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73화 (74/251)

< 18. 급진하는 현대사(完) > 끝< 19. 균열의 조각(1) >

카페를 나선 뒤 나는 피식거릴 수밖에 없었다. 고작 그 정도의 일. 마음 같아선 바닥에 머리를 찍어버리고 싶었으나 그런 일로 감정이 폭주하기엔 나는 너무 많은 걸 겪었다. 그럼에도 아주 참지 못한 걸 보면 역시 인간이기 때문일는지.

지금의 나는 시리아와 깊은 인연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나 역시 명백하게 ‘선’을 긋고 있었으므로. 선을 긋지 않았다면 시리아를 아포칼립스 길드에 두고 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시리아도 느꼈기에 굳이 ‘나를 따르겠다.’며 부담감을 주지 않은 것이고.

서로가 배려 아닌 배려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 정도 관계가 제일 좋아.’

특히 나와 깊게 엮여선 좋을 게 없었다. 내가 말하기도 뭣하지만 앞으로의 나는 위험을 몰고 다닐 가능성이 높았다. 차라리 민식이가 정통이라 할 만큼 파격적인 행보를 거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구상만 살펴봐도 지금의거리를 유지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았다.

나는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게 보인다.

‘오십 명 중 한 명은 각성을 했다.’

심안을 열고 돌아다닌 결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각성을 마친 상태였다. 하기야 ‘문’이 열린 곳은 나찰산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민식이 녀석은 고의적으로 비교적 낮은 등급의 ‘문’들을 계속해서 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민식이만이 아니라 아포칼립스 길드에서 자체적으로 인원을 차출해 그러한 일들을 행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각성하는 조건은 문에 손을 대기만 해도 충족이 되니 말이다. 그리고 모든 문이 위험한 것도 아니었다.

‘잠재력의 평균치는 달라진 게 없군.’

250. 많아봐야 300. 그 이상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각성의 시기가 빨라졌다고 하여 인류의 성장가능성이 높아진 건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 더 많은 기회와 변화를 얻었다는 데 의미를 두었다.

“맞춤 팔찌 만들어드립니다.”

“가전도구 싸게 팔아요.”

말하건대 이러한 변화들.

생산직의 직업을 가진 각성자들이 벌써부터 활동을 하고 있었다.

노점을 펴거나, 아예 가게에서 관련 된 직업을 가진 사람을 고용하여 홍보하며 남들과의 차별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가격이라면 더욱 좋은 품질을 찾는 게 당연한 법. 그래봤자 1~2Lv 스킬일 테지만 아예 없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났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중이었다.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태될 것이며, 적응한 사람만이 앞으로의 세계에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터였다.

‘치킨······.’

문득 길을 지나가다가 치킨집 하나를 발견하곤 멈춰 섰다. 변화가 시작되었고, 내입맛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치킨집으로 발을 들였다.

4평 남짓한 공간. 인자한 아주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로 드릴까요?”

“양념통닭······ 아니, 후라이드 반 양념 반 포장이요.”

나찰각에 있으면서 먹지 못했던 음식이다. 한국이 멸망한 뒤로는 제대로 된 치킨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왜 이제야 이게 생각난 건지.

자고로 참으면 병나는 법이다.

15분가량을 기다려서 포장 된 닭을 들고 다시 치킨집을 나섰다.

냄새만 맡았는데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닭 한 마리에 이토록 떨리다니. 어렸을 때로 돌아간 기분이로군.’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부모님이 일을 끝내고 돌아오실 때 닭 한 마리만 손에 쥐어져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향수. 오랫동안 못 느꼈던 감정이 조금은 살아나는 것 같았다.

무슨 맛일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꽃폈다.

세상은 급진하고 있었지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몇 가지 가치들이 있는데 어쩌면 치킨도 그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변화가 시작된 만큼 사람들의 욕망도 커졌다.’

멀쩡히 걷고는 있지만 내겐 그들의 욕망이 들렸다. 에인션트 원. 관리자로서의 권한이 꿈틀대며 그들의 기억이나 감정 따위를 내게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 이번에야말로 성공할 거야.

-이 힘이 있으면 달라질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재능은 확실해. 한 번 꽃피워보는 거야!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도록.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의외로 없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재능을 두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그것을 개화시킬 가능성마저 얻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강렬했던 과거의 기억만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주는 장면들이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감정이 폭발하는 장소.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나는 그들을 읽을 수 있었다.

‘저건?’

하지만 모두가 긍정적인 건 아니었다.

-돈. 돈. 돈! 지긋지긋해. 왜 난 행복할 수 없는 거지?

고개를 돌렸다.

