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신이 나라를 살림-239화 (239/261)

239. 탈환 (2)

화살촉에 묻힐 수 있는 독의 양은 미량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하물며 휴대 가능한 독이 금세 죽음에 이를 정도의 독성을 갖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러기에 거한처럼 눈과 같은 급소 부위에 맞지 않은 한 죽음에 이르는 경우는 없었다. 기껏해야 스치고 지나간 부위가 일순 저리거나, 순간적으로 심한 가슴 통증에 사로잡힐 뿐.

하지만 전투력을 깍아내는 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일부는 자신이 탄 말을 통제하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고, 일부는 무기를 떨어뜨리거나 아예 자신이 말에서 떨어졌다. 독화살에 맞은 야인들의 모습이 다른 야인들의 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꽃놀이패는 거기까지였다.

“하무라타!”

초탄 일제 사격으로 100여명을 거꾸러뜨리고, 기창 돌격과 독화살 세례로 다시금 100여명을 전투 불능 상태에 빠뜨렸다. 그러나 우리들이 준비한 패도 거기에서 끊긴 것이다.

“하무라타 에마 파하무!”

야인들 중 장식이 달린 가죽을 두른 이들이 도끼와 창이 하나로 합쳐진 것 같은 무기를 치켜들었다.

포효했다.

“우와오오오오오오오-!!!”

인류가 아직 옷을 걸쳐 입지 않았을 무렵, 짐승과 괄목할 차이 없이 무리를 이루어 거대한 야수를 쫓던 태고의 원시성이, 알을 깨고 날아오르는 불사조처럼 산야와 대로에 그 힘을 떨쳤다. 왕국병들도, 왕국병들이 탄 말들도 일순 주춤했다.

반면 야인들의 혼란은 빠르게 잦아들었다.

“바하무타 소로 이!”

야인들이 이를 드러냈다. 붙어버린 이상 조총은 쓸모가 없었기에 각자 창이나 도끼, 후열에 있는 자들은 거궁과 대나무 화살을 들어 올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름 모를 조장 중 한 명이 이를 드러내며 투구를 눌러 썼다.

“살아서 보자!”

그리고, 난전이 시작되었다.

◈          ◈          ◈

나는 손에 창을 든 채 여왕 폐하를 좇았다.

“폐하!”

여왕 폐하의 얼굴도, 머리카락도 야인들의 얼룩덜룩한 색감들 속에서는 쉬이 눈에 띄는 것이었지만, 폐하는 또한 자그마하기도 했다. 눈처럼 흰 털을 가진 토끼가 바람 부는 갈대숲에서 쉽게도 그 종적을 감추는 것처럼, 폐하의 머리카락은 언뜻 드러났다가 사라지면서 인마(人馬)의 무리 속에 파묻히길 거듭했다.

“여왕 폐하!”

내 눈은 그 끄트머리를 악착같이 붙든 채로 놓치지 않았다.

“구하러 왔습니다!”

기창 돌격을 따라 열린 틈새로 말을 달렸다. 칼로 가른 떡처럼 두 쪽으로 나뉜 야인 전사들의 무리 중 여왕 폐하는 우측의 중심부에 있었다.

“구하러 왔, 우왓 씨발!”

야인 전사의 지휘관급 한 명이 쑥 내 쪽으로 도끼창을 내밀었다. 아니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이 새끼야! 이런 걸 맞으면 내가, 아 썅! 뒤져버리잖, 개새끼야!”

말하는 와중에도 도끼창을 쑥, 쑥, 휘둘러오는 개새끼. 나는 그때마다 기겁하면서 말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다. 내가 말을 좀 타서 망정이지, 그러지 못했으면 오래지 않아 뒤졌겠지. 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행동이란 말인가? 전 인류는 물론이요 내가 아는 모든 신들조차 눈살을 찌푸리며 가래침을 뱉을 만큼 참람 무도한 악행이었다.

“니가 하는 짓이, 아! 그래도 찔, 아 씹새끼가!”

