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61화 (62/251)

< 15. 꿰뚫어보는 자(完) >

왜 비밀로 경매를 진행하겠는가. 암흑인은 벌써 10여 차례나 이곳에서 연회가 열렸다고 말했다. 그 동안 잡음이 많았다면 진즉에 이 모임은 폐쇄되었을 터였다.

물론 이만한 장물들이 한 번에 흘러들어왔으니 위험성이 없진 않다. 아오닉 아브라함이 이런 ‘봉인 된’ 물건들만 모으고 있었다면 필사적으로 찾아 나설 것이었기에.

하지만 내겐 내부자 크리퀴가 있었다. 나라고 특정 짓지 않는 이상, 아니면 다른 자에게 뒤집어씌우면 그만인 일.

무엇보다 이것들은 겉으로 티가 나는 형태의 물건이 아니었다.

‘각각 오천 포인트면 안전할 터.’

노리는 자가 없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오천 포인트로 ‘게 아살의 창 조각’과 ‘크투가의 힘이 담긴 돌’을 각각 입찰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소란이 커졌다.

“통곡의 검?”

“뭐야, 주인을 고르는 마검?”

떠들썩했다. 내가 고른 물건은 심안과 같은 수준의 관찰계열 스킬을 가지지 않는 이상 살피는 게 불가하니 인기가 없었지만, 유독 주목을 받는 물품들 몇 개가 있었던 탓이다.

그중 하나. 마검의 앞에 수십 명의 괴물들이 모였다.

마치 블랙홀처럼 검은색의 문양이 검신에서 실시간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손을 댄 자들의 손가락에 자잘한 상처 등을 내었다.

척 보기에도 기품이 넘치는 검이다. 손잡이는 보석으로 아름답게 세공되어 있었고, 검신의 마력이 소용돌이치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하물며 주인을 가리듯 손을 가져간 이들 모두에게 상처를 냈다.

“제대로 관찰이 되지 않는군.”

“그만큼 급이 다르다는 건가?”

관찰계열 마법을 가진 괴물들, 혹은 그런 마법이 담긴 스크롤을 사용하는 괴물도 있었지만 검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불가했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심안’만큼의 세세한 구분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기껏해야 이름을 알아보는 정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검의 주 재료는 ‘이그닐과 이타콰의 알’이었으므로.

‘마력의 장벽을 만들어 탐색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지.’

데몬로드들이 참가했던 경매. 그곳에서조차 이그닐과 이타콰를 알아본 자가 나밖에 없었다. 이는 이그닐이 가진 ‘마력흡수’의 체질 때문이었는데, 그 알을 주재료로 사용했으니 검의 내부 특성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자들도 없을 터였다.

그러한 착각은 검의 품격 자체를 높여줬다. 오묘한 문양과 아름다운 외관. 하지만왜인지 ‘낡아’보이는 인상을 줌으로서 오래된 명검처럼 다가가게 만들었다.

검에 손을 대면 상처가 나는 건 세공사에게 부탁하여 전류가 흐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정 이상의 지능, 혹은 마법방어 능력을 지니지 못하면 꽤 높은 수치의 전류가 강타하도록 말이다.

<통곡의 검(value-50,000)>

● 마력+1

● ‘통곡의 전류’ 마법이 새겨져 있다.

● 특수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어서 내부를 살피는 게 불가하다.(탐색마법 무효화)『특수한 용의 알을 주재료로 만들어진 검.』

권능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심안’만이 파악 가능한 정보였다. 다른 마법으로는 고작 이름이나 알아내면 다행이었다.

탐색마법을 무효화시킨다는 점에서 나름 쓸모가 있었지만, 내겐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꽤 괜찮은 가격에 팔리겠군.’

눈치싸움이 시작됐다.

내가 경매에 내놓은 통곡의 검을 구매하고자. 입찰자가 누구이고 얼마를 베팅했는지, 그 모든 게 ‘비밀’인만큼 통 크게 부르려는 자들도 없진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저 검의 판매액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투자회에서 투자를 받은 건 ‘절대지배’ 상회의 돈이지만 내가 팔아서 직접 번 돈은 내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요컨대 지배자의 권능을 사용할 때 등등.

더불어 지구의 나와 연동되며 더욱 많은 걸 노릴 수 있을 터.

무엇보다 검의 주변에 모인 이들 중 몇 명은 ‘바람잡이’였다.

일부러 소란을 만들고 검의 가격을 띄우기 위한 작업!

‘포인트로 할 수 있는 건 많다.’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암흑상인을 만나는 것 외에도 ‘주황색의문’ 중에 포인트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몇 곳 있었다. 주황색은 특별한 장소와 이어지는 문인데 일전 ‘오딘의 창고’가 그러했다.

