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30화 (31/251)

07. 너로 정했다(完)

겉보기엔 형편없었다. 다른 알들처럼 알록달록하지도 않았다. 색이 옅다는 것 자체가 마력이 형편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마력이란 그 존재의 격을 나타내는 척도. 그렇기에 대부분의 용들은 다른 생명체와 비교도 안 되는 마력수치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색깔이 짙을수록 상급(上級)의 취급을 받아 강력한 장비로 발돋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상식이었고, 나 역시도 능력이 없었다면 다소 실망했을 것이다.

“화룡의 알이 64,000포인트에 ‘쇼텔 아르크라사’님께 낙점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쇼텔 아르크라사. 그는 거북이처럼 두꺼운 외장갑을 가진 마족이었다.

초록색의 피부였고, 얼굴은 용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용이라기보단 사방신 중 하나인 현무를 떠올리게 만드는 외견이었지만, 그의 수행원 전부가 용족이거나 용족과 관련 된 생물인 것은 보면 대략적인 취향을 알 수 있었다.

“쇼텔 아르크라사는 괴벽을 지닌 데몬로드입니다. 모든 용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더군요. 그의 성에는 20체의 용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라이라가 한 마디 더 보탰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내가 알아야할 자들, 혹은 알아둬서 나쁘지 않은 자들에 대한 브리핑을 해줬다.

라이라는 그 나름대로의 기준을 두고 있었다. 다른 데몬로드를 ‘가짜 왕’이라며 서슴없이 비하하지만, 나의 승리를 위해선 객관적인 눈으로도 사물을 판별할 수 있는 듯싶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역시나 괴리감이 있다.

전율과 학살의 여왕이라 불리며 세간을 공포에 떨게 했던 존재.

지금에야 밝히는 심정이지만, 데몬로드보다 그녀를 처치하는 게 더 어려웠다.

오로지 승리를 위해, 자신의 사지쯤은 가볍게 버려가며 전쟁에 이바지했다. 지금 생각하면 지독한 헌신(獻身)이었다. 우리엘 디아블로에게만 보이는 그 모습은 전장에 들어가선 180도 뒤바뀐다.

오죽하면 그 아름다움과 용맹함에 반해, 알레테이아와 몇몇 이상자들이 열렬한 구원을 보낼 정도였으니.

“······ 다음은 모두가 눈치 채셨을, 최고의 기대가 담긴 물건입니다. 암흑룡의 알! 지저에서 군림하던 ‘검은 눈동자 그라디아’의 자식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라디아!”

“눈을 마주치고 살아남은 자가 없다던 에이션트 웜 아닌가?”

용종 중에서도 가장 오래 살아남아 지혜와 힘을 얻은 존재들을 일컬어 ‘에이션트 웜’이라고 부른다. 그라디아, 나 역시도 들어봤다.

‘등장하자마자 순식간에 중국의 성 두 개가 증발했다지.’

직접 보진 못했다. 통계적으로 1억 명을 학살한 그라디아가 다시 보라색의 ‘문’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는 거의 발견된 사례가 없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생존자에 의하면 그만한 ‘분노’는 처음 접해봤단다. 세상을 떨게 만들 수준의 분노가 주변 모든 것을 어둠으로 되돌렸다.

그런데 암흑룡의 알이 놈의 자식이라고?

저 알을 어떻게 구한 것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라이라. 상인들은 저만한 물건을 어디서, 어떻게 구하는 거지?”

“그들 말에 따르면 정당하게 ‘거래’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 이상은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거래라.

하지만 나는 알 아락사르가 ‘보라색 문’으로 끌려들어가는 장면을 봤다.

알 아락사르는 당시 ‘위대한 별의 의지에 따라 이성을 잃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라색 문 안의 괴수들이 그런 절차를 밟는다면, 그라디아도 그 의지라는 것에 따라 단순히 이성을 잃고 폭주한 걸까?

