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에인션트 원(4)
카아아악!
키아아아악!
백 마리가 넘는 놀들이 하나 되어 소수의 놀들을 핍박하고 있었다.
굉장히 보기 드문 광경이었지만 나는 그를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다굴 앞에 장사 없는 법이지.’
6,000에 가까운 포인트를 들여서 정확히 127마리의 놀들을 지배했다. 어지간한 소환사나 테이머에게도 불가능한 이적. 아무래도 이 ‘지배자’스킬로 지배할 수 있는 숫자는 크게 한계가 없는 듯싶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 혼자였다면 일단 피하고 봤을 놀의 무리를, 숫자로 찍어 누르는 아주 아름다운 광경이!
[‘놀46’이 사망했습니다.]
[‘놀 그룹’의 전투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놀 그룹’이 획득한 포인트가 주인에게 귀속됩니다.]
[130pt를 획득했습니다.]
[‘놀 그룹’에 대하여 ‘오늘부터 우리는 하나다(힘민체+1).’ 버프가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그룹버프!
능력치를 총 3이나 올려주는 버프가 놀 그룹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진 않았지만, 100마리가 넘는 놀들의 능력치가 일시에 올라갔으니 이는 굉장한 이변이었다.
비록 한 마리가 죽긴 했지만 그 이상의 이득이라 할 수 있었다.
‘심안.’
나는 심안을 발동시켜 놀들을 확인했다.
이름: 놀1(value-51)
종족: 놀
능력치:
힘 13(12+1) 민첩 14(13+1) 체력 11(10+1)
지능 5 마력 6
잠재력(51+3/110)
특이사항: ‘오한성’에게 귀속 된 상태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하나다.’버프의 효과를 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놀들이 가진 능력치는 위와 같은 상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놀들은 사냥을 하며 더욱 강해졌으며, 적어도 나머지 잠재력을 채울 때까진 성장해나갈 것이었다.
‘놀이라 그런지 한계가 명확하긴 하군.’
고작 110이 한계치다.
100마리가 넘는 놀들 중 가장 높은 녀석이 115였다.
2Lv까진 성장할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둬야하는 걸까.
물론 놀은 최하급 중에서도 최하급의 괴물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잠재력 자체의 평균치는 인간이 훨씬 높은 편이었다.
‘사람의 잠재력 평균치는 250정도.’
보통 능력치 총합 50을 기준으로 1Lv씩 올라가는 구조인데, 평균 250······ 그러니까 인간의 경우 5Lv정도가 평균이었다.
‘태생적인 잠재력은 300부터 조금씩 희귀해진다.’
어디까지 사람에 한해서다.
이 역시 통계가 있었다.
300이상은 만 명 중 하나.
350이상은 십만 명 중 하나.
400이상은 백만 명 중 하나.
450이상은 천만 명 중 하나.
450부터는 10단위로 세분화되어, 기하급수적인 확률로 존재하게 된다.
현재 내가 가진 잠재력총합은 456. 이는 대충 ‘1/20,000,000’정도에 속하는 확률의 기적이었다.
물론 기대치가 낮아도 스킬의 상태, 칭호나 보석, 혹은 기연이라 일컫는 기적과의 만남으로 그 이상을 바라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나도 더는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지.’
놀들의 전투를 보니 괜히 몸이 달아올랐다.
100마리와 넘는 놀들과 함께 전투를 펼친다면 혼자서 사냥하는 것보다 더욱 빠른 성장이 가능할 것이었다.
나는 서쪽으로 향하며, 보이는 족족 놀들을 사냥했다.
간혹 숫자가 많으면 조금씩 끊어먹으며 몰살시켰다.
그렇게 벌어들인 포인트로 오히려 놀들을 더 늘렸다.
원래의 영역에서 군림하던 놀들에겐 비상이 걸린 셈이다.
나는 생태계 교란종이었다.
* * * * *
[‘놀 161’이 ‘놀 그룹’에 합류했습니다.]
[‘놀 그룹’의 레벨이 ‘3’으로 격상합니다]
처음 120여 마리에서 시작한 게 고작 7일여 만에 150마리로 늘어났다.
문제는 내 능력치가 성장하고 군단의 숫자가 늘며 더 이상 놀을 사냥해도 크게 포인트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놀 사냥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포인트를 모으기 힘든 이유였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포인트는 더 적게 들어온다.
반대로 약한 상태에서 강한 적을 처치하면 더욱 많이 들어왔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반적인 놀을 사냥해서 포인트를 얻는 건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능력치가 오르는 속도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나는 허공에 십자 인을 그렸다.
[사용자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이름: 오한성
직업: 無
칭호:
● 무자비한 놀 학살자(3Lv, 체력+4) 능력치:
힘 29 민첩 25 체력 28(24+4)
지능 15 마력 16
잠재력(109+4/456)
특이사항: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잠재력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스킬: 심안(9Lv), 지배자(9Lv), 전이(???)
