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57화 (58/251)

< 14. 라이라 디아블로(完) > 끝< 15. 꿰뚫어보는 자(1) >

촤아아악!

좀비킹 아크시즈의 마지막 좀비가 쓰러졌다. 포그 좀비는 숨 쉬는 것처럼 독을 뿜어 대서 여간 쉽지 않은 적이었다.

민식이 크게 숨을 토해냈다. 모든 좀비를 없애고 좀비킹의 묘지에 도착하기까지 벌써 한 달. 수많은 희생을 토대로 일궈낸 값진 결과였다.

거대한 문 하나를 두고 민식이 주변을 둘러봤다.

남은 이는 고작 20명.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더없이 독했다.

‘마음에 드는군.’

포그 좀비의 목에서 검을 빼낸 민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의도대로, 그들은 ‘결속’할 수 있었다. 민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완벽한 카르텔의 완성. 이곳에 들어왔을 때의 유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혈귀(血鬼)만이 남아있었다.

이대로 바깥에 나가도 그들은 결코 배신하지 않으리라.

‘악마의 인장이 박혀있는 한.’

악마의 인장.

심장에 새겨지며, 절대로 주인을 배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법.

좀비킹 아크시즈의 측근인 ‘죽음의 좀비’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라면 제약이 커서 일반적인 사람은 익히는 게 불가능하지만, 민식은 마검사였다. 모든 마법을익힐 수 있는 직업! 그것이 설령 흑마법이라고 할지라도 익히는 게 가능했다.

인장을 새기기 위해선 몇 가지 제약이 있다. 그러나 시리아를 제외하면 모두 새길수 있었다. 시리아는 성녀의 특성을 지녔기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성이 녀석은 흑마법에 손을 대지 않았지만······.’

오한성. 그는 영웅이었다. 그가 빛날 때, 민식은 어둠 속에 가라앉았다. 친우였기에 더욱 선망했으며 또한 시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에겐 명백한 ‘선’이 있었다. 그래서 최후의 영웅, 진정한 영웅 등으로 불린 것이겠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민식은 그보다 더욱 위대한 영웅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선 마냥 깨끗한 길만을 걸을 순 없었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다소 과격한 방법일지라도······ 민식은 승자가 되고 싶었다.

진정한 승자가 되어 모든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지키리라.

그러기 위해선 손을 더럽힐 줄도 알아야 한다. 한성, 녀석은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 영웅이라는 굴레에 허덕이며 힘들어했다.

배부른 투정이다. 적어도 자신이 보기엔 그랬다.

‘악마의 인장은 단지 배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 뿐, 진정으로 나를 따르게 만들진 않지.’

지난 한 달여 동안 그들만의 ‘결속’을 위해 민식은 부단히 애를 썼다. 좀비킹 아크시즈는 별 다른 문제가 안 된다.

저들이 바깥으로, 사회로 나갔을 때, 자신의 힘이 되어주어야 했다.

살아남은 이들 대부분이 사회에서 ‘힘 있는’자들로 분류되었다. 악마의 인장으로 인하여 자신이 죽거나, 자신을 배반하면 저들 역시 죽는다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줬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수개월 뒤 세계 곳곳에서 생기는 싱크홀. 그곳에서 7대 주선 중 하나인 ‘인내’를 구하는 게 민식의 목표였다.

이들은 그 밑바탕이고,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한 초석이었다.

‘나찰산, 아르힘의 호수, 붉은 석산······.’

가야할 곳은 많았다. 그곳에서 얻어야할 것도 많았다. 당장 좀비킹을 죽이고 다르한의 검을 얻으면, 그 즉시 나찰산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다르한의 검엔 A랭크의 공격마법인 월광(月光)이 담겨있었다. 그걸 얻으면 성장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었다.

특히 나찰산은 최고의 사냥터다. 아르힘의 호수나 붉은 석산보다도 나찰산을 먼저 가야했다.

또한 나찰산에 있는 ‘팔라딘의 망토’를 비롯한 팔라딘 세트를 모을 것이다. 초반에서 중반까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무구. 얻을 수만 있다면 감히 누구도 자신을 이길 수 없다. 7대 주선을 얻는 것쯤은 어렵지 않으리라.