암흑상인들이 말한 거래라는 게 설마 강탈은 아니었을지. 왜냐하면 암흑상인들은 위대한 별의 비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턱을 쓸며 고민해봤지만 의심만 점점 커질 따름이었다.

“시작가는 5만으로 정하겠습니다. 그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 카르페디엠이 입을 열었다.

“7만.”

“멸제의 카르페디엠님!”

“9만.”

“오호호, 쇼텔 아르크라사님!”

단위가 2만씩 올라갔다.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자 경매에 참여하는 건 둘뿐이었다.

카르페디엠, 그리고 아르크라사.

내가 본 암흑룡의 알이 가진 정당한 가치는 ‘11만’이었다. 하지만 그 수치도 순식간에 넘어섰다.

“20만.”

쐐기를 박듯 멸제의 카르페디엠이 웃음을 지었다.

쇼텔 아르크라사는 이미 화룡과 뇌룡을 산 직후인지라 더는 따라갈 여유가 없어보였다. 입술을 질끈 깨문 아르크라사를 바라보며 카르페디엠이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그리곤 나를 한 차례 바라보더니, 대놓고 말했다.

“기대되는군. 그라디아의 자식이라면 감히 최강의 용종이라 부를 수 있을 테니. 놈이 날뛰는 날이 손꼽아 기다려지는구나.”

명백한 도발이다.

나는 이만한 용조차도 쉽게 다룰 수 있노라고.

으스대며 겁을 주는 것이다. 여태껏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나를 비웃는 행동이기도 했다.

‘같잖군.’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승리다. 실속이다.

그 따위 명예, 자존심이 아니라.

어차피 용이 부화하고 자라는데 걸리는 시간은 만만치 않다.

마력주입으로 말미암아 그 시간이 단축됐대도 족히 수년은 걸릴 터. 그것도 온전하게 모든 역량을 용의 성장에 동원했을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본 카르페디엠은 참을성이 없다. 저 용이 완전하게 성장하여 내 영지를 쳐들어올 일은 어지간하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20만 포인트라는 거금을 사용했으니······.

도리어 나에겐 잘 된 일이었다.

덕분에 손 안대고 코 풀었다. 다른 데몬로드들의 반응을 보면, 20만 포인트는 충분히 그들의 입장에서도 ‘거금’ 축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20만 포인트에 암흑룡의 알이 카르페디엠 님께 낙찰되었습니다!”

과장되게 손뼉을 쳤다. 착용한 은빛의 투구가 덜컹대며 시끄러웠다.

이로써 9개의 알이 모두 팔렸다. 두 개를 제외한 모든 알들이 데몬로드에게 낙찰됐다. 그 두 개를 가져간 자들은 진혈의 뱀파이어와 서큐버스 퀸이었는데, 라이라에게 들어보니 각각의 도시를 지배하는 패자(?者)라고 한다.

나는 그들을 눈여겨보면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으로······ 황룡의 알입니다. 이걸 내놔야하는지 지금도 고민이 되는군요.”

진행자조차 그다지 기대감이 없었다. 판매하는 입장이지만, 하자있는 물건이라고 여기는 탓이다.

“시작가는 1만 포인트로 하겠습니다.”

“폐 처리 될 건데 너무 비싸지 않나?”

“저희 상회의 원칙은 손님이 원하는 모든 것을 판다는 것입니다만······ 괜히 팔았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물건 또한 정식적으로는 팔지 않고 있습니다. 1만 포인트는 ‘책임비용’이라고 생각해주시길.”

책임을 지고 가져갈 수 있는 자만 가져가라.

그러다 보니 섣불리 손을 드는 자는 없었다.

20만이 거금이라면, 1만 또한 막 지를 수 있는 금액은 아니다.

물론 알 속에 숨겨진 ‘진실’을 볼 수 있는 자가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심안.’

내가 본 게 확실한 것인지 확인을 위해 다시 살폈다.

