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이타콰(2)
혼의 연결이 완성된 순간 둘은 나를 부모로 인식했다. 이그닐과 이타콰의 눈은 유독 맑았고 마치 나의 깊숙한 곳을 꿰뚫어보는 것만 같았다. 나름 많은 용을 보아왔지만 이토록 현묘한 느낌을 주는 건 이 둘이 처음이었다.
이그닐과 이타콰는 처음 세상에 나왔음에도 감정을 알고 있었다.
행복. 즐거움이 전해졌다.
아니······ 나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는 게 아니다.
‘내가 감정을 느끼듯, 이 둘도 내 감정을 느낀다.’
나의 감정으로 말미암아 학습하고 있었다. 태어난 지 이제 고작 수분밖에 지나지 않은 용들은 나를 마주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적용시켜 벌써 실전에 들어간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신중해야 했다.
이 둘의 성장에 있어서 그만큼 내가 가지는 감정이나 배경 따위가 중요하다는 뜻이었으니까.
한 번 감정을 지워보았다.
부동의 자세로 일관하자 곧이어 반응이 생겼다.
끼이?
끼룩?
무던히 목을 핥던 이그닐과 이타콰가 잠시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요동치던 감정의 물결이 한순간 잦아들자 당황하고 있는 듯했다.
이번엔 화를 내보았다.
분노의 감정. 내가 알던 자들이 하나, 둘 죽어가던 그 장면들을 떠올렸다.
무력하기만 했던 나날들. 힘이 있음에도 지킬 수 없었던 친우와 수많은 인연들.
끼이! 끼이이!
꾸우우.
그러자 반응이 갈렸다. 이그닐은 날개를 끝까지 펼쳐서 주변을 경계했다.
반대로 이타콰는 내 목을 천천히 핥으며 얼굴을 비볐다.
왜 일까. 같은 감정을 전달 받았음에도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쌍둥이지만 부화하는 과정은 달랐지.’
이그닐은 모든 마력을 흡수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고 내 분노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해냈다.
반대로 이타콰는 살아남기 위해 발악했다. 스스로 진화하며 필요 없는 걸 과감히 버리고 신체능력을 극대화시켰다.
때문인지, 나의 분노 깊숙한 곳에 잠들어있던 ‘연민과 슬픔’에 더욱 집중하는 것 같았다.
누가 더 낫고 그르다는 게 아니다.
둘 다 맞았다.
내 감정을 둘 다 제대로 표현한 셈이다.
헥헥!
끼이······.
하지만 둘은 금세 지쳐했다. 나는 곧 내 실수를 깨달았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이었다는 걸 깜빡했군.’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종의 규격자체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이 모든 걸 해낼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다시 행복의 감정을 되새겼다. 이 둘을 얻음으로서 생긴 무한한 가능성. 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 나아갈 원동력이 생겼다. 내가 알던 자들은 죽지 않을 것이며, 모든 것을 위해 헌신했던 자들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힘이 없음에 좌절할 상황자체를 만들지 않겠다. 힘이 있음에도 그저 지켜보기만 하진 않을 것이었다.
이그닐과 이타콰는 내 다짐의 시작과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라이라는 여전히 놀라는 중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카르페디엠의 암흑룡 따윈 이그닐과 이타콰의 상대가 아니다.”
“하, 하지만, 분명히 진행자는······.”
“죽을 거라고 했었지. 마력흡수를 못 한다고.”
“맞습니다. 그런데 로드께선 알의 특이성에 대해 알고 계셨군요.”
“내가 ‘꿰뚫어보는 자’임을 잊은 것이냐? 그들이 아무리 발악하며 알아보려 해도 내가 한 번 훑어보는 것보다 못하다.”
라이라는 내 능력을 알고 있었다. 지배자의 권능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을 터였다. 슬라임을 진화시키고 쉐도우 카임을 만든 걸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게 라이라였으므로.
그녀는 눈치가 없는 게 아니었다.
단지, 내가 말하기 전에는 굳이 입에 담지 않을 뿐이었다.
