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80화 (8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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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까앙-!

망치가 모루를 때리는 소리가 우렁차게 대장간을 울렸다.

잔뜩 표정을 굳힌 채 쇠를 때리는데 열중했다.

흐트러진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선 이만한 게 없다.

하지만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알아주라고?’

기습공격이었다.

상상도 못한 일격에 일순간이지만 휘청거렸다.

또한 선전포고였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테니, 내가 포기하라고 말이다.

이에 마음을 다잡고자 다시 전이하여 즉시 대장간으로 달렸다.

틈을 메꾸고자 매몰차게 대했으나 예상하지 못한 일격에 도리어 전보다 ‘틈’이 벌어진 것 같았다.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라이라 디아블로’란 존재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내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음을 뜻했다.

분리하고자 하였으나 이 감정이 누구의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한성인가,아니면 우리엘 디아블로인가.

‘다시 쌓는다. 처음부터······.’

하지만 그보다 내 마음을 더 울린 건 라이라 디아블로의 마지막 발언이다.

기억을 지워도, 백지부터 시작해도, 결국엔 같을 거라는 말.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져도 다시 쌓으면 그만이라고, 그녀는 너무나 쉽게 말하고 있었다.

‘허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그래서 강했다.

라이라 디아블로가 살아오며 숱하게 좌절하고 절망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그녀는 그런 말을 입에 담는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수십, 수백 번을 다시 시작해도 그러한 강인함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인지.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었다.

노력과는 전혀 다른 분야다. 승천자의 의식을 깬 건 나의 욕망과 오기 덕분이었지, 그 짓을 수십 번 반복하라고 한다면 절망감부터 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라이라 디아블로는 나보다 강했다. 그 곧은 눈빛을 보고 알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천번만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것임을.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던가.’

괴물. 인류의 적. 반드시 쓰러트려야할 존재.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수십 년간 쌓이고 정제되어온개념이었으니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눈을 보고 내 관념이 송두리째 뒤흔들렸다.

그처럼 올곧은 눈빛이라니!

마족은 ‘악의’의 종족이다. 라이라도 마족의 피를 진하게 타고났으니 그처럼 선명하고 올곧은 눈을 가질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실제로 내가 본 모든 마족들이 라이라와 달랐다. 그들은 내 경험과 상상 그대로의존재들이었으므로. 음침하고 음습하고 음울한 눈만을 가지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과거의 침공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눈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보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인간의 입장에선 눈빛 따위가 어찌됐든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입장의 차이.’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엄연히 달랐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처음부터 다시 써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일을 지우는 게 아니라 단순히 내가 가진 시야를 재점검하자는 의미였다.

인간도 영웅이 있는 반면 알레테이아와 같은 악의 집단이 존재하듯이 마족들도, 괴물들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만, 아예 지우고 새로 써내려가는 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지운다. 지운다······.’

생각지도 못한 역발상.

하지만 쉽게 가능했다면 진즉에 했을 것이다.

예로부터 이런 말도 있지 않았나.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수십 년간 고착화 된 개념을, 적의를 쉽게 지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나는 최후의 영웅으로서 오로지 괴물을 죽이는 것만을 생각해왔다. 그들의 침략을 막고, 설령 새끼라 하더라도 씨를 말려버렸다.

그래서 포용보단 배척이 더욱 당연하게 여겨졌다.

반면에 지금의 나는 영웅이 아니다. 영웅이 될 생각조차 없었다.

오히려 내 성향은 어둠에 가까웠다. 데몬로드가 되고, 지배의 힘이란 억제력을 사용하며 수많은 가면을 썼으니 아무리 좋게 봐줘도 빛에 속하진 않았다.

분리하고자 했지만, 진짜 오한성이란 게 있었던가?

‘일망무제의 끝없는 사막조차도 나를 막진 못하였다. 망망대해와 같은 사막에 스스로를 던지고 수없이 잊고, 깨달으며 각성하라는 현장(玄奬)의 가르침이었지.’

태을무극심법의 구결. 현장이 내게 알려준 깨달음의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현장이 누구인지 몰랐으나 암령이 제천대성임을 알게 된 순간 그의 이름 역시도 알게 되었다.

