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18화 (19/251)

05. 요르문간드(2)

민식이의 황당 발언에 나도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시리아를 봤을 때 ‘이 녀석이 어벤져스를 만들려고 하는구나!’하는 감은 왔지만, 거기에 나마저 끼어넣을 생각일 줄은 몰랐다.

왜냐면, 민식이 이 녀석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영웅놀이를 지긋지긋해 했는지.

또한 녀석은 자기 입으로 말했다. 내가 너무 부러워서 미웠다고. 서로 돌아온 뒤 다른 관계가 되어보자고 생각은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애증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넣겠다고?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한 대?”

“멸망할 거야, 머지않아서. 하지만 나를 따라오면 너는 평범한 사람을 벗어난, 특별한 힘을 얻을 수 있어.”

“갑자기 훅 들어와서 조금 이해가 안 되는데.”

어퍼컷에 제대로 꽂힌 느낌이었다.

돌아온 지 이제 한 달이 겨우 되려고 한다.

그런데 민식이는 벌써 성녀 시리아를 접하고, 예사롭지 않은 중국인 둘을 포섭했다. 거기에 나까지 넣을 생각이다.

‘미래가 많이 틀어지겠군.’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선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최대한 많은 변수를 생각하고 예측하며 움직였다.

하지만 민식이는 대놓고 판을 벌릴 생각인 것 같았다. 미래가 바뀌는 것도 감안하며 보다 빠르게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폭주기관차.’

문제는 민식이가 스스로 브레이크를 잘 걸 수 있냐는 것.

지금 속도는 너무 빠르다. 물론 상황이 급박하니 빠른 것 자체는 괜찮다. 문제는 민식이가 표면에 나올 예정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편협하다. 자신의 이해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를 과연 평범한 영웅이라 규정하고 받아들일까?

아니, 반대다. 오히려 악으로 규정하며 멀리하려고 할 게 분명했다.

나야 ‘문’과 ‘각성자’들이 대두되고 등장했으니 그 반발이 적었다지만, 민식이는 갑자기 서울 시내에 떨어진 슈퍼맨과 다를 바가 없었다.

평범한 인류와 슈퍼맨. 힘을 조절할 줄 모르는 슈퍼맨은 자기가 의도하지 않아도 문제를 일이키기 마련이었다.

분명히 험난한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식이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심안.’

나는 심안을 열었다.

혹시 모르지만, 만약을 위해 민식이를 ‘지배’할 생각까지 한 것이다.

이름: 김민식(value-지배불가)

직업: 마검사

칭호:

● 뛰어난 초보자(1Lv, 힘+1)

능력치:

힘 35(34+1) 민첩 24 체력 30

지능 20 마력 15

잠재력(123+1/399)

특이사항: 없음

스킬: 삼재검법(2Lv), 원소마법(3Lv)가치가 ‘지배불가’로 표시되어 있었다.

뭐지? 무언가 기준이 있는 걸까?

놀들에게선 이런 현상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내심 인상을 찌푸리며 시리아와 두 중국 남매를 바라봤다.

이름: 시리아(value-30,000)

직업: 빛의 사제

칭호:

● 성스러운 빛(3Lv, 지능+5)

능력치:

힘 24 민첩 21 체력 20

지능 31(26+5) 마력 30

잠재력(121+5/455)

특이사항: 빛의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스킬: 성스러운 빛(3Lv), 빛의 가호(2Lv)이름: 린린(value-23,500)직업: 묘족(猫族)칭호:

● 무서운 암고양이(3Lv, 민첩+5)능력치:

힘 29 민첩 35(+5) 체력 21

지능 20 마력 15

잠재력(115+5/433)

특이사항: 묘족의 왕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스킬: 할퀴기(2Lv), 순간반응(2Lv), 낙법(2Lv)이름: 샤오팅(vlaue-20,000)

직업: 야수전사

칭호: 없음

능력치:

힘 40 민첩 18 체력 32

지능 11 마력 10

잠재력(111/420)

특이사항: 없음

스킬: 야수화(3Lv)

분명히 셋 모두 ‘가치’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나타났다.

