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신이 나라를 살림-190화 (190/261)

190. 황금성 (3)

“지금입니다!”

내 지시를 따라 갈고리들이 하늘을 날았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갈고리들이, 턱, 턱! 하나 둘 성벽 위에 걸렸다.

갈고리에 매인 밧줄을 타고 전사들이 올라갔다. 모두 가려 뽑은 전사들답게 벽 위를 터벅터벅 걷는 것처럼 매끄러운 동작이었다.

나도 가볍게 밧줄을 잡고 휘리릭… 어 잠깐.

‘이거 어떻게 탐?’

[첫 번째 은월: 완전히 돌아버린 내 서방….]

[최초의 성녀: 아… 그러고 보면 스킬에 없는 육체노동은 대체로 못하셨죠, 예언자님…. 솔로차한테 주먹 싸움 걸 때도 그랬고….]

‘아 됐고, 어떻게 탐, 진짜?’

그러는 동안 환갑에 달한 아신군마저 휘리릭 끼요옷 소리를 내면서 벽 위로 올라갔다. 아 씨, 저 자식이 하는데 나는 못한다고? 승마 쓸 수 없나? 아니면 체술 뭐 그거 비슷한 스킬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없나?

“도련님, 제게 업혀 주십시오.”

시아람 아저씨가 내게 등짝을 보였다.

‘음.’

나는 잠자코 업혔다. 과연 15년 전 이미 사호의 영역에 다다랐던 검귀(劍鬼)는 그 수준이 달랐다. 아저씨 기사는 어렵지 않게 날 매달고 성벽 위로 올라갔다. 수면을 헤치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물개마냥 완전 개쩌는 몸놀림이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 성벽 위에 올라섰다. 나는 아저씨의 등에서 내려 도끼를 꺼내 들고는 소곤거렸다.

“저쪽 초소탑에 네 명이 있습니다. 무장 수준은 알실라제 갑주에 단창, 그리고 석궁을 들고 있군요. 가장 안쪽에 있는 한 명은 뿔피리를 들고 있고요. 석궁은 모두 장전된 상태입니다만 손에 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밖에서 소란 피우고 있는 거 뻔히 들릴 텐데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뭐 우리에겐 좋은 일이군요.”

눈앞에 없는 걸 눈앞에 있듯 그려내는 이 유창한 설명에 일부는 당혹감을 선보였다. 나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시아람 경과 아스달 경이 앞장서 주십시오. 연두 경과 애개이 경은 벽을 타고 돌아서 반대쪽에서 진입해 주시고요. 당분간 아무도 오지 않을 테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만 뿔피리는 불지 않게 주의 부탁드립니다. 그 밖에 주의사항 없습니다. 따로 알아낼 사항은 없으니 그냥 다 죽이십시오.

땅딸막한 놈들이 갑주까지 챙겨 입고 있으니 어딜 노려야 하나 싶을 텐데 눈구멍을 찌르면 됩니다. 네, 칼 쓰는 분들만 부른 것도 그 이유입니다. 그럼 시작.”

잠시 후, 시아람을 비롯한 네 검사가 내 지시에 따라 잠입했다. 숨 넘어가는 소리 몇 차례가 울려 퍼지더니 쓰러지는 소리도 연달아 퍼졌다.

갑주를 차려 입은 알실라 병사들은 ‘털퍼덕’이 아니라 ‘철커덩’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고요한 밤에 듣기에는 날 선 소리여서 루지아가 불안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저승 입주자 시야로 주변을 감시하던 나는 바로 이상 없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우리는 초소탑 안으로 진입했다. 안에는 내가 지시한 그대로의 결과물이 남겨져 있었다.

◈          ◈          ◈

“도련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과연 후작 각하의 아드님답습니다.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정말 별의 목소리를 들으시는군요. 저는 물론 그 사실을 흔들림 없이 믿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직접 확인하니, 또 저와 함께 진입한 이들과 지금 도련님과 함께 온 이들이 그 사실을 새삼 깨닫는 모습을 보니….”

“시아람, 작전 중이야. 조용히 하자.”

“넵.”

그러나 확실히 시아람의 주접 대로였다.