[전후비교]
힘 11 민첩 11 체력 10 지능 9 마력 10 잠재력(51/456)힘 29 민첩 25 체력 28 지능 15 마력 16 잠재력(109+4/456)절벽수준으로 가파른 성장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이 시간으로 이만한 성장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놀들을 대동하여 함께 전쟁을 치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칭호도 하나 얻었다.
칭호는 아무리 많이 얻어도 부족함이 없다.
잠재력을 돌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였기에.
그만큼 조건이 까다롭고 얻기 어렵지만, 피똥을 싸면서도 얻을 가치가 있었다.
‘여기서 치프만 잡으면 칭호의 레벨이 더 올라가겠지만.’
나는 고민했다. 이곳 황야를 다스리는 놀 치프는 대략 셋 정도가 있었다. 내가 파악하기로는 그랬다.
하지만 놈들과 부딪히기엔 아직 역부족한 상황이었다.
놀 치프는 5Lv의 괴물이다. 군락에서 수천마리의 놀들과 함께한다.
지금 부딪혔다간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일단 에인션트 원의 힘부터.’
순서를 정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나 자신을 과신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굳이 도박을 걸 필요가 없었다.
평범한 놀의 사냥은 여기까지였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제단을 찾을 시간이었다.
다행히 저 멀리서 어렴풋이 구조물 따위가 보이고 있었다.
무너진 신전, 무너진 탑, 무너진 제단들.
무작정 서쪽으로 이동하여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곧, 판가름이 난다.’
에인션트 원의 힘을 온전히 손에 넣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판도가 뒤집어질 것이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곤 빠르게 걸어 나갔다.
그런 내 뒤를 150여 마리의 놀들이 따랐다.
* * * * *
반쯤 무너진 제단이 유독 많은 장소.
이곳의 모든 제단들은 ‘시련’을 내린다.
시련의 종류는 모두 달랐고 그에 통과한 자는 합당한 보상을 얻는다.
반대로 시련을 이기지 못한 자는 그대로 강을 건너 삼도천 행이었다. 시련을 이기지 못하면 제단을 다시 빠져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제단의 숫자는 56개.’
많기도 하다.
그리고 이 56개의 제단 중 한 사람당 하나의 제단만 섭렵하는 게 가능했다.
무려 56명이 이곳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말 그대로 정보가 없으면 도박을 행하는 것과 같았다.
제단은 중심지로 갈수록 난이도가 올라간다.
그리고 ‘에인션트 원’의 제단은 정확히 중심에 존재하고 있었다.
‘에인션트 원. 최초의 용······.’
나는 그 앞에 섰다.
다른 제단들보다 훨씬 컸으며 웅장했다.
입구의 위에 조각 된 거대하기 짝이 없는 용의 형상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에인션트 원.
최초의 용이자 최강의 용.
한때 최후의 영웅이었던 나와 제법 비슷한 사연을 지닌 녀석이다.
이곳의 시련에 대해선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제단은 한 번 완료되면 다른 사람이 다시 들어가서 도전하지 못한다. 그 특성상 공략법이라고 할 만할 게 돌아다닐 이유가 없는 탓이다.
말인 즉, 내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반쯤 무너진 문 앞으로 다가서자 경고문이 떠올랐다.
[에인션트 원의 제단입니다.]
[난이도: 불가능]
[입장하시겠습니까?]
난이도는 도전한 사람의 상태에 맞춰서 측정된다.
어디까지나 능력치만 따지기 때문에 외적인 요소는 배제된다.
지금 내 능력치로는 ‘불가능’이 떠올랐지만, 내겐 심안과 지배자가 있었다. 누구보다 풍부한 경험이 있었다.
게다가 폭사한 그 녀석이 시련을 이겨냈다면 나라고 못할 이유도 없었다.
입장할 거냐고?
‘당연한 소리.’
그대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행히 150마리의 놀들도 ‘내 것’으로 판정이 된 모양이었다.
놀들이 모두 입장하자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 * * * *
쉬이잉!
퍼억!
캄캄한 어둠 속.
시작부터 화살이 날아들었다.
[‘놀23’이 사망했습니다.]
놀 한 마리의 비명횡사와 함께 나는 더욱 긴장하며 주변을 살폈다.
통로였다.
긴,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
설마 이 통로를 지나갈 때까지 화살이 튀어나오는 걸까?
‘가능은 하겠군.’
민첩이 낮아 정면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순 없겠지만, 미리 화살이 날아올 만한 경로를 파악하고 움직이는 것은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비웃듯 뒤에서 광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퉁. 퉁. 투루루룽!
굴러온다. 무언가가 굴러오는 소리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굴렁쇠가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뛰어라!”
나는 명령했다.
그리고 입을 열기 전부터 달리고 있었다.
쉬이이익!
퍼억!
[‘놀121’이 사망했습니다.]
정보를 읽을 시간도 없었다.
화살이 날아올 경로를 파악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이런, 젠장 할!”
나는 놀들을 방패삼았다.
그리고 발에 땀띠가 나도록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