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태양의 군주 (6)
바람이 불었다.
‘조금만.’
나는 기도했다.
‘조금만 더 길게… 조금만 더 오래 버티게 해줘.’
그 기도의 이유를 내 나라의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 ◈ ◈
카한은 묵묵히 나를 내려다보다가 도끼를 들어 올렸다.
- 일어서!
나는 그렇게 했다. 무리였다. 조금 전 카한의 발등을 찍었던 것으로 힘이 빠졌는지 땅을 밀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내 나라의 사람들은 나보다 한 발 앞서 알아차렸다.
- 왼쪽으로 구르세요!
짚은 땅을 옆으로 긁듯이 쳐내며 몸을 던졌다. 쾅…! 도끼날에 찍힌 땅이 수직으로 폭발했다. 소나기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흙과 돌쩌귀가 내 온몸을 두드렸다.
“쿨럭,”
기침이 나왔다. 그 기침이 가라앉기도 전에 재차 도끼가 날아 들었다.
- 다시!
나는 다시 굴렀고, 굴렀고, 굴렀다. 쾅…! 쾅…! 쾅…! 신의 분노에 난타당한 것처럼 흙이 솟구쳐올랐다.
- 한 번 더!
굴렀다. 쾅…! 토사와 뿌리조각이 튀어 오르고, 그 기세에 휩쓸려 자그마한 나무 하나가 통째로 쓰러졌다. 쿵…! 그 나무의 가지가 곡괭이처럼 팔을 찍었다.
“흡…!”
비명과 헛바람이 뒤얽혀 기도 안을 꽉 틀어 막았다. 허파의 가장자리부터 피처럼 눅진하고 끈적한 고통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젠장.’
나는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더… 아주 약간만 더.’
- 더 일어서진 못하겠네….
‘응.’
- 구르는 것도 안 되겠어요.
‘맞소.’
- 그래도 조금 더?
‘그래도 조금 더.’
- 그러면.
감정을 배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내가 신호하는 순간 오른쪽으로 틀어라.
고개를 든다. 햇볕을 뒤집어 쓴 카한의 몸에는 음영이 없다. 새하얀 도끼가 태양이 내뿜는 숨결처럼 내리 꽂혀온다.
- 지금!
그렇게 했다.
그리고, 폭음이 터졌다.
◈ ◈ ◈
쾅……!
“큭,”
그 폭음은 내 안에서 들려온 것만 같았다.
언뜻 형이상학적으로 들리는 그 추론은 실제로도 올바른 것이었다.
“흐아아악…!”
그것은 살이 으깨지는 소리였다. 핏줄이 끊어지는 소리였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 모든 소리는 내 몸 안에서, 피부를 타고, 피를 타고, 척추를 타고 퍼졌다. 뇌를 울렸다.
“으, 아, 으으….”
쩌적, 소리와 함께 도끼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내 어깨에서 피와 살점이 얽힌 곤죽이 흘러내렸다.
마지막 순간 몸을 튼 덕에 목이 잘리는 건 면했지만, 어깨에 도끼가 틀어박힌 것이다. 충격으로 심장이 멎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의식은 거꾸로 또렷해졌다. 선명한 고통으로 끓어오르는 심장을 붙잡고 나는 버르적거렸다.
“버러지가 따로 없군.”
카한이 손을 뻗어 내 멱살을 붙들었다.
들어올린다.
“내게 한 칼 넣었던 것은 높게 평가해주마.”
산 채로 목이 매달린 느낌, 틀어 막힌 기도가 호흡을 거부했다. 핏기 몰린 얼굴이 벌게지는 것도, 실혈을 거듭한 그 밖의 신체가 겨울날의 돌처럼 굳어지는 것도 동시에 느껴졌다.
“하지만 장렬하게 스러질 기회를 스스로 날리고 있군.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대체 뭐가 널 그렇게 만드는 거냐?”
살고 싶으니까 그렇지 병신 새끼야, 하고 대답하는 것은 간단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데 어떻게 말하겠는가.