그러자 다시금 믿기지 않는 정보들이 떠올랐다.

이름: 없음(value-210,000)

종족: 황룡(黃龍)

능력치:

힘 1a 민첩 1a 체력 1b

지능 1s 마력 1ss

잠재력(5/485)

특이사항: 두 개의 핵이 존재합니다. 서로 ‘공명’하고 있으나 ‘마력흡수’체질 때문에 주변의 모든 마력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 마력흡수: 마력을 한없이 빨아들이는 체질. 모든 용은 어느 정도의 마력흡수 체질을 타고나지만 그 경향이 족히 수백 배에 달한다.

이름: 없음(value-230,000)

종족: 백룡(白龍)

능력치:

힘 1ss 민첩 1s 체력 1s

지능 1a 마력 1c

잠재력(5/485)

특이사항: 마력의 흡수현상에서 살아남고자 스스로 ‘변이’한 결과 마력대신 신체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쪽으로 진화했습니다.

한 개의 알에 두 개의 핵.

쌍둥이였다.

하지만 하나는 황룡이며, 하나는 백룡이다.

용족은 그 색깔에 따라 마력의 종류가 다른데, 황룡 역시 찬란한 황금색의 마력이 넘쳐나서 그처럼 보이는 것이다.

마력을 대부분 흡수당했으니 색깔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백룡인가.’

백룡이라니. 그런 용이 있는 줄은 나도 처음 알았다.

극적으로 진화를 도모한 영향인지 신체능력 세 개의 성장가능성이 ‘s’에 달했다.

아니, 심지어 ‘힘’은 ss였다. 이는 순수한 능력치로 100을 넘어서는 ‘마의 벽’을 넘길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반대로 황룡은 마력흡수 체질 때문인지 마력수치에 ss표시가 붙어있었다.

감히 격이 다르다는 말을 이때 써야 할 것이다.

‘이런 일도 있군.’

확률의 기적이었다.

용에게도 쌍둥이가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지만, 그 둘 다 특이체질이라니 말이다.

들려오는 심장소리도 하나였다.

아니······ 하나처럼 들렸다.

‘공명.’

둘은 공명하고 있었다. 쌍둥이가 가졌다는 텔레파시와 비슷한 거였다. 심장소리나 기척마저 일치할 줄은 몰랐지만, 하여튼 둘은 같으면서도 달랐다.

그 때문일까?

암흑상인들도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어쩌면 눈치를 못 챈 척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팔지 않기 위해 일부러 연기를 한다?’

순간 표정을 굳혔다.

갑자기 떠오른 발상이지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팔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으니.

저 둘에 비하면 암흑룡도 한 수 접어야하기 때문이다.

긴급경매에 나오기엔 아깝다. 더 큰 무대에서 등장할 법한 레벨이었다.

카르페디엠이 언급하지 않았다면 아예 나오지도 않았을 알.

폐 처리가 된다고 했었는데 의문을 제기한 순간 바로 운반해서 옮겨 놨다. 경매창고와 같은 곳에 그대로 있었다는 말이다.

보통 처리될 물건은 따로 분리를 시켜놔야 정상이었다. 아니면 암흑상인들의 태도로 보아 하자가 있는 물건은 바로 처분해야 했다.

나는 후자의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실었다.

어쩌면 암흑상인들은, 저 알을 더 큰 무대에 내놓을 생각이 아니었을까.

‘긴급’이라 이름 붙을 정도로 갑자기 이뤄진 경매이니, 극히 최근에야 겨우 저 알의 가치를 깨달았을 수도 있겠다.

‘오로지 데몬로드들만이 참여 가능한 경매장소가 있다고 했지.’

라이라의 말을 떠올렸다.

일반적인 용의 알이 여기서 버젓이 판매될 정도면, 그곳에서 경매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저 알은 분명히 다른 알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 ‘책임비용’ 따위를 운운하며 ‘혹시’하는 생각에 사려는 자들의 마음을 접게 만든 건 아닐까?

