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그늘의 변경백 (8)
“그래서,”
선배가 말했다.
“그런 가엾은 이들을 위해 손수 발 벗고 나섰다 이 말이냐?”
- 네, 귀족으로서…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깃발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건.”
선배는 다시금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활시위를 튕겼다.
“확실히 나한테서 배운 말이구나!”
적 기병 한 명 또한 동시에 선배를 향해 활시위를 놓았다. 찰나의 순간, 허공에서 두 개의 은선이 교차했고, 순식간에 멀어졌다. 가죽을 찢는 것 같은 소리. 적 기병은 말에서 떨어졌으나, 선배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공방이 코앞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내가 말했다.
“관심 없잖아.”
- 으응…?
“굴욕에 찬 역사도, 민초들의 고통도, 관심 없잖아. 너.”
- 아하….
나시파는 웃었다.
줄 끊어진 연이 하늘 위를 노니는 것처럼, 교태롭게, 위태롭게 웃었다.
- 아니요, 관심이 있지요…. 없을 리가 있나요…. 이렇게나….
목소리는 양 팔을 활짝 벌리는 것 같은 기세로 이어졌다.
- 이렇게나, ‘쓸모’가 있는 걸요.
병에 걸려 쓰러진 어미와 그 어미를 지극정성으로 간병하는 효자가 있다고 치자.
그런 둘을 바라보면서 감동을 받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도 부모에게 저만큼 해드리고 싶다는 자극을 받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자신은 과연 자식들에게 저만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부모인가 고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이득을 창출할 기회를 발견하는 이들도 있다. ‘어쩌면 이 약이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안무 지방에서만 솟아나는 기적의 성수에 관심이 없나요?’ ‘만약 당신이 어머님의 삶에 걸맞은 최고의 장례식을 치러드리고 싶다면….’
사람의 감정은 이용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그것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더 큰 동력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서 그런 기회를 발견하는 이가 세상에는 있다.
사람들의 분노, 원한, 증오, 비탄, 고통, 억울함마저도.
말 그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신의 도구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기짝으로 여기는 그 태도를 나는 탓하지 않았다. 탓할 입장도 아니었다.
선배 역시 저쪽에 발을 걸치고 있다. 나 또한 저쪽에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지금도 저쪽에 있다. 죽음에서 깨어난 이래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도구화한 것 아니던가.
나와 그녀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순수하게---그리고 거리낌 없이 자신만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느냐 하는 정도겠지.
-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장의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와 네가 얼마나 다른지, 다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 왜 그런 생각을 하시나요…?
“왜냐면.”
날아든 화살이 내가 탄 말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투레질 소리와 함께 몸이 크게 흔들리고, 스친 상처로부터 튀어 오른 뜨끈한 피가 내 얼굴을 덮쳤다.
그리고 나는 말을 이었다.
“네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야.”
그 말에는 웃음소리가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간 침묵이 있고 나서, 나시파는 말했다.
- 저는 틀리지 않았어요.
산 그림자 전체가 일렁거릴 만큼 또렷한 목소리였다.
-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요. 아시잖아요, 장의님….
“…….”
- 이 세상에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명예니, 영광이니, 사명이니 하는 것은 단순한 착각이에요. 그런 미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내던지는 사람은 그저 머리가 나쁘거나 이상하게 감정적인 것뿐이에요.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 저는 특별해요. 우리는 특별해요. 모두가 눈을 감고 헤매는 속에서, 우리만은 똑똑히 두 눈을 뜨고 있었어요. 그것을 알잖아요. 알고 계셨잖아요, 장의님….
“나시파.”
- 장의님.
나시파는 한 호흡 사이에 두고서 말했다.
- 이쪽으로 오세요….
어둠 속에 불쑥 내밀어진 새하얀 손을 떠올리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 좀 더 쉽게 잘라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모두의 이익에도 합치하니까, 꼭 그렇게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으응… 역시 뭐든 예상대로는 돌아가질 않네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시파는 조금 더 긴 호흡을 사이에 두었다가 말했다.
- 아, 혹시 이 쪽으로 오면 카한에게 죽거나, 그보다 못한 꼴을 당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나요…?
“…….”