삼장법사. 서유기에 등장하는 그 인물이 맞는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목소리에서 느껴진 현묘함은 그 암령조차도 단번에 제압해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저 한 마디에 그의 모든 만상의 깨달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끝없이 스스로와 싸우고 이겨내는 것.

그것이 현장이 말하는 무한의 정의였다.

‘틈은 나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모든 일을 단순히 배척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순 없다는 건나도 안다. 밀어내면 다가오는 것도 당연한 이치였으나 나는 그저 스스로에게 취해 그를 간과하고 말았다.

깡-! 까앙!

시각, 촉각, 청각과 후각, 그리고 미각마저도 천천히 지워진다. 오감이 지워지고 나는 자아의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우고 다시 쌓는다. 일망무제의 깨달음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도전이었다.

작은 계기만으로도 모든 게 바뀔 수 있다.

나는 그 과정을, 결과를 두 눈으로 한차례 목도하지 않았던가!

김혜윤. 오로지 절망밖에 없었던 그녀가 내 한 마디에, 조그마한 일상의 변화에 꺼져가던 내면의 불꽃을 다시 태웠다.

라이라 디아블로의 마지막 말이 그와 같았다.

그 한 마디가 내 정신을, 나의 아집을 꼬집어 일깨웠다.

내가 김혜윤의 변화를 주도해놓고, 정작 나 스스로가 변화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모순이다. 또한 따져보면 변화조차 아니었다.

결국 진정한 나를 찾는 여행이었다.

흔히 말하는 자아성찰. 그리하여 무한한 자유를 얻기 위한 여행.

* * * * *

급변하는 세상의 중심에 한국이 있었다.

가장 처음 문과 던전의 존재를 공표하고, 거대 길드가 만들어졌으며 수많은 가이드라인과 각성시스템에 관한 정보 등을 마치 준비했다는 듯이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초인시대의 서막이었는데, 특히 한국의 특성상 던전은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신물질들.

마법이 담긴 장비와 물약 등은 엄청난 고가에 거래가 되었다.

희귀한 짐승은 컬렉터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강해진 신체는 더욱 많은 사회에서의 공헌과 기회를 이야기했다.

그에 눈이 휘둥그레진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뛰어들었다. 한국에선 기회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비쌌다. 괜히 ‘헬조선’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기회의 땅이 열렸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그리하여 난장판이 될 것을 모두가 예견했지만, 정부의 지원과 아포칼립스 길드가 균형을 잡으며 의외로 순항을 하고 있었다.

“떴다!”

“멋쟁이신사? 빨리 주문 넣어. 더 유명해지면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할 테니까!”

“이번에는 아예 경매로 풀어놨는데?”

당연히 던전에서 사용하는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한참 대두되고 있었다.

목숨을 지켜줄 보루. 사냥을 더욱 빠르게 만들어주고, 남들보다 쉽게 우위를 점할수 있도록 해주는 게 바로 장비였다.

특히 마법이나 특수옵션이 달린 장비는 암암리에서 수천만 원 이상에 팔려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큰 인터넷장터에서 ‘멋쟁이신사’ 닉네임을 사용하는 한 유저가 암암리에 소문을 타고 있었다.

처음에는 뜬소문에 불과했다.

그가 만든 장비는 같은 급에서도 두 단계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고.

‘낭만어쌔신’ 닉네임을 사용하는 남자가 아포칼립스 길드에 처음 글을 올리며 알려졌지만 모두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매일 하나, 두 개 이상의 글이 올라왔고 조금씩 ‘멋쟁이신사’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스스로를 ‘낭만어쌔신’이라고 밝힌 남자가 진입장벽을 넘어 순식간에나찰산 5층을 돌파하고 아포칼립스 길드에 채용되며 이야기가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는 뛰어난 대장장이입니다. 남들과의 차이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건 모두 그가 만들어준 무기 덕분이죠.”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과거 그가 남긴 글들을 유추해서 대장장이가 ‘멋쟁이신사’임이 은연중 떠돌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그 특성상 하나에 꽂히면 미친 듯이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게임에 있어선 ‘한국레벨’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세계에서 압도적이었는데, 던전과 사냥을 그러한 느낌으로 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초인의 존재가 공표되고 고작 두 달여가 지났을 따름이지만 이미 초창기 각성자들과 이제 막 각성한 사람들 사이에는 넘지 못하는 벽이 있었다.

