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지름길 (2)
흔적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나와 특작조장이 이끄는 250명의 정예병들은 적도들의 후미를 발견했다.
특작조장은 곧바로 거리를 벌린 다음 훈시에 들어갔다.
“여기서부터 지름길로 우회한다.”
“험난한 행군이 될 것이다. 경사는 높지 않다 해도 산과 숲을 가로지르게 될 테니까.”
“하지만 너희는 왕국 최후의 희망을 짊어진 용사들. 2배나 되는 병력 차에도 불구하고 저 무시무시한 야인들을 물리친 정예병. 그중에서도 가려 뽑힌 특공대들이다. 낙오하는 꼴사나운 녀석들은 한 놈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 출발한다.”
특작조장의 생각은 올바른 것이었다. 병사들은 아무도 낙오하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의 기량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지름길을 중간쯤 왔을 때에는 모두 다 체력이 한계에 달했다. 마침 적당한 옹달샘도 발견했으므로 특작조장은 잠시 휴식을 결정했다.
“그런 상황입니다.”
특작조장이 보고했다.
왜 굳이 보고를 해왔는가 하면, 앞서 묘사된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내가 특작조장의 등에 기댄 채 뻗어 있었기 때문이겠지.
난 병사가 아니니까 낙오해도 괜찮다. 밑줄 쫙 치자.
“고맙네. 여러모로.”
“아닙니다. 머리는 아프지 않으십니까? 오는 내내 흔들렸는데.”
“깨질 것 같군 그래.”
“참으십시오. 그래도 좀 주무셨지 않습니까. 저희는 잠을 못 자서 죽을 것 같습니다.”
“음.”
밤이었다. 아무리 가려 뽑힌 굴강한 병사들이라도 최근의 일정은 초인적인 것이었는지, 곳곳에서 곯아떨어진 병사들의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특작조장도 눈가에 졸음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나는 고개를 두어 차례 흔들고서 말했다.
“자네도 좀 자두게. 나도 불침번을 서도록 하지.”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고 자시고, 자네들 중 한 사람의 전투력도 아쉬운 상황 아닌가. 잠을 좀 자야 힘을 내지.”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피곤했는지 특작조장도 금세 곯아 떨어졌다.
이름 모를 풀벌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팔짱을 낀 채 말 옆구리에 등을 기댔다.
◈ ◈ ◈
밤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잎사귀가 비벼지면서 그 사이에 맺힌 달빛이 아스라이 쏟아져 내렸다.
간간이 말들이 목을 축이는 소리, 불운하게도 불침번에 걸린 병사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외의 병사들은 각자 자기 말의 옆구리나 뒷다리를 끌어안고 기대어 누워 있었다. 이따금 모기가 날아들어 윙윙거리면 병사들이 잠결에 손을 올리기 전에 말들이 먼저 꼬랑지를 흔들어서 쫓아버렸다.
‘앞질러 가서, 놈들이 혹시 호송대를 먼저 보냈다면 가로채고… 그런 게 없다면 앞에서 얼쩡거리면서 놈들이 본대와 합류하는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킨다….’
문장으로 표현하면 간단하지만, 실제로 하자면 외줄타기가 따로 없다.
놈들의 본대가 이쪽이 예측한 시간보다 하루만 일찍 온다고 해도 이 자그마한 특작조는 해일에 집어삼켜진 소라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불안요소를 따진다면 한도 끝도 없다.
만약 적들이 꾸린 여왕님 호송대의 규모가 2백이나 3백정도가 아니라 1천쯤이라면? 이렇게 우리가 쉬는 동안 놈들은 정말 죽을 기세로 달려가고 있어서 도저히 따라잡을 각이 안 나온다면? 어떻게 잘 따라잡았다고 해도 놈들이 여왕님을 인질로 내세우면? 등등. 도무지 낙관적인 예측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잠에서 깬 특작조장이 눈을 비비고 있었다.
나는 쓰게 웃었다.
“이것저것. 좀 더 자지 그러나?”
“아뇨 뭐. 충분히 잤습니다. 늙어서 잠이 짧기도 하고요.”
“아직 젊은데 뭘.”
“누가 들으면 진짜 사관님이 늙은이인 줄 알겠습니다.”
“기분 상했나?”
“20대한테 이런 소릴 듣는 40대가 그럼 막 신나고 그러겠습니까.”
