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아홉 가지 문답 (1)
“무엇을 물어보고 싶습니까?”
천사님은 회에는 손을 대지 않고, 옆에 놓인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입가….
“우선 항상 천사님이 뭔가를 드실 때 어떻게 드시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무튼 면사포를 쓰고 계시니까요.”
“저는 뭔가를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방금 찻잔을 손에 드셨는데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서 대화를 하면 분위기가 불편해지니까요. 그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몸짓을 해보일 뿐입니다.”
그렇게 말한 천사님은 찻잔을 면사포 위에 가져다 댔다가 뗐다. 면사포 자락이 흔들리고, 그 아래 목에 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독 눈에 띄었던 그 상처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는 여러 임무들을 거쳐 왔습니다.”
야리소연, 아리야, 비류아.
그리고 다시 비류아, 이세, 이세, 이세.
현성이, 지금 또 한 차례 현성이.
“그 임무들을 거치면서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굳이 해당 시기 옥좌에 앉아있는 은월의 피가 아니더라도,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 모두를, 살아생전 알고 지내던 이들보다 더 잘 알게 되었지요.”
살아있을 적에는 천사님의 과거시가 없었다. 스킬이 없었다. 건물 효과 같은 것도 없었다. 원하는 시간만큼 누군가와 독대할 수 있는 곳, 저승조차 없었다.
반칙이 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온전히 투자한 노력만큼만 누군가를 알 수 있었다. 그마저 헛고생으로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본심을 숨긴 채 연기를 하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현실 세계에서는 죽으면 죽기 때문이었다.
삶은 유한했고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자원은 그보다 더 적었다. 피해 대부분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의미했다. 그런 상황에서 선의를 의심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전제로서 우리는 서로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속내를 알아차렸다는 생각은 그런 두려움을 누르기 위한 누름돌이었고, 누군가를 믿는다는 행동은 일종의 자포자기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는 그렇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많은 사람들을 아주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처음부터 함께 했던 천사님. 당신에 대해서만큼은 아는 것이 없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천사님의 면사포는 검었다. 그러나 임무에 들어갔다 돌아올 때면 그 면사포가 희어지곤 했다.
나로서는 그 규칙성을 알 수 없었다. 내가 천사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중의 한 가지였다.
“이렇게 하지요.”
천사님이 말했다.
“당신이 지금까지 수많은 임무를 거치면서 고생했다는 사실을, 자모신뿐 아니라 저 역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포상… 이라 칭하면 과연 거창한 이야기입니다만, 아무튼 그러한 덤을 드린다고 해도 그것을 과하다 말할 이는 없을 것입니다.”
“즉?”
“당신이 지금까지 달성한 임무들. 그 숫자에 해당하는 질문에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속에서 헤아렸다.
“정규 임무만? 아니면 개인 임무까지 쳐서?”
“정규 임무만 치지요.”
“그럼 모두 아홉 가지 질문이군요.”
“그리 되겠습니다.”
아홉 가지 질문.
나는 마음을 다잡고서 천사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을 입에 담았다.
“천사님께서는 어쩌다가 목에 그런 상처를 입으셨습니까?”
천사님은 곧바로 대답했다.
“제가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인다면, 아마 그걸 연상할 만한 광경을 당신이 언젠가 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것도 그 자모신 렌즈와 관련된 거군요.”
“예.”
“저승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천사님은 목에 상처를 입고 계셨지요. …즉 저는 천사님을 그 이전에, 즉 이승에서 이미 본 적이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천사님은 가문돔 회를 한 점 집어 면사포 너머로 가져갔다.
천사님의 설명을 빌자면 이 또한 분위기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몸짓이겠지만, 거기 담긴 또 다른 의미 역시 나는 알 수 있었다.
어느덧 접시 위의 회가 여덟 점으로 줄어 있었던 것이다.
‘대답은 끝났으니 다음 질문을 하라는 뜻이겠지.’
나는 그렇게 했다.
“천사님께서는 어쩌다가 자모신을 만나게 되신 겁니까?”
첫 번째 질문과 달리 그 질문은 천사님을 멈칫하게 했다.
잠시 후, 천사님은 나의 의중을 묻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어차피 천사님은 제 마음을 읽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나는 고양이가 강아지를 타고 세상을 호령하는 풍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내가 왜 자모신에 대한 질문을 했는지 얼버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물론 그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난데없이 몰려든 어린 아이들이 고양이와 강아지를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손길에 길들여진 두 짐승은 자신들이 호령하던 내 마음 속 세상을 실재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넘겨주었다. 이로써 신화의 시대가 끝나고 인간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천사님. 마음을 읽는 것까진 그렇다 치겠는데 침공까지 하십니까 왜.”
“당신이 숨기잖습니까.”
“저는 제 마음을 숨길 권리도 없습니까요… 어, 그런데 잠깐만. 마음속에 침공할 수 있다는 것은 의미 그대로 사람 마음을 주물럭거릴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즉 저는 지금 정말 제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는 그저 천사님이 유도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다거나….”
“아, 좀, 간신이여. 상황을 이 이상 복잡하게 꼬지 마십시오. 그냥 마음을 발가벗으면 끝나는 일입니다.”
나는 수줍음 속에서 그렇게 했다. 그 결과 천사님은 내가 자모신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 이유를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달의 여신은 사이비라고 하셨고, 이 세상에 많은 신들이 사이비라는 건데. 자모신은 어쨌든 실제로 권능이 있는 신이잖습니까. 그렇게 힘을 지닌 신과 만나게 된 과정이 궁금한 것입니다.’
천사님은 한숨을 짓고서 대답했다.
“제가 자모신을 만나게 되었다기보다 자모신이 저를 찾아왔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습니다.”
“찾아왔다면….”
