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1화 (2/251)

01. 친구 따라 회귀했다(1)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상황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아직 바깥의 해는 떠있었고, 내 심장은 어느 때보다 열렬하게 뛰는 중이었다.

나는 어질러진 방의 의자에 앉았다.

이어 리모컨을 들고 TV를 틀었다.

―소개합니다. 데뷔와 동시에 세간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그 그룹! 솜사탕처럼 달콤한 소녀들, 달콤하니!

동시에 어린 11명의 소녀들이 등장해 귀여운 동작으로 춤을 췄다.

수많은 이들이 열광했고, 나도 거기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열광하는 이유와는 조금 달랐다.

저 소녀그룹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나오는 다른 아이돌이나 가수들 역시.

‘2015년 3월이 맞다.’

재차 확인한다.

지금의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표류 중이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택하여 앞으로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머릿속에 필기장을 꺼내고 기록을 새겼다.

‘진짜 기록으로 남기는 건 위험하니까.’

아직 아무 것도 정리된 게 없었다. 민식이도 함께 회귀했다면 또 다른 위험요소가 존재할지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머릿속에만 남겨야 했다.

우선······ 2015년 3월 2일.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10일 째.

나이는 19살. 고등학교 3학년.

딱히 잘난 거 없는, 축구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이후 집에 틀어박혀 폐인으로 생활하는 중이었다.

‘그리곤 양아저씨네 호적에 이름을 올리고 2년간 지냈지.’

민식이의 말마따나 보험금을 노린 양아저씨란 사람에게 귀속되어 2년을 보냈다. 현대판 콩쥐팥쥐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2년까지였다.

2년 뒤, 세계는 변한다.

심연으로 연결되는 문과 괴물들의 존재가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운 좋게 마검사로서 각성했고, 정부기관에 발탁되어 영웅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문은 열렸다.’

그때는 몰랐다. 그러나 최후의 영웅이라 불린 나다. 당연히 세계의 온갖 비밀을 알고 있었다.

문은 이미 열렸다. 2015년, 이맘때에.

누군가가 고의로 은폐하거나 숫자가 적어서 발견되지 않았을 뿐.

‘말인 즉······ 나는 2년의 시간을 번 셈이다.’

괴물과 인간 각성자들. ‘초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대두되는 건 2년 뒤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극소수지만 그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특정 조건을 채워 초인이 되었다고 한들, 괴물을 사냥해야만 그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탓이다. 막 각성한 상태에서는 힘이 조금 세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나는 2년이 늦었지만 각성하여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성장의 배경에는 내가 얻은 ‘마검사’ 클래스가 주효하게 작용했다.

그런데 2년이 더 빠르다?

더욱 높은 곳까지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생긴 셈이었다.

‘마법과 검의 경지를 동시에 드높일 수 있는 클래스는 마검사밖에 없다. 그러나 마검사는 어느 방면에서도 극의에 다다르지 못해.’

나는 잠시 과거 내가 가진 힘에 대해 고민했다.

마검사. 두 가지 힘을 다루기에 엄청난 속도의 성장이 보장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가 드러났다. 최후의 영웅이 되었지만, 결국 진정한 최후에는 닿지 못했다.

나는 턱을 쓸었다.

돌아왔으니, 내가 걸어갈 길을 택해야 한다.

‘문은 이미 열렸고 얻고자 한다면 다른 숨겨진 클래스들을 얻지 못할 것도 없다.’

인구가 밀집된 곳일수록 심연으로 향하는 문은 더욱 많이 열린다.

당연히 2015년의 한국에도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안다.

하지만, 당장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민식이. 녀석이 같이 돌아왔단 말이지······.’

민식이는 착했다.

힘든 사람이 있으면 지나치질 못하고, 아이가 울고 있으면 사탕부터 건네주는 게 녀석의 심성이었다.

게다가 그 흔한 야한동영상 하나 안 볼 정도로 순수했다.

그런데 세계가 요지경이 되고 놈은 신흥 이단종교 알레테이아의 중간간부로 모습을 드러냈다.

신흥 이단종교, 알레테이아!

괴물들을 사육하고 인간을 죽이던 악의 축.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런 곳의 중간간부가 되었다는 뜻은, 이미 손에 수없이 피를 묻혔다는 뜻이다.

더 이상은 순수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나를 찾아왔다. 헐레벌떡 달려와선 껴안았다.

과거의 우정을 새롭게 다져나가고 싶다는 뜻일까?

‘새로운 인생, 새로운 우정이라.’

성지를 공격하기 전에도 몇 번이나 알레테이아를 소탕하려는 시도는 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시도에서 민식이를 만났을 때, 녀석은 내가 빛난다며 부러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시간을 되돌려 영웅이 될 거라고.

나와 같은, 나보다 더 위대한!

아이처럼 울어서 차마 죽일 수 없었다.

오줌을 지리며 뒷걸음치는 민식이의 심장에 검을 꽂지 못했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지금의 나를 과신하지도 과소하지도 않았다.

민식이가 내가 함께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되면, 최악의 경우 녀석이 나를 향해 칼을 빼들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내가 가진 정보들은 기밀이 아닌 게 없었으므로.

그것들을 온전히 다룰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었다.

영웅이 되고자 한다지만, 이미 한 번 악에 발을 들였던 녀석이니.

‘만약에 민식이만 돌아온 게 아니라면?’

무엇보다 이게 가장 걸린다.

크로노스의 힘을 빌려 정말로 그곳의 신자들이 과거로 돌아왔다면?