“좀비킹을 잡을 시간이다. 다들 준비 되었나?”

민식은 무겁게 말했다.

이곳의 마지막 목표. 좀비킹 아크시즈를 사냥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수월하게 나아가며 데몬로드마저 막는 게 민식이 바라는 구도였다. 500명의 영웅 중 오한성을 제외하고 전멸시켰던 그 절대악의 괴물. 전율과 학살의 여왕과 함께, 반드시 잡아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영웅의 길을 걸을 것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 한 명. 시리아를 제외하고.

‘아직도 나를 못 믿고 있구나.’

유일하게 악마의 인장을 박지 못한 사람.

그녀는 민식에게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의 가문이 멸망하지 않으려거든 자신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더불어 그녀가가문으로 돌아가는 것 역시.

그랬기에 러시아에서 한 걸음에 한국까지 달려온 게다.

‘어차피 너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시리아.’

성녀. 그 미모도 찬란하다. 밤마다 덮치려는 놈들은 민식, 그가 다 죽였다.

자신이 최고가 되는 데에는 그녀가 필요했다. 그녀의 힘과 러시아 군부의 힘을 가지게 되거든 세계적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녀에게도 민식이 필요하다. 성녀는 전투와 관련 된 직업이 아니다. 그녀혼자서 성취를 이루려거든 한계가 있다. 민식의 옆에 붙어 있는 게 가장 빠른 성장법이었다.

그러니······.

‘넌 날 거부할 수 없다.’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지금은 싫어해도,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이다그녀가 의지할 사람은 민식, 자신밖에 없다는 걸.

“그럼 가지.”

끼이이익!

좀비킹 아크시즈가 머무는 최후의 관문을 열었다.

* * * * *

연회장은 넓었다. 일만이 넘는 괴물들을 모두 수용할 정도로 넓다면 말은 다 했다.

그곳에서 라이라 디아블로는 주목의 대상이었다.

아름다운 순백의 드레스와 보랏빛 보석이 박혀있는 목걸이, 그 외에도 값비싼 보석 등으로 치장하여 한 번 보거든 눈이 멀 만큼 아름답게 치장했다.

“전장의 암표범에게 저런 모습이 있을 줄이야······.”

“내 아이를 낳게 하고 싶군.”

“훌륭한 의상과 보석들이다. 라이라, 그녀에게 저 정도로 안목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괴물들도 나름 보는 눈은 있었다.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긴 하지만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심미안을 가진 괴물들도 있는 것 같았다.

주로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괴물들 한정이긴 했지만.

반대로 군침을 흘리며 ‘맛있겠다.’라고 말하는 녀석들도 있는 걸 보면 역시나 정상적인 연회의 장소로 생각하긴 어려웠다.

라이라의 옆에 있는 나에게도 시선이 쏠리긴 매한가지였다.

내가 우리엘 디아블로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돌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쉽사리 다가오진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도시의, 군단의 주인이라 한들 과연 데몬로드에는 못 미치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최약의 데몬로드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연회장에는 테이블이 많았다. 주로 크기에 따라서 의자와 테이블 따위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중 내 몸집에 맞는 곳으로 다가갔다.

“로드 우리엘 디아블로······.”

“피하는 게 좋겠군.”

오우거 킹, 나가 퀸, 기간테스 등이 내가 다가가자 슬쩍 자리를 옮겼다. 묘한 기분이었다. 적으로 만났을 땐 하나 같이 강력하기 짝이 없는 괴물들이었다. 목숨을 걸고 싸워서 겨우 이긴 적들. 그러한 괴물들이 나를 보고 도망간다.

“로드시여. 어찌하시겠습니까?”

“춤을 추어라.”

“예?”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너다. 교류를 하며 너를 더욱 뽐내는 게 맞다.”

“하오나······.”

라이라가 슬쩍 연회장의 중심을 바라봤다.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는 자들이 보였다. 마족들, 혹은 흡혈귀나 드워프와 같은 아인종들.

