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100화 (101/251)

< 26. 7대 죄악(完) >

7대 죄악!

7대 주선과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의 이름.

과거 몇 개의 7대 주선이 나타난 적은 있지만, 7대 죄악이라 이름 붙은 것은 단언컨대 없었다.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폭식, 색욕. 이 일곱 가지가 죄악이라 분류되는 것들이었다. 정확히 알고 있는 이유는, 7대 주선의 모티브가 7대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죄악이 나오고 그 반대개념으로 주선이 나왔기에 어째서 죄악의 이름을 가진 것들이 등장하지 않았는지에 대하여 의아함을 품고 있었다.

헌데······ 있다.

있었다. 바로 이곳에.

그뿐만이 아니었다.

‘검은 야차의 인이 반응하고 있다.’

귀가 파열할 것 같이 뜨거웠다. 검은 야차의 인이 빛을 뿜어내며 책에 호응하듯 반응하고 있었다. 드디어 짝을 찾았다는 듯.

검은 야차의 인(印)은 나찰산에서 얻은 것이다. 다른 야차의 보석과 쉐도우 카임의 핵이 뒤섞인 그것을 아귀를 죽인 뒤 획득하자 이 인이 생겨났다.

야차들의 싸움에서 승리할시 그들의 능력치를 극소량 빼앗아오는 기능을 하고 있었는데, 설마 여기서 반응할 줄이야.

나는 천천히 책을 들었다.

부르르!

동시에 전신에서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아왔다.

전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나는 분명히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내 신체가, 영혼이 떨리고 있었다.

왜일까?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나만의 감정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이 느낌은, 오한성으로서의 나만이 아니라 우리엘 디아블로. 그도 함께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데몬로드인 그가 죄악에 반응하여 격렬하게 갈구하고 있었다.

7대 주선의 책 앞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건만.

이곳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오로지 이것만을 원하는 것이다.

나는 고민했다. 주선과 죄악.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었다. 둘 모두 세상에 나온 적은 없으나 주선인 ‘인내’의 경우엔 대략적으로나마 능력의 짐작이 가능했다.

‘최상급의 빛의 정령.’

세상에 등장한 모든 주선들이 그 이름과 같은 최상급의 정령을 대동하고 있었다. 최상급의 정령은 능히 8lv 이상의 능력을 발휘했으며, 사용자에 따라서 이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죄악은 어둠의 정령을 안에 품고 있을 것인가.

‘검은 파편은 우주의 지식이다. 고대의 지식을 사용해 지고의 물건들을 살 수 있는 셈이다. 위대한 정신이 바라는 건 그럼 바로 그 지식인가?’

이런 고민도 됐다.

이 경합을 연 배후에 ‘위대한 정신’이 있는 건 확인했다.

천계. 천족들의 땅에서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어쩌면 위대한 정신이 만든 이곳을다른 천족들이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또한 그것 때문에, 주선을 들기가 애매하다.

‘7대 주선은 천계의 힘이다. 천계를 믿을 수가 없다.’

반대로 죄악의 경우 이미 나 자체가 데몬로드였다. 나와 동화 된 우리엘 디아블로의 영혼이 극렬하게 이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가 바라는 건 라이라 디아블로, 자신의 딸이 계속해서 생존하길 바라는 것이다.그 열쇠를 쥐고 있는 나에게 해를 끼칠 리는 만무했다.

기회는 한 번 뿐이었다. 이곳을 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조차 모른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힘이 반응하고 있다. 검은 야차의 인, 그리고 우리엘 디아블로. 그 둘과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결과는 없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책의 중심에 십(十)자 인을 그렸다.

그러자.

[12개의 검은 파편을 사용했습니다.]

[‘7대 죄악, 폭식’을 구매했습니다.]

후아아아!

책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순식간에 튀어나와 주변을 감쌌다. 이어 책이 분열하듯 갈기갈기 찢겨나가며 검은색의 연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가진 12개의 검은 파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그것들이 검은 안개 속에서 마구 흔들리고 합쳐지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장갑.’

장갑이었다.

