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85화 (86/251)

< 22. 빠른 전개(完) >

과거의 검신을, 최강의 인간을 최후의 인간이 가르친다.

어떻게?

물론 혹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가 진짜 강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기술적인 면에서조차 나는 밀렸다. 인정한다.

‘그래도 지금이라면.’

나는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찰산과 나찰각에 도달하며 나는 그 힘을 더욱 정교하게 사용할 줄 알게 되었다.

지금이라면, 지금의 나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일단 기본부터.’

유서희는 간절하게 바랐다. 힘을 얻어 심연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연각성하여 외부의 위협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위기감지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과거와 같은 천재성을 보여줄 것인가?

“지금 너는 체력이 매우 약하다. 최소한의 체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있었다.

검을 드는 것마저도 무리가 갈 터였다.

올바른 운동법과 함께 기초체력을 기르길 권했고, 놀랍게도 유서희는 고작 7일 만에 일반남성의 수준에 이르는 체력을 갖추게 되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단순한 운동으로 능력치를 이처럼 가파르게 올리다니.

‘이게 자연각성자의 힘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나는 즉시 목검을 쥐어주었다. 삼재검법과 삼재심법으로 기초를 다진 뒤 걸맞은 무공을 알려줄 셈이었다.

나는 오백 가지가 넘는 무공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나찰각의 서재에서 읽고, 쓰며, 필사적으로 익힌 것이다. 그러한 무공의 지식들은 내가 검을 다루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선생님. 그냥 찌르고, 베고, 찌르면 되는 거죠?”

“삼재검법의 묘는 느림에 있다. 삼재심법과 함께 운용하려면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

“한 번 해볼게요.”

내가 시범을 보이자 유서희가 목검을 휘둘렀다.

쥐는 법도 서툴러서 어느 세월에 익히나 싶었지만, 기우임에 불과했다는 게 고작 하루만에 증명되었다.

유서희의 집중력은 그야말로 ‘상상초월’이었다.

한 번 집중하면 옆에서 소리를 질러도 몰랐다.

처음에는 엉망이었으나 고작 하루 만에 자세가 잡혔다.

뿐 만인가?

삼재검법의 묘리를 펼치며 심법도 같이 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7일이 흐르자 유서희는 삼재검법과 심법을 대성(大成)했다.

‘미친.’

절로 욕지기가 나가려는 걸 참았다.

느리고, 한없이 느렸다.

그 속에서 자신을 관조하며 본연의 기운을 전신에 돌린다.

재능이었다.

하늘이 내린, 천재가 눈앞에 있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굉장히 심오하네요?”

“심오의 뜻이 뭔지 아는 건가?”

“음, 깊다는 거 아닌가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쯤 하여 유서희의 부모가 다시금 나를 찾아왔지만, 유서희는 필사의 각오로 그들을 말리며 끝내 허락을 받아냈다.

나는 그 시간동안 잠시 머리를 식히며 다음으로 가르칠 것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가르쳐야 좋을까.’

무엇을 가르쳐도 기본은 할 거다.

그게 무서운 것이다. 끝을 모르고 빨아들이는 스펀지에 언제 내가 바닥을 보일지 모르니까.

그러나 나도 오기가 생겼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하면 나다. 유서희가 빨아들이는만큼 나도 계속 익혀나가면 된다.

내가 이루려는 목표는 인류최강 정도가 아니다. 모든 데몬로드를, 그들의 왕을, 위대한 별을 깨부술 존재가 될 생각이었다.

고작 과거 인류최강 정도에게 밀릴 순 없는 노릇 아니겠나.

암령은 하나밖에 없으니 태을무극심법이나 탈혼무정검을 가르칠 순 없고, 그 대신 떠오른 게 있었다.

‘바람의 검. 풍천도(風天刀).’

그리고 풍천심법.

지극히 익히기 까다로운 무공이지만 유서희는 바람과 친화력이 높았다. 아마도 유서희가 가진 마음의 틈을 내 바람으로 가득 채워 넣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바람을 다루고, 종국에는 바람의 신이 되고자 만들어진 무공.