나는 분기탱천하여 외쳤다.

“아, 그래!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 이거지!? 내가 죽길 바란다 이거지!?”

“하무라 이 에르타!”

“뭐라는 거야 새끼야! 니가 그런 생각이면 새끼야!”

나는 창을 제대로 거머쥐었다.

“나도! 네놈의! 생존권을! 인정하지 않겠다!”

도끼창으로 나를 겨눈 야인 전사 지휘관을 노려보면서, 나는 어깨를 젖혔다.

“받아라! 상생불가의 탄핵 찌르기!”

외치면서, 재빠르게 허리를 수그린 채 말을 달렸다. 야인 전사 지휘관이 방어 자세를 취한 채 주춤했고, 나는 그 틈을 타서 놈을 그냥 지나쳐 달려갔다.

“하무라타!?”

야인 전사 지휘관이 뒤늦게 날 돌아보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쌩 소리가 나게 말을 달려 아군 병사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그 아군 병사는 자신과 비슷한 체급의 야인 전사와 1대 1로 창질을 하던 중이었고, 그래서 내가 갑자기 곁에서 나타난 데에 대응하지 못했다.

“비오의--- 양념치기!”

당연히 그 병사와 대적하던 야인 전사도 대응하지 못했다.

퍽…!

나는 찌르지 않았다. 아까 그 산전수전 다 겪었을 것 같은 야인 전사 지휘관 새끼도 나 같은 놈을 못 맞추고 빌빌거렸지 않느냐고. 그런 내가 말 위에서 말에 탄 놈을 찔러봤자 맞출 수나 있을까.

그러니까, 휘둘렀다.

“찌르는 건 점, 하지만 휘두르는 건 원호! 이것이 나의 수학적 해답이다!”

크게 휘두른 창대에 얻어맞은 야인 전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자 마자 그 전사와 대치하던 아군 병사가 들러붙어 끝장을 냈다.

“훌륭하다 병사여! 사흘 굶은 거지가 죽사발을 들이키는 것처럼 허겁지겁 막타를 주워먹는 그 모습 왕국의 기상이 느껴지는구나!”

“네? 어, 거지요? 사관님, 일단 도와주신 고맙습니다만 지금 뭐하시는….”

“야 그보다 뒤에! 뒤에 한 새끼 더 옴! 진짜! 진짜 완전!”

병사가 주춤 돌아섰다. 내 화려한 속임수에 농락당했던 야인 전사 지휘관이 성난 멧돼지처럼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바하무라 하무타!”

“는 니 좆이고요 새끼야!”

나는 재빠르게 병사를 지나쳐 달렸다. 한 쪽 눈을 찡긋해주면서 엄지 척을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병사여! 저 놈을 그대에게-- 맡긴다!”

“아니 이런 미친! 사관님, 아 씹, 사관님!”

“굳세어라, 병사여!”

창과 도끼가 부딪히는 소리가 대답 대신 들려왔다. 나는 흘끗 뒤를 돌아보았고, 병사와 야인 전사 지휘관이 팽팽하게 겨루는 모습을 보고서 코 밑을 쓱 훔쳤다.

“녀석, 그 짧은 새에 성장했구나…. 더 이상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겠어….”

전사들의 일대일 결투는 방해해선 안 되는 법이라고 실록에도 쓰여 있을 것이다. 안 쓰여있나? 내가 사관이니까 언제 써두면 그만이지 뭐.

아무튼 나는 서로 맞붙는 병사와 야인 전사 지휘관을 뒤로 한 채 여왕님이 계신 방향을 향해서 말을 달렸다.

“사관님 결국 뿌리는 안 변하셨군요….”

어디선가 나타난 특작조장이 내 곁에 따라붙으면서 꺼낸 말이었다.

“뭔 소린가?”

“아뇨 좀. 솔직히 요즘 뭐 잘못 처드셨나, 뒈질 때가 된 건가 젊은 양반이, 하고 기분 나쁠 지경이었거든요. 그치만 극한 상태에 이르니 찬물 한 바가지 얻어맞은 개미굴에서 개미가 술술 기어 나오듯 본성이 터져 나오시네요.”

