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너로 정했다(3)
13개의 완판결과 10,400pt를 얻었다. 이중 암흑상점을 이용하며 생긴 이율 10%를 제하고 구르망디에게 건넬 30%를 떼면 내 수중에 들어온 포인트는 6,552. 대략 63%정도가 나에게 주어지는 몫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슬라임을 지배한 후 한차례 진화시켜서 공간의 보석 안에 넣어놓는 것밖엔 없었다.
하루에 대략 30마리까지 가능했고, 지난 며칠간 노력한 결과 남은 슬라임은 250개체 정도 되었다.
250개체를 전부 팔면 12.5만 포인트 가량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16만의 빚도 순식간에 청산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항상 심연에 있을 순 없었다. 전이가 끝나면 다시 돌아오는데 또 시간이 걸린다.
하여, 나는 나머지 일을 라이라에게 맡기고자 하였다. 어쨌든 내 ‘지배자’의 권능으로 지배된 슬라임이면 성장한계치에 도달했을 때 진화가 가능했다.
성장을 시키는 일을 굳이 내가할 필요는 없었으니.
“이 속도면 빚을 청산하고 전쟁자금도 마련할 수 있을 거예요!”
라이라는 흥분하고 있었다.
단기적으로 보면 라이라의 말이 맞다.
하지만 한꺼번에 많이 풀면 ‘희소성’을 잃는다.
떡밥을 뿌렸으니 우리는 물고기가 안달 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궤도에 오를 때까지 하루에 10개씩만 풀어라.”
“로드시여. 암흑상인들에게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백 개, 이백 개쯤은 순식간에 팔릴 텐데요.”
“길게 봐야한다. 또한 너무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풀면 당장은 좋을지 모르겠으나 우리를 적대하는 자가 눈치를 채게 될 것이다.”
“아······.”
라이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멸제의 카르페디엠.
놈에 대해서도 요 며칠간 조사해보았다.
데몬로드 중 하나이며, 사대왕 중 하나인 사자왕의 아래에서 작은 비호를 받는 자.
‘데몬로드의 세력구도도 대충 이해를 했다.’
사대왕은 전쟁 중이었다.
자신이 비호하는 데몬로드를 최후의 하나로 만들고자.
그리하여 위대한 별, ‘거신의 혼’을 취한 데몬로드를 휘하에 두어 진정한 신이 되려고 말이다.
아마도······ 우리엘 디아블로는 그 전쟁 속에 휘말렸다가 패배하고, 마지막 방편으로 지구로 발을 들이게 된 게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녀석 하나를 죽이고자 수백만의 인류가 몰살당했으며 499명의 영웅이 죽었다.
다시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민식이가 영웅이 되려고 발악해도, 나는 확신했다.
‘데몬로드 모두를 상대할 순 없어.’
알면 알수록 심연은 끔찍한 곳이었다. 지구는 그야말로 발판에 불과했다.
씨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그러니 내가 해야 한다. 우리엘 디아블로의 몸으로 다른 데몬로드를 견제하거나 죽이며 세력의 태풍 속에 직접 들어가야 했다.
절대지배상회는 그 시작이었다.
우선······ 포인트를 벌어서 밑바탕을 마련하고 멸제의 카르페디엠을 죽여 이름값을 드높이자는 계획까진 세웠다.
동시에 지구의 ‘나’를 강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 나는 심연에서도, 지구에서도 쉬어선 안 된다.
그리고 그 방법 역시 구상한 게 있었다.
‘암흑문을 통해 5Lv 이하의 장비나 지배한 마수를 보낼 수 있지.’
과연 우리엘 디아블로의 몸으로 ‘지배’를 행한 게 진짜 ‘나’에게도 적용이 될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천지인’의 권능이 작동을 하는 걸 보면 아주 높은 확률로 나는 지배한 대상마저 공유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암흑문을 이용해, 나를 돕고 내 성장을 빠르게 해줄, 혹은 그 외에 필요한 것들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레벨 5의 기준도 모호하다.’
나는 내 머리 위를 쫑쫑대며 날아다니는 쉐도우 카임을 바라봤다.
현재 쉐도우 카임의 능력치는 5Lv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잠재력은 최대 6Lv까지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당장 보이는 능력치로 레벨을 정하는 게 맞다.
하여,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하지만 당장은 약한 마수를 암흑문을 통해 보내는 게 가능하다면?
그에 대해서도 이미 나는 실험에 옮기는 중이었다.
‘······ 용족의 알.’
아예 알의 상태에서 보내는 것이다.
모든 용은 강력하다. 이는 불변의 진리였다.
내가 기억하기로 용은 대부분 ‘보라색문’에서 나타났다. 한 마리가 나타나면 국가 하나가 무너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강력하기 짝이 없는 괴물이었다.
리치의 경우엔 초반에 제압하면 되는데, 용은 답이 없다. 특히 성체, 그것도 나이를 많이 먹은 용은 지혜롭기까지 해서 스스로 지칠 때까지 도시가 파괴되는 걸 넋 놓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제, 용의 알 10여개가 암흑상회에 들어왔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암흑상점의 가장 윗부분에 글자로 적혀있었다.
그것 중 하나를 보낼 수만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와이번 라이더 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는다.
드래곤 라이더. 용을 다루는 기사는 상상 속에서만 전해지던 이야기다.
그 상상을 현실화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알의 판매는 오늘부터 시작이었다.
‘문제는 가격인데.’
용만큼은 아니지만, 용의 알 역시도 매우 비쌀 터였다.