조금 전 내가 말할 때 당혹하던 이들은 내 지시가 사실로 이루어진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경악하지 않은 이들은 한층 신뢰가 느껴진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것은 곧 이 서른 명에 대한 내 지휘력이 그만큼 확고해졌음을 뜻했다.

확고해진 지휘력을 바탕으로 나는 지시를 내렸다.

“공작님. 남전후. 여기서 제가 말하는 이들과 함께 갈고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 주십시오. 성문을 지키고 있는 녀석들을 치고 문을 열어두는 겁니다. 이 일 역시 조용히 처리하는 게 핵심입니다. 성문 앞 병력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루지아는 물론이요, 아신군 또한 군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낫지. 반쯤은 이걸 위해 바로 성문을 따는 게 아니라 감시탑을 처리했던 거다.

세자 전하가 말했다.

“스승님과 남전후만 남아도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 내려가는 편이….”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죠. 본대에 주는 신호도 좀 더 가까워야 잘 보일 테고.”

그렇게 성문 공략조를 스무 명 덜어내자 열 명이 되었다. 가벼워진 만큼 더 빨라졌다.

우리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이건 뭐 거의 성벽을 쓸어버리는 수준이었다. 다섯 명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은 쓰레기라니까 두 명쯤 쓰레기가 섞여 있을 법도 한데 그런 이들은 없었다.

가려 뽑힌 병졸들이어서? 다른 이유도 있었다. 조금 전 감시탑 병사들이 갖고 있던 전 재산이 종합해서 알실라제 강철 갑주 네 벌. 석궁 네 개. 일반 병졸들이었다면 팔자를 고칠 수 있는 노획물들이다. 상현공과 세자가 있는 이 마당에 알게 모르게 흑심을 드러낸 이들은 모조리 성문 공략조에 떠넘긴 상태였다.

[간신 조련사: 그 흑심 드러내는 게 느껴집니까?]

‘저쯤 되면 그거야 피부로 느껴지죠. 그러니 짬 처리 좀 했습니다.’

[간신 조련사: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웃으시면 됩니다, 천사님.’

그렇게 추려낸 결과물이 바로 지금 성벽에서 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는 10인조였다. 상쾌했다.

“이 화포인지 뭔지 하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파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성벽 위를 걷는 것이니 자연히 화포 근처도 지나게 되었다. 야리소연에게 들었던 설명처럼 크고 길쭉한 금속 통에 움직이기 편하게끔 바퀴를 단 물건이었다. 그냥 바퀴만 달려 있으면 발사할 때 뒤로 쭉 밀려나버릴 테니 고정할 수 있도록 지렛대도 달려 있었다.

‘겉모습은 나 살던 시절 화포랑 비슷해 보이네.’

500년, 아니 400년의 기술 격차가 있으니 뭔가 다르기야 할 것이다. 아무리 알실라인들이 손재주가 좋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지만 겉모습은 정말 비슷해 보였다.

하긴 개량한다고 해도 화약을 비롯해 전문가만 알아볼 수 있는 개량일 것이다. 움직이기 편하게, 쏘기 불편하지 않게 모양새를 다듬는 거야 대가리만 있으면 해낼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부수지 않습니다. 다만, 음. 잠시만.”

이 포구 방향을 거꾸로 돌려 성 안쪽을 향해 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화약도 없고 포탄도 안 보이고….

[개천의 시왕: 화약이 그 새까만 가루를 말하는 거라면 바로 근처 총안 안쪽에 놓여 있다. 포탄인지 하는 것도.]

[나시파 변경백: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군요. 포탄은 하나뿐인데….]

[국모님 상현후: 그보다 지금 네 명이 달려오고 있어요.]

좋아.

“잠시 정지. 모퉁이로 되돌아가 보이지 않도록 엎드리십시오. 네 명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화포를 가지러 오는 것일 텐데 우리야 대환영이었다. 달려와 화포의 지렛대를 풀기 위해 낑낑거리는 것을 가볍게 슥삭했다. 그 다음에 할 일이야 간단했다.

“포구 방향을 반대로 돌려놓습니다. 예, 그렇게. 그 다음에 화약과 포탄… 음… 일단 다 때려 넣지요.”

