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77화 (78/251)

< 20. 천사(2) >

나는 애써 미소를 만들었다. 자고로 누구에게든지 첫인상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특히 아이들은 첫인상을 꽤 오랫동안 간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갑다. 오한성이라고 해. 오늘부터 자주 얼굴을 보게 될 거야.”

유서희가 고개를 돌렸다.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초점 하나 없이 나를, 내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병인이 숟가락을 들어 입 주변에 대면 그에 반응하여 입을 벌리듯 내 목소리에 조건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것이다.

하지만 표정이 없다. 생각도 읽을 수 없다.

기억 역시 마찬가지다.

관리자로서의 권한으로 기억을 읽으려면 감정의 폭주가 필요하다. 꿈속에서 발버둥을 치는 게 아니라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감정의 기복이 생겨야 자연스럽게 기억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더욱 반응을 유도해야했다.

‘검은 기류가 다시 잠잠해졌다.’

저녁엔 그토록 활발하게 움직이던 검은 기류가 지금은 잠잠하다. 유서희가 깨어있을 동안엔 활동을 안 하는 건가?

나는 미리 준비한 꽃병 하나를 창가에 두었다.

“진달래꽃 꽃말이 뭔 줄 알아? ‘사랑의 기쁨’이래. 나도 예전에 여자 친구한테 이 꽃을 선물한 적이 있거든. 바로 뺨을 맞긴 했지만. 나중엔 좋은 추억이 됐지.”

시리아. 그녀에게 고백했을 때 내가 선물한 게 진달래꽃이었다. 그녀는 처음엔 당황하며, 이내 화가 난 표정으로 내 뺨을 세게 걷어붙였다.

나중에야 머릿속이 복잡해서 평소 버릇대로 손이 나간 것이라고 해명이 됐지만, 말인 즉 여태껏 고백한 남자들 모두가 일단 뺨부터 맞고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하여간 진달래꽃은 유서희가 김씨 형제에게 선물한 꽃이기도 했다. 약간의 반응이라도 있기를 바랐으나 특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다.

“다 먹으면 산책 갈까? 이 앞에도 꽃들이 예쁘게 피었던데.”

간병인 대신 숟가락을 들었다.

죽과 반찬을 올리고, 천천히 유서희의 입가로 가져갔다.

역시 조건반사처럼 입을 열었다.

이로 보건대 지금 유서희는 혼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 하루에 백만 원이 넘어가는 입원비를 감당하며 병원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유서희의 부모는 이름난 기업의 CEO였고 덕분에 엄중히 관리를 받고 있었다.

‘몸이 너무 약해서 산책도 힘들다고 했지.’

유서희와 관련 된 파일을 읽었다.

최근엔 병세가 더욱 심해졌으며, 부모가 병실 바깥으로 절대 못 나가도록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파리한 혈색. 바깥 공기를 맞는 것만으로도 휘청거릴 것 같이 연약한 몸.

나는 품에서 엄지만 한 크기의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유니콘의 눈물.’

심연에서 이타콰와 함께 보낸 물건 중 하나였다.

현대에선 구하기 힘든 물약이었지만 심연에선 포인트만 주면 바로 살 수가 있었다. 심지어 그다지 비싸지도 않았다.

유니콘의 눈물은 정기와 신체를 빠르게 회복시키고, 세포를 강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장복할 경우 평생 병치레는 하지 않는다.

물을 뜨고 숟가락 위에 유니콘의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체력을 북돋는 데에는 한 방울이면 충분하다.

유서희가 그것을 마시자 빠르게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효과는 역시 끝내주는군.’

즉효였다. 이어 휠체어 하나를 준비하고 유서희를 번쩍 들어 그곳에 앉혔다.

이 답답한 병실 안에서 무엇을 보고 반응을 하겠는가. 바깥의 넓고 푸른 대지와 하늘을 봐야 조금이라도 메마른 감성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 * * * *

유서희는 병원의 주요고객 중 한명이었다.

그녀가 병실을 나서자 간호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 유서희 환자 나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저 선생님은 누구지?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새로 부임하신 의사선생님이잖아. 이번에 유서희 환자 담당으로 배정되었다네?”

“그럼 말씀 안 드려도 되나? 유서희 환자 부모님이 아시면 노발대발 하실 텐데.”

병원의 모든 인물을 지배한 건 아니다. 하지만 중요 부처의 담당이나 가까운 거리의 간호사들은 이미 통제 하에 둔 상태였다.

나는 그 수군거림을 무시한 채 병원 밖에 조성된 작은 공원으로 향했다. 환자들과환자를 찾아온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라 꽃보단 나무가 많았다.

“바람이 시원하지?”

유서희는 마치 인형과 같았다. 조그마한 미동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예상 외였다.