자연을 다루는 기술은 하나같이 익히기가 어렵다. 그래서 야차들 중에서도 풍천도와 풍천심법을 익힌 야차는 없었다.

과연 유서희가 이마저도 대성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오늘부터 너는 바람을 다루는 법을 익힐 것이다.”

“아! 선생님 주변에 있는 바람들과 같은 건가요?”

“내 주변의 바람?”

“네. 선생님 주변에는 참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요. 히히, 옆에 있으면 막 편안해져요.”

유서희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야말로 순백의 미소였다.

유서희를 가르치는 일은 내게도 꽤 도움이 되었다. 가끔씩 보이는 유서희의 천재적인 발상, 혹은 방식은 내 사고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아예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게 되었으니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있는 건지 나중에는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유서희가 다룰 도를 한 자루 만들기 시작했다.

목검으로 연습을 하는 단계가 벌써 막바지에 이르른 탓이다.

내가 입을 갑옷 또한 함께 만들었다.

‘앞으로 한 달 반.’

싱크홀이 열리기까지 한 달하고 절반.

그 안에서 있을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고 승리하기 위하여, 나는 도심 속에 웅크린채 철저히 준비하는 중이었다.

* * * * *

분노와 악의는 진화했다.

전혀 다른 형태로.

비록 여전히 어두운 기운을 품고 있었으나, 그 어둠은 더욱 품격이 있었으며 고아했다.

‘쉐도우 나이트.’

이름: 쉐도우 나이트(value-25,500)

종족: 쉐도우

능력치

힘 66a 민첩 66a 체력 66a

지능 45b 마력 55b

잠재력 (298/380)

특이사항

-어둠에서 새롭게 태어난 기사입니다.

-한없이 어두운 그림자는 모든 것을 빨아 당기고 자신의 색으로 물들입니다.

-유일종이며 또한 모체(母體)입니다.

스킬: 포식(6lv), 복제(6lv)

처음 보는 종류의 이름이었다. 다크나이트, 데스나이트는 꽤 봤지만 쉐도우 나이트라?

나를 향해 모든 분노와 악의를 뱉어내고, 다시금 모든 걸 받아들이는 어둠으로 승화한 것이다.

‘포식과 복제.’

능력치는 마냥 높다고 할 수 없으나 두 가지 스킬이 말 그대로 ‘심오’했다.

쉐도우 나이트는 자신의 그림자를 이용해 생물을 포식하고 그 존재를 또 다른 그림자로 복제시킬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무한한 증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른 그림자를 포식해 무수히 많은 쉐도우 나이트를 만든다.’

복수와 악의는 잃었지만, 고독으로서 만들어진 그 역할은 분명히 유지하고 있었다. 상대를 잡아먹고 그림자만을 뺏어와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방랑하는 오크 등을 사냥하며 몇 가지 실험을 해본 뒤 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수 있었다.

‘복제는 하되 완전히 똑같지는 않군.’

모든 그림자가 다 쉐도우 나이트로 복제되진 않았다. 다만, 50마리가량의 오크를먹어치우자 쉐도우 나이트가 한기 더 생성되었다.

이름: 쉐도우 나이트

종족: 쉐도우

능력치

힘 66a 민첩 66a 체력 66a

지능 45b 마력 55b

잠재력 (298/298)

특이사항

-복제 된 쉐도우 나이트입니다.

-모체가 소멸되면 사라집니다.

능력치는 같았다.

다만, 잠재력이 능력치와 같은 수준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스킬이 없다는 점은 달랐다.

‘잘만하면 획기적으로 군사력을 늘릴 수 있겠어.’

오크 50마리를 구매하는 것보다 쉐도우 나이트 하나를 늘리는 게 훨씬 경제적이었다. 하물며 포인트 들일 일 없이 떠돌이 괴물이나 군락 등을 공격하면 자연스럽게강한 병사 하나가 추가되는 것이다.

물론 완벽하진 않다.