400이 넘는 잠재력이 있어서인지 모두 산정된 가치가 높았다.

어쩌면 다른 이유가 추가된 것일 수도 있지만, 왜 민식이만 ‘지배불가’ 표시가 뜨는지 알 수 없었다.

‘나와 같이 돌아왔기 때문에?’

그렇기에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긴 것일까?

어쨌건 처음 나타난 변수다. 포인트를 아무리 모아도 민식이만은 지배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내가 멍하니 있자 민식이가 물었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어. 갑자기 이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게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이해해. 너도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으니까. 계속 떠나있는 건 아니야. 언제든지 원할 때 돌아와도 괜찮아.”

필사의 연기를 펼쳐봤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는 듯싶었다.

“당장은 나도 조금 복잡해.”

“알아. 그래도 머리도 하고 여자친구도 만든 거 보면 너도 나아가려고 하는 거잖아? 잘됐다. 이번 일은 너를 제대로 변화시켜 줄 거야.”

이제와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민식이는 고개를 끄덕이곤 이어서 말했다.

“나도 고민해봤는데 말로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빠를 것 같네. 잘 봐.”

민식이가 오른손을 뻗었다.

화악!

동시에 작은 불꽃이 일어났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나는 예의상 몸을 뒤로 틀며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뭐, 뭐야? 왜 갑자기 손에서 불이 나와?”

“이건 불의 마법. 나를 따라오면 너도 이런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 마침 너를 위해 봐둔 게 있거든.”

“마술이 아니라 마법이라고?”

“아직도 의심되면 다른 걸 보여줄게.”

물, 불, 공기, 흙.

네 가지 마법이 민식이의 손을 통해 발현되었다.

제법 신이 나 보였다.

‘귀엽네.’

내가 과거 사용했던 마법과 비교하면 형편없지만 분명히 빠른 속도다.

눈앞에서 컵이 잘리고, 아무 것도 없는 장소에서 물이 나왔다.

이쯤하면 됐다고 판단하곤 입을 열었다.

“아, 알았어. 그만! 믿을게. 이러다가 식기 다 부서지겠다.”

“믿어주면 됐어.”

꿈틀!

그때였다.

옷의 소매로 숨겨둔 오른팔의 뱀이 움직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슨 문제 있어?”

“그냥, 너무 놀라서. 마법이라니. 상상 속의 일이 현실에 닥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하고 있었거든. 설마 이거 몰래카메라 같은 거 아니지?”

나는 슬쩍 오른팔을 뒤로 숨기며 말했다.

이윽고 뱀이 손목을 오르며 심장부근에 위치하게 됐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태껏 꿈쩍도 하지 않던 요르문간드가 움직인 것이다.

크기가 작아서 다행히 티는 나지 않았다.

내가 애써 무시하자 민식이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한성아, 나 지금 되게 진지하다. 물론 결정하기 어렵겠지. 갑작스러울 거야. 그 일이 있고 거의 한 달밖엔 안 지났으니까. 그래도 함께해줬으면 좋겠어.”

사랑고백인가?

녀석 답지 않게 굉장히 집요했다.

반드시 나를 데려가겠다는 의지가 절절했다.

여기서 거절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설마 이런 직구를 던질 줄이야.’

미지의 힘을 접한 10대의 청소년 중에 그 힘에 매혹되지 않고 거절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게다가 그 주체가 내 친구라면 말은 다했다.

‘적당히 맞장구만 쳐주자.’

더 부모님의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았다.

제단에 있으면서 나는 거의 부모님을 떠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독한 불효자였다. 사진이 없었다면 모습도 흐릿했을 것이다.

그분들이 계시던 시간보다, 안 계시던 시간이 더욱 길었으니.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민식이와 달리 세계에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한 톨도 없었다.

음지의 사냥꾼이 되겠노라고, 오로지 적들의 목을 노리는 검이 되겠노라고 결심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적당히 맞장구만 쳐주자.

어차피 한 번쯤은 겪을 일이었다. 차라리 빠르게 결론을 내리는 게 낫다.

