되지 않고 있다.』
참으로 애매하기 그지없는 물건이었다.
신은 신인 거 같은데, 내가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신과는 일단 거리가 멀었다.
전지전능, 압도적인 무언가를 보이지는 않는단 뜻이다.
유해한 빛을 뿜어내고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언하며 검은 박쥐와 두꺼비의 신앙을 얻는다고? 정말 하나도 쓸데가 없다.
그나마 걸리는 거라면 ‘미래의 예언’이다.
나는 이 역시도 확인을 해보고자 했다.
‘꿰뚫어보는 자, 우리엘 디아블로의 권능.’
운명의 장난!
모든 것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힘이다. 우리엘 디아블로는 100년간 잠들어있으며 ‘라이라 디아블로’를 살릴 수 있는 미래를 수없이 예견하고 실행하며 끝내 나라는 가능성을 붙잡았다. 그는 수많은 가능성을 보고, 그중 하나를 ‘선택’할 정도의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가진 권한은 그보다 훨씬 적었다.
대신 부작용도 없었다. 나는 그처럼 100년을 잠들 필요가 없이 그저 간단한 가능성 정도를 점치는 게 가능했다.
내가 볼 것은 ‘골-고로스’의 예언이 진짜냐는 것이다.
[1:99]
앞쪽이 그럴 확률, 뒤쪽이 아닐 확률이다.
빌어먹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가능성이었다. 골-고로스의 예언이 100개 중 1개만 맞는다거나, 아니면 99%의 확률로 골-고로스의 예언은 전부 거짓이라거나.
어느 쪽이든 최악이다.
‘만들어진 전설이었군.’
어깨를 으쓱했다. 운명의 장난은 하루 세 번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하지만, 지금처럼 간혹 확신이 필요할 때 사용하면 아주 유용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로드 크리시오님! 22만 포인트에 입찰하셨습니다! 검은 돌의 신, 골-고로스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지요!”
공작.
‘저거 순 사기꾼이네.’
100년만이니, 위대한 별들의 전쟁이니, 처음으로 선보일 것들을 고민하느라 행복했다느니······ 다 거짓말이었다.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형편없는 물건을 ‘진짜’인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물론 암흑상회 쪽에서도 골-고로스의 전설이 거짓이라는 걸 모를 수도 있다. 나는 여기서 한 번 더 ‘확신’을 원했다. 과연 이 판이 짜고 치는 판인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공작이 골-고로스의 진실을 아는가?’
[100:0]
알고 있다.
100대 0은 운명의 장난으로도 어지간하면 안 나오는 수치다.
진행자인 공작이 안다는 건, 암흑상회 전체가 이미 알고 묵인하고 있다는 뜻.
내심 피식 웃었다.
운명의 장난을 벌써 두 번이나 사용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곳은 데몬로드들만의 전장이 아니었다.
적이 데몬로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주 큰 착각이었다.
사기꾼이 판을 치고 있었다.
‘암흑상인들도 적이다.’
그저 포인트만 사용한다고 쉽게 좋은 물건을 넘겨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데몬로드들도 아는가?
하면, 의외로 조심하는 자들도 있는 걸 보면 알긴 아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기꾼이 왜 사기꾼이겠는가.
‘설마 또 그러겠어?’란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공작은 말했다. 별들의 전쟁, 그 첫 번째로 선보일 물건을 아주 고민했다고 말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데몬로드는 ‘첫 번째 물건은 대박이다!’란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라도 그러겠다. 저렇게 호언장담을 하는데.
속에서 무언가가 근질근질 거리고 있었다.
‘재밌네.’
나는 이곳에서 분명히 약자였다.
보유한 포인트마저도 적었으니 강자들과는 상대가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약자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강자의 측에 있는 건 아닐까?
암흑상인들의 거짓을 분쇄하고, 숨기려 했던 것들을 나만이 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엄청난 무기였다. 게다가 데몬로드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당장 우리엘 디아블로, 이 몸의 주인조차 내가 볼 땐 ‘답답이’그 자체였던 탓이다.
“더 입찰하실 분 안 계십니까? 이대로면 검은 돌의 신 골-고로스가 22만 포인트에 낙찰됩니다.”
정말 재밌는 판이었다.
가치 15만 짜리를 벌써 22만까지 띄웠으니.
하지만 22만에서 주춤한다. 모두가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 이상의 지출은, 이번 경매 전체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23만.”
공작의 눈이 나에게 닿았다.
“오오, 100년만의 등장하신 로드 우리엘님께서 23만 포인트에 입찰하셨습니다!”
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지만, 저들도 나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은연중에 들었을 수도 있겠지.
나 역시도 ‘미래예시’를 할 수 있노라고. 혹은 그에 준하는 권능이 있다고. 멸제의카르페디엠이 나를 적대하면서도 쉽게 손을 쓰지 못하는 이유였다.
“24만.”
“다시 시작합니까? 로드 카카님이 재참전 하셨습니다!”
“25만.”
“오오······!”
가격은 계속 올라갔다.
나는 슬며시 손을 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로드 쿠르쉬넬님이 33만 포인트에 골-고로스를 낙찰하셨습니다!! 박수를, 열띤 박수를 보냅니다!”
공작의 입이 찢어지려고 한다.
33만 포인트라니. 감히 엄두도 나지 않는 수치다. 아마 공작도 저 정도까지 올라가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가치 15만의 물건을 두 배 넘는 가격에 팔았다. 마진도 이런 마진이 없다.
나는 낙찰을 받은 로드 카카라는 자를 바라봤다.
그는 승리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미소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똥 씹은 그것으로 변할 테지만, 잠시의 행복을 누리게 해주자.