특작조장이 투덜거렸다. ‘뭐 하긴 사관님은 태학관 시절부터 애늙은이 같은 기질이 있기야 하셨죠.’ 하고 무례한 말까지 덧붙이면서.
나는 모포를 두르면서 말했다.
“자넨 불안하지 않은가?”
“불안해도 하는 거죠. 기분이야 어찌 됐건 주어진 일이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긴 시간 충실한 가신으로 봉사해온 인물다운 반응이다.
특작조장은 말 잔등을 긁으면서 나를 흘끗했다.
“왜요. 사관님은 불안하십니까?”
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사태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네.”
“윗사람다운 고민이군요. 가령 어떤 사태들을 떠올리셨습니까?”
나는 조금 전 떠올렸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특작조장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서 팔짱을 끼었다.
“요약하자면, ‘여왕님을 제때 구출하지 못할까봐 걱정이다.’ 로군요.”
“그렇지.”
“하지만 역시 쓸모없는 고민 아니겠습니까. 목적은 정해져있으니, 할 수 있는 건 그것을 달성할 수 있게끔 사람의 일을 다 하는 것뿐입니다. 천리(天理)가 그것을 받쳐줄지, 외면할지 하는 것이야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뭇잎 사이로 드러난 밤하늘은 구름 없이 맑았다.
“맞는 말이야.”
“마음 좀 편해지셨습니까?”
“음, 고맙네.”
나는 역시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뒷머리를 긁었다.
“하지만 역시 고민하게 되는구만.”
“예.”
특작조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동이 터올 무렵, 우리는 행군을 재개했다.
◈ ◈ ◈
우리들은 달렸다. 달렸다. 그리고 다시 달렸다. 별로 쉬진 않았다.
산 하나와 숲 두 개를 가로 지르고 나서, 우리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북황도의 끄트머리였다.
“여기서부터는 왕국의 북토일세.”
특작조장이 아니라 내가 지리를 설명했다. 다들 왕국 남토에서 구르던 이들인 만큼 북토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먹물을 오래 빤 데다가 저승 임무 경험으로 어느 정도 북토를 경험해본 내가 그나마 적격자였다.
“여기서 좀 더 북쪽으로 가면 나시파 변경백령일세. 다시 반나절 거리에는 북토의 심장, 나시파 변경백령의 중심지인 양평이 있지. 거기 가서 푹 쉬고 원군도 요청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그럴 수가 없네. 그 이유는 다들 알 테지만, 혹시 모르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니 다시 한 번 설명해주겠네.”
나는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무지막지한 강행군으로 죽을 것 같았지만 안간힘을 짜내어 목소리에 위엄을 둘렀다.
“나시파 변경백. 북벽의 수문장은 카한에게 붙은 배신자이기 때문이야.”
극적인 호응은 없었다.
그러니까, ‘저런 씹어 죽일!’,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저주받으리라!’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오진 않았다는 뜻이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어서인지, 그냥 나한테 선배와 같은 목소리며 연설 스킬이 없어서인지, 병사들도 다들 지쳐 빠져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건 나는 계속하여 전해야 할 것들을 입에 담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거기 가서 쉴 수도 원군을 요청할 수도 없다. 오히려 양평 주둔군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숨어 다녀야 하는 처지라 이거지.”
그 말에는 병사들 사이에서 말없는 살의가 들끓었다. 거창한 대의명분이나 애국심보다도 ‘쉴 수 없다’는 것이 더 성질을 자극하는 시점에 다다른 것이리라.
“좋아. 그럼 상황은 알았으리라 믿는다. 지금부터 쓸데없는 조우와 그에 따른 소모를 피하기 위해서 대로를 살짝 벗어나 능선을 탄다. 그 다음에는 3조로 갈라져서 고갯마루에서 길가를 감시하되, 서로 곧장 합류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다. 그리고 놈들이 여왕 폐하 호송대를 따로 꾸려 보냈다면 그것을 가로챈다. 이상. 이의 있는 이들은 더 없겠지?”
그 질문에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 알겠습니다.”
“힘내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숨어 다녀야 하는 상황인 만큼 우렁찬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으로 조용한 살기에 찬 목소리. 잔뜩 신경질이 난 이리떼의 으르렁거림에 가까운 대답들이었다. 모두 목덜미의 솜털 하나까지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위치로.”