대표적으로 스킬의 수련장, 혹은 특별한 시련들이 있는 곳. 투입한 포인트에 따라서, 들이는 노력에 따라서 강해질 기회를 마련해줬다.

나도 한 차례 이용해본 기억이 있었다.

‘중세시대 같은 곳으로 떨어졌었지.’

기사가 되어 전쟁에서 승리하라는 시련을 받았다. 가상의 공간인 듯했지만 현실감이 넘쳤다. 실제로 그곳에서 입은 상처는 고스란히 현실에서도 쑤셔왔으니까.

성공하여 얻은 보상은 들인 포인트의 곱절이나 됐다. 한 번 시련을 행하자 문이 사라져서 다시 도전할 기회를 잃었지만, 무작위로 생겨나는 장소이니만큼 언제든 도전할 수 있도록 포인트를 모아놔서 나쁠 건 없었다.

“로드 우리엘 디아블로. 본의 아니게 선물은 제가 얻고 말았네요. 그러니 한 가지좋은 정보를 드릴게요.”

경매가 마무리 되어갈 때 즈음이었다. 쟈낙이 불현 듯 내게 말을 걸어왔다.

본의 아닌 선물. 내가 건 쪽으로 포인트를 걸며, 쟈낙도 쏠쏠하게 재미를 봤으니 그것을 선물로 표현한 것이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쟈낙이 작게 말했다.

“카르페디엠이 땅을 파고 있다고 하더군요.”

“땅을 판다?”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서 아는 이들은 몇 없지만, ‘망령대왕의 묘’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암흑룡으로 그 마력을 추적하고 있다고······.”

일전의 경매에서 카르페디엠은 암흑룡의 알을 샀다. 그저 으스대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단 말인가? 암흑룡으로만 탐지가 가능하다면 아마도 ‘어둠의 정령’과 관계가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암흑룡만큼 어둠의 정령을 끌어 모으는 존재도 없기 때문이다.

‘단순한 머저리는 아니었군.’

망령대왕의 묘라.

암흑룡까지 구매해가며 찾으려는 것이다. 결코 단순한 장소일 리 없었다.

“위치는?”

“지도로 ‘정성껏’ 그려서 보내드릴게요. 후후.”

정성을 강조하며 쟈낙이 윙크를 날렸다. 그 옆에서 라이라가 매우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가만히 턱을 쓸어 보일 따름이었다.

카르페디엠. 녀석이 얻을 걸 내가 강탈해도 나쁠 건 없었다. 어차피 더 나빠질 게 없을 만큼 우리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강탈.

무척이나 기분 좋은 단어였다.

* * * * *

경매가 끝난 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푸른 산호섬을 벗어났다.

게이트를 넘어 성에 도착하자, 이미 경매에서 낙찰 된 물건과 판매금액이 들어와 있었다.

‘게 아살의 창 조각, 크투가의 힘이 담긴 돌.’

작게 미소를 지었다. 각각 오천 포인트, 도합 1만 포인트로 그 가치를 훨씬 초월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게 아살의 창 조각. 비록 훔친 장물이라지만, 그저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능력치를 1 올려주는데다 신의 창, ‘게 아살’의 여덟 조각 중 하나였다.

여덟 개를 모을 수만 있다면······.

‘신의 이름을 계승했으니 결코 평범하진 않을 것이다.’

신 루의 창이라 불리는 무기다. 내가 경험한 어떠한 장비보다 강력할 것임이 분명했다. 여덟 개의 조각이 모든 차원에 나뉘어있다는 점이 걸렸지만, 나는 강렬한 운명의 끌어당김을 느끼고 있었다.

모든 차원을 경험을 수 있는 존재가 나 외에 달리 있겠는가. 암흑인보다도 움직일수 있는 폭 자체는 내가 더 넓었다.

‘크투가의 힘. 진화의 불.’

약간 애매한 건 이 돌이다. 크투가의 힘이 담겼다고는 하지만 정확한 쓰임새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진화’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걸린다.

나 역시 진화의 힘을 갖고 있었다. 내가 지배한 대상은 성장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 다음단계로 넘어가곤 했다.

슬라임이나 이그닐을 통해 여러가지 실험을 해봤지만 별 반응은 없었다.

‘일단 암흑문을 통해서 지구로 보내야겠군.’

행동반경은 데몬로드일 때보다 오히려 본신인 오한성일 때가 더 넓었다.

모든 차원으로 퍼진 게 아살의 창 조각을 찾는 것이나, 크투가의 힘이 담긴 돌의 쓰임새를 알아보려거든 본신으로 나서는 게 더욱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만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게 봉인되어 있었으니 이 역시 평범한 물건은 아닐 터.

