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71화 (72/251)

< 18. 급진하는 현대사(2) >

그들 다섯은 정확히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자석처럼 이끌리듯 사력을 다해 발을 놀리고 있었는데, 복장을 보아하니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막 각성한 초보자들.’

구분은 쉬웠다. 문제는 왜 지금 시기에 초보자들이 나찰산에 있느냐는 것.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한 명뿐이었다.

‘녀석이 손을 쓴 건가?’

민식이 좀비킹 아크시즈를 사냥하고자 ‘문’으로 들어갔단 이야기는 들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났으니 다음 행보를 위해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나찰산은 성장하기 매우 좋은 장소인고로 민식이가 문을 완전히 개방시킨것도 이해는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이들이 유입된 걸까?

“그, 그쪽 분! 피하세요!”

“씨발! 씨바아알!”

눈물, 콧물 질질 짜대며 도망치는 그들의 모습이 애처롭긴 했다. 괴물 멧돼지는 본래 5층 이상에서 서식하지만 아주 낮은 확률로 그 이하의 층에도 등장을 하곤 하였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건······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다.

굳이 검을 뽑을 필요도 없었다. 흑풍검은 쥐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필요 이상의 힘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가만히 자세를 낮춰 잡았다.

‘지금.’

정확히 정면으로 다가오는 멧돼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쿠릉!

달려오던 멧돼지의 신체가 가볍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윽고 가죽 전체가 요동치며 살이 튀어나올 듯이 출렁였다.

백보신권의 묘. 내부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 것이다.

쿵!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괴물 멧돼지가 볼썽사납게 바닥에 떨어졌다.

절명. 괴물 멧돼지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그대로 숨을 거뒀다.

이후 주먹을 한 차례 털어내곤 몸을 돌렸다.

내 뒤로 도망가던 5인방이 자리에 멈춰 서선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메, 멧돼지를 한 방에······.”

“주먹이 보이지도 않았어.”

“호, 혹시 1세대 각성자분 아닐까?”

나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근접하자 몇 명은 얼음처럼 굳었고, 오로지 한 명만 볼을 붉게 물들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저기요! 혹시 1세대 각성자세요?”

“1세대 각성자?”

이들의 태도를 보아 각성자를 접하는 게 제법 익숙했다. 말인 즉, 현대에서도 각성자의 존재가 대두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1세대 각성자라니?

다른 이들 모두가 벙 쪄 있을 때,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여인만이 나를 향해 질문을 내던졌다. 이에 역으로 되묻자 여인이 말했다.

“‘문’이 알려지기 전에 각성하신 분을 1세대 각성자라고 불러요. 혹시 모르셨나요?”

“처음 들어보는군. 그보다 왜 나찰산에 뜨내기들이 있는 거지?”

“아아, 혹시 먼저 이곳을 탐험하고 계셨던 분인가요?”

“묻는 말에나 답해라.”

어찌됐건 나는 이들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고작해야 수렵용 나이프 따위만 들고 있는 걸 보면 ‘문’ 안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초보 중의 초보였다.

내가 신경질을 내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유일하게 공개된 던전이 나찰산이거든요. 저희 같이 이제 막 각성한 각성자는 이곳 5층 이하에서만 사냥하도록 장려되고 있어요.”

“그 장려한 사람이 민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나?”

“어! 그건 또 아시나보네요? 아니면 혹시 같은 길드의 길드원이라거나?”

여인이 토끼마냥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맙소사.

나는 잠시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러니까 민식이 이 녀석이 나찰산을 대대적으로 공개해버렸다는 말이다.

“정부는? 정부가 그런 일을 두고 볼 리 없을 텐데?”

“말로는 위험하니까 멀리하라고 하는데, 사실상 별 다른 제제가 없어요. 그런데 정말 ‘아포칼립스’ 길드 소속 아니에요?”

아포칼립스 길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내가 최초로 만든 길드 이름이군.’

이쯤 되면 범인은 한 명뿐이다.