그리고 이번 경매에서 알아낸 게 있었다.
‘제로 파벌은 한 명을 제외하면 아무도 경매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 한명조차 ‘일부러’ 경매에 참여하게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그들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정확히 말하자면······ 저 중 누군가가 나와 같은 ‘관찰계열’의 상위 스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지독하게 경계심이 높거나. 어느 쪽이라도 조심해야겠군.’
저 제로라는 자. 계속 눈에 밟힌다. 4대 파벌 중 하나의 수장이며 그 능력치만으로도 나를 아찔하게 만드는 존재. 우리엘 디아블로가 아니라 제로가 지구로 떨어졌다면 모든 게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자. 다음 경매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물건 역시도 정말 물건입니다. 자신 있게 선보여 드리는 이것! 끊임없는 불길로 모든 것을 태우는 자! 루벨스의 염화입니다!”
공작이 이어서 다음 물품을 소개했다.
“착용한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태울 권능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모든 불의 왕이 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며, 어떠한 불도 감히 착용자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과장스러운 몸짓과 함께 공작이 자신 있게 말하였다.
루벨스의 염화라 불리는 갑옷이었다.
지그르르르!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었다. 겁화가 세상을 태워버릴 것 같은 기세로. 확실히 ‘겉’은 좋다.
‘심안.’
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한다는 걸 처음 경매로 깨우쳤다. 심안을 열어 더욱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었다.
<루벨스의 염화(180,000)>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상대를 태울 수 있음
●불 속성에 대한 강한 저항
●사용자에게 걸린 A랭크 이하의 ‘효과’ 차단좋은 건가?
아니면 나쁜 건가?
이것도 애매했다. 위의 두 능력은 좋다고 할 수 있지만, ‘효과’의 차단이라는 게 좋은 효과도 나쁜 효과도 모두 차단해버린다는 뜻 같았다.
‘저주, 혹은 버프 계열의 스킬 모두를 차단하는 거로군.’
요르문간드가 가진 ‘밤의 저주에 면역’보다 한참 하위의 능력이었다. 물론 불에 약하고, 지우고 싶은 저주가 있다면 구매해도 나쁠 건 없겠지만······.
내가 굳이 살 필요까진 없는 그 정도의 물건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에도 5만 포인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5만.”
“로드 우리엘님께서 5만 포인트에 입찰하셨습니다!”
골-고로스보단 형편이 낫지만, 분명한 건 이번에도 ‘허위매물’이었다.
공작의 설명처럼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데몬로드’의 기준에서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입찰경쟁에서 빠질 순 없는 노릇이다.
낙찰은 하지 않겠지만, 가격을 띄워서 저들의 지갑은 텅텅 비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불어 혼란도 줄 수 있겠지.’
처음에야 ‘미래예시가 가능한 우리엘 디아블로’가 입찰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몇몇 데몬로드들의 구매 욕구를 증가시킬 수 있을 테지만, 내가 계속해서 아무 의미없이 입찰을 반복한다면 어떻게 될까?
점차 나에 대한 인식, 기대가 낮아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진짜 물건’을 낚아챈다.
아무리 암흑상회가 사기꾼들 집합이라 하더라도 쓸 만한 것 몇 개는 내놓을 터였다. 그러니 라이라가 그토록 ‘마계옥션’의 중요성을 설명한 것이겠지.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경매에 영향을 준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나는 데몬로드보단 암흑상인의 편이었다.
“24만! 로드 오르텔님께서 24만에 ‘루벨스의 염화’를 낙찰하셨습니다! 축하, 또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불의 왕이 탄생하겠군요.”
모르고 봤다면 듣는 순간 뿌듯해질 말들이었다.
하지만 저 혓바닥을 조심해야 한다. 나 자신을 결코 풀어둬선 안 된다. 100번 경계하고 1번 경계가 흐트러지면 그 즉시 당하게 되어있었다.
그렇게 다섯 번이 넘도록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다. 입찰가를 올리고, 데몬로드들의 평균 포인트 보유량을 무참하게 깎아내렸다.
“벌써 일곱 번째 물건이로군요. 이것 또한 기대해주십시오. 아주 특이한 정령입니다. 저희도 발견하는 순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번개의 정령이긴 한데, 무려 푸른 번개를 품고 있는 정령입니다. 육안으로도 확인 될 정도로 강렬한 번개죠.”
작은 철창 안에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크기는 주먹 크기나 될까. 계속해서 철창을 벗어나려 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결계에 막혀 튕겨나가길 반복하고 있었다.
“게다가 정령계에서 통용되는 ‘급’이 없습니다. 이는 정령계가 아닌 자연계에서 강렬한 힘에 의해 잉태 된 정령이란 뜻이지요. 그 희소성에 관해선 모두가 알고 계실 겁니다.”
로드 몇몇이 턱을 쓸었다.
정령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건 아무리 그들이라도 힘들다.
하지만 지금 정령의 형상이 아주 흐릿하게나마 육안으로 보이고 있었다. 굉장한 정령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내게는 뚜렷하게 보였다.
푸른 번개를 품은 녀석이.
심지어 녀석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왜 나를 보고 있는 거지?’
나를 본 순간부터 철창 안에서 더욱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녀석을 바라보았고, 둘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그 순간.
「너에게서 크투가의 냄새가 난다.」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내 이름은 프투가. 살아있는 불, 크투가의 아바타르다. 크투가께선 내게 불과 푸른 번개의 힘을 주셨노라. 헌데 너는 누구지? 누구인데 지금은 없어진 그분의 냄새를 풍기는가.」
< 27. 마계옥션(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