“뭔 소린지 모르겠군. 그보다 저 쪽에 여왕 폐하가 계시네.”

“압니다. 하여간 방금 하시는 걸 보니 방해는 안 되겠네요. 갑시다.”

“좋아!”

우리는 즉각 나란히 말을 몰았다. 그러며 나는 자연스레 말고삐를 당겨 특작조장의 뒤에 붙어 갔다. 특작조장은 도통 이유를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었는데, 아마 여왕 폐하 구출에 대한 험난함을 예상했기 때문이리라.

“앞으로 세 명 정도를 더 넘어가야겠군요.”

특작조장이 말했다. 나는 창을 꾹 쥔 채 용맹하게 답했다.

“말만 하게! 네가 세 놈을 맡지!”

“사관님 그냥 묻는 건데요. 방금 혹시 ‘내가’를 ‘네가’로 잘못 발음하신 거 아닙니까?”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는 건 정치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니 양해해주면 고마울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르네.”

“미친 진짜….”

그러는 동안 야인 전사 한 놈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나는 창을 한 손으로 번쩍 든 채 빙빙 돌렸다.

“수학의 일격!”

야인 전사가 코웃음을 치더니 자신의 무기를 양손으로 잡고 1자로 세워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나는 침음을 흘렸다. 확실히 저렇게 하면 내 미력한 힘으로 휘둘러봤자 쉽게 받아내고 역공을 취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은 속임수고 사실은 구기 종목의 일격!”

나는 다른 손으로 말 옆구리에 매여 있던 곡식 가루를 집어 던졌다.

“바하타!?”

퍽! 얼굴에 곡식 가루 뭉치를 얻어맞은 야인 전사가 기침을 했다. 그리하여 놈의 자세가 흐트러진 순간, 츠팟…! 특작조장이 그 목을 긋고 지나갔다.

수평으로 날아드는 벼락처럼 깔끔한 솜씨였다. 나는 찡한 기분을 느꼈다.

“훌륭하네, 특작조장. 내 더는 가르칠 것이 없구만….”

“뭘 가르치셨습니까 저한테?”

“우정과 노력과 승리.”

“그 지랄은 타고 나신 겁니까 아니면 누구한테 배우신 겁니까….”

“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눈앞에 집중하시게! 한 놈, 아니 두 놈이 더 오고 있네!”

특작조장이 다시금 한숨을 내쉬더니 자세를 바로잡았다. 나는 다시금 그 뒤에 바짝 붙어 혹시 날아들지 모르는 창칼과 화살로부터 몸을 지켰다.

그런 우리 앞을, 두 명의 야인 전사가 가로막았다. 둘 모두 지휘관급인지 번드르르한 가죽과 도끼창을 들고 있었다.

“음.”

특작조장이 심호흡을 했다.

“이건 좀 뚫기 힘들겠군요.”

나도 같은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나는 특작조장과 호흡의 속도를 맞추면서 중얼거렸다.

“이럴 때 비류아라면 어떻게 했을까?”

“비류아가 누굽니까?”

이 세계에서는 비류아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 자체가 극히 드물다. 어느 세계에서든 죽은 자와 패한 자는 잊혀지는 것이다.

내가 지금 죽어서도 패해서도 안 되는 이유다.

심호흡을 하면서 외쳤다.

“(나는 니들이 찾는 3사관이다!)”

이전 왕궁에서 외쳤던 것과 같은 내용의 대륙어였다.

지휘관급이면 대륙어를 할 줄 알 거라 내다보고 꺼낸 말이었고, 그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야인 전사 지휘관들의 눈빛이 확 달라진 것이다.

“(카한이 내 혓바닥에 천금을 걸었다지!?)”

나는 혀를 내민 채 계속 외쳤다. 그게 가능한가 싶을 텐데, 놀랍게도 연습하면 가능하다.