- 카한은 이야기가 통하는 남자지만, 그럼에도 장의님을 싫어하는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장의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해드릴게요, 할 수 있어요…. 여왕님을 비롯해서 여기 있는 영주들, 그리고 신 제국 태수들의 목이 필요하겠지만, 우리 둘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역시나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답하기 위해 한 차례 속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선배가 먼저 대답했다. 뒤에서 팔뚝으로 내 목을 잡고는 확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미안하다만, 이 녀석은 나랑 결혼하기로 했어.”
- 그럼 파혼하세요.
그 말은 사이에 아무 호흡도 두지 않고 곧바로 튀어 나왔다.
- 스스로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누군가와 결혼할 생각을 할 수 있나요…?
뿐만 아니라, 이어졌다.
- 당신은 너무 사람들의 눈치를 봐요… 자신뿐 아니라 장의님께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겠지요…. 그것이 이득으로 이어질 때도 있겠지만, 당신은 그것이 너무나도 과해요. 그 결과 몸에 맞지 않는 옷가지가 온몸을 조여 질식하게 만들 테지요.
“이 꼬맹이가.”
- 둘이서 행복해질 궁리를 하는 것만도 부족한 인생을, 그렇게 남들 눈치를 보느라 낭비하다니… 응, 말도 안 돼요. 당신은….
선배가 활을 튕겼다. 핑! 겨울날 늑대가 흘리는 입김처럼 새하얀 숨이 선배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그것이 흩어지기 전에 또 한 마리의 흑마와 기수가 바닥에 쓰러졌다.
- 장의님을 가질 만한 자격이 없어요….
하지만 역시, 나시파의 말은 막지 못했다.
그 사실에 분노를 느끼는 듯, 선배는 다시금 발작적으로 활시위를 당기려 했다. 그러지 못했다. 내가 손을 들어 그 손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똘똘아.”
선배가 숨을 몰아쉬면서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에 힘을 주었다. 내 손가락이 만든 고리 안에서 거칠게 날뛰던 선배의 맥박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내가 말했다.
“나시파.”
내가 말해야 했다.
“나는 저승을 보고 왔어.”
- 네…?
“저승이 없을 거라고 했었잖아. 단순한 미신이라고… 약한 자들이 이승의 삶을 감당하기 어려워 만들어낸 안식처라고. 하지만 나는,”
어떻게.
어떻게 해야 전할 수가 있을까.
“나는, 저승을 보고 왔어.”
- …장의님, 무슨 말씀을…
“내가 틀렸어.”
어떻게 하면 이것을 저 녀석에게 나는,
“내가 틀렸고, 네가 틀렸어. 나시파. 저승은 실재해. 그곳은… 그러니까, 거기는 사람들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곳인데….
- 환각이네요.
단칼에, 나시파는 그렇게 잘라 말했다.
- 부상을 당했다고 하셨지요. 들었어요. 장의님답게 그 부상의 경위는 또 어떻게 ‘여왕 폐하를 감싸기 위해서’로 조작되어 있었지만… 으응, 정말 수완도 좋으신 분….
“나시파.”
- 어쨌든 그렇게 부상을 당하면 정신도 혼미해지게 마련이니까요. 의식을 잃어버린 동안 머릿속이 이리저리 널려있는 정보들을 짜 맞추고, 또 그게 어떻게 말이 되는 식으로 나열되는 거예요…. 환각, 망상… 마치 꿈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정말이지 흔하고 흔하게 벌어지는 일….
“나시파, 그런 게 아니야. 나는,”
- 아니라는 증거가 있나요…?
나는 숨을 크게 마셨다.
- 장의님, 정말 흔히 벌어지는 일이에요…. 혼미한 의식이 낳은 착각… 망상… 단순한 미망에 불과해요….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생각을, 나 역시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가령 그 모든 것이 정말로 위기에 처한 뇌가 낳은 환각에 불과한 것이어서. 지금까지 저승 임무에 등장했던 이들도 모두 현실에서 만났던 인물들의 일면들이 부각되어 만들어진 것이어서. 하누리와 선배는 그래서 닮았고, 흑치사라와 나시파도 그래서 닮아서, 비은공주는 선배와 나시파의 안 좋은 부분들만 뭉쳐놓은 것이고, 시우의 죽음은 내 동기 녀석의 죽음이 마음속에 남긴 잔상 같은 것이며, 그래서, 그래서---그 모든 생각들을, 나 역시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 나의 아들. ]
그렇지만.