‘라임, 라율, 라온.’

나는 잠시 턱을 쓸다가 풀잎 정령들을 소환했다.

-부르셨어요?

-여긴 어디야?

-공기가 너무 답답해!

나찰산에서 놀고 있던 정령들이 현대에 모습을 드러내자 대뜸 인상을 구겼다. 하기야 자연 그 자체인 나찰산과 현대를 비교하면 풀잎 정령들이 고통스러워할 만도 했다.

이른 시간이라 공원엔 사람이 없었다. 나는 CCTV의 위치 등을 확인하곤 작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주변으로 꽃이 만개하게 해다오.”

-어려운 일은 아니네요.

-다 하면 여기 구경해도 돼요?

-답답하지만 신기한 물건들이 많아!

고개를 끄덕이자 풀잎정령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아직 덜 핀 꽃이나 대지에게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무에 핀 꽃들이 만개하고, 유서희가 탄 휠체어 주변으로 뿌리가 자라나며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누군가가 보았다면 기적이라며 눈을 뒤집었을 광경.

“아······.”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아예 희망이 없진 않았다.

찰나와 같은 시간, 나는 유서희의 눈에 비친 감정을 아주 조금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외로움. 그리움.’

수확이 있었다.

적어도 그 두 감정만은 분명하게 읽었다.

또한 소녀와 같은 감성이 1밀리그램이라도 남아있다면 지속해서 풀어나갈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뭐야? 언제 이렇게 꽃이 피었지?”

“와! 예쁘다!”

뒤늦게 나타난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곤 정원의 변화에 환호했다.

나는 휠체어 주변에 난 꽃들을 수확해서 예쁘게 정리하곤 유서희의 무릎 위에 얌전히 올려두었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지켜줄 거지?”

무릎을 반쯤 구부린 채 유서희의 눈을 보며 말했다.

대답은 없었지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러곤 다시 휠체어를 움직여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유서희가 고개를 숙여 멍하니 무릎 위에 놓인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더욱 과감해지기로 했다.

이곳 병원은 너무 좁았다. 게다가 유서희에게 내비친 감정이 외로움과 그리움이라면 병원 바깥에서 더 많은 감정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았다.

닫힌 감정을 일깨워야 한다. 그러려면 자극이 필요하다. 새로운 것, 적어도 한동안 멀리했던 것들을 다시 접하며 잊었던 감정을 되새기게 할 필요가 있었다.

“선생님! 유서희 환자는 외출이 안 됩니다.”

“그래요? 체력적으로도 문제없다고 체크 끝났는데.”

“보호자 동의 없이는······.”

“그럼 비밀로 해주세요. 애가 닭도 아니고 언제까지 우리에 가둬만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씽긋 웃으며 말하자 로비를 맡던 담당간호사가 몽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50명 정도를 이미 지배한 상태. 눈앞의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이 민간인이라 포인트도 크게 들지 않았다.

모두 다해서 3만 포인트 정도.

유서희의 성장가능성을 보면 충분히 들일 수 있는 투자다.

나는 여유롭게 병원의 입구를 벗어나 흰색 가운을 벗어던졌다. 사복차림으로 휠체어를 끌고 있으니 영락없이 오빠와 동생처럼 보였다.

“어디 가고 싶은데 있니?”

“······.”

대답이 없을 걸 알면서도 한 번 물어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주변을 지나던 택시 하나를 잡았다.

이후 뒤 트렁크에 휠체어를 넣어두고, 조심스럽게 유서희를 안은 채 뒷자리에 앉았다.

택시기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로 모셔다 드릴까?”

“서울랜드요.”

서울랜드. 놀이공원이다.

김씨 삼형제 중 맏형이 유서희를 처음 만난 장소가 서울랜드 근처라고 했다. 꽃과풍선 등을 들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곳에서 놀이기구를 탔을 것이다.

그리움. 과거의 기억을 깨우는데 그만한 장소는 더 없을 듯싶었다.

탈 수 있는 놀이기구는 한정적이었지만 나는 무작정 놀이공원 안을 횡보하고 다녔다.

평일이라 한적한 편이었으나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나 저거! 저거 사줘!”

“안 돼. 너 오늘 많이 샀잖아.”

“으아아아앙! 사줘! 사줘!”

“어허! 계속 그러면 두고 간다?”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풍선 앞에서 한 남자아이가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고있었다. 엄마로 보이는 여인은 한사코 거부했고, 두고 간다는 말을 실천하자 아이가울며 겨자 먹기로 빠르게 일어나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의 모습을 유서희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뽀로로 풍선을 바라봤다.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갈구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뽀로로 풍선 하나를 사와다가, 그대로 유서희의 손에 쥐어주었다.

