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마계옥션(1) >
곰곰이 생각해보면, 민식이와 술을 마시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 만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헤어졌으며, 후에 만났을 땐 이미 세상이 망가진 와중이었다. 그리고 민식이는 신흥종교 알레테이아에 귀의해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모시며 이단자가 되었다.
중간중간 몇차례 만나긴 했으나, 그다지 좋은 일로 만난 것은 아니다.
‘주로 토벌이었지.’
나는 알레테이아를 토벌하는 입장이었다. 그들의 광신도적 믿음은 인류에게 분명히 해악스러운 것이었으니까. 괴물을 길러 사람들을 습격하는 자들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니겠나.
그중엔 민식이도 있었다. 녀석은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하며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발악을 했다.
그땐 우리 둘 다 여유가 없었다.
서로가 가는 길이 너무나도 달랐고 양립할 수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그때와는 달랐다.
“이게 무슨 햄인지 알아?”
소파에 걸터앉은 민식이가 자기 몸통만 한 햄을 식탁 위에 내려놓곤 물었다.
“뭔데?”
“하몽! 이거 하나에 250만원이야. 엄청나지?”
“이런 햄 하나가 250만원이나 한다고?”
“이정도로 놀라면 곤란해. 이 위스키 한 병이면 이거 열 개는 사거든.”
흐흐흐, 하고 웃는 민식이의 눈을 따라 술병을 바라봤다.
글렌피딕. 나도 몇 번 마셔본 적 있는 놈이다.
“술은 뭔데?”
“글렌피딕 1937! 무려 세계 3대 위스키 중 하나 아니겠냐, 글렌피딕이. 이것도 선물로 받았다.
“한국 최고 길드의 길드마스터답네.”
“됐어, 쑥스럽게. 그냥 자랑 좀 하고 싶었어.”
민식이 녀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도 싱크홀의 경합들을 무사히 완료하고 돌아온 것에 대한 관심의 정도가 이 선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 터였다. 술과 하몽은 빙산의 일각이겠지. 아포칼립스 길드의 행보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고, 이번 싱크홀로 인해 고위인사들이 대거 찾아왔을 것은 자명했다.
그럼에도 뿌리치고 내게 온 것이다.
“오늘 뉴스 봤어. 무사하게 성공했다며?”
“무사는 무슨. 오천 명이나 죽었는데······.”
“그래도 너 아니었으면 다 죽었을 거라던데?”
“길드원들이 뭘 알겠냐. 그냥 나 띄워줄라고 그러는 거지. 내가 한 건 다 된 밥에 숟가락 얹은 것밖에 없어.”
오늘따라 유난히 얌전하다.
솔직하다고 해야 할까?
“짠!”
잔에 술을 대충 담은 민식이가 꿀꺽꿀꺽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홍시처럼 달아올랐지만 녀석은 개의치 않았다.
‘후, 환상적이군.’
나는 천천히 한 모금을 마시곤, 자연스럽게 감탄사를 내뱉을 뻔했다.
이만 한 술은 과거에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저장된 것들은 사치품으로 분류됐고 세간의 눈을 의식해서 거의 마시지도 못했다.
혓바닥을 굴리며 잠시 풍미를 느끼다가, 애써 인상을 구겨보았다.
“쓰네.”
“크흐흐! 그러고 보니 너 술 처음마시는 건가? 처음부터 이런 술이면 다른 술은 입에 안 맞겠는데?”
“친구가 잘 나가니까 이런 술도 얻어 마셔 보고, 횡재지 뭐.”
“그치. 잘나가지. 잘 나가야 하지······.”
말을 곱씹으며 녀석의 표정이 조금 더 진중해졌다.
벌컥! 벌컥!
그러곤 물처럼 술을 부어대고 마셔대길 반복했다.
한 병이 눈 깜빡할 사이에 동이 나버렸다. 전부 녀석이 마신 것이다.
“크으! 취한다.”
“너무 빨리 마시는 거 아니야?”
“됐어. 원래 술은 이렇게 마시는 거야. 취하지 않을 거면 뭐 하러 술을 마셔?”
“틀린 말은 아니네.”