[ 저는 대항해에 나서겠습니다. ]
그렇지만 도저히 그렇게는 치부할 수가 없었다.
[ 너무한 사람…. ]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것이 실재하길 바라는 내 기원이 강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건 도저히 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렇게 여길 수는 없었다.
내가 말했다.
“만약에 아니라면?”
- …장의님답지 않네요. 증명할 수 없는 것을 갖고서 논지를 전개하셔도---.
“만약에 틀렸다면?”
나는 내가 천사님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네가… 우리가 그렇게 특별한 이들이 아니라면? 조소하고 냉소하면서 높은 곳에 선 듯한 태도를 취했지만, 그저 길가에 굴러다니는 이기주의자에 불과한 것뿐이라면?”
- 무슨 말씀인가요…?
나는 야리소연을 떠올렸다.
“기술이 없고 사람의 숫자가 부족하던 시대에 인간은 약하기 그지 없었어. 식량은 언제나 충분하지 않았고 아이를 어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지. 모두 다 자신의 피붙이를 살리는데 급급해서, 남의 피붙이를 죽이는 데에는 아무런 주저도 하지 않았어.”
나는 아리야를 떠올렸다.
“그리고 자연은 강력했다. 재해가 지나가고 나면 그 자리에는 폐허밖에 남지 않았지. 사람은 도저히 거기에 대적할 수가 없었어. 하지만 얌전히 패배를 인정하고 무릎을 꿇기에는 잃은 것들이 너무 많았지. 토사에 휩쓸려 숨진 아기의 시체 앞에서, 이것이 단순한 자연의 변덕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 사람들은 신을 만들어냈지요.
나시파가 말을 받았다.
- 이 재해는 아무렇게나 찾아온 낮도깨비가 아니라고. 분명한 목적을 갖고, 그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그러니까 교섭도 타협도 가능하다고. 그럼으로써 적들보다 훨씬 더 나은 조건으로 거래할 수도 있다고. 그렇게 착각하기 위해서, 또한 착각시키기 위해서 최초의 신화와 종교는 만들어졌을 거예요.
“종교가 자연에 이유를 붙여 마음의 평화를 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나라는 몸의 안정을 얻기 위해 생겨났겠지.”
나는 주온과 비류아를 생각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어. 그러므로 여럿이 [공동]체를 이루어 자신의 특기를 살린다. 그 특기를 기술과 학문으로 남겨 후대에 전한다. 그렇게 대가 거듭될수록 무리는 커진다…. 그렇게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공동체는 더 이상 일개 부락처럼 운영할 수가 없으므로, 그것을 좀 더 효율적으로 통솔하기 위해서,”
- 법과 윤리와 도덕과 명예 등이 생겼다는 거지요…. 응, 그래서요, 장의님?
나는 시우를 생각했다.
“네가… 우리가,”
이세를 생각했다.
“비웃고, 조롱하고, 미망에 사로잡혀 헤맨다고 여기는 이들은, 요컨대 [자신]보다 그런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헌신한 영웅들이고.”
그 어떤 인생들을 생각했다.
“내가, 우리가, 영리하게 군 덕택에 얻어냈다고 여긴 이득들은, 모두 그런 [공동체]가 존재한 다음에야 비로소 있을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이어서.”
- …….
“요컨대 우리는 말이야. 나시파. 그렇게 똑똑한 것도 아니고,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니라… 그저 염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생충에 불과한 뿐이면,”
- 거듭, 우리는 틀리지 않았지만요….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 한들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되나요?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시파는 그렇게 되물었다.
-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이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기생충이 될 텐데요!
선배가 이를 악무는 것이 느껴졌다.
- 세상에 태어난 자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오직 일신의 안락함과 도전 받지 않는 지배권의 확립뿐. 단지 그뿐이지요. 그런 행위가 공동체를 해하는 바람에 장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줄인다고 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그조차도 다시 생각해보면, 무슨 상관인가요!