“놓지 마. 놓으면 날아가니까.”

유서희는 평소와 달리 풍선을 꽉 쥐고 있었다.

조그마한 변화다. 풍선에 대한 ‘집착’을 나타내는 게 분명했다.

좋은 현상이다.

회전목마나 범버카 등을 타봤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 뒤 마지막으로 동물원으로 향했다.

“나 저거! 저거 사줘!”

“사자를 어떻게 사주니?”

“으아아아앙! 사줘! 사줘!”

“제발······.”

아까의 아이가 우리에 갇힌 사자를 보며 방방 발을 굴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유서희의 눈이 그 아이에게서 사자우리로 향했다.

크릉!

크르릉.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사자들이 대뜸 내가 있는 쪽으로 모여드는 게 아니겠나?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러 왔다는 듯 사자들의 눈에는 정이 담겨있었다.

또한 그들이 보는 건 내가 아니라 유서희였다.

‘놀랍군.’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닿지는 않았지만 유서희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러자 사자가 고개를 숙이며, 이내 배를 까곤 애교를 피웠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유서희는 사자와 교감을 하고 있었다.

‘다른 동물은 반응이 없었는데.’

오로지 사자들만이 유서희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선천적인 친화력인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개입되어 있는 걸지.

어쩌면 유서희에게 달린 반쪽 날개의 주인과도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한참이나 그 우리 앞에 서 있다가 동물원을 벗어났다. 유서희는 마치 아쉽다는 듯이 사자우리가 있는 방향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동물원을 계속 갈 수는 없었다. 아무리 유니콘의 눈물이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유서희의 체력은 너무나 허약했다.

그래서 우두머리 사자모양의 장신구를 만들었다.

대장간에서 키운 실력 덕택에 돈 받고 파는 어지간한 장신구보다 정교했다.

그것을 유서희에게 선물하자, 유서희는 사자 장신구를 절대로 손에서 떼어놓는 일이 없었다.

잠을 잘 때도, 악몽을 꿀 때도 장신구는 계속해서 쥐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아악!”

소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악몽을 꿨다.

검은 기류가 요동치며 유서희의 전신을 맹렬하게 공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며칠이나 두고 봤지만 매일 같은 양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검은 기류가 유독 사자모양의 장신구 근처엔 얼씬도 거리지 못했다.

유서희는 마치 부적처럼 그것을 껴안고 있었는데, 덕분에 틈이 생겼다.

그래, 틈.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뜻이다.

‘이번에야말로.’

그 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즈아아아악!

반발력. 검은 기류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보단 약하다. 분명히 비집고 들어갈 여유가 있었다.

이를 악물었다. 손에서 연기가 피어올라오며 손을 구기고 있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한참이나 씨름을 하며 겨우 유서희의 몸에 손이 닿았다.

동시에.

-나는 ······니라. 태양의 정신을 잇는 소녀야.

-몸과 마음을 바쳐라. 나의 힘은 바람을 가르고, 나의 정신은 세상을 떨게 만드니!

-하지만 아쉽구나! 소녀야, 네가 남자아이였다면 진정으로 ‘세 여신’들을 농락할 수 있었을진대!

유서희의 기억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그’를 접했을 때의.

유서희는 작고 어두운 공간 안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울고 있었다. 그럼에도 몸과 정신을 빼앗기지 않은 건 위대한 정신을 잇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주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다가갈 순 없었다.

아직 내겐 그 정도의 권한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듯.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눈에 비친 소녀의 모습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공간은 시간이 뒤엉킨 공간 같았다.

파노라마처럼 유년기 시절과 성장한 뒤의 모습이 좌르륵 정렬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의 도중 한 지점에서 나는 잠시 시선을 멈췄다.

익숙한 실루엣을 더욱 자세히 들여보자, 내가 본 유서희의 ‘미래모습’에 내 기억이 덧씌워진 것이다.

소녀는 성장하여 검을 쥐었다.

은빛의 전신갑주를 입고 모습을 가렸다.

나는 저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검신 아르켄······!’

어느 날 돌연히 사라진 최강자.

나는 최후의 영웅으로 불렸으나, 최강의 영웅으로 불렸던 이는 검신 아르켄이었다.

우리엘 디아블로와의 싸움에서 그가 있었다면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모두가 말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엘 디아블로와의 싸움을 앞두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에 관한 모든 것들이 베일에 싸여있었다. 아르켄은 가명일 가능성이 농후했고, 출신성분이나 성별조차도 제대로 알려진 게 없었다.

다만, 나타나기만 하면 모든 적을 멸했다. 죽음의 천사라고도 불렸던 게 그다.

헌데······ 왜 검신 아르켄의 모습이 유서희의 미래에 투영되고 있단 말인가?

< 20. 천사(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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