나는 찍히지 않은 쪽의 팔을 들어 카한의 손을 팍팍 두드렸다.
“……! ……!”
카한도 이대로는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했다. 놈이 손아귀의 힘을 조금 풀어주었다.
“학….”
갑자기 숨통이 트였다. 폐 안쪽이 베인 것처럼 선뜻한 느낌, 발작적인 웃음처럼 기침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기침을 누르면서 대답했다.
“경험칙, 이지….”
세 가지 이유에서 나는 이 남자와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되도록, 행복하고 오래 살고 싶지만, 으… 그게 불가능할 때는, 그래…. 소위 ‘멋있는 퇴장’을 고르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
첫째. 이제는 정말 혓바닥과 입술 정도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쓸 수 있는 부분을 써두어서 손해 볼 것은 없을 것이다.
“그치만 그런 멋있는 퇴장은 말이야, 카한… 사람들한테 좀, 발톱 자국을 심하게 남기더라고…. 천사님… 여왕 폐하, 비류아, 사호, 현성이… 다들 하나같이 좀 안쓰럽게 살더라….”
둘째. 높은 확률로 이것이 내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마지막 말이 될 터였다. 남길 수 있는 재산이 유언뿐이라면 그거라도 길게 해두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깨달았지….”
셋째.
“그런 죽음은, 결국 산 자들에게 짐을 미루는 짓이라는 거…. 정말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같이 살아서, 옆에서 도와야 한다는 거…. 볼품없고, 쿨럭, 아, 모양새 빠지지만은… 어쨌든 누구나 기적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러니까 말이야…. 어떻게 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그 죽음이라도 유용하게 쓰겠지만, 그 전까지는 어떻게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음….”
나는 그냥 시간을 벌고 싶었다.
“솔직히 그렇게는 생각 안 하지만….”
이 녀석의 주의를, 끌고 싶었다.
“너를 죽일 수는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카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바로 그 순간, 내가 카한의 어깨 너머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이야, 조장…! 끝장을 내버려…!”
카한이 도끼를 쥔 채 돌아섰다. 부웅…! 거인이 지면을 붙잡아 뜯어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나무 두 개가 밑둥부터 부서져 나갔다.
불티가 흩날렸다.
연기가 가라앉은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
침묵이 흘렀다.
카한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웃었다.
“병-신… 쫄았냐…?”
카한은 무표정했다. 적어도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당황이나 분노를 표출하진 않았다.
다만 잠시 침묵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시간이 지났을 때 카한이 말했다.
“네 혓바닥을 뽑기로 했었지.”
카한이 솥뚜껑 같은 손을 들어올렸다.
“지금 그렇게 해주마.”
퍽…! 채 벌어지지도 않은 입에 곡괭이처럼 손끝이 처박혔다. “읍,” 이빨이 부서진 건지 혓바닥 위에 무언가 자그맣고 버스럭거리는 알갱이가 얹혔다. “욱,” 피 섞인 침이 기도로 역류하여 콧구멍으로 끈적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달군 쇠집게 사이에 찧인 것처럼 혓바닥에 작열통이 퍼졌다.
“읍, 으읍,”
아파. 아프다.
“으으으읍…!”
혀가 아파. 입 안이. 혀가, 목 안쪽부터 타오르는 것처럼 뜨겁고 아파.
죽을 것 같아.
“으읍…….”
죽을 것 같은데도.
“…….”
나는 카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카한의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비친 나는 줄곧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웃는 거지?”
카한이 중얼거린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조그맣고 새까만 그림자가 뚝 떨어지고, “아,” 어딘가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 탄내, 그리고 카한의 머리 위로 그 그림자가 들러붙었다.
여왕 폐하였다.