피식 웃자 민식이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에 벌러덩 눕듯이 앉았다.
“오늘 정말 내가 끝내주는 선택을 했거든. 인간의 욕심과 내 위치에서의 신뢰에 관해서 말이야.”
7대 주선, 인내를 두고 구매를 할지말지 한참을 고민하던 그것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녀석은 결국 신뢰를 택했다.
“욕심과 신뢰라. 어려운 문젠데?”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은 몰랐어. 넌······ 넌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거야?”
“무슨 소리야? 나 완전 욕심쟁이잖아.”
“아냐. 넌······ 내가 기억하는 너는······.”
“취했냐?”
민식이 도리질을 쳤다.
그러더니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하여간 넌 아주 멋있는 놈이야. 한성아.”
“아포칼립스 길드의 길드마스터께서 그러시니 매우 송구하다.”
“발음이 국어책 읽기인데?”
그러곤 서로 껄껄거리며 웃었다.
간만에 느껴지는 여유였다. 녀석도 이전까지 보였던 가면을, 지금에 와서는 한 겹벗어낸 느낌이 들었다.
“한성아. 내 길드 들어올래?”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물론 한 번쯤 제의를 해오겠거니 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 시기가 지금일 거라곤 상상도 못한 일.
“길드? 길드는 갑자기 왜?”
“북한산에서 그 일이 있고, 한동안 못 만났잖아.”
“너야 바빴으니까.”
“그 시간동안 생각해봤어. 너를 이대로 썩혀두는 건 정말 재능낭비라고.”
“됐어, 신경 쓸 필요 없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녀석이 대뜸 내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토는 화장실가서 해줄래?”
“그냥······ 북한산에 오를 때와 달리 지금이라면 나름 기반이 갖춰졌어. 너 하나 키울 여력은 돼. 내가 널 스타로 만들어 줄게. 너 김태희 좋아한다고 그랬지?”
“김태희 싫어하는 남자도 있냐?”
“그런 연예인이 트럭 째로 너를 만나려고 줄을 설 거야. 상상만 해도 기쁘지?”
“허언은. 됐어, 생긴 대로 살란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도 과거에는 수차례 스캔들이 났었다. 만난 적도 없는 연예인이 내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어안이 벙벙할 때도 있었지만.
그러자 민식이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해졌다.
“네가 가진 재능은 대단한 거야. 그걸 썩히는 건 국가적, 세계적 손해라고.”
“놀 몇 마리 테이밍한 게 뭔 세계적 손해까지 가?”
“그게 다가 아니야! 넌 하면 되는 놈이란 말이야. 나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닐 정도로······.”
“다른 길드원들이 들으면 날 죽이려고 하겠는걸.”
“최강의 영웅 아르켄보다 난 너를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너는 항상······ 아닌 척 하고, 퉁명스럽지만, 그래도 우리 곁에 있으려고 했잖아······.”
꺼내선 안 될 과거의 이야기가 민식이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많이 취한 거 같다.”
“나 같은 겁쟁이가 도망갈 때도, 결국 너는 다시 나를 찾으러 와줬잖아. 모든 영웅들이 죽어가고 회피하려 할 때도, 너는 마지막까지 검을 들었잖아. 구원을 바라는손이 있으면 넌 항상 그 손을 놓지 않으려 애썼잖아. 세월이 흘러 너는 웃음을 잃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웃으면 되었다며 끝까지 겸손을 잃지 않았잖아. 웃진 않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울어줄 순 있는 그런 놈이었잖아, 너는······.”
나는 잠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다. 녀석이 말하고 있는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
그저 피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검을 들어야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을 뿐이었고. 벼랑 밑으로 떨어지는 사람의 손을 놓을 수 없었을 뿐이었다.
사람이라면 지극히 해야 할 당연한 일이었다. 나라서 그랬던 게 아니라.
“나도······ 그런 영웅이 되고 싶다······.”
녀석은 그 당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쿠우우울! 쿠우울!
이내 침을 떨구며 녀석이 소파 위에 뻗어버렸다.
나는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다가, 이불 하나를 꺼내와 위에 덮어주곤 바깥을 바라봤다.
주륵주륵 비가 내리고 있었다.
