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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이 나라를 살림-209화 (209/261)

209. 간신 보완 계획 (1)

“아직 조금만 더 이어집니다.”

“뭔 소린가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그보다 공주 전하, 뭔가 낚인 것 같네요.”

“앗싸!”

비은공주가 낚시대를 잡아챘다. 그리고, “우악!” 한 차례 끌려 들어갈 뻔하다가, 나와 주변 사람들이 다급히 잡아주어 이 악물고 반격에 들어갔다.

생사대적을 맞이한 듯한 힘겨루기 끝에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낚여 올라왔다. 10년쯤 묵은 알실라제 강철 사슬 갑주를 두른 것처럼 번들거리는 비늘에 창날처럼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였다.

생긴 건 험악해도 맛있는 녀석이다. 휘영이 시절에 자주 먹었는데, 이름이 아마도….

“가문돔이군요. 순이 아닌 이 시기에 이만 한 놈이 낚이다니, 공주 전하께서는 제함도에 계실 적보다 바닷것들을 거느리는 위엄을 늘이신 듯합니다.”

시아람 경이 말한 것처럼, 그렇다. 가문돔이다.

비은공주가 이히히 웃었다.

“바로 먹을까요? 저 지금 배고픈데.”

“예. 숙수를 대령하라 이르지요.”

“엑 별로. 그럼 오래 걸리잖아요? 안 그래도 피 빼려면 겁나 걸리는데. 제가 하고 말지.”

비은공주는 행낭에서 단검을 꺼내더니 능숙하게 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먼저 아가미와 꼬리를 베어 피를 빼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보신 솜씨가 아니네요.”

“배 타면서 할 만한 놀이는 낚시 정도니깐요. 그리고 저는 공주잖아요? 사략질 시작하고 나서 제 입에 들어오는 걸 남들한테 맡기기까진 시간이 걸렸거든요. 잡스런 일들이 하도 많아서.”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네, 제가 좀. 그치만 사실 밥 차려 먹는 것쯤이야 알아서 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말리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높으신 분이 이런 걸 직접 하시면 위신이 깎인다면서.”

“유리아야 좀 시끄럽게 굴었죠. 그치만 요리해 주는 사람 없어졌다고 굶어 뒤지면 그건 위신이 아니라 등신이잖아요. 오라방도 사냥 좋아하는데 자기가 잡은 노루 손질해서 구워먹는 정도는 할 줄 안다구요.”

정말이지 생존력 넘치는 왕족들이다….

“해서? 공자. 낚시는 갑자기 왜 하자고 한 건가요?”

“별의 목소리가 시켜서요.”

지금에 이르러선 세자는 물론이요 상현공도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가게 된 만능 변명이었지만 상대는 비은공주였다.

“왜 시켰대요?”

음.

“공주 전하, 혹시 남을 가르치는 일에 흥미 있으십니까?”

피 빼기를 마치고 비늘을 긁어내던 비은공주가 멈칫했다.

비은공주와 그 손에 잡힌 가문돔이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곁에서 듣던 시아람 역시 가문돔과 비슷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설명했다.

“제가 신규 제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지요?”

“그거야 뭐…. 공자의 아빠가 잔월 공작가 출신이기도 하고 별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아니, 있을라나? 신전 쪽 사정은 영 모르겠네요.”

“없을 수야 없겠죠. 그치만 그런 것들이야 제가, 더 정확히는 세자 전하께서 어떻게든 해주실 일들이고. 그렇게 제사장이 된 다음에 벌이게 될 평생 사업이 제가 지금 드리고자 하는 안건이에요.”

“뭘 할 생각이기에?”

“태학관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에요.”

“으-음. 일단 한 걸음 떨어지세요. 지금부터 비늘 튀길 건데 맞으면 좆나 아프거든요.”

나는 재빨리 비은공주 곁에서 물러났다. 시아람이 그런 내 앞에 서서 해일과 맞서는 장벽처럼 다부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시아람 경, 그냥 경도 좀 물러나.”

“아, 네. 도련님.”

시아람이 머쓱한 얼굴로 물러섰다.

그렇게 자리가 마련되자 비은공주는 칼을 모로 세워 득득 가문돔의 비늘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어린애 손톱을 연상케 하는 비늘들이 투두둑 튀기면서 우리가 낚시터 삼은 갯바위 위로 떨어져 내렸다.

얼마 후, 이마를 닦은 비은공주는 그렇게 떨어뜨린 비늘을 줍더니만 얍 소리를 내며 나한테 집어 던졌다….

“뭘 하시나요 공주 전하?”

“아니 그냥…. 흠. 제사장이 되어서 태학관 확대? 태학관과 관련 있는 건 재상 쪽 아니었나요?”

