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37화 (38/251)

< 09. 나찰산(完) >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마취 없이 생살을 잘라내고 뼈를 가르는 수술이다. 잠시라도 정신을 놓았다간 그대로 졸도해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고통에 제법 익숙한 편이었다. 이를 악물며 신체가 흔들리지 않게끔 만들었다.

이내 정수리가 뚫리며 백회혈(百會穴)을 자극했다. 그곳에 본래는 없어야할 통로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게 이번 수술의 목적이었다. 중단전과 상단전을 개봉하여 마력의 활용능력을 다른 사람들보다 수십 배 끌어올릴 준비 말이다.

‘집중.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고통을 인내하며 신체 내부의 마력을 꽈배기처럼 잇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범인이라면 뼈를 절개하는 순간 졸도했을 것이고, 설령 참아내더라도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해야 한다.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억지로 연 통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닫혀갈 것이었기에.

다시 열리리란 보장도 없었다.

그러나 통로가 열린 그 순간 확실히 마력의 순환이 빨라진 기분은 있었다.

나는 하단전에 쌓인 마력을 꼬고, 꼬고, 또 꼬았다. 마치 수타면을 치는 기분이었다. 때리고, 또 때릴수록 나선형의 마력들이 늘어났다.

거미줄처럼 엮인 나선형의 마력이 하단전을 뒤흔들었다. 백회혈의 통로가 열림과동시에 활발해진 마력들이 하단전을 내리누르자, 놀랍게도 그곳 역시 ‘길’이 생겼다.

‘하단전은 그저 마력이 머물러가는 장소다.’

진정한 마력의 활용은 중단전과 상단전의 연계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 구조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의 상단전은 태어날 때 잠시 열렸다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닫혀버린다.

그리하여 마력이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하단전으로 내려간 마력이 그곳에서 정체하게 된다.

하지만 백회혈을 자극하여 통로를 열면 닫혔던 구멍이 ‘아주 약간’ 벌려진다. 얇게 저민 마력만을 그 구멍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내보낸 마력이 정착할 수 있도록 나선형으로 꼬아버린 마력을 심장과 뇌에 묶어야 했다.

굉장한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

전신에서 땀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데몬로드의 구조를 보고 파악했다. 나선형의 마력을 족히 수십만 갈래로 묶어놨지. 그들의 마력이 한계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다.’

강해지고 싶다. 과거보다 더욱. 그리하려면 바뀌어야 한다. 변해야 했다.

인간의 한계마저 뛰어넘어 모든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집중했다. 무아(無我)에 빠져들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고통이 점자 사라졌다. 나는 마력의 파도를 타고 심장과 뇌를 오가는 중이었다.

‘뫼비우스의 띠. 시작과 끝의 모호함. 그리하여 영원히 순환하는······.’

순환. 순환이란 무엇인가.

모든 건 순환 속에 있었다. 만물이, 나조차도.

하지만 그 순환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 아는 존재는 없었다. 설령 신이라고 하여 알까?

나는 내 몸속에 그러한 ‘순환시스템’을 만들고 있었다.

이는 데몬로드의 것과 닮았지만, 또한 달랐다.

나만의 법칙으로 흘러가는 또 다른 순환의 고리였다.

‘무한의 영역.’

무한(無限)!

난 한계가 없다. 한계를 두지 않았다. 나는 단수이되 단수가 아닌 존재였으므로.

우주를 만들었다. 내 몸은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와 같았다.

나선형으로 꼬아버린 마력의 선을 따라가자 나는 어려지기도 했고, 늙어가기도 했다. 순식간에 전신에 주름이 생기더니 다시금 말끔하게 지워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몸이 줄어들어 아예 아기의 형태를 띠기도 하였다. 단순히 나선형으로 마력을 꼬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깨달음이 불현 듯 내게로 다가왔다.

심지어는 아예 데몬로드와 비슷한 형질의 신체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윽고 다시 원래의 신체로 돌아왔다. 나 자신의 고유성. 정체성을 더욱 확립시켰다. 이는 벽을 넘으면 겪는다는 ‘환골탈태’와도 분명히 달랐다.

이를 무어라 해야 할까.

‘오롯한 존재.’

경계가 깨졌다.

그리하여 정확한 한 형상만을 가지게 되었다.

오한성. 바로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하늘과 사람과 땅. 그를 일컬어 천지인(天地人)이라 한다면, 나는 그 인(人)에 대한 더욱 심도 있는 탐구를 하게 된 셈이다. 수많은 신체와 정신의 변화를 통해 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확립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육도(六道) 중 ‘인간도(人間道)’의 뼈대를 깨우쳤습니다.]

[‘오한성’칭호를 획득했습니다.]