‘민식아.’
솔직히 말해서 민식이는 착하다고 볼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다. 영웅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선택의 길에 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 번씩 이렇게 바뀌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인다. 모든 이들이포기할 때 의외로 포기하지 않는 근성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녀석을 끝끝내 놓지 못했던 이유다.
우리는 서로의 입장에서 발악하는 사이였고, 그 인연이 시간을 넘어 지금에 도달한 것이다.
‘그래. 너는 영웅이 돼라. 난······ 음지의 사냥꾼이 될 터이니.’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 * * * *
다음날.
자리에서 일어난 녀석은 두통에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내가 어제 무슨 말 했어?”
정말 기억을 못하는 건가?
별 일 없었다고 하자, 녀석은 라면이 먹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하는 수 없이 라면을 끓여주자 기ㅣ다렸다는듯 식탁 위에서 젓가락을 놀렸다.
“라면엔 김치가 있어야 하는데.”
“다 먹어서 없어.”
“그래도 면발이 살아있네.”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몇 마디 하다가, 슬쩍 시계를 본 민식이가 점심쯤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드에서 나 찾으려고 난리가 났겠다.”
“안 가도 돼?”
“슬슬 가야지. 아, 이거 받아.”
“웬 신발이야?”
알지만 모른 척을 했다.
‘광란의 신발······.’
검은 파편을 들여서 구매한 굉장히 값어치 있는 신발이었다.
녀석은 이것과 ‘지배의 목줄’을 산 바가 있었다.
“그냥. 너 생각나서 하나 샀어. 이거 신으면 빨리 도망갈 수 있다고 하니까, 위험할 때 잘 도망치라고.”
“고마워, 잘 신을게.”
“그럼 난 간다. 또 와도 되지?”
“이왕 올 거면 미리 연락은 주고 와라.”
“알았어. 그럼 진짜 간다!”
손을 휙휙 저으며 녀석이 신발을 신곤 현관을 벗어났다.
쿵! 소리와 함께 대문이 닫히자, 나는 손에 들린 ‘광란의 신발’을 바라보며 만감이교차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선물이라.’
자기가 신을 것을 구매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선물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유용한.
나도 잠시 구매를 할까 말까 망설이던 것이었는데 넝쿨째 들어온 것이다.
심안을 열고 나머지 기능들을 확인했다.
<광란의 신발+0(value-133,000)>
● 민첩+3
● 달리는 속도가 미약하게 증가한다.
● ‘보석’류로 강화가 가능하다.
- +1~2 최하급 보석 필요
- +3~4 하급 보석 필요
- +5~6 중급 보석 필요
- +7~8 상급 보석 필요
- +9~ 최상급 보석 필요
가치에 비해 별거 없어 보이는 기능이지만, 강화가 가능하다는 건 엄청난 이점이 있었다. 이처럼 간혹 ‘보석’을 사용해 강화가 가능한 것들이 매우 소수 존재했고, 강화를 거듭할수록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선보이곤 했던 것이다.
특히 처음부터 민첩을 3 올려주고 ‘광란’이라 이름이 붙었으니 강화를 진행할 때 더해지는 이점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저 보석을 박는 것보다 보석으로 강화가 되는 장비가 더욱 희귀했으니, 이 신발의 가치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보석을 구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작게 미소 지었다.
나는 인간이기도 하지만, 데몬로드이기도 했다.
그리고 심연에서의 일도 척척 진행되는 중이었다.
당장 가장 중요한 일이라면······.
‘마계옥션.’
모든 데몬로드들이 참여하는 경매.
라이라 디아블로가 그 중요성에 대해 누누히 말을 하고 있었으며, 나로선 처음 참여하는 그 경매가 곧 열린다.
단번에 차이를 좁히고 역전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이벤트였다. 그곳에서 보석도 구하고, 더욱 값진 것들도 구매하여 일발역전을 꾀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데몬로드들을 파악하고 선별하여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적을 파악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철저하게 살피고 또 살펴서, 놈들의 목을 조이리라.
지금의 나는 최후의 영웅이 아닌, 암야의 사냥꾼이었으므로!
< 27. 마계옥션(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