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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이 나라를 살림-238화 (238/261)

238. 탈환 (1)

“적들의 숫자는 우리들의 약 1,5배에서 2배 가량.”

특작조장은 빠르게 말했다.

“옆구리엔 조총, 등에는 활과 전통. 북방마를 타고 있는 만큼 탑승자의 체력이 우리보다 높은 편. 금속 갑주는 아니지만 털가죽을 두텁게 걸쳐 입은 만큼 방어력도 상당.”

야인들은 쐐기 꼴 진형을 이룬 채 달려오고 있었다.

“여왕 폐하의 위치는 적들의 한복판.”

야인들 가운데 홀로 검게 물들인 물소 가죽을 두르고, 사자 갈기 모양의 모자를 쓴 거한이 자기 앞에 여왕 폐하를 태우고 있었다.

“아마도 저 놈이 이 호송대의 우두머리겠지.”

말이 달음박질 칠 때마다 여왕 폐하의 몸이 흔들렸고, 폐하의 은빛 머리카락도 뒤따라 흔들렸다.

“그래도 건강해 보이시는군요.”

여기서 처음으로 특작조장이 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나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본래 궁으로 모셔오기 전까지는 산야를 뛰어다니던 분이니까.”

요인인 만큼 아직 대놓고 학대를 당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긴 시간 입에 맞지 않는 식사와 강행군을 강요당해왔을 것이다. 아직 어린 폐하께 가해졌을 부담은 필시 거대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폐하의 눈동자는 또렷했다. 피로로 반쯤 감긴 눈꺼풀 속에는 여전한 총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하루아침에 궁으로 불려와 들어본 적도 없는 예절과 절차를 산더미처럼 강요당했을 무렵에도 묵묵히 견뎌내던 분이었다.

‘그것도 일종의 포로 신세나 다를 바가 없었지.’

야인들의 포로 신세는 며칠에 불과하지만, 궁에 불려와 보낸 시간은 몇 년에 다다른다. 이미 폐하께서는 자신의 의지력과 인내력을 그 몇 년에 걸쳐 증명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우리는….’

그러기에 내가 이를 악문 것은, 야인들이 폐하를 포로로 잡은 데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로 인해 날 비롯한 궁정 관료와 귀족들이 폐하께 해왔던 처우를 새삼스레 자각한 데에 따른 것이었다.

“사관님.”

특작조장은 우수한 군인이었지만, 그런 나의 내심을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만 내 표정이 험해졌기에 어깨를 짚은 것이리라.

나 역시 지금 내가 보이는 반응이 상황 해결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지금 내가 중히 여겨야 할 것은 나 자신의 감정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말했다.

“여왕 폐하가 계신 만큼 함부로 총질을 하기도 어렵겠군.”

특작조장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내 어깨에서 손을 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기도 하고, 틀린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 모인 병사들은 가려 뽑힌 자들이니까요.”

“제대로 여왕 폐하를 피해 쏠 수 있다는 말인가?”

“첫 한 발에 한해서는요. 다만 그 이후는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세 갈래로 나뉘어 있던 우리 병력들도 한 군데 모여들었다.

특작조장은 그런 병사들을 흘끗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 첫 한 발의 효과를 극대화시켜야 할 겁니다.”

특작조장의 눈이 다시금 여왕 폐하를 호송하는 야인들을 향했다.

“무장 상태가 동등한 상황에서 병력은 저쪽이 더 많은 상태. 한없이 불리하게만 보이지만, 지금 우리에겐 한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나도 저승 임무를 뛰면서 몇 차례 전쟁을 겪어 보았다. 어렵지 않게 그 이점을 짚어낼 수 있었다.

“우리가 먼저 발견했다는 부분이지.”

“예. 공격의 주도권도, 선공권도 이쪽에 있습니다. 이 또한 첫 한 발 이후에는 사라질 것들이니, 어차피 우리는 거기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특작조장은 조총에 화약을 넣으면서 날 돌아보았다.

“그러니 사관님께서도 그 한 발에 참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잠시 후, 내 손에 묵직한 조총이 들렸다. 발톱이 유독 날카로운 새끼 늑대를 안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쏠 줄 아십니까?”

이런 상황에 허세를 부리는 미친 놈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만큼 미치지는 않았다.

“솔직히 잘은….”

“간단합니다. 이미 다 넣어놨으니까, 목표를 향해 방아쇠만 당기십시오. 그러면 총구가 향한 방향으로 탄환이 나갑니다.”

그리고 특작조장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말투는 화살처럼 빨랐지만 그 내용은 명궁이 쏜 것처럼 정확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네.”

“예, 해내주십시오.”

특작조장은 곧바로 주위에 모인 병사들과 그들을 지휘하는 조장들을 둘러보았다.

“너희도 해내야만 한다.”

특작조장의 목소리는 선배만큼이나 비장했다.