민식이 녀석이 그 사이에 정부를 구워삶고, 길드를 만들고, 용어들마저 정립하고있다는 것.

엄청난 변화였다. 내가 나찰각에 있는 사이에 세상이 변했다. 물론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여인은 계속해서 재잘거렸다.

“저희는 대학교 졸업논문주제로 ‘각성자’에 대해 발표할 생각이거든요. 실례지만괜찮다면 몇 가지 질문 좀······.”

“죽기 싫으면 돌아가라.”

“예?”

“꺼지라고 했다.”

얌전히 말해서 알아들을 부류는 아닌 것 같았다.

조용히 여인의 눈을 바라봤다.

딸꾹!

내 눈을 본 여인이 딸꾹질을 해댔다.

이제 막 각성한 초보자가 내 기운을 감당하긴 어렵다.

다리를 떨고, 시선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여인을 보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1층이니 지독히 운이 없어서 괴물 멧돼지를 만나지만 않으면 나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내 관심사는 저들이 아니다.

현대가 어떠한 식으로 급변하고 있는지, 1초라도 빨리 두 눈으로 담아야겠다.

바깥으로 나오는 와중에도 꽤 많은 사람을 보았다.

족히 백여 명. 그 이상이 나찰산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입구를 지키는 사람들도 배치되어 있었다.

‘군인이 아니야.’

민간인이다. 하지만 꽤 성장한 각성자였다.

남색의 제복을 입고 있었고, 어깨에 X자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층의 입구마다 배치가 되어있다.’

적어도 1층부터 5층까지는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아마도 ‘아포칼립스’ 길드의 길드원들인 듯싶었다.

게다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장비를 나눠주기도 했다.

“기본 장비는 지급해드려요.”

“카페에서 봤는데 정말 화기는 작동을 안 하나요?”

“예. 던전의 안에선 현대의 화기들이 작동을 잘 안하거든요. 굳이 말하자면 ‘발화’가 안 되는 거죠. 현대에서 가져온 모든 ‘불’은 잘 타오르지 않아요. 그 외에도 몇 가지 가설이 더 있지만, 신기하죠?”

질문과 답변도 오가는 걸 보아 굉장히 조직적이었다.

딱히 내게 관심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아직 ‘통제’의 단계로 넘어가진 않은 듯했다. 과거에는 나찰산을 층별로 수많은 길드들이 통제하며 돈을 걷거나 관리를 했는데, 이제 막 세간에 ‘문’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직후라서 그런지 억제력은 없는 것 같았다.

[‘나찰산’을 벗어납니다.]

[5, 4, 3, 2, 1]

문을 넘었다.

이윽고 주변 배경이 달라지며 익숙한 공기가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본래는 폐가였으나 그것을 허물어트리고 공터로 만든 듯싶었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띄엄띄엄 족히 20여명 정도가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문 바깥은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모종의 거래라도 오간 걸까?

‘일단 집으로 가야겠군.’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찰산이 노출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돌아가서 점검할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TV나 인터넷을 통해서 알아보면 보다 자세히 사건의 진상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

* * * * *

딸칵.

마우스를 놀리며 모니터를 주시했다.

수많은 기사들, 메이저 신문사에서도 이미 ‘던전’이라거나 ‘나찰산’의 키워드를 사용해 기사를 무한정 뱉어내는 중이었다.

-세계최초로 던전의 존재를 인정한 한국.

-던전. 독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인가?

-괴물들의 침략설. 사실일까?

-각성자 전문육성의 필요성.

-초인범죄, 오늘부터 더욱 강경하게 처벌받는다.

-김민식. 영웅의 귀환.

-아포칼립스 길드, 나찰산 25층을 정복하다.

차례대로 모든 기사들을 훑었다. 최초의 기사가 시작 된 건 지금으로부터 42일 전.

좀비킹 아크시즈를 사냥한 민식이가 사람들과 함께 귀환한 게 모든 일의 발로였다.