엄청난 악의가 한 장소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두 눈을 비볐다.

한 여인이었다. 여인의 주변으로 검은색 아지랑이가 솟구치고 있었다.

‘잘못 본 건 아닌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저 아지랑이는 여인이 가진 ‘악의’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내눈으로 저러한 감정들이 색깔을 가지고 보인 일은 결단코 없었다.

나는 가만히 여인을 쳐다봤다. 그러자.

-오후 3시 34분. 김한명씨, 사망하셨습니다.

-돈 내놔, 이년아. 네 애비가 빌린 돈! 보험금 나왔을 거 아니야?

-엄마란 사람이 보험금 들고 도망갔다며? 매일 깡패들이 들락날락거리던데······.

-학자금대출, 서민대출, 전세대출, 대출, 대출, 돈만 들어오면 다 나가는구나. 하루에 알바를 다섯 개씩 해도 부족해. 내가 사는 의미가 있는 걸까?

-똑바로 일 못 해? 이래서 부모 없는 자식은 안 된다니까.

-정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 팔던가. 퉤!

-뇌졸중과 급성심근경색입니다. 젊을 때는 잘 안 나타나는 병인데, 다행히 늦지는 않아서 수술하면 괜찮아질 겁니다. 앞으로 무리가 되는 일은 하지 마세요.

수많은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여인은 천성이 착했다. 노력가의 기질을 타고났다.

불운한 가정사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행복한 모습도 보이질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기는 사라졌고, 의사의 판정을 들었을 땐 더 이상 희망이 없음에 눈물마저 흘렸다.

결국 그녀는 비관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의념이 내 귓가를 간질였다.

-다 죽여 버릴 거야. 나보다 행복한 사람들은 전부!

여인은 양 손을 회색후드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양쪽 손으로 빠르게마력이 모여들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폭발마법.’

여인은 화(火)의 속성을 가진 마법사였다.

그녀의 양손에 뭉쳐지는 마력들. 마력이 모두 뭉치거든 폭발할 것이다. 온갖 분노를 담아서 폭사할 작정이었다.

여인이 있는 곳은 역의 주변이었고, 수십, 수백 명이 얽혀있는 장소였다.

당장은 능력치가 낮더라도 ‘자기희생’을 각오로 스킬을 사용하면 훨씬 큰 파괴력을 갖기 마련이었다.

나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여인 앞에 서서 말했다.

“후회할 텐데.”

“······.”

“지금 네가 할 행동은 화풀이에 지나지 않아.”

“당신······ 누구야?”

푸석푸석하게 각질이 진 입술. 얼굴은 이미 파랗게 질려 있었다. 오랜 시간 제대로 먹을 것조차 먹지 못한 게 확실했다. 후드로 가려졌지만 머리는 산발이었고, 두 눈엔 죽음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누구인 건 중요하지 않다. 네가 앞으로 할 행동이 더욱 중요하지.”

“네가······ 뭘 알아?”

“각성하며 너의 병은 없어졌다. 계속해서 아프다고 생각하기에 낫지 않고 있을 뿐.”

각성이 또 다른 기회가 되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병을 가진 사람들이 각성을 하며 때때로 치유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 기준은 밝혀진 바가 없으나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사람은 높은 확률로 ‘강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눈앞의 여인도 마찬가지다.

이름: 김혜윤(value-지배불가)

직업: 화염의 마법사

칭호: 없음

힘 11 민첩 10 체력 9

지능 22 마력 22

잠재력(74/385)

특이사항: 없음

스킬: 화염폭발(1Lv)

내 기억 속엔 없지만, 훌륭한 가능성을 가지고 각성했다.

잠재력의 수치도 높았고 속성 마법사는 쉽게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그러나의아한 점은 있었다.

‘지배불가.’

민식이 이후로는 처음 봤다.

무언가 기준이 있는 걸까?

하지만 민식이는 눈앞의 여인과 같은 검은 기류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 검은 기류는 모든 힘을 거부한다.’

확실한 건 마치 터지기 직전의 폭탄과 같다는 거다.

여인은 나를 노려봤다.

“네가 뭘 안다고,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은가?”

“······!”

어깨가 미미하게 떨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여인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러자 검은 기류가 내 손을 타고 올라왔다. 그녀의 극단적인 감정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너에게도 잘못이 없다. 누구보다 노력했으니까. 도리어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

나는 기억을 읽었다.

여인은 누구보다 노력했지만,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인정을 해줬다면 미소를 잃지 않았을 것임에도.

이윽고 검은 기류는 나와 여인을 완전하게 감쌌다.

여인의 눈에 물기가 고였다.

