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오딘의 보물창고(完)
불가해의 영역에 닿은 자들에게 간혹 주어지는 열쇠였다.
나도 과거 두 번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데몬로드를 잡고, 세 마리의 용들을 동시에 사냥했을 때.
당시 내가 들어간 보물창고의 최고 레벨은 6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건네받은 보물창고의 레벨은 3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물창고의 희귀함은 3레벨 단위로 올라간다.’
3,6,9의 숫자로 나뉜 창고들.
평생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본 이가 정말 극소수며, 나조차도 9레벨의 창고에는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6레벨의 창고에 있었던 물품만으로도 전율을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수많은 장비들과 계약서 따위가 먼지처럼 널브러져있는데, 그 하나하나가 ‘전설’에 준하지 않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하나만을 가져가야 한다는 제약이 붙지만 당시 내가 고른 ‘흉멸의 망토’만 하더라도 내 모든 장비를 합친 것에 준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9레벨의 창고에는 미미르의 샘물, 궁니르 등 ‘신급’에 준하는 것들이 있을 거란 소문이 무성했다. 실제로 9레벨의 창고에 들어가 본 자는 없으니 진위를 확인할 순 없지만.
3레벨의 창고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과거에도 고작 50여명 정도가 그곳에 발을 들인 걸로 안다.
솔직히 지금 얻을 수 있는 보상 중에는 가장 좋았다.
내가 지금 강력한 장비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만한 격을 가진 장비는 으레 주인을 따지기 마련이므로.
‘무엇을 가져와야 재앙을 막을 수 있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5년.
적어도 10년은 바라봐야 겨우 대적이나 할 수준의 괴물이, 5년 뒤에 서울도심에 모습을 드러낸다.
두 배는 더 급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나를 받쳐줄 게 필요했다.
‘거인의 할버드, 생명수확의 낫, 암월궁(暗月弓), 백은의 상아방패······.’
3레벨 오딘의 보물창고에 있는 장비들을 떠올린다.
적어도 능력치총합 350까지는 빠른 성장을 보장해줄 굉장한 무구들. 저것들 중 하나만 가져와도 지금 수준보다 한, 두 단계는 높은 괴물을 사냥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조차도 거기에 있는 모든 걸 알지는 못한다.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제한시간 내에 그곳을 한 바퀴 도는 것조차도 아슬아슬했다.
‘종류에 구애받지 말자.’
물론 선택의 폭은 넓었다.
나는 천지인(天地人)이다.
노력과 욕망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장비와 스킬, 그 외의 모든 걸.
일단 들어가 봐야 안다. 내가 원하는 걸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그 공간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내 안목과, 운을 믿는 수밖에.
고개를 끄덕이며 열쇠를 허공에 돌렸다.
이윽고.
철컥!
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거대하기 짝이 없는 주홍빛의 문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끼이이이이익!
바닥을 쓸며 이내 문이 열렸다.
나는 가만히 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딘의 보물창고(3Lv)에 입장했습니다.]
[시간제한은 3일이며, 오로지 한 가지의 물건만 가지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 * * * *
끝이 보이지 않은 보물의 향연이었다.
누군가가 정리한 듯 일렬로 늘어선 장비나 책 따위가 족히 수만, 수십만의 숫자로 늘어져 있었다.
광활했다.
압도적이고, 아름다웠다.
이만한 숫자의 보물들을 누가 어떻게 모아서 여기에 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말 그대로 ‘오딘’이 개입한 것일지 말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지척에 있는 물건들 중에선 훌륭하지 않은 게 없었다.
<생명의 흑철 투구(value-8,000)>
● 체력+1
● ‘적’이라 규정지은 대상을 한 명 죽일 때마다 힘 0.1상승. 최대 2.
『멸망한 제국의 정예 흑기사가 사용했던 흑철 투구. 흑마법이 깃들어 있다.』
<은밀한 첩자의 장갑(value-5,500)>
● 착용만 하고 있어도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이 올라간다. 첩자의 필수품.
● 가만히 10초 이상 서있으면 은신효과를 얻는다.