그들을 몇 번이나 소탕하려 든 나는 알레테이아의 주적이다. 성지까지 발을 들였으니 제거대상 1순위일 테다.

하여, 나는 상황의 추이를 살필 필요가 있었다.

민식이와 알레테이아의 신자들이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나와 민식이만 돌아왔다는 편견 자체를 깨야 했다.

누군가가 내 동선을 감시하고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모든 상황,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하고 움직이자.

‘한동안은 연기를 해야겠군.’

부모님을 여의고 슬퍼하는 10대의 소년을 말이다.

* * * * *

환기 한 점 안 되는 공간에서 컵라면만으로 배를 채우며 5일을 더 보냈다.

언제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날지 몰라서 세수도 안했다.

초췌하기 짝이 없는 얼굴.

물론 만일을 대비해 몇 개의 간단한 함정 따위도 설치해둔 뒤였다.

‘당장 나를 지켜보는 눈은 없다.’

며칠간 조심, 또 조심하며 살핀 결과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편의점을 가는 척 몇 번이나 주변을 확인했으나 그러한 낌새조차 없었다.

감시자가 없다면 활동의 폭도 넓어진다.

이후 TV와 인터넷으로 세상의 변화를 포착하려 애썼다.

‘눈에 띄는 변화도 없다.’

5일간 전화가 온 곳은 몇 곳이 없었다.

모두 받지 않았다. 대신 TV의 뉴스나 인터넷을 더욱 각별하게 살폈다.

일단, 크게 눈에 띄는 이변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도 내에선 말이다.

‘알레테이아의 신자 다수가 돌아온 건 아닌가?’

확정을 짓지는 않았다.

그저 가능성의 하나로 두었다.

놈들은 과격하다. 다수가 돌아왔다면 하나쯤 이변이 생겼을 것이었다.

후루룩!

다 먹은 컵라면의 국물을 들이켰다.

5일 내내 컵라면만 먹었다. 지겨울 법도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현역으로 활동할 때에는 대부분의 공산품이 생산 중단되어 컵라면도 나름 귀중품의 대열에 올라있었다.

물론 먹고자하면 먹을 수 있었지만, 최후의 영웅은 모두의 귀감이 되어야만 했다.

괴물을 죽인 뒤 단상에 올라 억지로 웃는 게 가장 곤욕스러운 시간이었을 정도니까.

그러니 나는 한 달 동안 컵라면만 먹어도 괜찮았다.

툭. 툭.

그때였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것처럼 창문 바깥으로 연결해놓은 실이 움직였다.

나는 즉시 시선을 돌려 컴퓨터 옆의 작은 손거울을 바라봤다.

손거울은 문 바깥의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연결해놓은 것이다.

‘양아저씨와······ 그 딸이로군.’

양아저씨. 정확한 이름은 양만우. 그 딸의 이름은 양은하였다.

본래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와 같이 일하던 사람이었다. 집에도 자주 찾아왔고 자주 대작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양만우는 문 앞을 서성이더니 이윽고 외쳤다.

“한성아! 문 좀 열어라. 응? 언제까지 틀어박혀 있을 셈이야?”

쾅쾅쾅!

양만우는 거침이 없었다.

“걱정돼서 경비원한테 열쇠도 받아왔다. 네가 안 열면 내가 열고 들어가마.”

끼이익!

하는 수 없이 내가 문을 열었다.

이윽고 초췌해진 내 얼굴을 본 양만우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리곤 양팔을 넓게 벌려 나를 껴안았다.

“이놈아, 이 녀석아. 왜 이렇게 미련하냐? 응? 그래도 밥은 잘 먹고 지냈어야 할 거 아니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산 사람은 살아야지.”

툭! 툭!

전 방위로 압박하며 강하게 등을 때렸다.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서 얘기하자. 할 얘기가 많다.”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양만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의 의사 따윈 전혀 듣지 않는.

양만우의 딸인 양은하도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다. 이제 막 고등학년 2학년 정도로 보이는 소녀는 객관적인 기준에서도 굉장히 예뻤다.

시원시원한 키에, 검은색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전형적인 미인상.

핫팬츠에 티셔츠 한 장만 걸쳐도 지나가는 대다수 남자들이 눈을 돌릴 법한 미소녀.

TV에서 봤던 달콤하니 등의 아이돌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기억나는군.’

양만우는 자주 봤지만 양은하는 몇 년 만에 봤다.

아마도 중학생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것일 테다.

당시의 나는 마치 절망 속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 반응을 의도하려고 양은하를 데려온 것이겠지만······.

“아, 냄새.”

양은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인상을 찌푸리고 코를 부여잡았다. 그리곤 내 얼굴을 보며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도도한 소녀였다.

아마도 자의로 이곳을 찾아온 건 아닐 것이다.

양만우에 의해서 끌려왔으리라. 의도는 뻔했다.

“은하야. 네가 이해해라. 한성이는 지금 많이 어려울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더 잘 보듬어줘야 하지 않겠니?”

“아빠. 진짜 사람 사는 곳이 아닌데.”

“어허. 아, 한성아. 중학생일 때 본 적 있지? 내 딸아이다. 버릇은 조금 없지만 내심은 착한 아이야. 청소를 해주겠다고 부득불 우겨대서 어쩔 수 없이 데려왔지 뭐냐.”

나는 잠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과거의 나는 하염없이 양은하만 바라보고 있었다.

양만우는 그런 나를 어르고 달래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생명보험금과 물려받을 재산을 가져갈 속셈으로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