오로지 모체만 포식과 복제가 가능하며, 그 모체가 죽으면 다른 복제된 쉐도우 나이트 모두가 사라질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다.

모체 하나만 복제가 가능하다보니 숫자를 늘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겠지만 그러한것들은 단점조차 되지 않았다.

‘하루에 늘릴 수 있는 숫자는 최대 5기.’

하루에 3기~5기 정도만 늘어나도 30일이면 최소 100기가 넘는다. 6lv을 웃도는괴물이 공짜로 한 달에 100마리씩 늘어나는 셈이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 효율이란 말인가.

“라이라.”

“부르셨나요?”

라이라가 천장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나조차도 거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숨어있는 기술이 나날이 느는군.”

“구화랑에게 배운 은신법입니다.”

“······ 그래서, 거기서 뭘 하고 있었지?”

“그저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라이라는 그날 이후 더 당당해졌다.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을 저처럼 당당하게 할 줄은 몰랐지만, 더 밝고더 자주 웃게 되었다.

“지켜보고 있었다면 알겠지. 쉐도우 나이트를 늘릴 것이다. 그러려면 쉐도우 나이트가 더 많은 그림자를 포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최대한 은밀하게 말이죠?”

“알려져 봤자 좋을 게 없다.”

쉐도우 나이트가 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과 약점이 밝혀지면 겨우 얻은 기회가 허공에 그대로 증발할 수도 있었다.

라이라가 싱글 웃어보였다.

“제가 할 일이 생겼군요. 마침 좋은 장소들을 알고 있어요.”

“맡기지.”

“후후, 그럼 보상으로······.”

“보상이 필요한가?”

“대련을 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 전력으로.”

라이라가 도전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더 이상 초조해하지도, 억지를 부리지도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인지하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라이라 역시도 나날이 강해져갔다. 단순한 재능으로만 따지자면 라이라는 유서희와 필적하거나 일부분은 그보다 뛰어난 면이 있었다.

솔직히 궁금하긴 했다.

‘라이라와 유서희. 누가 더 천재인가.’

한동안 정체되어있었지만, 그날 이후 하루가 다르게 무력의 증진이 이뤄지고 있었다.

둘 다 하나를 보면 열을 깨닫는 부류다. 라이라는 반신족과 용마족의 피를 이어 그 성장성이 무궁무진했고, 유서희는 본연의 존재를 자각해 어디까지 성장할지 나조차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지.”

설마 진짜 전력으로 부딪히겠나.

그냥 해보는 소리일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라이라가 사라졌다.

나는 방 안에서 조용히 주먹을 쥐어보였다.

현대에서도, 심연에서도.

앞으로 한창 바빠질 것이다.

* * * * *

시간은 유수처럼 흐른다.

태양이 지고, 달이 뜨고, 다시 태양이 떠오르는 일이 수십 번 반복되고 그에 맞춰 세상도 발 빠르게 변해가는 중이었다.

각성자들은 서서히 세상과 융화되어갔다.

각성자를 다루는 tv프로나 그들이 싸우는 동영상들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세계적으로 ‘문’의 존재를 인정하는 추세가 되어가고 있을 무렵.

세계 각지의 각성자들이 서로의 권익을 위해 뭉치고,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크고작은 문제가 일어나고 해결되기가 반복될 무렵.

‘그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크고 작은 싱크홀이······.

-싱크홀에 빨려 들어간 사람들이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고 합니다.

-초인 커뮤니티에서 싱크홀이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이 꽤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포칼립스 길드의 길드마스터가 공식성명을 내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멸망론자들이 세상의 멸망을 말하고 있지만 이 현상은 ‘문’의 생성과 또 다른 연장선상에 있다는 가설이 꽤 강한······.

연일 뉴스가 시끄러웠다.

인터넷에서도, 도시 어디를 가도 싱크홀과 관련 된 이야기가 무수하게 떠돌았다.

본래라면 지극히 조용히 진행되었어야하는 일.

바야흐로 여름이 끝나가는 중이었고.

세계는 보다 빠른 전개를 맞이하고 있었다.

< 22. 빠른 전개(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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