화약 얼마에 포탄 얼마인가 하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흑치사라도 모르는 걸 내가 아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이들 역시 모르는 건 똑같았다. 그저 성소년의 지시를 믿고 따른 다음 뼈다귀를 바라는 강아지 같은 얼굴로 날 바라볼 뿐이었다.

‘그 다음 꽁무니에 불붙이면 나가는… 아니 잠깐. 꽁무니에 심지가 없네?’

[첫 번째 은월: 심지가 뭔데? 걔네가 쏠 때는 불을 직접 안쪽에 던져 넣던데?]

‘뭐야 그게? 겁나 위험하게 들리는데.’

[첫 번째 은월: 난들 알아?]

음.

“일단 그… 이 상태로 놔두고 계속 이동합시다.”

문외한이 섣불리 건드릴 물건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생각에 꺼낸 말이지만, 사람들은 예의 강아지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다 알아서 지시했겠지 하는 표정.

‘쫌 부담스럽네….’

뭐 화포야 어쨌건 내 지시가 완벽한 것은 맞았다. 우리는 다시 나아갔고, 다음 초소탑 상주인원도 어렵지 않게 몰살시켰다.

긴장이 풀어진 건지 몇몇이 히히덕거렸다.

“너무 쉽군.”

“이대로 성벽 전체를 점거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한 손을 들어 정지를 명령했다.

“여기까지입니다. 이 너머에는 소란을 피우고 있는 우리 본대에 대응하기 위한 수비 병력들이 모여 있습니다.”

세자 전하가 턱을 매만졌다.

“그럼 여기서 신호를 주고 돌아갑니까?”

“예. 적들도 이제 화포 준비가 갖추어졌을 테니까요. 이쪽 병사들이 왜 조용해졌는지 의문스럽기도 할 테고.”

솔직히 말하면 후자는 아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저승 입주자들 말에 따르면 말이다.

하지만 전자는 걱정할 일이 맞았다. 아까 처리했던 네 명은 적들이 화포를 가져 오라 보냈던 이들 중 일부에 불과했다. 집결한 화포들이 우리 본대를 정조준하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을 터였다.

“자. 모두 꺼내십시오.”

사람들이 하나 둘 품에서 새들을 꺼냈다. 성지를 향해 떠난 선지자 석마갈이 남긴 위대한 유산…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이 어두운 밤에 멀찍이서 어떻게 신호를 보낼지 생각한 결과물이었다.

내 지시에 맞추어, 사람들은 새들의 다리에 끈을 달아 불을 붙였다.

열 개의 빛이 무질서한 움직임을 보이며 날아올랐다.

◈          ◈          ◈

그동안 루지아와 아신군은 맡은 병력과 함께 성문을 제압해 놓았다.

병력 구성을 완벽하게 꿰고 있는 상황에 혼자 셋을 상대할 수 있는 정예병만으로 기습을 건다. 그 와중에 외부 지원 따위의 적대성 변수도 없다. 상현 공작이 아니라 상현 구더기라도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리 생각했건만, 실제로 해보니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다수로 소수를 제압한다고 해도 그걸 조용히 해내기란 어려운 법이다. 어찌어찌 모조리 처리하여 성문을 점거한 다음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성공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하면 되오리까?”

아신군이 꺼낸 질문에 루지아는 일순 곤혹했다. 그러게. 한 명을 성벽 위에 오르게 해서 달려 전하게 만들어야 하나?

그렇지만 오래 곤혹할 필요는 없었다. 멀찍이 성벽 위에서 열 개의 빛무리가 날아오른 것이다.

병사들이 신음했다.

“신호도 안 보냈는데 어떻게 지금 딱….”

“공작 각하라면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고 믿은 것 아니겠나?”

루지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본 거겠지. 어떤 수를 쓴 것인지는 몰라도 말이야.

상현 공작은 성문을 가리켰다.

“열게.”

명확한 지시에, 성문 공략조는 쓸데없는 토론을 그만두고 성문에 매달렸다. 종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좋아, 곧장 성문 쪽으로 갑니다!”