“그럼······ 대체 누구 잘못이란 말이에요? 언제까지 참으란 말이에요?”

“참지 마라. 하지만 지금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왼 손에 들었던 통닭 봉투를 여인에게 건넸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여유를 가져라. 집에서 네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동생과 함께. 그러면 내일부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니.”

스멀스멀 올라오던 검은 기류가 주춤했다.

그와 반대로 여인의 떨림은 더욱 커졌다.

“당신은······ 누구죠?”

“지나가던 사람.”

그러곤 한 발자국 물러나며 지나가듯 말했다.

“네가 품은 불은 지금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그 능력을 제대로 개화시킬 수만 있다면, 바랐던 모든 걸 스스로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이게 잘하는 짓인가에 대해선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가 한 꺼풀 꺾인 건 분명하였다.

“잠깐······! 잠깐만요!”

스윽.

나는 발을 옮겼다. 인파의 속으로.

곧 여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지워질 수 있었다.

* * * * *

이후에도 나는 멀찍이서 여인을 지켜보았다. 검은 기류와 지배불가의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했던 탓이다.

첫날, 그녀는 달동네의 집으로 돌아가 동생과 함께 치킨을 먹으며 간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 다음날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몸은 전과 달리 매우 가벼웠다. 머리를 쑤셔오던 두통도 사라졌다. 고작 하루의 여유가 확실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그녀는 신기해하며 다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찾은 곳은 꽤 큰 프랜차이즈의 닭집이었다. 나는 지배자의 권능을 사용하여 그 사장을 지배했고, 단번에 여인을 채용하도록 만들었다.

여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달동네에 살고, 몸이 부실하다거나 왜인지 음침해보인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연달아 일어났다. 사채꾼들에게 미안하다는, 다신 찾아가지 않겠다는 문자가 날아온 것이다.

빚을 진 건 그녀의 아버지였고 돌아가신 시점에서 그녀는 채무의 의무가 없었다. 하지만 사채꾼들은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려고 악착같이 몇 년이나 달려들고 있었다.

그 일을 행한 것 역시 나다.

기억 속에 사채꾼들의 생김새와 상호가 남아있었기에 놈들을 일망타진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두머리만 지배하면 탈이 날 염려도 없다.

그러자 여인의 주변을 맴돌던 검은 기류가 점차 얕아져갔다.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닭을 한 마리 샀다. 그리고 두 시간을 걸어 나를 만났던 역 앞까지 당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그녀는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기다리던 여인은 밤이 늦은 다음에야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속에 잠재 된 불을 깨웠다. 불이 더욱 활활 타오를 수록 검은 기류는 반대로 약해져갔다.

그 일을 몇날며칠이나 반복했고, 조금씩 얕아지던 검은 기류가 4일째 되던 날 완전히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기류들은 모두 나에게 흡수되었고 해야할 것이다.

그리하여 검은 기류가 모두 흡수되었을 때.

[‘관리자’의 권한으로 ‘균열의 조각’을 회수했습니다.]

[잠재능력치 ‘1’을 획득했습니다.]

글귀가 떠올랐다.

균열의 조각!

검은 기류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지배불가도 없어졌다.’

조각이 회수되자 여인에게 있었던 ‘지배불가’도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온갖 악의를 품은 기류는 내게 흡수됨과 동시에 또 다른 현상을 낳았다.

‘잠재능력치?’

나는 즉시 십자 인을 그려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오한성

직업: 천지인(天地人)

칭호:

● 오한성(無, 순수마력 10당 모든 능력치+1)● 열두 시련의 파훼자(6Lv, 지능+9)● 놀 궤멸자(5Lv, 체력+7)능력치:

힘 53(48+5) 민첩 50(40+10) 체력 52(40+12)지능 52(33+19) 마력 67(57+10)잠재력(218+56/466)

잠재능력치: 1

스킬: 심안(9Lv), 지배자(9Lv), 전이(???), 냉혈(2Lv), 칠흑의 손길(2Lv), 요리(1Lv), 정령사(4Lv), 진·탈혼무정검(6성), 백보신권(4성), 금강불괴(5성), 태을무극심법(2성)착용장비: 요르문간드(2Lv, 지능마력+5), 승천자의 망토(민첩+5), 흑풍검

보유 포인트: 182,200pt

[잠재 능력치로 원하는 순수능력치를 올리는 게 가능합니다.]

[균열의 조각을 회수하면 잠재 능력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

원하는 능력치를 내 마음대로 올릴 수 있다니!

과거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방법을 찾고, 바랐지만, 이뤄지지 않았던 현상에 나는눈을 더없이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 19. 균열의 조각(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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