하지만 당장 내 수중에 있는 건 2만 포인트가 살짝 안 됐다.
다마고치의 수량을 풀어도 파는데 시간이 걸린다.
허나 용의 알은 언제 팔려나갈지 알 수 없다.
용은 가장 강력한 괴수 중 하나다. 영지의, 데몬로드의 영향력을 키우는데 용만한 괴수는 또 없을 것이므로!
데몬로드 중에서도 탐을 내는 이가 있을 것이지만, 운이 좋으면 그중 하나쯤은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만 건져도 대성공이다. 못해도 본전이었다.
“암흑상회로 가겠다. 준비를 하도록.”
“알겠습니다, 로드시여.”
나는 즉시 발을 움직였다.
* * * * *
암흑상회의 중심가는 꽤 시끌벅적했다.
여전히 하늘까지 맞닿은 건물들이 즐비했지만, 용의 알을 구하고자, 혹은 구경이라도 하고자 모여든 인파가 상당했던 것이다.
족히 천은 모인 것 같았다.
뱀파이어, 데스 나이트, 나가 퀸, 심지어 타이탄까지 보였다. 등장만 해도 주변 전역을 공포로 물들일 괴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몇몇 데몬로드도 보였다.
그리고 데몬로드의 곁으로는 그들의 충성스러운 부하들 외엔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우리엘 디아블로? 우리엘 디아블로 아니야?”
“가시의 여왕이 수행하는 존재라면 그가 맞겠군.”
“소문은 들었지만 정말 깨어났던 건가!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여길 온 거지?”
“멸제의 카르페디엠이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겠지.”
“가지. 괜히 있다가 휘말리면 우리만 손해다.”
나를 본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웅성거렸다.
놈들에게도 꽤 높은 지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침략을 행할 땐 미처 못 본 모습들에 신선함마저 느꼈지만, 나는 눈앞에 다가온 자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거대한 풍채. 고도비만이 의심될 정도로 풍성한 주제에 꽉 끼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 극도의 어색함에 난센스 문제를 접했을 때의 그런 기분도 들었으나, 이자가 바로 ‘멸제의 카르페디엠’이었다.
‘심안.’
[상대방이 ‘심안(9Lv)’의 레벨보다 높은 ‘격’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제한적인 정보만 출력됩니다.]
이름: 카르페디엠
직업: 데몬로드
칭호:
● 멸제(10Lv, ???)
● 욕망의 화신(9Lv, ???)
능력치: ???
잠재력(500+60/500)
특이사항: 없음
스킬: 말살의 포효, 욕망분출, 침몰하는 동굴, 박쥐 떼.
제한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능력치의 총합자체는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스킬도 뭐가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 주변으로 7명의 수행원이 함께하고 있었다. 듀라한, 용아병 따위로 구성된 강력한 괴물들이었다.
카르페디엠은 내게 다가와 크게 웃었다.
“우리엘 디아블로! 역시나 깨어났구나. 흐흐흐!”
“친한 사이도 아니니 꺼져줬으면 좋겠군.”
문전박대가 따로 없었다.
카르페디엠이 살짝 인상을 굳혔다.
“고개를 조아려 자비를 구한다면 그 자비라는 걸 베풀어줄 의양도 있었다만······ 쯧쯧, 아니면 깨어난 지 얼마 안 돼 현실을 깨닫지 못한 건가? 안 그러냐, 라이라?”
“그 역겨운 입으로 내 이름을 담지 마라. 내 이름을 온전히 입에 담아도 되는 분은 오직 한분 뿐이시니.”
카르페디엠이 슬쩍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선 라이라를 바라봤다.
라이라는 벌레를 바라보듯 경멸 가득한 눈초리를 짓고는 내 옆에 더욱 바짝 붙어섰다.
“까칠한 모습도 아름답구나. 하지만 나는 관대하다. 내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의 반쪽이 된다면 그 작은 영지와 내 눈앞의 현실을 깨닫지 못한 멍청이 정도는 구해줄 수 있노라.”
라이라는 이를 갈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여태껏 영지가 지켜진 건 라이라가 전쟁을 잘 해서이기도 했지만, 바로 저 카르페디엠의 노림수 때문이었다.
영지보다 라이라 디아블로를 자신의 반려로 맞이하려고 일부러 혹독하게 밀어붙이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사한 결과는 그랬다.
하지만 영지상태는 한계였고, 조금만 늦게 깨어났어도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라이라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그리곤 카르페디엠을 노려봤다.
“꺼지라는 소리를 못 들었나보군.”
“혹, 안달톤 브뤼시엘의 위광을 믿는 거냐?”
역시 소문이 제대로 퍼진 모양이었다.
나는 카르페디엠을 무시하며 중심으로 걸어 나갔다.
우리는 어차피 적이다. 놈을 앞에서 살핀 결과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물과 기름이었다. 내가 죽거나, 놈이 죽거나, 그 외엔 없다. 카르페디엠의 눈에서 지독한 욕망을 읽을 수 있었다.
“크흐흐! 라이라 디아블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내게 오너라. 너의 자리는 언제든지 비워두마.”
카르페디엠은 저열하게 웃으며 나와 반대편으로 향했다.
어차피 시간 문제라는 듯이.
하지만 과연 놈의 생각대로 일이 돌아갈까?
나는 시선을 옮겼다.
중심부, 분주하게 암흑상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아름다운 꽃 세공품 위에, 아홉 개의 알이 놓여 있었다.
용의 알이었다.
‘허.’
그것들을 살핀 내 동공이 자연스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