“네놈들도 조총에서 콩 볶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알 거다. 하물며 대로에서 기습을 하는 거다. 총 소리가 양평까지 들리진 않더라도 그 주변에 있는 나시파 변경백군에게는 반드시 들릴 거야. 상황이 어떻게 구르든 간에, 빠르게 이탈하지 않으면 사방에서 적의 증원들이 나타날 거다 이 말이다.”

“…….”

“첫 발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회의 탄환도 두 번째는 없다.

병사들은 굳은 얼굴로 총을 치켜들어 대답을 대신했다. 짧지만 단호하게, 야수의 발톱이 바위를 후려치는 것처럼 철커덕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좋아.”

특작조장은 시선을 아래로 내려, 이제 충분히 가까워져 크게 보이는 야인들을 노려보았다.

“간다.”

그리하여 잠시 후, 여왕 폐하 탈환 작전이 시작되었다.

◈          ◈          ◈

언덕길을 따라, 말을 달린다.

- 괜찮겠나? 나는 숙련된 병사가 아닐세.

말이 달음박질을 칠 때마다, 대지에서 튕겨 오른 진동이 심장에 울린다.

- 자칫 잘못해서 여왕 폐하를 맞출 수도….

- 예, 압니다. 그러니까 사관님께서는 아예 여왕 폐하와는 멀리 떨어진 놈을 노려주십시오.

내 얼굴에 치인 바람들이 귀에 대고서 세차게 소리를 질러온다.

- 그리고 사관님. 두 가지를 염두에 둬주십시오.

그 밖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또는 거꾸로, 세상의 모든 것이 느껴진다.

- 첫째. 이건 진짜 있어서는 안 되는 실수니까 먼저 말해둡니다. 말 타고 달려가는 동안 몸이 흔들리지 않습니까. 그 진동으로 엉겁결에 방아쇠를 팟 당겨버리는 거지요.

- 그런 일이 벌어지나?

- 예. 겁나 자주 벌어집니다. 처음 손에 조총 쥐고 말 달리는 신병 새끼들 중에 3할은 저지르지요.

바람의 향, 풀잎의 냄새, 나무 냄새, 흙의 냄새, 흔들리는 말갈기가 풍기는 말 냄새, 쏟아지는 햇볕이 마른 공기에 그려내는 천연색의 빛 무리, 어렴풋이 흔들리는 아지랑이, 내가 탄 말의 심장 소리.

도저히 처리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정보들이 머리를 하얗게 달구어간다.

- 우리는 지금 기습을 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그런 상황에 총 소리가 먼저 나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니까 총은 단단히 두 손으로 쥐고, 예, 그렇게요. 반드시 먼저 총 소리가 울린 다음에, 다른 병사들이 먼저 쏜 다음에 총을 제대로 잡아주십시오.

하얀 대지를 비스듬히 달리는 동안, 내가 내쉬는 모든 숨결은 투명하게 폐를 채운다.

- 둘째. 사관님은 총을 쏘신 적이 없다고 하셨지요.

- 그랬네.

- 그럼 이 조언이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심호흡.

- 아시겠습니까, 사관님? 맞출 부위를 보시면 안 됩니다.

대로가 급격히 가까워져온다.

대로 위를 달리던 야인들이, 급속히, 확대되어온다.

- 맞출 녀석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십시오.

- 눈을 쏘란 말인가?

- 아니요. 총을 든 손과 어깨 아래에는 의식을 완전히 끊으십쇼. 그런 상황에서 눈만, 딱 시선만 쏘고 싶은 새끼의 눈을 향하는 겁니다.

나는 개중 가장 가까이 있는 녀석의 눈을 보았다.

- 사람은 정말이지 신기한 존재라서요. 그렇게 쏘고 싶은 새끼 눈만 똑바로 보고, 그 상황에서 방아쇠를 당기면요. 놀랍게도 딱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 음.

다그닥, 다그닥, 흔들리는 말 위에서, 그에 맞추어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아, 보정해, 한 놈만 똑바로 노려보았다.

- 과연 그건 좀 과장이 아닌가. 그 말이 사실이면 사격술 훈련 같은 건 필요가 없겠는데.

- 그야 두 번째부터는 잘 안 되니까요. 어설픈 성공 경험이 괜한 잔머리랑 이상한 꾀를 부리게 만들거든요.

딱 한 놈의 눈만.

- 일종의 초심자의 행운 같은 겁니다. 충고를 충고로 받아들일 줄 아는 상태에서만, 딱 한 발째에만 통하는 기술이지요.

- 믿겠네.

- 예, 믿어주십시오.

모든 것이 일순간에 벌어졌다.

- 그럼 사관님.

어느덧 내가 달리던 언덕이 평지로 바뀌었다. / 여왕 폐하를 호송하던 야인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당혹이 떠올랐다. / 멀찍이서 불어온 먼지구름이 바람에 흩어졌다. / 엉덩이와 허벅지에 뒤늦게 느껴지는 둔한 통증과 터질 듯 아픈 폐. / 총의 무게. / 여왕 폐하의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그리고.