그것을 따라잡은 것이다. 어느 정도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동안 작품 활동을 안 하던 ‘멋쟁이신사’가 장터에 20개의 매물을 경매로내놓으면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입찰가가 벌써 30만원을 넘었네.”

“올린 지 얼마나 됐는데 그래?”

“2시간. 앞으로 22시간 남았어.”

“24시간 동안만 경매매물로 등록한 거라고? 대체 무슨 자신감이야.”

하루에도 수천 개의 물품이 경매로 올라온다.

대부분이 그대로 묻히거나 본전도 못 뽑기 일쑤였다.

하지만 한 번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경매가가 올라가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실시간 관심매물?”

“철조가리 주제에 개시 6시간 만에 100만원을 넘겨?”

하지만 부정적인 사람들이 더 많았다.

고작 사진 한 장과 몇 가지 설명이 전부였으니 이런 데에 수백만 단위의 돈을 사용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장비의 중요성을 깨닫고, 멋쟁이신사의 무기를 손에 넣었거나 근처에서 그 장비들이 활용되는 걸 본 사람들은 관점을 전혀 달리했다.

“이 도끼는 한 시간 남기고 천만 원 돌파했네. 와, 쩐다.”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입찰된 게 300만원이야. 20개 올라왔으니까 다 합치면······.”

“1억이 넘잖아!”

사람들이 억!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오래된 명검이나 값비싼 재료로 만들어진 장비도 아닌데 이만한 가격으로 형성된게 쉽사리 믿기지 않는 것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경쟁하듯 물건을 선점해나갔다.

그저 사진과 생소한 이름만 보고 돈 몇 백, 천 가까이 지출하는 건 일반인의 관점에선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 정보를 접한 강자들은 치열하게 경쟁하며가격을 띄웠다.

그리하여 총 20개의 작품이 도합 2억 3천이라는 거금에 팔려나갔다.

실시간 관심매물 1~10순위 전부가 ‘멋쟁이신사’의 작품이었으니 단순한 해프닝치고는 상당한 관심이 몰려들었다.

“멋쟁이신사가 누구야?”

“특종이다. 다른 기자들보다 먼저 접촉해야 돼!”

이에 궁금증을 느낀 사람들과 기자들이 ‘멋쟁이신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지만 건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마치 갑자기 생겨난 귀신처럼 보였다.

쪽지를 보내도, 메일을 보내도 묵묵부답. 홀연히 20개의 작품을 장터에 올린 그는 잠시의 열풍을 만들곤 연기마냥 사라졌다.

* * * * *

너무 집중한 나머지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장장 3일 내내 망치만 쥐고 있었다.

버리긴 아까워서 장터에 경매로 내놨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딱히 돈에 구애되는 건 아니지만.’

많아서 나쁠 건 또 뭔가.

물론 장터의 아이디도, 돈을 입금 받는 통장도, 이 노트북마저도 내 명의로 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일전 김혜윤을 도우며 털었던 사채조직의 보스가 뒤쪽으로는 상당히 구려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배자의 권능으로 휘하에 두었으니 설령 문제가 되도 내가 수면 위로 드러날 일은 어지간하면 없으리라.

‘재고처리는 끝났고······.’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나는 아직 여행의 종착역에 도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길’을 봤다.

내가 나아가야할 수많은 길들 중 하나겠지만, 여태껏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내가 해온 모든 일 중에서 의미가 없는 건 없었다. 그 모든 과거들이 종합되어 새롭게 시작할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태을무극심법이 3성에 올랐다.’

또 다른 변화였다.

3성에 오르며 나는 더욱 자유자재로 ‘바람’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암령에 대한 제어력이 더욱 높아졌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길을 정했을 뿐, 매듭짓지 않은 일이 남아있었다.

이 일을 매듭지어야만 비로서 나는 새로운 자신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라이라. 라이라 디아블로.’

홀가분한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고백을 받았으니 응당 대답을 해주는 게 남자로서의 의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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