[‘무한(無限)’에 대한 개념을 엿보았습니다.]

[‘아카식 레코드’의 1단계 정보가 해제되었습니다.]

[마력의 개조가 완료되었습니다.]

[마력이 ‘15’ 상승했습니다. 마력의 변화로 인해 세포가 활성화되어 육체관련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마력의 제한선이 해제되었습니다.]

‘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너무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휘저었다.

동시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이 내 눈에 담겼다.

그 확인을 끝으로, 정신이 조금씩 아득해져갔다.

* *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뱀과 같은 눈동자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주변은 여전히 수술실이었고, 별 다른 고통은 없었지만 정신이 깨어난 즉시 고양되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로구나. 어찌 인간이 ‘신의 의식’을 행할 수 있는 게냐?”

“신의 의식?”

“신들은 신이 되기 직전 666가지의 모습으로 변한다. 네가 변한 횟수는 네 가지에 불과했지만 분명히 그 의식과도 비슷했도다.”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우리엘 디아블로의 모습으로 나는 계속해서 바뀌었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기억이 났다.

신의 의식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겪고 깨달은 것들은 ‘신’이란 글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상반신을 일으키고 머리를 만져봤다. 분명히 밀었던 머리카락이 듬성하게 자라있었다. 피부는 더욱 매끈했고, 전신에서 활력이 넘쳤다.

“내가 기절하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너희들의 기준으로 3초 정도 되겠구나. 네가 의식을 잃은 시간 말이다.”

고작 3초밖에 안 지났다고?

나는 내가 만든 소우주(小宇宙) 속에 갇혀있었다. 끊임없이 그 길을 걷고 걸어서무한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이 3초라니.

나는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보다도 놀라운 건 내 주변을 떠다니는 작은 빛의 덩어리들이다. 내가 손을 뻗자 멀리 달아났지만 그것은 분명 ‘정령’의 형상이었다.

‘정령이······ 보인다.’

선천적인 친화력을 지녔다한들 계약 전에 정령을 볼 수는 없다. 시리아마저도 그들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나에겐 정령의 친화력이 전무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계약도 하지 않은 정령들이 보인다.

―이상한 인간이야.

―맛있는 냄새가 나.

―하지만 다가가기 무서워.

목소리도 들렸다.

불과 물의 정령들. 그들은 내 손길을 피해 달아났다. 보이긴 하되 정령과 친해진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나’를 깨달음으로 인해 인지의 영역이 넓어진 걸까?

고개를 저었다.

이는 무한의 개념을 엿보고 우주를 노니며 생겨난 현상이었다.

‘아카식 레코드.’

우주의 모든 기록을 담은 초차원 정보 집합체.

내가 아는 아카식 레코드에 대한 개념이었다.

그 1단계가 해제됐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정령들과,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듯싶었다.

나는 허공에 십자 인을 그었다.

그러자······.

[사용자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이름: 오한성

직업: 천지인(天地人)

칭호:

● 오한성(無, 순수마력 10당 모든 능력치+1)● 놀 궤멸자(5Lv, 체력+7)능력치:

힘 41(36+5) 민첩 37(32+5) 체력 43(31+12)지능 33(23+10) 마력 64(54+10)잠재력(181+42/461)스킬: 심안(9Lv), 지배자(9Lv), 전이(???), 탈혼무정검(6성), 냉혈(2Lv), 칠흑의 손길(1Lv)착용장비: 요르문간드(2Lv, 지능마력+5)

[전후비교]

힘 33 민첩 30 체력 36 지능 25 마력 44 잠재력(151+17/461)힘 41 민첩 37 체력 43 지능 33 마력 64 잠재력(181+42/461)

“······!!”

후욱! 후욱!

크게 심호흡을 했다. 확대된 동공. 거칠어진 숨소리.

일단······ 내 이름을 단 칭호가 생겼다. 이런 건 나조차도 처음 봤다. 하물며 무(無)급이라니.

탈혼무정검이 그랬다.

철저한 검술이며, 8성을 넘어서면 검에 혼(魂)을 실을 수 있게 된다. 9성에 이르면 탈각(脫却)이라 칭하며 강(强)을 다룰 수 있게 된다. 나는 과거에도 9성까지밖에 익히지 못했고, 10성은 마음의 검을, 11성은 모든 자연의 힘을, 12성에선 우주를 담고 만물과 하나 되어 입신(入神)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무(無)급이란 그런 것이다. 순수한 힘을 단련하는 기초이자 심화의 단계였다.

그런데 무급의 칭호라니. 이름이 박혀 있는 것도 처음 봤지만, 무급의 칭호가 있다는 말 자체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력은 그 존재의 격을 나타내는 척도와도 같다.’