“입찰하실 분이 안 계시다면 이대로 마감하겠습니다.”

다른 때보다 유독 빠른 정리다.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3, 2······.”

“1만.”

“······ 우리엘 디아블로님.”

대답이 석연치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느 때보다 냉철하고 신중했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진짜로 동질감이라도 느낀 모양이군! 크하하!”

그것을 본 카르페디엠이 박장대소했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진짜 ‘실리’를 챙기게 됐다는 걸.

그의 온갖 비하와 멸시 덕분에, 이 경매에 참여하려는 자도 아예 없었다.

군중심리가 저 알을 사면 무조건 ‘손해’인 것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보는 힘이 없었다면 저 대열에 합류했을지 모른다.

그때, 진행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엘 디아블로님. 진심으로 이 알을 구매할 생각이십니까?”

“문제가 되나?”

“문제가 될 경우가 문제지요. 저희는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습니다만.”

“그럼 문제없겠군.”

진행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속에 숨겨진 저의를 읽으려고 애썼다.

“잠시 용을 키우는 맛 정도는 느낄 수 있겠죠. 용의 알을 음미하려는 미식가일 수도 있겠고요. 솔직히 누군가가 입찰을 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만······ 라이라 디아블로, 로드께서 그런 취미가 있으셨습니까?”

“로드의 결정이시다.”

라이라는 완고했다.

적어도 나의 선택을 그녀는 존중해줬다.

게다가······ 진행자의 말이 많아졌다. 모르고 보았다면 정말로 ‘하자’가 있어서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걸로 보인다.

실제로 암흑상회의 신뢰도는 매우 높았다. 그러나 그것이 ‘청렴’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들의 모든 걸 의심하고 있었다.

바람잡이를 세우거나 다른 이를 투입해서 경매에 참여하는 짓까진 안하는 듯싶었지만, 계속해서 경계하며 냉철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 알겠습니다. 더 입찰할 분이 안 계시다면 우리엘 디아블로님께 알을 낙찰하겠습니다.”

멸제의 카르페디엠. 그가 없었다면 한, 두 명쯤 경쟁자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에 용의 알을 미식해보려는 미식가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하지만 그가 분위기를 선도하고 조종함으로 인해서 나는 도리어 자유를 얻었다.

더불어······ 데몬로드라도 조심하면 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저들은 결코 인간의 ‘상위’ 존재가 아니다. 그저 힘이 셀뿐이었다.

3, 2, 1. 숫자를 세던 진행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낙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우리엘 디아블로님.”

경매가 끝나고, 내 마음은 더없이 홀가분해졌다.

돌아가는 길.

균열이 간 용의 알을 받았다.

그리고 알에 숨겨져 있던 메모지도 한 장 발견하게 되었다.

작은 종이 위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알이 부화하기 전이라면 환불해드리겠습니다.」

구겨서, 버렸다.

동시에 확신이 생겼다.

‘완벽한 존재는 없다.’

위대한 별의 하수인들조차도 말이다.

아니면······ 내가 깨어나기 무섭게 10개의 알이 팔리는 긴급경매가 열리고, 그중 하나를 교묘하게 숨겨놓은 건, 혹시 나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을까?

물론 내가 ‘꿰뚫어보는 자’임을 아는 존재는 거의 없었다.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경계했다.

나 역시 완벽하지 않기에.

내가 싸울 적들은 많고 강했다.

그러니 상회를 열고, 용의 알을 얻은 건 시작에 불과했다.

시작. 위대한 첫걸음. 이제 겨우 그 발을 뗀 셈이다.

“우리엘 디아블로! 다음에 볼 땐 전장이겠구나. 크흐흐!”

······ 저놈만 아니었다면 참 무드 있는 마무리였을 텐데.

슬쩍 고개를 돌리자 그의 하수인들이 암흑룡의 알을 과시하듯 번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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