검은 야차의 인과 같은 것이 손등에 새겨져 있고, 그 외엔 그저 까맣기만 한, 가죽과 비슷한 재질의 장갑이 완성되었다.

나는 천천히 ‘심안’을 열었다.

<폭식(value-360,000)>

● 체력+7

● 모든 ‘포식류’의 기능이 한 단계 올라간다.(현재 적용되는 대상: 검은 야차의 인, 탐식의 권능)● 사용자의 ‘지능’에 따라 스킬과 존재를 ‘포식’하고 그대로 뱉어낼 수 있다(66*1.2=79.2이하의 마력으로 사용되는 모든 스킬, 능력치총합 66*6=396이하의 모든 존재). 하지만 24시간이 지나면 소화가 시작되어 48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 자신보다 강한 적을 소화 시킬 때, 일정량의 잠재력을 획득한다.

● 7대 죄악은 모으면 모을수록 강해진다.

-3세트 효과: ???(잠김)

-5세트 효과: ???(잠김)

-7세트 효과: ???(잠김)

『가장 추악한 7개의 죄악 중 폭식.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그저 먹어치우는 이 죄악은 강력한 구원의 힘이 될 수도, 자멸의 길을 걷게 할 수도 있는 저주받은 성물 그 자체다. 모든 죄악이 모이면 ‘종말의 별’이 떠오른다고 전해진다.』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의 능력이었다.

단순한 가치는 360,000으로 책정이 되어있으나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물건임이 분명했다.

‘······ 물건이군.’

승천자의 망토도 좋지만, 폭식도 그에 못지않다.

검은 야차의 인, 그리고 탐식의 권능이 가지는 기능이 더욱 좋아지게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스킬을 먹어치우고 그대로 뱉어내 상대를 당황시키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소리다.

1.2배율이면 S랭크의 스킬이 가지는 배율이다. 하물며 그 배율만큼의 스킬을 먹어치우는 것이니 S랭크 이상이라 해야 할 터였다.

지능을 올려야하는 이유가 생겼다.

게다가 잠재력의 획득.

‘500이상의 잠재력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꿀꺽!

목울대가 크게 울렸다.

물론 나보다 강한 대상을 수없이 죽이고 소화해야 할 테지만, 가능성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천하의 데몬로드, 우리엘 디아블로조차 잠재력의 한계는 500이었다. 이 폭식을 사용하여 그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지 상상조차 힘들었다.

폭식 하나가 이럴진대 다른 것들은 어떨까?

모을수록 강해진다면, 7개 전부를 모으면 정말 신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른손에 폭식의 장갑을 꼈다.

추르르르륵!

그러자 오른손이 아려왔다. 인상을 찌푸렸다. 살이 찢기고 핏줄에 무언가가 닿았다. 이내 오른손 전체에 핏줄이 거세게 일어나며 근육이 마구 확장하고 수축되길 반복했다.

“으음······!”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나도 모르게 침음을 흘리며, 남은 왼 손으로 오른손을 부여잡았다.

식은땀이 줄줄 나고,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빠지지 않는다.’

급히 장갑을 빼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방법은 오른손을 절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여파가 오른손 이상으로는 미치지 않았기에 나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길 몇 분이 지나자, 천천히 오른손이 안정되어갔다.

“후욱! 후우우!”

거칠게 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길지 않은 고통이었으나 영겁과 같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꼬르르르르륵!

나는 고개를 숙여 배를 바라봤다.

배가, 미친 듯이 고파왔다.

식욕이 올랐고, 그 허기는 감히 살면서 느껴본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3일? 아니, 한 7일쯤 굶은 것 같았다.

‘죄악······ 답군.’

폭식의 이름을 가진 장갑답게 허기를 유도시키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배에서 계속 천둥이 치듯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한 번 이성을 잃었다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남은 파편은 7개.’

7개면 어지간한 건 살 수 있었다. 수라의 잔, 지혜의 나무, 그보다 더 엄청난 것들을.

이왕지사 죄악을 구매했으니 남은 파편도 모조리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배후를 알아냈고, 이 장소가 ‘위대한 정신’이 만든 곳이라면 무슨 이유로 파편을 모으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위대한 별’은 내가 처치할 생각이었기에.

