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한 오백년 (7)
다음 임무가 무엇일지 예상해보라는 비은공주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우선 몇 가지 예약 받은 임무들이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서브 퀘스트요. 저승 입주자들이 가진 한(恨)을 풀어주는 거지요. 가령 야리소연은 의료기술로 자신의 아이들을 구해달라고 했고, 저는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오호. 그럼 제 한도 좀 풀어 줄래요? 제가 아직 어릴 적 일인데요. 어떤 후작이 저를 흑구질이라는 사악한 짓에 물들이는 바람에 밤이면 밤마다 제가 죽인 사람들을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끼는 지경에….”
“그 밖에 정규 임무들이라고 하면… 그렇네요.”
나는 비은공주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몇 차례 이야기했던 거지만… 지금까지는 제가 뭔가 했던 게 거꾸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막아놓고 왔지요.”
비은공주는 쳇 소리를 냈다.
“댁이 임무 끝내기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잘 처리했나요?”
“네. 열도 놈들이 쳐들어온 것 때문에 그만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기도 했고요.”
“재활용 능력 쩌네요….”
“그런 상황에서, 세자 전하… 아니, 폐하라고 불러야 할까요.”
“제 오라방이라고 부르세요.”
“음. 공주 전하의 오라버님께선 대단히 우수한 분이시죠. 4대째 계승이 이어지면서 옥좌가 튼튼해지기도 했고요. 더불어 현성이… 그러니까 전하의 부왕께서는 긴 시간 옥좌를 데워놓았습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그렇게 제 방비책들과 공주 전하 오라버님의 치세가 합쳐진다면, 글쎄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에야 돌발적인 임무는 없지 않을까요?”
비은공주가 구두를 벗더니 발끝을 바닷물에 담갔다.
밀려온 바닷물이 조용하게 그 발톱에 스미었다.
“어처구니없는 사태라면 가령 어떤 건가요?”
“뭐 스스로 말씀하신 것처럼 공주 전하께서 삶에 실의를 느끼고 빠른 투신한다거나. 공주 전하의 오라버님께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으앙 죽음 한다거나.”
“호오호오.”
“아니면 공주 전하의 오라버님께서 나이가 좀 있으셨지 않습니까. 후사를 보셨는데 이 후사가 채 크기도 전에 오라버님이 세상을 뜨실 수도 있겠죠. 그래서 어린 후사가 왕위에 올랐는데, 고모님 되시는 분, 그러니까 공주 전하께서 그런 조카의 머리에서 왕관을 뺏으려고 하시는 거죠. 그래서 제가 딱 들어가서, 탐욕스러운 고모의 야심을 막아라! 같은 느낌의 임무를 수행한다거나 뭐 그런….”
“그건 좀 재밌겠네요….”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만은.”
나는 넌더리를 냈다.
비은공주는 바닷물에 담근 발가락을 꼬물거리면서 나를 흘겨보았다.
“해서? 돌발 임무가 생기지 않는다 치면?”
“크게 세 가지 시점을 예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나는 바람 채운 돼지 오줌보를 하나 더 마나한테 던져주면서 말했다.
“첫 번째 변곡점은 성 제국이 무너진 직후의 혼란기. 저 멀리 서쪽으로부터 판이라는 놈들이 나타나면서 개판이 됩니다. 다만 이건 휘파랑 빙의 시점 직후에 벌어지는 일인 만큼 철저하게 대비해놨습니다.”
무엇보다 알실라 정벌에서 화포를 확보한 것이 크다.
내가 비록 군사 전문은 아니지만, 최소한 모가지 위에 머리라는 신체기관은 달려 있다. 그래서 화포가 수직형 장해물과 결합되면 끔찍해진다는 건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투석기 같은 공성 병기를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이 쉽게 파괴 가능하다. 공성탑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쏠 수 있는 직사 병기 앞에서 덩어리가 큰 병기들은 고가치 표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대항하자면 저 쪽도 화포를 끌고 와야 한다. 하지만 해당 시점에는 성 제국의 심처가 아니고서야 구할 수 없는 차세대 병기다. 만약 끌고 온다고 해도 고가치 표적물이 되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럼 남는 것은 지휘부의 삽질 문제인데, 시현군 빙의 당시 보았던 나시파 변경백은 제대로 된 인물이었다. 누군가의 후예는 그 누군가가 만든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나게 마련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최소한 원기윤 같은 등신은 나오지 않을 터였다….