“음,”
카한이 세차게 몸을 뒤틀었다. 표범을 떨쳐 내려는 곰처럼. 하지만 여왕 폐하는 오히려 양다리로 카한의 목을 감싸며 들러붙었고, 손에 든 물건을 카한의 관자놀이에 꾹 찔러 박았다. 잇소리를 낸 카한이 폐하를 후려치기 위해 내 입에서 빼내려 했을 때였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으드득 소리가 났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한의 손가락을 끊어 놓진 못했다. 아마 제대로 박히지도 않았을 거다. 둔탁한 소리는 내 이빨이 젖혀 부서지며 울려 퍼진 것이었다. 내 턱 힘은 너무나도 약했다.
그러나 놈의 움직임을 아주 잠시 흐트러뜨릴 수는 있었고, 사실, 여왕 폐하에게 필요한 것은 그게 전부였다.
폐하가 방아쇠를 당겼다.
철포가 불을 토했다.
“아,”
흐릿한 시야 속에 뜨끈한 색감이 번졌다.
그리고 붉고 하얀 덩어리들이 민들레 씨앗처럼 흩날렸다.
◈ ◈ ◈
그것은 마치 부서진 태양이 흩뿌린 파편처럼, 신전 바닥에 깔린 판석의 홈마다 괴어 반짝이길 거듭하고, 잊혀진 신들을 기리는 기도문이 아직 낭랑하게 세상에 울려 퍼지던 태고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살고, 살다가 죽고, 죽어 잊혀지고, 잊혀짐은 어둠보다 번쩍임을 닮았을 것이어서, 반짝임, 아, 반짝임, 백만 마리 물고기 떼가 저기에 비늘을 반짝이며 지나가는데.
지나가는데.
◈ ◈ ◈
응.
밝다… 어둡다. 어느 쪽인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하얗다. 정확히는 회색인가? 얇은 회색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그보다 더 짙은 회색이 가까워진다.
“---!!”
날 부르는 목소리. 내 이름을 부르는.
“---!! 괜찮은가!? ---!!”
폐하.
“---!! 눈을, 아, 괜찮은가, ---, 3사관, 그대는,”
자신이 어리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동안에는 아직 어린 거란 이야기가 있지요.
같은 논리를 대입해 보면, 괜찮다는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저는 아직 괜찮은 것이 아닐까요?
“3사관! ---! 제발 눈 좀… 짐이….”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짐이, 조금 더 빨리 했다면….”
가엾으신 분.
“---…….”
폐하는 항상 그렇게 자신을 탓하시지요.
절 비롯한 신하와 귀족들은 폐하께서 그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혀를 차곤 했습니다. 한 나라의 지존이 대체 왜 저리 패기가 없냐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웃긴 게 뭔지 아세요? 폐하께서 그런 모습을 보이실 때마다 한편으로는 우쭐하기도 했다는 거예요.
“미안하구나. 미안해. 짐이, 내가 조금 더….”
예, 폐하께서 스스로를 숙이실 때마다 우리는 참 기세가 등등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산골 무지렁이를 데려다 놓고 우리가 저지르는 모든 일들의 책임을 대신 지게 만들었다고.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게 했다고. 제단 위에 올린 희생양을 보듯 우리는 폐하를 바라보았지요. 저 양을 붙잡아 길들인 것이 바로 우리들이라고 히히덕거렸습니다.
한심하게도.
알량하게도.
“---…….”
변명을 하게 해주세요.
우리는 가난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들의 자아란 너무나도 귀중하고 너무나도 유한한 재화였어요. 자신을 충만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남들로부터 빼앗아올 수밖에 없다고 여겼습니다. 하도 오래 그렇게 살아서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 줄 알았어요. 이해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잠깐만 기다려라, 짐이 치료를, 아, 피가 너무… 여기 누구 없어요!? 거기, 응, 당신! 누구라도 좋으니까 이쪽으로… 여기 좀….”
“괜찮으십니까!?”
특작조장.
“괜찮으십, 씨발 안 괜찮잖아!”
살아 있었구나.
다행이다.
댁은 자기 같은 놈들이 선배 주변에 수두룩할 거라고 했지만은, 아 그래도 다다익선이지. 100은 항상 99보다 큰 법인걸. 댁도 수학을 공부하면 알게 될 거야.