‘녀석은 뭘 하는 거지?’

그러다가 아직도 7대 주선 중 인내의 책을 부여잡고 있는 민식이의 실루엣을 보았다. 희미하기 짝이 없는 잔상이나 녀석은 굉장히 골몰하고 있었다.

나는 주변에서 구매할 것들을 찾아보며, 간간히 민식이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녀석은 움직일 기색이 없어보였다.

‘12개가 없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없다면 애당초 저렇게 고민을 하지도 않을 테니까.

녀석은 나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나는 녀석을 인식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장장 하루가 넘도록 꿈쩍도 안한 채 ‘인내’의 책만 부여잡고 있던 민식이가 고개를 젓고는 책을 다시 서고에 집어넣었다.

그 눈빛은 분명한 ‘아쉬움’을 담고 있었다.

이어, 포인트로 ‘무작위 성갑’ 하나와 검은 파편을 이용해 ‘지혜의 나무’ 두 그루를사고 남은 것으로 ‘지배의 목줄’과 ‘광란의 신발’을 사더니 홀연히 도서관을 벗어나버렸다.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듯이.

저것들을 다 합치면 검은 파편이 정확히 12개가 소모된다.

12개는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내를 사버리면 엘프들과의 약속을 깨야 한다. 거기서 장장 하루를 고민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왜 모르겠는가. 나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양심과 욕심 사이에서의 갈등. 나라도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웅의 길을 버렸다. 오로지 양심을 우선시해야 하는 자리가 바로 그자리이기 때문에.

미소를 지었다.

녀석이 영웅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다.

만약 약속을 저버리고 7대 주선을 선택했다면 적잖이 실망했을 것이었다. 인내를놓친 건 많이 아쉽지만 한 번 버려진 신뢰는 다시 복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인 채로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남은 파편을 사용해 최대한의 욕심을 봐야 했다.

* * * * *

도서관을 나서자, 대기방이었다.

우주의 형상을 띠고 있는 그곳의 반대편에 거대한 문이 있었는데, 저곳이 출구였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과 온갖 종족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엘프들은 민식이를 기다리는 기색이었다.

나는 출구로 발을 옮겼다.

그러자 들어갔던 싱크홀의 바깥으로 이동되었다.

사람이 없는 곳을 골라 들어갔기 때문에 주변은 조용했다.

‘일단 집으로 가자.’

집에 도착하자마자 TV를 켰다.

실시간으로 아포칼립스 길드가 들어갔던 거대 싱크홀의 모습이 온갖 뉴스에서 생중계되는 중이었다.

마침내 아포칼립스 길드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의 사람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박수를 치고, 환영의 의사를 밝혔다.

민식이는 그 중심에서 손을 흔들며 방긋 웃었다.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다.

그 모습을 확인하곤 TV를 껐다. 그리고 즉각 냉장고를 열어,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로 다 먹어치운 다음 그대로 침대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이 일련의 행동들은 거의 본능적이었다. 폭식의 장갑을 착용한 뒤로부터 끊임없이 찾아오는 이 허기를 참기가 어려웠다.

띵-동!

그리고 저녁이 되자, 누군가가 집으로 찾아왔다.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잠들었군.’

주섬주섬 갑옷과 투구를 벗고 공간의 보석 안에 집어넣었다.

띵-동! 띵-동!

“예. 나갑니다, 나가.”

계속해서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현관문을 열었다.

“어? 네가 왜 여기 있어?”

“놀랐지? 후후, 그냥 갑자기 네가 생각나서.”

민식이였다.

녀석이 품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찾아왔다.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고급 햄, 그리고 고급 술.

얼굴을 보아하니 조금 취해있는 것 같았다. 싱크홀에서 벗어난 당일이라 엄청 바빴을 것임에도 시간을 내서 굳이 찾아온 것이다.

이어, 민식이는 나를 정면으로 보곤 씽긋 웃더니 술병을 흔들며 말했다.

“한 잔 하자.”

< 26. 7대 죄악(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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