『상위첩자들이 즐겨 사용했던 애장품. 희소가치가 있다. 관음증이 있는 고위귀족들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대략적으로 이러한 느낌이었다.
특히 능력치를 올려주는 장비는 정말로 구하기 힘들다. 대장장이 레벨을 6은 올려야 그때부터 아주 희박한 확률로 극소의 능력치가 붙는 장비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능력치를 총합을 3이나 올려주는 투구나, 생각하기에 따라 쓸모가 많은 첩자의 장갑 정도는 이 오딘의 보물창고에 널린 편이었다.
내가 바라는 건 널려있지 않은 물건들.
군계일학이라 칭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눈으로 대충 무구들을 훑으며 지나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72시간.
그 시간 안에 이 안의 모든 걸 살피려면 한 치도 쉴 수 없었다.
제단을 막 빠져나온 뒤라 피곤하고, 지쳤지만, 오딘의 보물창고에 들어온 순간 그러한 피로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히려······.
두근! 두근!
심장이 뛰었다.
어렸을 적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심안(9Lv)이 발동했습니다.]
[숨겨진 정보가 드러납니다.]
<황혼의 대검(value-35,000)>
● 힘+3
● 황혼녘에 사용할 경우 ‘출혈’효과 ● 경량화 마법이 걸려있어 매우 가볍다(3kg).
●● 사용자의 피를 대량으로 적시면 ‘황혼의 들개’를 소환할 수 있다.
“······!!”
나는 잠시 멈춰 서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랍게도 숨겨져 있던 정보가 드러났다.
‘심안의 효과가···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었군.’
숨겨진 장비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었다. 어지간한 탐색스킬도 장비고유의 숨겨진 옵션까진 발견하지 못하는 탓이다.
나는 가만히 턱을 쓸었다.
그렇다면, 어느 영웅도 찾지 못한 ‘진주’가 이 안에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황혼의 대검은 나쁘지 않은 무기지만 2%가량이 아쉬웠다. 황혼의 들개라는 건 소환물일 텐데, 사용자의 피가 대량으로 필요하다면 원할 때 사용할 수 없다.
출혈효과야 상대의 치료를 늦추는 방편이라 트롤과 같이 재생력이 뛰어난 괴물과 싸우는 게 아니면 별 의미가 없는 게 사실이었고.
‘더 있을 거다. 아무도 찾지 못했던 진짜가.’
나는 진짜를 찾길 원했다.
오딘의 보물창고에 있는 무구는 족히 수십만 개에 달한다.
72시간 내에 모두 확인하고 그중 ‘진품’을 가려내야만 한다.
그야말로 바늘구멍을 낙타가 통과할 확률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꺾이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았다. ‘노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였으므로.
나는 창고 안을 돌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내 눈은 감길 줄을 몰랐다.
잠이 오면 억지로 뺨을 꼬집고 때렸다.
이중 단 하나라도 놓칠 수는 없었다. 모든 걸 두 눈에 담고 그중에 진위를 가려낼 것이었다.
‘이것도 아니야.’
은빛십자군의 망치!
과거 ‘은빛망치 오르샤’가 사용하던 무기.
언데드를 상대로 특효를 발휘하고 그 괴력으로 휘두를 때면 산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평소였다면 이 역시 눈독을 들였을 것이지만······.
‘이곳이 진정으로 보상을 해주기 위한 장소라면, 원하는 보상을 찾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시련이다.’
이 세상은 시련으로 돌아간다.
시련을 이긴 자는 달콤한 과실을, 시련에게 패배한 자는 끔찍한 결말을 얻는 법이었다.
오딘의 보물창고라지만, 실제로는 보물이 아닌 것들도 있었다.
감히 ‘신’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꼴이다.
그러한 것들을 왜 늘어놨겠는가?
이곳이 또 하나의 시련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물건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나 자신을 저울질하여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
60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
과거 수십 명의 영웅들이 가졌던 무기들, 이곳에서만 찾아 익힐 수 있는 스킬들, 성장을 도와주는 갖은 희귀한 영약들······.