“예.”
그렇게 병사들은 능선으로 흩어졌다. 나는 그중 특작조장이 이끄는 병력을 따라 이름 모를 고개 위에 올랐다.
특작조장이 눈썹을 찌푸렸다.
“이 쪽은 벌써 산들이 헐벗었군요. 아직 단풍이 들기에도 이른 시기인데.”
“북토는 기후가 험하니 말일세.”
“뭐 그만큼 잘 보이긴 합니다만은….”
“그만큼 다른 녀석들도 우릴 잘 볼 수 있겠지.”
내가 말을 받았다.
특작조장은 망설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구르든 앞으로 반나절에서 한나절 안에 결착이 나겠지요.”
“그럴 걸세.”
“예. 부디 좋은 결과가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혹시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사관님.”
“음.”
나는 특작조장이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특작조장은, 조금 더 망설이더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살아남으십시오.”
“…….”
“이번에 반드시 여왕 폐하를 구출하고 말겠다. 그 마음가짐은 실로 좋습니다만, 거기에만 얽매이는 것도 대국을 그르치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좀 다르게 생각해 보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어떻게 말인가?”
“이를테면 저랑 공작님이 아직 남부에서 구르고 있을 때 말입니다. 사관님이 왕도에 계실 적에, 몰려오는 야인들을 보면서 하신 걱정이 있으실 것 아닙니까.”
그야 있었다.
제때 도망을 못 치면 어떻게 하지, 그 와중에 팔이나 다리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도망을 치더라도 빈털터리가 되면 또 어떻게 하지, 내게 원한을 가진 자들에게 둘러싸이면 어떻게 하지 등등.
“아마 그중에는, 여왕님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도 있으셨겠지요.”
부끄럽게도 당시에는 그런 걱정은 대단히 희박했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작조장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뭐, 아무튼 있었다 치자 이겁니다.’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결국 그때 여왕 폐하를 지켜내진 못하셨지만, 사관님은 이렇게 또 ‘여왕 폐하를 탈환하러 갈 기회’를 얻으셨지 않습니까?”
특작조장은 턱에 난 수염을 긁었다.
“만약 이번 탈환에 실패한다고 해도, 물론 그런 일은 없는 편이 바람직하겠습니다만, 그때는 또 작전의 종류가 바뀔 뿐입니다. 침투 작전이 되거나 외교 사안이 되는 식으로요.”
나는 팔짱을 끼었다.
말이 투레질을 했다. 바람이 불었고, 바람의 결을 따라 말의 갈기가 내 몸을 간질였다.
나는 한숨을 짓고서 말했다.
“살아만 있으면 기회는 또 온다 이건가.”
“뭐 이미 알고 계시는 것이겠지만요.”
확실히 그것은 내가 이미 아는 이야기였다.
알 뿐 아니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저승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누군가에게 자랑스레 떠벌렸을 법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나는 특작조장의 말이 지닌 가치를 폄훼하지 않았다. 아는 것과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맙네.”
나는 고개를 수그려 그렇게 사의를 표했다.
특작조장은 그런 나를 한 차례 흘끗하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태학관 시절에도 이렇게 순순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더라면 선배님과 친해지지도 못했을 테고, 자네의 기억에도 남지 않았겠지.”
“맞는 말씀이군요. 결국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으려면 자국을 남길 만큼 뾰족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준비해.”
마지막 말은 내가 아닌 병사들을 향한 것이었다. 특작조장의 시선 역시 내가 아니라 멀찍이 아래 대로의 자락이 하늘과 맞닿아 생겨난 지평선을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그 지평선 위에 꾸물거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의 그림자를 향해 있었다.
“사관님. 저것들… 맞지요?”
“음.”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렇게 나타난 무리를 노려보았다. 거대한 북방마와 그 발길질이 남기는 흙 안개들. 그 한가운데 불뚝 치솟아 흔들리는 섬뜩한 문양의 깃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크고 야만적인 자들 사이에서, 마치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햇살처럼 흔들리는 백은빛 머리카락.
“맞아.”
무심결에 나는 말했다.
“여왕 폐하다.”
◈ ◈ ◈
양평 앞 대로.
차출된 정예병 250
지휘관, 특작조장 및 제 3사관.
야인들의 월국 여왕 호송대 400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