“(내 혓바닥? 원한다면 주도록 하지! 와서 뽑아봐라, 너희들의 부귀영화가 여기에 달려 있으니까!)”

그렇게 소리를 지른 그대로 나는 고삐를 잡아당겼다. 이어 야인 전사 지휘관들이 서로를 흘끗 서로 긴장된 눈길을 주고받는 데까지 확인하자마자 곧장 말 머리를 뒤로 돌렸다.

달렸다.

“(필살오의! 보물 요정 도주극!)”

뒤에서 허겁지겁 그런 나를 쫓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무 타!”

“에르 바! 미 호 물렁아비 토르 바하무!!”

북방마 두 마리의 말발굽 소리가 급격히 가까워졌다.

2인 1조로 연계를 취한 것도 아니고 전사의 숙련도를 앞세운 것도 아닌, 어느 쪽이냐면 독립된 맹수들의 사냥 경쟁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크헉!?”

그리고 그 중 한 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카르마하무… 억!”

남은 한 놈도 비명을 지르더니, 이내 털썩, 말 위에서 떨어졌다.

나는 그제야 다시 말을 돌렸고, 활을 든 채 대단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특작조장과 뒤통수에 화살을 박은 야인 전사 지휘관 둘을 보게 되었다.

나는 씩 웃어주었다.

“비류아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 보물 요정이 되는 것이네.”

“뭔 소린지 모르겠고 비류아가 누군지도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 비류아란 사람이 듣고 좋아할 것 같진 않은 말이군요….”

“그건 두고 보세나.”

“언제까지 두고 보면 알 수 있습니까?”

“운이 잘 따라주면 한 50년.”

나는 다시금 특작조장의 곁에 붙어 달리기 시작했다.

“운이 나쁘면 바로 당장이라도.”

그러는 동안, 다른 병사들도 놀고 있지 않았다.

야인 전사들은 자신과 자신이 탄 말의 체구를 앞세워 폭력을 휘둘렀다. 반면 우리 병사들은 기습으로 점한 우위와 단합된 움직임, 흐트러지지 않은 오와 열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 병사들은 난전 속에서도 야인 전사들을 쓰러뜨렸다. 백중세였지만 우리 병사들의 우위였다.

삶은 달걀의 껍질이 벗겨지듯 주변의 병대들이 허물어지고, 엄중하게 둘러싸여 있던 우두머리와 놈이 앞에 태운 여왕 폐하 역시도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하무라 나후 파하타!”

우두머리 앞에 서 있던 야인 전사 지휘관이 달려 나와 그런 우리를 막아섰다.

“이 놈만 넘어서면 되는군요.”

특작조장이 말하더니, 퉷, 침을 뱉고는 무기를 추어올렸다.

“먼저 가십시오, 사관님. 곧 따라가겠습니다.”

“내가 도울 것은,”

“아니요. 우두머리 바로 곁에 있던 놈입니다. 눈을 보면 알아요. 어설픈 잔재주는 먹히지 않을 겁니다.”

특작조장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곧바로 말을 몰아 야인 전사 지휘관과 대치했다. “흐랴압!” 달려드는 기세 그대로 검을 휘두른 특작조장을, 야인 전사 지휘관은 자신이 탄 말이 풀쩍 옆으로 뛰게 만들어 피했다.

그러자 자연히 우두머리를 향해 뻗은 길이 열렸다.

“죽지 말게나.”

특작조장이 피식 웃었다.

“사관님이야말로.”

나는 말을 달렸다. 야인 전사 지휘관이 그런 날 막으려 했지만, “어딜.” 이번에는 특작조장이 그 도끼창을 후려쳐 막았다.

나는 여왕 폐하의 앞에, 그리고 여왕 폐하를 앞에 태운 우두머리 앞에 섰다.

“여왕 폐하.”

내가 말했다.

“구하러 왔습니다.”

여왕 폐하의 은빛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          ◈

나와 우두머리 사이에는 여왕 폐하밖에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