그녀의 모든 중요순위에 최우선적으로 우리엘 디아블로가 있기 때문이다.
라이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본격적으로 능력을 사용하실 생각······ 이신가요?”
“무언가가 두렵다는 눈빛이구나.”
“아닙니다. 단지, 로드께선 항상 자신의 능력을 모두 보이는 것을 경계하고 계셨습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 역시 극도로 자제하셨지요. 그저······ 걱정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우리엘 디아블로는 태생이 서자였다. 능력을 보이면 태양왕에게 죽을 운명이었고, 태양왕의 울타리를 벗어난 뒤에도 자신의 능력이 알려지면 이용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숨겼다. 그 숨기는 게 버릇이라도 된 모양이다.
데몬로드가 된 뒤에도 마냥 숨기기만 한 걸 보면.
아마도, 태양왕이라는 그림자가 계속해서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으리라.
‘답답한 놈.’
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능력을 썩히는 건 죄다.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놈과는 반대로 미친 듯이 사용하며 최대한의 이득을 볼 것이었다.
“걱정마라.”
“죄송합니다. 로드시여.”
라이라가 고개를 숙여보였다. 자신이 해야 할 걱정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다.
이해가 되긴 했다.
라이라 디아블로. 그녀의 행동거지는 모든 게 우리엘 디아블로에게 맞춰져 있었던 탓이다.
나는 다시 이그닐과 이타콰를 바라봤다.
졸린 지 놈들은 하품을 내뱉으며 어깨 위에 턱을 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덩달아 나까지 졸려졌다. 이 역시 대단한 일이었다. 막 전이를 할 때를 제외하면 데몬로드의 신체가 무거워짐을 느낀 적이 없었건만.
“이 둘에게 먹일 먹이를 준비해둬라. 일어나기 무섭게 먹어댈 것이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더 할 말이 있나?”
라이라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후 가슴에 손을 양손을 얹고는,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한 번 안아 봐도······ 될까요?”
용에 대한 선망은 경매장에서부터 알아봤지만,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갈구하는 모습을 보니 천지개벽이 일어난 듯 엄청난 괴리감이 생겼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그닐과 이타콰의 몸통을 잡아 그대로 라이라에게 넘겼다.
끼이이!
꾸루룩!
라이라에게 안긴 즉시 둘은 발버둥을 쳤다.
나와 떨어지기 싫다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지만.
“후후후.”
어느 때보다 해맑은 라이라 디아블로의 웃음을 보며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 전율과 학살의 여왕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못 본 걸로 하자고.
* * * * *
이그닐과 이타콰는 식성이 좋았다.
자기 몸집 이상의 음식을 먹어댔다.
육식이었고, 막 잡은 소 한 마리를 뼈에 붙은 살까지 쪽쪽대며 핥아 먹었다.
심연에 있는 소는 생김새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하여튼 둘이서 한 끼로 한 마리를 먹었으니, 성장하면 얼마나 먹어댈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지구에서가 문제군.’
심지어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빨랐다.
어째 콩나물보다 빠른 거 같았다. 하루가 지나자 10cm가량이 커져 있었다.
용의 성장에 대하여 라이라에게 묻자, 그녀가 답했다.
“개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1m 크기까지 통상적으로 한 달 이내에 자란다고 합니다. 그래도 하루 만에 이 정도 성장은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요.”
용은 최대 20m 크기까지 자란다. 그보다 큰 용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라이라는 소 한 마리가 사라진 걸 보곤 즉시 성을 나가 사냥을 해왔다. 처음에는 이그닐과 이타콰도 경계했지만 몇 차례 먹이를 가져다주자 라이라에 대한 경계를 해제했다.
나는 동시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고 있었다.
전이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이다.
‘이그닐, 이타콰 모두 공간의 보석에 들어간다.’
생각한 대로였다.
Lv5이하. 그러니까 능력치총합 250까지는 공간의 보석에 담을 수 있었다.
‘이타콰를 보내자.’
이타콰는 활동적이었다.