“논의를 해 봐야지요. 논의가 잘 안 먹히면 재상까지 겸직해버리면 되고. 그치만 그럴 필요까진 없을 거예요.”

“그래요, 뭐 그거야 공자가 알아서 한다 치고… 태학관은 왜요?”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서예요.”

그리고 나는 세자에게 전했던 계획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비은공주는 바로 알아들었다.

“왕국을 짊어질 인재들을 전방위적으로 키워내자 이거죠?”

“예. 왕국의 크기도 커졌고, 나라 차원에서 상대해야 할 이들 역시 삼국 시대와는 비할 수 없이 거대한 작자들입니다.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쪽도 그만한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나도 좀 편해지고 싶고.’

사람들이 제자를 키우는 이유가 다 무엇이겠는가? 부려 먹으면서 본인은 이런 갯바위 같은 데 앉아 낚시대 드리우고 꿀 빨기 위해서다.

[간신 조련사: 간신답게 생각하는 방향이 참 약아빠졌군요. 자신이 익힌 기술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이유도 있지 않겠습니까?]

‘정신적인 번식 욕구 말이죠. 인정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이유도 사실 비슷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자식들한테 면목이 없는 부모들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거고요.’

[간신 조련사: ….]

‘말이 샜네요. 뭐 아무튼….’

나로서는 별 시시한 일로 임무에 끌려 들어오는 건 피하고 싶다. 왕국 인재들의 질이 좋아지면 어지간한 일들은 알아서 처리할 수 있겠지.

‘괜히 내가 휘영이 시절 영지 경영 요령을 파급시켰던 게 아니라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비은공주가 말했다.

“가르칠 과목을 늘리겠다는 건 이해해요. 그치만 저를? 제가 동해에서 짱 박혀야 한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제가 뭘 가르칠 수 있을까요?”

말하는 동안에도 비은공주는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피를 빼는 게 오래 걸렸지, 가문돔의 내장과 대가리와 껍질과 뼈와 꼬랑지는 순식간에 분해되어 바다로 돌아갔다.

“보다시피 회 치는 건 자신 있지만, 물고기 회 치는 건 어부가 더 잘 할 테고 사람 회치는 건 전사가 더 잘 하겠죠.”

“공주 전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방금의 처사는 다소 안타깝습니다. 가문돔의 내장은 똥을 뺀 다음 젓갈을 담그면 술과 잘 맞고, 대가리와 꼬리, 뼈는 국물을 내면 시원하며, 비늘을 떼어낸 껍질은 끄슬려 말리도록 구우면 맛있습니다만….”

“보세요. 시아람 경이 빠르게도 딴지 걸고 앉았잖아요. 누가 아저씨 아니랄까봐.”

“제가 죄송하네요….”

“네, 공자. 앞으로는 똑바로 관리해 주세요.”

가문돔의 살점이 접시 위로 옮겨졌다. 비은공주는 손가락으로 집어 입 안에 던져 넣고는 우물거렸다.

나도 한 조각 집어먹었다. 첫 입맛은 조금 새콤한데 씹을 때마다 고소한 감칠맛이 도는 게 내 안의 묘한 감성을 자극했다.

“태학관을 확대하는 것은 긴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일이예요. 그리고 왕도에 있는 태학관 부지만 넓힌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 아무리 크다 한들 하나의 바구니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는 제한되게 마련이고, 만에 하나 그 바구니가 부서지면 달걀도 모조리 깨어지니까요.”

비은공주는 꿀꺽, 소리를 내어 회를 삼켰다.

“흠. 그래서요? 왕국 땅 곳곳에 태학관 아래에 속한 학관들을 만들자고요?”

“예. 그리고 이 부근… 이라고 해야 하나. 전 알실라 영토에 세워질 학관들은 공주 전하께서 총괄해주시는 좋겠어요. 동해 지키시면서 겸사겸사.”

“왜 굳이 제가? 제 눈깔이 은빛이라서?”

“일단은 그 말이 맞는데, 그건 너무 결론만 말한 거니까 좀 풀어 설명 드리자면….”

나는 헛기침을 하고서 손가락을 폈다.

“첫 번째. 그렇게 왕국 곳곳에 학관들이 많이 생긴다고 쳐보세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비은공주는 팔짱을 끼었다. 잠시 후, 그녀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이상한 거 가르치는 놈들도 늘겠네요.”

“네. 기술을 잘못 가르치는 학관들이야 자연스레 도태될 테지만, 기술을 똑바로 가르쳐도 애들 머리에 이상한 사상을 심어 놓으면 그건 진짜 골치 아파져요. 공주 전하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솔직히 왕국이 원한 살 짓들 많이 하기도 했잖아요? 왕국은 잔혹한 곳이었고 왕국이 망하길 바라는 사람들은 잔뜩 있을 거예요.”