“건국신화에서 이야기된 것처럼, 우리 왕국이 멸망에 처하면 한 차례 더 기회를 준다는 것이 자모신의 약조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약조를 이행할 순간이 왔을 때 저 또한 자모신의 존재를 알게 된 것입니다.”
천사님은 다시 가문돔 회를 한 점 집어먹었다.
남은 회는 일곱 점.
“왜 우리 왕국이 특별합니까?”
나는 천사님이 굳이 내 마음을 읽을 필요가 없도록 소리 내어 설명했다.
“사람은 죽으면 그냥 죽습니다. 나라도 망하면 그냥 망하지요. 야만족들에게 멸망한 왕국은 그야 비참하게 멸망했습니다만, 따지고 본다면 그 비참함이 과연 나투아의 그것보다 더하겠습니까? 알실라는 고통스럽지 않은 멸망을 맞이한 것입니까?”
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테면 비류아의 어머니가 속했던 집락은 평온한 마지막을 맞이했기에 그런 기회를 받지 못한 것인가. 그럴 리 없지 않은가.
그런 나를 천사님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이리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없다. 그리고 없어야 한다. 이유가 존재한다면, 그 이유가 사라지면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될 테니까.’ 그런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있어 보이는 것 같지만 말도 안 되는 말이군요. 그런 사람에게 저는 ‘이유 없이 주어지는 것은 이유 없이 거두어질 수도 있다.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를 지키는 것을 통해 지키려 해볼 수도 있겠지만, 이유가 없다면 그럴 수조차 없으니까. 결국 [너는 그냥 나한테 매달리고 빌어라] 같은 말을 하고 있을 뿐 아닌가.’ 하고 말해줄 겁니다.”
“그렇지요. 당신은 사랑에 대해서도 가치를 매겨야만 안심할 수 있는 가엾은 사람입니다.”
“공정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이라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보다 질문에 대답해주십시오.”
“저희 왕국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천사님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을 이었다.
“자모신은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한 번의 기회를 주려고 하시지요. 당신이 언급한, 당신이 생각한 그 모든 이들이, 한 차례는 기회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 그물코가 넓고 성긴 듯하나 빠뜨리는 사람 한 명 없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님은 가문돔 회를 한 점 집어먹었다.
남은 회는 여섯 점.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란 게 어떤 뜻입니까?”
천사님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
면사포 너머로 내가 아니라 식당의 천장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신의 그 놈의 절개 철학과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만….”
“….”
“스스로 원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결국 그들의 부모가 서로 몸을 겹쳤기에 태어나는 것이지요. 거기에 태어나는 사람 개인의 의지가 기여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
어떤 식으로 의지를 가지려고 해도 태어나기 전이니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태어나는 자 본인이 그 탄생에 책임이 있다고 위해서는, 영혼과 전세, 그리고 환생이라는 개념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저승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 개념에 나름대로 관용을 갖게 되었지만, 저승의 존재를 알지 못하던 옛날에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읽지 않은 것인지, 천사님은 잠시간 침묵했다가 단번에 말했다.
“만일 어떤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태어난 시점은 물론이요 그 후에도 줄곧, 자기 자신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환경과 타인에 의해서만 휘둘린 사람이 있다고 해보지요. 그 사람이, 이 역시 당신이 자주 언급하는 것입니다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죽음조차 맞이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자모신께서는 그 사람을 돌이킬 수 없이 불행하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천사님은 가문돔 회를 한 점 더 먹었다.
남은 회는 다섯 점.
“…왜 자모신께서는 그런 불행한 이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십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자모신 시스템에 대해 모르시는 것처럼 말입니까.”
“어쩐지 시비 거는 것 같은 말투군요….”
“아니, 천사님 솔직히 좀…. 휘영이에 대한 것도 그렇고….”
“열 받는군요…. 아무튼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추측을 이야기해도 좋다면 자모신께서 자애로 가득 찬 분이셔서 자신이 가엾게 여기는 이들에게 특혜를 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길거리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처럼 말이군요.”
“정말이지 불경하군요. 그보다 저에 대해 물어본다더니 왜 자모신에 대해서만 여쭤보십니까?”
“왜냐면 결국 제가 천사님에 대해 아는 것은 당신이 자모신의 사도라는 것뿐이니까요”
천사님은 침묵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정말로 그만큼이나 천사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천사님은 어깨를 움츠렸다. 풀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듯하다가, 가문돔 회를 한 점 더 집어먹었다.
남은 가문돔 회는 이제 네 점.
“천사님께서는 저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성격 말입니까, 능력 말입니까?”
“전부 다 바라고 있습니다.”
“날로 처먹으려드는군요. 차라리 ‘제가 궁금해 하는 모든 것을 계속해서 대답해주십시오’ 같은 질문을 하시지 그러십니까.”
뭐지? 천재인가?
“예, 천사님. 그럼 제가 궁금해 하는 것을 모든 것을 대답….”
천사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나는 그 소매를 잡아 자리에 다시 앉히면서 말을 이었다.
“…해주실 필요는 없고… 음. 천사님께서는 그… 저를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왜 쑥스러워하고 난리입니까… 기분 나쁘군요.”
천사님이 한숨을 지었다.
“그렇게 기분 나쁜 구석도 있습니다만… 그렇군요. 운 하나는 좋고. 자기 혓바닥 돌아가는 속도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나 있다는 게 걸리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는….”
천사님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뭐 머리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생긴 것도 그 정도면 준수하고요. 인간성도, 처음에는 정말 무슨 이런 폐기물이 다 있나 싶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
“요컨대 간신이여. 당신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고, 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마무리 짓고 싶군요. 아니, 마무리 짓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천사님은 가문돔 회를 한 점 집어먹었다.
어느덧 회는 세 점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