사라진 사람들 중에는 고위정계의 인물, 재벌3세 등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반향이 컸다. 이후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던전과 관련 된 일들을 공론화시켰고, 정재계가 함께 움직이며 결국 ‘공식발표’를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구출한 민식은 영웅으로 취급되었고, 그와 동시에 ‘아포칼립스’ 길드를 창설하며 던전 탐험에 열을 올렸다는 이야기.

‘벌써 길드를 만들었다, 라.’

굉장한 성과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만한 시간이 이 정도의 일을 해낼 줄은 몰랐다. 어지간히 독을 품지 않고선 할 수 없는 행동력이다.

딸칵.

-아포칼립스 길드, 나찰산 25층을 정복하다.

「나찰산을 공개한 아포칼립스 길드가 정복전에 나서고 벌써 26일째. 하루에 1층 꼴로 나찰산을 정복하던 아포칼립스 길드의 공격대가 25층마저 정복하며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25층은 ‘검은 수레’라고 하는 특이한 형태의 괴물들이 존재하며······.」

민식이의 사진과 30명 가량의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화기는 안 되지만, 문 안에서도 카메라는 작동했다.

하여간에······ 민식은 모든 행동을 기록으로 남기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데 사용하는 중이었다. 아마도 지금 녀석은 각성자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것일 테다.

나는 기사에 달린 댓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와, 저 괴물은 또 뭐야? 진짜 지구가 멸망한 징조인가?(cjdd****)-지구로 오기 전에 죽이면 된다던데······ 사실이겠죠?(bobo****)-ㅋㅋㅋ병신들. 저게 뭐 대단한 거라고(sson****)└어디서 개가 짖네(toto****)└옜다 관심(2wee****)-너무 무섭다!(seiz****)-아포칼립스 길드 파이팅! 민식님 너무 멋져요!(tuli****)-판타지가 따로 없구만(goraz****)고작 수십일밖에 안 지났는데 댓글들의 반응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얼마나 많은 언론에서 다루고 노출되었으면 이런 반응들인 걸까.

보통이라면 괴담으로 취급하며 정부차원에서 제제가 들어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공생관계가 된 것 마냥 하나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비판적인 기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각성자를 호의적으로 바라봤다. 게다가 던전과 초인의 출현으로 열광하는 분위기가 거셌다.

딸칵.

[아포칼립스 길드의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공식홈페이지도 존재했다.

게다가 홈페이지의 가입자가 200만 명이 넘었다.

홈페이지의 내용들은 간단했다.

괴물의 종류나 사냥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며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었는데 마치 ‘게임홈페이지’ 마냥 분위기를 조성시켜 자연스럽게 적응하도록 만들어졌다.

과거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러한 방식이 가장 대중이 익히기 쉽다고 판명이 난바가 있지만, 이번에는 시작부터 단번에 뿌리가 내리도록 한 것이다.

그러다가 한 글의 제목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늘 괴물 멧돼지를 주먹 한 방에 골로 보내는 남자를 봤어요!

「하필이면 1층부터 괴물 멧돼지한테 쫓겨가지고 죽을 뻔 했는데 한 남자분이 저희를 도와주셔서 살았어요! 주먹질 한 번에 멧돼지가 막 피를 터트리면서 죽더라고요. 아포칼립스 길드원들 중에서도 권사가 몇 명 있는 걸로 아는데 그중 한분일까요? 그런데 너무 불친절했어요. 힝.」

└괴물 멧돼지를 주먹 한 방에? 허언증이세요?

└네, 다음 꿈

└아포칼립스 길드의 대표 권사라면 손오혁님 아닌가요? 동영상보면 그분도 괴물 멧돼지 잡는데 주먹 세 번 정도 쓰시던데.

└저는 새끼 손가락만으로 괴물 멧돼지 사냥할 수 있는데요? 뭐 그게 대단한 거라고ㅎㅎ└나는 코딱지로도 죽일 수 있음└머리카락 한 올이면 충분한 거 아니었어?

인터넷시대는 역시 뭐든 빠르다는 걸 느끼며 작게 혀를 찼다.

‘가면이라도 써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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