“이노옴… 어딜 감히~ 왕국에 대고… 그 따위~ 막말을 하고 앉았느냐~! 여봐라~ 저놈의 목을 쳐라!”

“꿀맛나는 공주님의 농담에 아주 그냥 제가 뒤집어지고 자지러지고… 아니 시아람 경. 공주 전하께선 그냥 농담하신 거니까 앉아. 입이나 벌려. 이거나 먹어. 그래, 잘 먹는다 우리 시아람 경.”

쓰다듬어 주려다가 그건 좀 그래서 그냥 회나 한 점 더 먹이고 말을 이었다.

“두 번째. 기술은 부(富)의 원천이에요. 기술을 독점하면 그 기술로 벌 수 있는 부도 독점하게 되죠. 가문이나 명장들이 자신의 비전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그러기에 여러 가지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은 필연적으로 그런 이들의 반발을 사게 돼요.”

“흐음.”

“세 번째. 기술을 가르쳐주는 곳은 그 기술이 벌 수 있는 부를 노리는 이들을 끌어 모아요. 그런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니까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선별 과정 중 절반쯤은 역시 돈이죠.”

“학관은 돈이 된다 이거군요.”

“네. 이상을 종합해보면….”

1 애국심 함양을 위해.

2 견제를 극복하기 위해.

3 수익을 관리하기 위해.

“지방 학관 사업은 왕가의 종친 독점 사업으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해요.”

비은공주는 회 한 점을 더 집어먹고는 쪽, 엄지손가락을 빨았다.

“혈통마랑 소금처럼 말이죠…. 좋아요. 다 이해했는데, 1번은 거꾸로 좀 위험하지 않아요? 저만 해도 평생 독신으로 살잖아요. 야심만만한 종친 중 한 명이 자기가 맡은 학관들을 통째로 사병화하거나 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음.”

나는 잠시 비은공주를 바라보았다.

“예리한 지적이에요.”

“제가 좀 날카롭죠. 이 가문돔 지느러미처럼 말이에요….”

“머리랑 꼬랑지랑 버릴 때 왜 그건 안 버리신 거죠?”

“멋있지 않아요? 가령 제 견갑에다가 이렇게 붙인다 치면….”

“멋있네요…. 그치만 버리세요.”

비은공주는 그렇게 했다. 밀려온 바닷물이 지느러미를 집어삼키고 흰 포말을 남겼다.

“공주 전하.”

“네.”

“저는 세 가지 말씀을 드릴 수 있어요.”

“들어보지요.”

뒷짐을 진 공주에게 나는 반대쪽 손가락을 펴보였다.

“첫 번째. 당연히 그에 따른 대책을 준비할 거예요. 그리고 그 대책이 무엇인지는 왕위와 관련된 사람들 외에는 알지 못할 테지요. 당연히 공주 전하께서도 알지 못하실 테고요.”

손가락을 하나 더 펴보였다.

“두 번째. 그런 모든 대책이 무의미한 헛수고에 불과하다면. 공주 전하께서 자신의 충심이랄까, 무해함을 증명해 내신다면. 후대에 여러 은월들이 생긴다 해도, 공주 전하보다는 느슨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공주 전하 스스로가 일종의 전례가 되는 거지요.”

마지막 손가락을 펴보였다.

“세 번째. 중요한 것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결혼을 못 하시고 아이를 못 두셔도, 제자를 기르시면 좀 마음이 나아지시지 않을까요?”

나는 비은공주를 따라 뒷짐을 진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어머님께서는 공주 전하께서 바다로 나가게 하여 자유를 맛보게 해드렸지요. 그 아들인 저는 공주 전하께서 자식 대신 제자들을 가르치며 만족을 얻으시길 바라요.”

비은공주는 감동하지 않았다. 빡친 고슴도치처럼 입술을 내밀었다.

“휘영 아지매가 저를 바다로 내보낸 건 그게 왕국에 필요했기 때문이고, 공자가 저한테 학관을 맡기려는 것도 그게 왕국에 필요하기 때문이잖아요.”

“사실의 한 측면이죠. 어느 쪽이든 원하는 것을 골라잡으세요.”

“아아, 정말 말이나 못하면. 혓바닥을 확 잡아 뽑고 싶어라.”

음.

“그렇게 혓바닥을 뽑힌 제게 어떤 가치가 남을지 모르겠네요.”

“나 참.”

비은공주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는 ‘아 젠장, 손 씻고 긁어야 했는데’ 하고 투덜거렸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다 좋은데, 공자. 조건이 하나 있어요.”

그렇게 말한 비은공주는 손가락을 뻗었다.

가문돔의 지느러미와 비교해 그 예리함이 결코 덜하지 않은 손톱이 나를 향했다.

“공자. …역시 당신, 저와 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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