“아, 다 죽어가네, 뭐야 이거 진짜, 이런 개같은, 내가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라고 그렇게… 아 젠장, 폐하, 폐하 잠시만….”
“응급처치법은 내가 알아, 그러니까 붕대와 약을….”
“예, 예 폐하… 거기! 그래 이 새끼야, 언제까지 뒈진 놈 쑤시고 있을 거야! 와봐! 금창약 가진 거 다 내놔봐. 옷도 좀 뜯고, 아이 씨발 뭔 소리야. 지금 불난 게 중요해!?”
거 누구 가신 아니랄까봐 입이 참 더럽네, 이 아저씨.
“정신 차려요 사관님, 아 정신 차리라고 좀!”
아니다… 아니지. 생각해보니 아저씨는 아저씨지. 요컨대 나랑 선배보다 나이가 많단 말이야.
혹시 선배가 입이 더러운 것도 아저씨 보고 자라서 그런 거 아냐?
이 정도면 합리적 의심 아닌지?
“야 --- 이 새꺄! 어린 놈의 새끼가 뭘 벌써부터 갈 준비하고 앉았어!? 눈 번쩍 안 떠!?”
그러지 말아요. 거 나이도 많은 양반이.
더 많아질 양반이.
그럼 못 써…. 애들이 보고 배운다고. 되도록 예쁜 말, 고운 말… 음, 가령….
…….
예시가 잘 안 떠오르네….
“똘똘아!”
선배.
“각하!”
“신월공… 3사관이,”
“네, 저한테도 눈이, 아 뭐야 이 멧돼지 같은 새끼는! 걸리적거리게시리!”
“카한의 시체입니다.”
“아니까 치우라고! 야, 야---똘똘이 이 새끼야!”
아, 선배. 좀 흔들지 마세요. 목 조르지도 말고요.
그 손버릇 고쳐요. 정말. 왕이 되겠다는 사람이 왜 그래.
“야 이 새끼야! 결혼하자매 새끼야! 결혼 사기였냐!? 쌍판 번드르르한 값 하는 거냐고 이 씹새끼야!”
아. 생각해보니까 말인데, ‘이 일이 끝나면 결혼합시다’라는 그 말 자체가 위험했던 것 아닌가 싶어요. 그 왜, 희곡에서도 보면 그 말을 한 녀석부터 먼저 가잖아요. 같은 이치가 나랑 선배 사이에도 작용을 했던 거지. 완벽한 추론 아니에요?
내가 참 머리가 좋다니까.
“똘똘아, 눈 뜨라고! 야! 야!”
선배도 머리가 좋죠… 우리는 다들 머리가 좋았지.
생각해 보면 동기 그 놈도 머리가 좋았던 것 같아.
그립다 참.
“야 임마…!”
선배.
“내가 너 살려 놓는다! 야, 아이사! 어딨냐 빨리 와서 얘 치료 좀… 아, 내가 죽였지, 아, 아---젠장, 아, 제기랄!”
사람을 도구 취급하면 겪게 되는 문제가 그거예요. 필요할 때 딱 손에 잡히는 도구 본 적 있으세요? 입 닦을 손수건 하나도 정작 쓰려고 찾아보면 꽁무니를 감춘다니까.
사람도 똑같아.
누군들 정말 필요할 때 없는 법이지….
“신월공, 더 흔들지 말고….”
“아, 죄송합니다 폐하. 음… 음음, 일단, 일단, 좋아, 약을….”
“제가 사람들을 불러오겠….”
음.
“3사관, 우리가 반드시….”
“---, 내가 꼭….”
“일단 여기서….”
음…….
뭔가 더 할 말이 있었는데.
“---, ------, ---, ----------”
“-----, ------, ---, --, ---------”
“--, ----, ---…… ----, ---------”
아.
빛이.
◈ ◈ ◈
내리쬐던 볕이 옅어진다.
주변이 조금 더 서늘하게 가라앉는다.
그리고 세상이 희뿌연 막으로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