순수한 마력만을 기준으로 삼지만 나는 벌써 54였다. 다른 능력치보다 월등히 높았다. 덕분에 모든 능력치가 5씩 올랐고, 이는 정말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한 가지 능력치를 극성으로 올리면 물론 좋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모든 능력치가 고르게 오르는 것이다. 불균형은 또 다른 불균형을 낳는 법이었으므로.

허나 모든 능력치를 올려주는 장비나 칭호는 극히 희귀했다. 데몬로드쯤은 되어야 겨우 하나씩 들고 있는 수준이었다.

무려 10Lv의 칭호가 모든 능력치 8를 올려주는데 끝났다.

‘마력의 최대치를 찍는다면.’

10이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빛을 발하는 효과였고, 극의에 다다라선 데몬로드의 것보다 더한 ‘격’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마력개조로 인해 내 마력은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할 기틀이 마련됐다.

케미가 좋았다. 찰떡궁합이란 소리는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들. 설마 나선형의 마력이 이러한 깨달음마저 줄지는 몰랐다. 하지만 마냥 우연이라 치부할 순 없었다.

내 욕망이 닿았던 것이다. 보다 완전해질 수 있는 길에.

“흐음, 탈피라. 흥미롭도다. 인간에게 이만한 흥미를 느낀 건 두 번째로군.”

“첫 번째는 누구지?”

“이카로스.”

또 이카로스의 이야기였다. 하늘에 오르려다가 지상으로 추락한 인간. 하지만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더 있는 것 같았다. 요르문간드의 목소리에선 약간의 그리움이 느껴졌다. 계약을 했기에 알 수 있었다.

요르문간드는 이름만을 말하고 고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이제 짐도 모습을 달리해야겠다. 인간의 몸으로 걸어 다니는 것도 슬슬 귀찮으니.”

동시에 그녀의 몸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옷만 남겨두곤 이내 모습을 감췄다.

이윽고 그 옷들 사이에서 은색의 뱀이 튀어나왔다.

뱀은 다리를 타고 올라가 내 어깨 위에 오르곤 동작을 멈췄다.

나는 시선을 돌려, 의사를 바라봤다.

“여기서 본 모든 걸 비밀로 해야 합니다.”

“알고, 알고 있습니다.”

그는 놀라고 있었다. 괴물을 지배했을 때는 거의 맹목적으로 변했지만, 인간은 그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말에 복종하고 강제성을 가지는 건 분명했다.

“다시 본래의 업무로 돌아가십시오. 또 찾아오죠.”

권위 있는 외과의사. 잠재력은 높지 않았지만 산정된 가치는 높았다. 이로써 단순한 능력치나 잠재력만이 가치의 산정대상이 아니라는 게 증명됐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병원을 나섰다.

볼 일은 끝났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 건 의외였지만 이제 외견만 가지고 ‘아저씨’ 소리를 듣지는 않을 터였다. 피부에선 광이 나는 듯했으니.

‘바로 출발해야겠군.’

나찰산으로 통하는 문이 대전에 있었다.

* * * * *

학교나 집에 관한 자잘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즉시 짐을 싸서 대전으로 향했다.

버려진 폐가. 주변엔 산이 즐비한 그곳의 지하에 나찰산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헥헥헥!

도착하자, 놀 워리어 17마리가 나를 반겼다.

예전의 귀여운 모습은 아니고 늑대를 연상시키는 외견을 가지게 됐지만 애교는 여전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잘 먹고 돌아다닌 것 같군.’

어두운 밤, 인적이 없는 곳으로 이동하며 먼저 도착해있도록 미리 명령을 해뒀다.한 마리도 빠짐없이 모인 걸 보니 퍽 반가웠다.

나는 녀석들의 머리를 하나씩 쓸어주며 고개를 돌렸다.

지이이이이.

작은 소음과 함께 파란색 문이 열려있었다.

파란색. 이종족이 사는 장소. 정작 과거에도 나는 나찰산에서 죽어가는 노인을 한명 본 게 전부지만, 그는 인간이 아닌, 인간과 닮은 또 다른 종족이었을 것이다.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너머에 이타콰가 있었다.

백룡. 지혜와 현안의 어머니, 발푸르기스의 자식 중 하나.

‘녀석이 나를 받아들일까?’

혼을 구분하여 상대를 알아본다지만 모를 일이었다.

사물을 제대로 구분하기에 녀석은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데몬로드의 외견에 적응할 경우도 문제일 수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나찰산으로 보낸 것이고.

나는 긴장한 채 천천히 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나찰산 중턱(2~???Lv)’으로 입장합니다.]

[최초 발견자입니다. 2,000pt를 획득합니다.]

내 전신이 문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 09. 나찰산(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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