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벌써 슬라임과 전투를 벌일 정도로.
반면에 이그닐은 얌전했다.
내 주변에 있으며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는 때가 많았는데, 별 다른 감정이 전해지지 않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 지까진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해바라기 같았다. 내가 움직이는 대로 이그닐의 목도 같이 움직였다.
활동적이고 신체능력이 뛰어난 이타콰라면 많은 변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타콰를 보내기로 확정을 지은 뒤에는 함께 보낼 것들을 구상했다.
‘쉐도우 카임과 물약 몇 가지.’
딱히 없었다. 쉐도우 카임은 이타콰와 잘 어울렸다. 지금도 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쉐도우 카임과 술래잡기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그럼······.’
대략적인 정리를 끝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데몬로드의 방의 끝에 있는 ‘성좌’로 다가가 앉았다.
‘이제야 마음 편히 관조해볼 수 있겠군.’
눈을 감고, 신체로 마력을 순환시켰다.
내부를 관조했다.
나는 알고 싶었다.
인간과 데몬로드.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만 있다면 더욱 큰 가능성을 얻거나, 혹은 데몬로드의 약점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동안 틈틈이 해봤지만 이제야 제대로 할 시간이 생겼다.
‘데몬로드의 마력은 심장과 뇌에 유기적으로 모여 있다.’
마력이 순환하는 통로는 매우 작고 복잡했다.
인간과는 달랐다.
인간은 마력을 주로 아랫배에 모았다. 흔히들 ‘단전’이라 부르는 그곳.
반면에 데몬로드의 마력은 심장과 뇌를 오가며 끈적끈적하게 순환하고 있었다. 이러한 마력의 흐름은 내게도 생소하고 신기한 것이었다.
왜냐면······.
‘중단전과 상단전이 열려있단 말이지.’
심장은 중단전(中丹田)이고, 머리는 상단전(上丹田)이라 칭한다. 그러나 인간이 쓸 수 있는 건 배꼽 아래, 하단전(下丹田)뿐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이 통로를 뚫으려고 노력하다가 마력이 꼬여서 죽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죽은 뒤로는 그러한 방법들이 ‘금기시’되고 있었다.
‘마력수치가 가장 올리기 어렵다. 그 이유는 인간이 하단전밖에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가설이긴 하지만 신빙성은 높았다.
그래서 순수능력치로 마력 100을 채운 사람이 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0에 수렴했다.
수많은 방법이 연구되고 실행됐지만 모두 실패했다.
왜냐하면, 몰라서다.
환경이 뒤바뀌고 고작 수십 년.
무언가를 고도로 발전시키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인간의 신체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이뤄졌고 기(氣)의 존재도 유추하고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것을 이용하여 마법을 구사하고 하늘을 날아다니진 못했다.
각성한 뒤에야 사람들은 그러한 기운을 겨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단전이라는 표현도 애매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배꼽 아래에 마력이 모여 있으니 하단전일 것이다, 라고 추측만 할 따름.
하지만 데몬로드의 신체는 하단전을 쓰지 않았다.
심장과 뇌. 중단전과 상단전만을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마력의 순환이 엄청나게 빠르고 즉각적이었다.
느낌이 전혀 달랐다.
마치 거북이에서 독수리가 된 기분이었다. 마력을 사용함에 있어서 막힘이 없으니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알고 싶다.
그 차이점을.
그저 태생적인 차이라면 너무 억울하다.
그러니까······ 밝혀낼 것이다.
밝혀낼 수만 있다면, 그것을 적용시킬 수만 있다면, 인류의 성장이 몇 배는 더 빨라질지 모른다.
나의 성장 역시도.
나는 눈을 감았다.
끼이이!
시이익!
그러자 내 옆으로 이그닐과 이타콰가 모여들었다.
둘은 나와 비슷한, 하지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 어깨 양옆에 앉았다.
동시에 둘의 신체가 황금색과 백색으로 빛났다.
그 빛들은 내 몸속으로 흡수되어, 길을 인도하듯 내가 관조하는 어두운 세계를 밝혀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