‘시발, 왜 이렇게 불안하지?’
나는 그 불안감을 꾹꾹 누르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두 번째 변곡점은 흑열도 녀석들이 열도를 일통하고 쳐들어오는 겁니다. 제가 살던 시기에는 327년도에 벌어진 일인데, 이때도 거의 왕국이 무너질 뻔하지요. 신 제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정말 멸망했을 겁니다.”
“검둥이들이 제법인걸요. 그건 또 어떻게 방비해두었는데요?”
“그 시기에 이르면 우리만 화포 있어, 이런 식의 우월성은 확실히 사라졌을 겁니다. 원래 그런 건 오래 유지할 수가 없거든요. 자기를 죽이는 방법에 대한 특허권은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을 하나 알게 됐지요.”
나는 날아드는 돼지 오줌보를 가볍게 잡아내려다가 얼굴을 얻어맞고는, 음, 잠깐 일어서서 마나의 머리통을 향해 전력투구를 한 다음에 다시 앉아 말을 이어갔다.
“그 놈들이랑 한 차례 교전을 해봤다는 것. 그것도 어마어마한 전력적 우위를 보유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털리는 경험을 해봤습니다.”
“얼굴 아프지 않나요…?”
“이건 정말이지 귀중한 경험입니다.”
나는 부어오른 코를 만지려 드는 비은공주의 손을 쳐내면서 말했다.
“생전의 역사에서 왕국은 열도를 얕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왕국보다 인구도 많고 생산력도 앞서고 영토도 넓고 자원도 많은데 말이에요.”
“역시 시꺼매서겠지요? 뭔가 좀 미개해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관념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나는 한숨을 지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해요. 검은 열도의 특성상, 왕국이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은 반도와 가까이 자리 잡은 몇몇 명가들뿐이거든요. 나라 대 나라로 접하는 게 아니라 나라 대 영지로 접하다 보니까 착오가 생길 수밖에 없지요.”
이러한 인식 오류는 차후 북방을 대할 때에도 똑같이 나타나게 된다.
카한, 그 개새끼가 북방을 통합하기 전까지 왕국은 북방 야만족 전체가 아니라 개별적인 부족들만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상대의 전력(全力)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짠 대전략은 반드시 파탄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바꾼 역사 속에서, 왕국은 열도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교훈은 실록의 첫머리에 적히게 될 것이다.
“이 경험이 잊히지 않게끔 하기 위한 준비도 해두고 왔어요. 왕국은 열도에 대한 대전략을 재고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왕국에게 품기에는 너무 과한 기대였던 것 같다….”
“아 좀…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잖습니까.”
흉터가 신체에 새겨진 교훈이 되듯, 패배는 마음의 양분이 된다.
원기윤의 어처구니없는 패전조차도, 왕국은 그 따위 일이 현실에 벌어질 수 있음을 되새기는 거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삼겠지? 삼아라 좀… 앗 차가.’
마지막 생각은 비은공주가 신발로 뜬 바닷물을 내 목덜미에 끼얹는 바람에 나온 것이었다.
뭐하냐 너….
“공주 전하. 사실 다음 임무 예측에 별 관심 없으신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그냥 가만히 듣기에는 손이 심심하잖아요.”
“공주 전하께 집중력만 있었어도… 아니다. 그 밖에도 부족하신 게 너무 많군요.”
“맞을래요?”
“사절하겠습니다. 해서, 만약 검은 열도의 침공까지 넘길 수 있게 된다고 치면 세 번째 변곡점은 대략 50년 뒤의 일입니다.”
나는 조약돌을 하나 들어 바다에 휙 던졌다.
“361년부터 362년까지 2년에 걸쳐 대기근이 벌어지거든요.”
실록은 그 시기를 이렇게 기록한다.