삼분의 이 가량을 뒤졌지만, 정작 내 마음을 사로잡는 건 없었다.
미련일까?
미련이란 말인가?
내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생기는?
‘욕심을 버리고 타협하라는 뜻이냐?’
이를 악물었다. 이러한 욕심 역시 나를 구성하는 ‘욕망’ 중 하나였기에.
하지만 나는 내 욕망을 버리지 않기로 얼마 전 다짐했다. 만약 욕망의 끝에 허무가 남는다면 그 역시 내가 감당해야할 결과일 뿐이었다.
욕망이 있고, 그것을 갈구하며 나아가야만 5년 뒤에 ‘알 아락사르’를 잡을 수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거신에게도 닿으려면 나는 ‘욕망의 절제’를 절제해야 했다.
‘아직. 아직이다.’
찾는다. 오히려 나는 속도를 올렸다.
탁! 탁! 타다다닥!
아예······ 달렸다.
눈요기로 살피며 몇 번이고 이 보물의 산을 둘러보았다.
[남은 시간: 58분]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렀다.
이제 슬슬 결정하고 그동안 본 것들 중에서 골라야 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찾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거의 무아지경의 수준이었다. 머리가 텅 비었고, 본능에 따라 그저 취합하고 내버리는 과정의 반복을 하고 있었다.
턱!
그 순간, 마치 손이 끌리듯 무언가가 잡혔다.
마치 자석이 달린 것처럼 지나가는 사이 나도 모르게 잡았다.
그것은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샤! 샤아아!
뱀은 마치 살아있는 듯했다.
환청이겠지만 분명히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뱀은 꾸불거리며 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어깨를 감싸고, 내 몸을 돌며, 다시금 오른손 전체를 자신의 몸으로 칭칭 감았다.
내가 고른 게 아니다.
‘선택 받았다.’
놈에 의해, 나 자신이 선택받은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호수에 꽂힌 성구, 어둠의 종적에 놓인 마검 같은 게 주인을 택하는 대표적인 무기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뱀이라니?
<요르문간드(value-???)>
● 지능+5
● 마력 +5
● 에고(Ego)에 의한 형상변화
● 모든 뱀의 왕
● 끝없이 성장하는 뱀(1Lv, 성장도-0)●● 계약자는 모든 ‘밤의 저주’로부터 해방된다.
『신화로 전해지는 요르문간드의 거대한 뱀. 세계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던 존재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약화되어 ‘오딘의 보물창고’에 갇히게 되었다. 』
샤아악!
놀랄 틈도 없이, 놈이 내 목을 물었다.
그 순간.
[‘요르문간드’와의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내 정신이 급속도로 흐려지기 시작했다.
* * * *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오딘의 보물창고 바깥에 드러누워 있었다.
쨍쨍한 하늘에 인상을 찌푸리며 상반신을 들어올렸다.
‘대체 뭐였지?’
온 몸이 찌뿌둥했다.
나는 급히 오른손을 바라봤다.
‘요르문간드.’
팔을 감싸고 있는 뱀이 있었다.
그때는 살아있는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을까?
은빛의 단단한 껍질. 하지만 전과 같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흔들어도 보고, 억지로 떼어보려고도 했지만 꿈쩍도 하질 않았다.
‘일단······ 일단 돌아가야겠군.’
전신이 물 먹은 솜처럼 퍼졌다.
머리가 데인 것 마냥 뜨거웠다.
나는 억지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전 들어왔던 ‘문’으로 향하자 놀들이 내 뒤를 따랐다.
* * * * *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분명히 나의 집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잠들면 족히 일주일 이상을 자버릴 것만 같은 느낌. 안전한 ‘나만의 장소’가 필요해 나는 여기까지 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즉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부들부들!
몸이 마구 떨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신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이빨이 부딪히고 온 몸에 식은땀이 났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눈을 감자, 그대로 수마가 밀어닥쳤다.
스으윽.
동시에, 오른팔 전체를 감았던 뱀이 움직이며 내 신체를 계속해서 노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