선배조차 주춤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날것 그대로의 논리가 이어졌다.
- 어차피 영원히 살 수는 없는걸요! 우리의 삶이 이어지는 동안 빨아먹고 팔아치우기에는 차고 넘칠 정도로, 공동체는 이다지도 거대하고, 우리들은 이렇게나 적은걸요!
“…….”
- 조금 전에 제가 이 나라에 대해 말한 내용들은, 여기 모인 그림자 군세들의 행동 원리를 해명한 거지만요…. 저는 이 나라의 역사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500년 동안 증명해주었잖아요. 500년 동안 빨아먹고 팔아 치워도, 여전히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 바보, 뭐든 간에. 그런 이들이 곳곳에서 튀어 나와 밥줄을 이어준다는 걸 알려주었잖아요.
“…….”
- 그럼 무얼 염려할 필요가 있나요! 장의님, 사양하지 마세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평생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가 보장되어 있는데, 장의님은 정말, 환각을 보고 아주 잠시 혼란에 빠지셔서….
“그 전부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폐하 대신 화살을 맞았어.”
선배가 총을 쏘아도, 화살을 날려도 얻어낼 수 없었던 것이 이 자리에 도래했다.
나시파가 입을 다문 것이다.
“폐하한테 화살이 날아드는 걸 보니까… 정말 나도 모르게 그만. 순식간에 그냥 그렇게… 폐하의 앞을 가로막고, 방패가 되었다.”
눈앞이 흐리다.
“미안해, 나시파.”
흐릿한 시야가 물기로 변해 흘렀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냐.”
나는 나시파를 생각했다.
태학관에서 저승에 대한 담론을 나누었을 때를, 선배가 내 머리를 쥐어박고 동기가 내 목을 졸랐을 적을, 그 모든 일이 있고 나서, 해가 질 적에 조용히 내게 말을 걸었던 그 아이를, 항상 건물이 드리운 그늘 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던 소녀를 떠올렸다…. 떠올리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 거야.”
그리고 저승을 보고 온 지금, 그 ‘아마도’는 그럴 수 없이 견고하게 바뀌어 심장의 한켠을 지탱하고 있었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 …….
“그러니까, 너와는 함께할 수 없어.”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 어째서.
그 침묵은, 목소리가 들려왔음에도 깨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깊이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 어째서, 왜… 양심의 가책? 마음의 오류… 정신의 오작동. …왜요? 대체 어째서? 장의님 같은 분이….
“나시파.”
- 믿을 수 없어요. 믿기지 않아요. …하지만 벌어진 일이니 믿어야겠지요. 음… 그러면, 이걸 수정하기 위해서는, 으음….
심리적인 저항감을 단 두 문장으로 극복하고, 곧바로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에 들어간다. 거기에 일절의 감정적인 자기갈등을 섞지 않는 행동이 또 한 번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었다.
- 그렇네요.
그것이 슬펐다.
- 일단 장의님을 확보하고 나서 생각할까요. …여왕 폐하도 일단은 산 채로 붙잡고 말이에요.
정말로 슬펐다.
“나시파.”
내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 바람도 이루어줄 수는 없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턱. 구운 냄새가 흐른 것 같았다.
탄내였다.
불은 눈보다 코가 먼저 알았다. 사람은 본래 불과 가까이 다가서지 말도록 생겨났는지, 탄내는 두개골을 물에 헹구어도 씻겨나가지 않을 만큼 강렬하게 들러붙었다. 쿨럭. 어디선가 기침 소리가 들렸다. 쿨럭. 그 소리가 두셋에서 열로 늘었을 때, 비로소 나시파가 반응을 했다.
- 어….
당혹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선배도 말없이 그 탄내와 기침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선배가 말했다.
“매복이 있으리란 걸 알았는데, 단순히 대처법만 전파하고 끝냈을 리 없잖아.”
땅에서 붉은 혓바닥이 스멀거리면서 피어올랐다. 피어오르며 초록이고 갈색인 것을, 생명을 가지고 생명을 피워낼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준비 시간이 길었던 만큼이나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였다.
그리고 북하산이 그것에 드리운 산 그림자째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