- 때 아닌 시기에 보름이 떴다. 달에 광륜이 형형했다. 객성이 어성을 범하였다.
- 대륙의 큰 강이 얼었다. 하얀 머리 산이 허리까지 시허옇게 여름을 맞았다.
- 한 달 내내 뙤약이 불타 강의 밑바닥을 드러나게 하더니 갑자기 폭풍이 친다. 불어난 대하가 인근에 세워진 저택 열 세 채를 삼키고 바다로 떠내려갔다. 물에 범해진 민가와 바람에 뽑혀나간 나무의 숫자를 셀 수 없다. 낮에 대로에 나가도 다락 안에 들어가 웅크려 있는 듯 컴컴하고 매미가 사라진 산에서는 개구리들이 떼 지어 울부짖는다. 경전에 기록된 큰 비도 이보다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근은 왕국에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열도도, 대륙도, 그야말로 왕국이 교류를 맺고 있던 경제 범위 전체가 통째로 재변을 맞이했다. 이래서야 어디서 바가지 쓰고 식량을 사올 수도 없다.
그리고 식량은 부패하는 소모품이다. 그나마 오래 가는 곡식들만 쟁여 놓는다고 해도 그 저장 기간에는 한계가 있다. 하물며 연이은 수재(水災)는 공작들의 곳간마저 좀이 슬게 만들었다.
미증유의 재해.
“이것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조약돌을 바다에 던졌다.
“예언과 암시를 동원해서 경고를 남기고, 곳간을 짓는 방도를 정비하고. 식량 평균 비축량을 종래보다 더 늘리고…. 딱 그 정도. 나머지는 사람들이 잘 해주길 바라야죠.”
“어라, 당신이 그런 태도를 취하는 건 의외인걸요.”
“하늘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습니다. 피해를 입힐 방도가 없잖습니까.”
설령 그 시기에 내가 임무에 들어간다고 뭐 할 수 있는 게 없다.
기껏해야 100명 죽을 걸 99명 죽는 정도로 바꿀 수 있을까.
“기근까지 넘긴다 치면요?”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면 제가 살던 시기까진 큰 굴곡 없이 넘어가겠지요.”
“오. 그럼 그 대기근이 마지막 임무가 되는 건가요?”
“실제로 제가 살아난다 치면, 카한이 통합한 북방 야만족 놈들을 막아내는 게 마지막 임무가 되겠지만요.”
“흐응.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잠시간 침묵했다.
비은공주는 구두를 손가락에 걸고는 빙글빙글 돌렸다.
“솔직히 절치부심했을 것 아닌가요? 당신이 여기로 온 계기인데. 몇 차례 머릿속으로 준비하고 대비하고 그랬을 것 같은데. 어때요? 가능성 있어 보여요?”
음.
“여러 가지 생각해둔 것은 있습니다. 가령 제가 살아있던 당시 북벽의 책임자, 그 배신자 녀석을 미리 갈아치운다거나. 폐하를 미리 피신시켜둔다거나. 군대를 미리 북부에 소집시켜둔다거나.”
“닥쳐올 일들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다는 게 최강이네요.”
“예. 그만큼 정확한 대비를 해둘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대비해두면 뭐든 어떻게든 되는 법입니다.”
나는 지난 임무들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제가 들어간 임무들이라는 건 전부 그런 것들이었죠. 미리 준비해두지 못했거나, 장기적으로 잘못된 대응을 했다거나….”
“헹, 말로 하니까 쉬워 보이지. 막상 그때 가서 ‘이거 왜 미리 안 해뒀어’ 해봐요. 구두 굽으로 주둥아리만 얻어맞을걸요.”
“무언가를 대비하는 데에는 끝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그걸 대비하는 게 통치자가 해야 할 일이죠.”
“나라를 경영한다는 건 어렵네요….”
비은공주는 젖은 발끝 그대로 구두를 신더니, 한 쪽 무릎을 안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저라면 그냥 부귀영화나 신나게 누릴 텐데요. 덤으로 내 사람들 좀 챙겨주고요.”
“솔직히 저도 딱 그 정도가 사람이 할 수 있는 한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목숨이 걸리지 않았으면 저도 거기까지만 했을 거고요.”