- 살아서 뵙시다.

어디선가, 탕…! 누군가 쏜 총의 소리가 하늘을 찢었다.

그와 동시에, 나도 총을 바로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리고 내가 내려오는 내내 똑바로 노려보던 놈이, 말 위에 타서 엉거주춤 고삐를 추스르던 그 놈이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          ◈          ◈

마치 얼어붙은 시간이 일시에 풀리는 것처럼, 세상에 색감과 소리가 돌아왔다.

“으악!”

“악!”

도처에서 비명이 터졌다. 야인들의 비명이었다. 그리고 낙마한 야인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북방마의 투레질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호소로이 바라무타!”

“바라무타! 바라무 하이무타!”

야인들이 자신들의 부족어로 무어라 소리쳤다.

쐐기꼴로 달려가던 호송대는 우측 변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언덕 위에서 달려든 병사들의 일제 총격에 제대로 얻어맞은 것이다.

“쏜 놈들은 다 총 버려! 이번엔 진짜 바닥에 내던져도 좋으니까 그냥 다 버려!”

“1조부터 6조까지 창! 7조 이하는 활 들어! 활!”

특작조장과 그 휘하 조장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에 따라 부산하게, 털그덕털걱! 병사들이 총을 내던지면서 지시 받은 대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나 또한 심호흡을 하고서 조총을 버렸다. 그리고 말 옆구리에 매어 두었던 창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서늘하게 식은 창자루를 잡자 뒤늦게 손바닥에 열통이 느껴졌다.

‘조총을 쏠 때 잘못 데었나.’

하지만 손을 움직이는데 불편함이나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런 이상 내가 신경 쓸 바 역시 아니다.

“쳐!”

창을 든 선두의 왕국병들이, 우오오오오!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언덕에서 내려오고, 총을 쏘고, 그 총을 버리고, 창을 드는 내내 조금도 속도를 낮추지 않았던 만큼, 정련된 기마 돌격이 쐐기 진형의 허물어진 부위를, 쾅…! 그야말로 정확하게 후벼 팠다.

“크악!”

“악!”

기세에 떠밀린 야인 기병이 커다란 북방마째 옆으로 넘어갔다. 그 말의 옆구리를, 퍽! 퍼퍽! 달려든 왕국 병사들의 말발굽이 짓밟고 지나갔다.

“아무 하! 바라무타!”

“바라무타 소 로이!”

혼란에 빠진 야인들이 다급하게 말을 물리거나 아예 달려 그 기창 돌격의 사격권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지만, 그들에게는 곧바로 화살이 쏟아졌다.

“쏴!”

“가운데만 빼고 쏴! 조준하지 말고 겨냥만! 안 뚫어도 되니까 그냥 최대한 빨리 쏴!”

파파파팟…! 손가락마다 하나씩 세네개의 화살을 동시에 든 병사들이 활을 쏘아댔다. 말 그대로 방향만 잡고 쏘는 것이었고, 그런 만큼 결코 위력적이지는 못했다. 퍽…! 제대로 가슴팍에 맞은 화살도 야인들이 걸친 가죽을 뚫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으아!”

“카라무이! 카라무이 에르 바!”

그러나 전투력을 깎아내는 데에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방어구에 감싸이지 않은 부위, 팔, 다리, 손바닥과 손 끝, 뺨을 향해 화살이 쏟아졌다. 그런 부위에 제대로 박혀도 좋았고, 아무튼 맨살에 생채기만 내어도 괜찮았다. “억!” “큭!” 그것만으로도 도처에서 터져 나오는 피와 비명이 가일층 혼란을 더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이 하나 더 있었다.

“에소…! 에소, 무하라 타…!”

개중 눈에 화살이 박힌 야인이 이를 갈면서 화살대를 부여잡았다.

대륙 소설 속이라면 영웅으로 떠받들릴 만한 거한이었다. 아마도 놈은 정말 그런 대륙 소설 속 영웅이나 할 법한 행위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깊이 박히지 않은 화살을 확 뽑아내어 거기에 딸려 나온 자신의 눈알을 씹어먹는다거나 말이다.

“무하라…….”

그러지 못했다.

“억….”

야인은 한 손에 화살대를,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목을 쥔 채 신음을 흘렸다. 그 신음은 곧 헐떡임으로 바뀌었고, 이윽고 경련으로 변했다.

그 다음에는 마비였다.

움직일 수 없게 된 야인은 그대로 말 위에서 떨어졌다. 퍽…! 바닥에 떨어진 야인은 손끝만 겨우 꿈틀거리다가, 구렁이가 반쯤 소화된 생쥐를 토하는 것처럼 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화살촉에 칠해 둔 독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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