나에 대해 실망하게 만들면, ‘어벤져스’의 무리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 있을 것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말만해.”

“내가 원할 때 단순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나갈 수 있게해줘. 말만 들어선 이상한 다단계 같으니까.”

“······ 그래. 다단계랑 비교하는 게 자존심은 상하지만 강요할 순 없지. 또 다른 건 없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식이가 작게 웃었다.

한 번 미지를 접하면 내가 거기에 몰두할 것이라고 자신하는 듯싶었다.

하기야 원래의 나였다면 지금 한창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몇날며칠 잠도 안 자면서 게임만 하고 있을 시기. 그야말로 폐인이 따로 없다.

민식이도 중요한 사람들을 잃어봤기에 그러한 과정을 잘 안다. 폐인보다 미지를 접하고 마법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나쁜 의도는 없어보이는군.’

확실히 민식이는 알레테이아의 중간간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의 모습이 더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적당한 시기에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아니면 적당히 거리를 두거나.

내가 가진 정보들은 극비가 아닌 게 없었다.

오로지 나만이 그 정보들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다른 변수가 끼어드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난 뭘 하면 돼?”

“북한산으로 갈 거야.”

“크흠! 북한산? 그 지금 한창 시끄러운 곳?”

태연하게 모른 척을 했다.

내가 지배한 놀들이 문제가 되어 시끌벅적해진 것이지만 사실을 밝힐 순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에 또 다른 문이 있는 모양이야. 아아, 문은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입구인데······.”

민식이가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민식이는 북한산의 ‘문’에 대해 모르는 듯싶었다.

‘다 알고 있는 건 아니구나.’

북한산의 황금문도 나름 극비였다. 56명만 시련을 이기고 제단에서 무언가를 얻는 게 가능했으니, 그다지 크게 알려질 것도 없었다.

있는 괴물이라고 해봐야 놀들이 전부이고.

나는 대충 민식이의 설명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산······ 알았어. 그러니까 짐 싸야한다는 소리지?”

“입을 것만 챙겨. 나머진 내가 해결해줄게.”

“그, 그래. 허, 참. 이게 무슨 일인지.”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문을 닫고 대충 짐을 챙기는 시늉만 하면서, 거실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았다.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정말 도움이 돼?”

“린린. 그는 대단한 사람이다. 분명히 도움이 될 거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내 고양이의 감은 별로라고 말하지만 말이야.”

“누이여. 우리가 한 약속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는 김민식을 따른다.”

“샤오팅, 고맙군.”

대충 나에 대한 불신을 늘어놓고 있었다.

나를 대할 때와 저들을 대할 때의 민식이의 태도도 조금은 달랐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들의 힘, 잠재력은 분명히 굉장했다. 이 짧은 시간에 민식이가 어떻게 모았는지 모를 정도로.

시리아는 조용했다. 원래부터 그녀는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성녀 시리아.

한때, 잠시 스쳐 지나갔던 연인.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짐을 챙겼다.

* * * * *

북한산!

맑은 정기 고요한 정적.

설마 이런 식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민식이는 익숙한 듯 네 명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와 한성이가 인수봉 근처를. 시리아는 남쪽을, 린린과 샤오팅은 서쪽을. ‘문’을 품은 변이체를 발견하면 즉시 연락하도록. 아니라면 6시간 뒤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지.”

이 팀의 대장은 민식이인 듯싶었다.

저들은 나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나는 민식이와 함께 하게 되었다.

‘미치겠군.’

하지만 머지않아 자신의 ‘운이 없음’에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하! 정말 문을 넘어 나온 괴물이 있을 줄이야.”

“괴, 괴물이라고?”

“놀이 20마리라니. 제길, 한성아. 피해있어. 내가 시간을 끌게.”

인수봉 근처를 배회하고 3시간쯤 지났을까.

우리는 20여마리의 놀과 조우하게 되었다.

놀 20마리면 지금의 민식이도 버거운 수준이다.

급박한 순간이지만 나는 내심 한숨만 내쉬었다.

놀들에게는 적의가 없었다.

있을 리가 있나.

녀석들은 오히려 똘망똘망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만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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