“그치만 그 이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죠. 어떻게들 그럴까. 신기하게시리.”
“….”
나는 야리소연이 했던 이야기를, 그리고 천사님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고개를 들었다.
마나가 멀찍이 떠내려가던 참이었다. 야리소연이 헤엄쳐서 그런 마나를 붙잡았다. 마나는 야리소연을 다람쥐처럼 꼭 붙들고는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 야리소연은 달라붙은 마나를 어르면서 이쪽으로 헤엄쳐왔다.
“그러게요.”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떻게들 그럴까요.”
◈ ◈ ◈
역사가 흐른다.
달의 여신 교단은 날개를 단 것처럼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대륙에도, 열도에도, 심지어 북방 야만족들에게 이르기까지 달의 여신의 교리가 퍼져 나간 것이다.
그것은 다시 한 차례 역사의 흐름을 크게 바꾸었다.
검은 열도의 난이 벌어지지 않은 것 역시 그 영향일 것이다. 열도 자체가 통일을 맞이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조금 통일이 늦어진 것일 지도 모른지만, 그때는 이미 시기가 늦어 있었다.
왕국력 361년.
가뭄이 왔다. 폭풍이 닥쳤다. 황충의 떼거리가 반은 마르고 반은 썩어버린 작물들을 갉아먹고 지나갔다. 한여름에 우박이 내리고 그 우박은 눈으로 변해 산야를 덮었다.
그리하여 대기근이 시작되었다.
본디 이 대기근은 왕국이 아는 모든 세계를 집어삼켰다.
별의 목소리를 듣던 제사장이 남긴 체제 덕분에 왕국의 식량 비축량은 다른 곳보다 다소 많기는 했다. 하지만 그 체제라는 것도 수 백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같은 인물이 재해를 예언했다는 기록도 실록에 남아 있었지만 불길한 예언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왕국은 여유가 없었다. 왕국이 그런 지경이니 본디 척박하던 북방은 물론이요 대륙이나 열도 역시 여유가 없었다.
만에 하나 여유가 있다고 해서 과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바가지 가격으로 식량을 사게 되리라는 우려조차 김칫국에 가깝다.
여유가 있는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약탈하러 갈 지역조차 없다’는 뜻이며, 그저 버티고 버티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정 이상의 크기를 가진 조직이 가장 무너지기 쉬운 것이 바로 이런 상황이다. 능동적인 타개법을 주창하고 시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전략은 각자도생이다. 그런 세계에서 국가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러기에 기근은 유사 이래 수십 개나 되는 나라를 잡아먹어왔다.
- 성지가 있다.
하지만 바뀐 역사에서는 달랐다.
- 성지는 기근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 과연 달의 여신이 눈여겨본 땅이다.
왕국이 알던 세계의 한계선은 이미 100년도 전에 성지의 빈객들이 도래하면서 크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대륙 전체보다도 훨씬 더 멀리, 그야말로 아득한 뱃길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성지는 재해를 비껴갈 수 있었다.
- 그곳에는 먹을 것이 있다고 한다.
같은 가치를 존중하는 집단에 속한다는 것은 유사시에 해당 집단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 성지 측에서는 같은 여신을 믿는 동포들에게 구휼을 베풀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지 측에서 대륙, 열도, 왕국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것은 그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성지는 그곳에 있었다.
그것은 왕국이 알며, 왕국의 손이 닿는 곳에 여유가 있는 곳이 있음을 뜻했다.
- 성지로 가자.
동시에 국가가 능동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방향성’이 존재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 달의 여신을 향해서 가자.
왕국뿐 아니라 대륙과 열도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곳은 거래를 위해서, 어느 곳은 약탈을 위해서, 다시 어느 곳은 보호를 위해서 움직였다. 대기근을 계기로 촉발된 굶주리는 자들의 싸움은 세계 전체로 확장되었고, 2년이 흘러 겨우 정상적인 봄을 맞이하며 끝났다.
혹독한 시기였지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견뎌낼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역사가 흘렀다.
그리고 왕국의 시계는 내가 살던 시기.
왕국력 500년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