이어 허공이 십자 인을 그렸다. 그와 동시에.

[‘통곡의 검’의 판매대금 115,200pt를 획득했습니다.]

[현재 184,450p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115,200포인트!

이는 경매 자체의 이율 20%와 검을 만들고 마법을 새기는데 들인 10%를 제외한 금액이었다. 본래는 16만에 팔렸다는 말이다.

정상적인 암흑상회에서 판매하게 되거든 10%의 경매수수료만 떼어가겠지만 ‘비공식 경매’이니 더 높은 금액을 받아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경매로 ‘통곡의 검’을 팔았다면 이처럼 높은 가격을 받진 못했을것이다. 판매자가 ‘나’인 것 또한 알려지면서 괜한 경계심만 살 수도 있었다.

나머지 10%는 검을 만드는데 들어간 금액이었다. 드워프와 마법을 새기는 세공사에게 각각 5%씩 지불하기로 계약이 되어있었는데, 판매대금이 들어오자 자동으로 처리가 되었다.

그럼에도 2배 이상.

본래의 가치가 5만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이득이다.

‘18만 포인트라.’

내 개인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액수였다. 18만 포인트라니. 과거의 내가 1년 이상은 한 푼도 안 쓰고 빡세게 굴러야 겨우 모을 수 있을까 싶은 정도의 수치였다.

심연의 괴물들과 인간의 차이일는지. ‘위대한 별’이 나타나고 심연의 생활양식도 달라졌다고 했다. 포인트의 개념이 활성화 되고 그것으로 거래를 하며 벌써 100년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당연히 보유할 수 있는 전체적인 포인트의 규모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편지가 있군.’

검과 창이 x로 갈린 모습. 상회의 마크가 새겨진 검은색 편지지 한 장이 물건들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보나마나 크리퀴의 것이었다. 편지지를 꺼내 안의 내용을 읽어보았다.

『크리퀴입니다. 예상하시겠지만 ‘올리비오’라는 이름의 투자자는 제가 만든 허상의 존재입니다. 100만 포인트는 암흑상회에서 빌린 것이나 일종의 ‘어음’이라 사용이 불가능할 겁니다. 아, 그리고.』

불법적인 이야기를 덤덤하게 늘어놨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획하기 위해 크리퀴도 나름의 위험을 감수한 것 같았다.

계속해서 읽었다.

『제가 연락하기 전까진 따로 저와 접촉하려 하지 마십시오. 암흑상회에서도 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형식적인 절차이니만큼 적당히 넘기면 되긴 합니다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투자금의 사용을 위한 지침을 몇 가지 보내드리오니 이것도 한 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지지 안에 몇 장의 종이가 더 들어있었다.

광산의 구매, 자잘한 사업계획 같은 게 적혀있었다.

하긴, 크리퀴가 모든 걸 다 하기에는 준비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 사이에 이만큼이나 준비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상회 정보.’

십자 인을 허공에 두 번 내리긋자 또 다른 정보들이 떠올랐다.

[‘대표자격’으로 상회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절대지배 상회]

[상회가치: 3,300,000pt]

[일별 매출 평균: 1,260pt]

[상회 유보금: 1,660,000pt, 1,000,000pt(사용불가)]

-상회 가치에 비해 매출이 매우 낮습니다.

-유보금 중 100만 포인트가 ‘사용불가’ 상태로 잡혀있습니다.

정식적인 대표는 구르망디였지만, 구르망디가 내게 양도한 권한이 몇 개 있었다. 정보의 확인과 투자금의 사용이 그러한 것들이었다. 사실상 가장 중요한 권한은 여전히 내가 쥐고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부를 세우는 것.’

상회의 기초가 되는 지부가 필요했다. 아무런 기반도 없이 물건을 만들고 판매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내 영지에 세워야겠군.’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에 말이다.

지부를 세움과 동시에 영지의 방어를 꾀한다. 일석이조였다.

그리고 말이 지부이지 성의 벽을, 탑을 쌓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게 바로 투자의 ‘꼼수’였다.

애당초 라이라가 얼굴마담으로 나선 마당이다. 속이 보이긴 하지만 데몬로드의 비호를 받는다는 의식을 줄 수도 있었다.

물론 지부를 위해 고용한 일꾼들은 강력한 괴물로 대체될 것이고, 보석 대신 무기가 넘쳐날 것이었다.

자고로 남이 끓여주는 라면이 제일 맛있는 법.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그 모든 것을 행하리라!

‘나쁘지 않다.’

오히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 15. 꿰뚫어보는 자(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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