연회장의 구석에 있는 작은 호수에선 바다의 인어, 세이렌이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인지 적어도 그들 모두가 ‘적대감’은 없었다.

저곳에 들어가는 순간 라이라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게 내가, 크리퀴가 바라는 바였다.

‘저 드레스와 보석들은 크리퀴가 협찬한 것이지.’

크리퀴는 보석과 약초를 판다. 일종의 협찬이었다. 심연의 주목을 받는 라이라가 아름다운 장신구 등을 착용하면, 당연히 수요가 생길 거라는 판단.

더불어······.

‘구르망디.’

녀석도 이곳에 있었다.

서로 모르는 척 하고는 있지만 이 또한 계획한 전략이다.

“그와 친분을 나눠야하지 않겠느냐?”

내가 슬쩍 눈치를 주자 라이라가 구르망디에게 시선을 줬다. 그는 연회장의 중심에서 술잔을 홀짝이며 주변의 여럿에게 ‘절대지배 상회’에 대한 어필을 하는 중이었다.

천상 발명가인줄로만 알았더니 제법 분위기도 탈 줄 알았다.

“······ 알겠습니다.”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라이라가 수긍했다.

이 역시 나를 위한 일이었으니.

‘그럼.’

라이라가 떠나간 직후, 나는 테이블에 준비 된 음식들을 먹었다. 대부분 과일이나날것 그대로의 음식이었지만 약간의 양념을 해서 그런지 나름의 풍미를 풍겼다.

내가 할 일은 이곳에서 분위기를 잡는 것이다. 인맥이나 절대지배 상회의 어필은 구르망디와 라이라가 할 터였다.

나는 이후 연회의 막바지에 시작 될, 정상적인 루트로는 결코 판매가 불가능한 것들을 파는 ‘이면경매’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크리퀴가 말하길, 이 이면경매에서야말로 ‘진주’를 구할 수 있다나.

‘더불어······ 내가 가진 것을 팔수도 있지.’

내가 팔 건 별 게 없었다.

이그닐과 이타콰가 뚫고 나온 알의 껍데기.

거기에 몇 가지 장치를 더하여, 크리퀴가 팔기로 했다.

크리퀴와 같은 불법적인 일도 서슴없이 벌이는 암흑인들이 딜러로서 출진한다. 크리퀴의 역량에 따라서 내가 사고파는 것들의 한도가 달라진다는 뜻.

자신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니 나름대로 기대해볼만 하였다.

“로드 우리엘 디아블로. 데몬로드가 직접 이런 연회에 참여하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인데, 만나서 반갑군요.”

한 다크엘프가 다가왔다. 강인한 신체를 지닌 여성. 왼쪽 눈을 가리는 검은색 안대를 쓰고 있었다. 경장을 입고 있었는데, 흘러나오는 마력이 굉장히 전투적이었다.

‘다크엘프 엘더.’

다크엘프 퀸이나 킹보다 한 차원 높은 존재. 한 세대에 몇 명 태어나지 않는다는 ‘엘더’의 이름을 이은 다크엘프였다.

과거 내가 보았던 엘프의 여왕도 엘더의 이름을 이었으니,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없었다. 천천히 심안을 열었다.

이름: 쟈낙(value-792,500)

종족: 다크엘프

칭호:

● 다크엘프 엘더(9Lv, 지능+11)● ‘심연의 지평선’의 영주(8Lv, 힘민체+5)● 붉은 마안의 소유자(8Lv, 마력+9)능력치:

힘 100(95+5) 민첩 113(98+15) 체력 100(95+5)지능 103(92+11) 마력 99(90+9)잠재력(470+45/485)특이사항:

-5만의 다크엘프 전사들을 다스리는 영주입니다. ‘심연의 지평선’ 소속의 용병들은 일당백의 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착용한 장비 ? 발할라(민첩+10)도시의 주인이었다.

하물며 ‘심연의 지평선’은 라이라가 고용한 1급 용병단의 소속 아니었던가. 그녀가 내게로 다가온 이유가 그와 관련된 것 같았다.

일단 종합능력치가 500을 넘어있었다. 이는 나찰과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종합능력치가 500을 넘기면 ‘격’의 진화를 한다고 한다. 보고, 느끼는 것 자체의 기준이 달라지며, 나와 같은 존재에 대한 면역을 가진다고.

나가 퀸과 같은 괴물마저 나를 피했지만 그녀는 도리어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종합능력치 500을 넘기면 기하급수적으로 가치가 올라가는 것 같았다.

‘탐나는군.’

물론 포인트를 아무리 쏟아 부어도 그녀만한 ‘격’을 지닌 존재를 완전하게 지배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5만의 병력을 얻는 셈이었다.

“쟈낙이라고 해요. 라이라는 과거에 자주 봤지만, 우리는 몇 번 못 봤죠? ‘심연의지평선’을 다스리는 영주입니다. 헤이만이 잘 해주던가요?”

우리엘 디아블로를 과거 몇 차례 만난 듯했다.

기억은 안 났다. 하여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대가 심연의 지평선을 다스리는 영주였군. 헤이만을 빌린 덕분에 카르페디엠의 도발이 적어져서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친애의 의미로 악수나 한 번?”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며 그녀가 내미는 손을 붙잡았다.

이후 그녀가 잔을 내밀자, 나도 마찬가지로 잔을 부딪쳤다.

붉은빛의 포도주를 마신 뒤 쟈낙이 말했다.

“데몬로드들은 보통 자신을 대신할 ‘대행’을 보내곤 하는데, 직접 오시다니 특이한 일이군요.”

쟈낙의 말마따나 곳곳에 다른 데몬로드들의 ‘심복’으로 보이는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찾아온 데몬로드는 보이지 않았다.

암흑상회라면 모를까, 이런 곳에 굳이 들어오긴 창피하다는 건지. 격에 안 맞다는건지.

본래의 우리엘 디아블로였다면 마찬가지로 라이라만 보냈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나는 그 따위 데몬로드 특유의 자존심이 없었다.

“100년 만에 깨어났으니 더 부지런해야하지 않겠나?”

“하기야 다른 데몬로드들은 다 이미 기반을 만들었죠. 대부분이 ‘사천왕’ 소속이긴 하지만······.”

사천왕. 위대한 별을 다스려 신보다 더욱 신다운 자리에 앉으려는 자들.

태양왕, 지옥왕, 천왕과 사자왕이 있었다.

“그런데 ‘심연의 지평선’은 내게 용병을 빌려줘도 괜찮은 건가? 카르페디엠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진 않을진대.”

실제로 카르페디엠은 장벽이었다. 카르페디엠이 적대한다는 소문이 나자 모든 이들이 나로부터 떨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쟈낙은 코웃음을 쳤다.

“우리는 용병집단이랍니다. 응당한 대가만 치르면 그게 누구이든 용병을 빌려주죠. 우리를 적대하겠다면 각오해야할 거예요.”

굉장한 자신감이었다.

데몬로드가 덤벼도 쉽게 쓰러지지 않으리란,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의미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카르페디엠 쪽에서 용병을 빌리겠다면? 빌려줄 건가?”

“빌려주긴 하겠지만 빌리지 않겠죠. 사천왕과 관련 된 데몬로드들은 그들에게 병력을 빌리지, 우리를 통하진 않아요. 그네들 입장에서 우리는 ‘야인’ 그 자체이니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겠죠.”

카르페디엠 역시도 사천왕 소속이었다.

지옥왕의 비호를 받는 데몬로드. 다만 고작 나를 가지고 고전하는 걸 보면 말단 중의 말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야인이 아니라 들판에 핀 꽃이겠지. 그 강인한 생명력이 나는 좋더군.”

“후후, 낭만을 아시는 분이로군요.”

쟈낙과는 친분을 쌓아둬서 나쁠 게 없을 듯싶었다.

와인 한 잔을 더 마신 쟈낙이 내게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그럼 친애의 의미에서 춤 한곡?”

“······ 로드시여.”

그때였다.

메마른 사막처럼 굳어버린 얼굴로, 라이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 15. 꿰뚫어보는 자(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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