빛무리 열 개가 날아오르는 모습은 알실라 수비군에게도 잘 보였을 거다. 그리고 본대가 성벽을 돌아오는 것보다는 수비군이 오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인 만큼 본대에게 미리미리 병력을 빼돌려 우회시켜두라 말해뒀다. 시킨 대로 움직인 것 또한 저승 입주자 시야로 확인했다. 하지만 그것이 한가롭게 움직여도 좋다는 의미는 되지 않았다. 완벽한 준비를 갖추었다고 해도 전장의 1초 1초는 너무나 값진 것이었다.

“성벽 아래로 내려가 흩어질까요!?”

“잠시만. 시아람 경, 나 업어!”

13살 소년의 몸으로 이 인간 병기들과 육상을 하고, 낙오하고, 그래서 업혀가기에도 1초 1초는 너무나 값졌다. 그래서 난 처음부터 시아람 아저씨 등에 올라타 눈을 감고 집중했다.

일반 채팅방을 봤다.

[첫 번째 은월: 화포 세 대가 정확히 본대에 대고 발사 준비 중. 좀 얻어맞겠는데….]

[최초의 성녀: 왕국 기병들이 성문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어요.]

[개천의 시왕: 머리에 수정으로 만든… 머리띠인가? 하여간 그걸 얹어놓은 녀석이 성벽 위를 지휘하는 것 같군. 저 녀석 목을 어떻게 딸 수만 있다면---]

[간신 조련사: 그렇게 많은 걸 예측할 수 있다면 자신이 밧줄 타고 성벽 오르기를 하기 어렵다는 것도---]

[나시파 변경백: 알실라 저 놈들이 마굿간에서 각자 말들을 찾아서---]

[천마의 무왕: 음! 성 안에 왕을 지키는 녀석이 보이는군. 제법 강해 보인다만---]

[국모님 상현후: 왕 곁을 떠나지 못하는 걸로 보아 염려할 필요는---]

[재상 1: 그 화약이란 게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추적해내는데 성공---]

[간신 조련사: 잠시만, 조금 전 정보 말입니다만 정정이 필요하겠습니다. 이세가 언급한 국왕 친위대장이 지금 왕 곁을 떠나서---]

[제사장: 확실히 법왕님께는 위험한 매력이 있지요. 가령 지금 알실라 성벽 수비군 중 일부가---]

[경국의 하현후 님께서는 현재 차단당한 상태입니다. 메시지를 입력하실 수 없습니다….]

정보의 폭풍우가 날 후려쳤다.

그 중에서 쓸모없는 것들을 걸러냈다. 도움이 될 법한 정보들만 추려냈다. 일일이 시야 공유를 받을 시간이 없으니 목격 증언들에 의존해 주변 상황을 재구성해야 했다. 그렇게 재구성한 주변 상황도 1초마다 이어지는 정정 선언을 따라 갱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골 깨지네 진짜.’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잠시 후 나는 말했다.

“그냥 성벽 위로 달립니다!”

성은대군과 병사들은 그 지시에 따랐다. 다시 잠시 후 내가 말했다.

“모퉁이 지나 정지. 뒤돌아 단궁 꺼내 조준. 그보다 좀 더 아래에. 셋 둘 하나에 발사. 지금!”

화살이 날았다. 갑옷을 벗어 던지고 쫓아오던 알실라 석궁병 넷이 비명과 함께 자지러졌다. 나는 계속 말했다.

“한 차례 더 발사! 예, 바로 돌아서 다시 달립니다… 좋아요. 예. 초소탑 진입 후엔 문을 걸어 잠그고 장해물을 덧대어서….”

홈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레 움직이는 10명의 최정예를 알실라 성벽 수비군이 따라잡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어려운 일에서 불가능한 일로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달아나자니 슬슬 육안으로도 보여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기병들입니다!”

“적 기병들도 옵니다!”

성문을 사이에 두고, 왕국 기병들과 알실라 기병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좁힌 채 다시금 일반 채팅방을 들여다보았고, 한 가지 결론을 이끌어냈다.

‘우리 기병들이 더 빨라.’

우리 기병들이 먼저 성문을 통과할 것이다.

‘다만 충분히 빠르진 않아.’

기병들이 성문을 통과해서 산개하거나, 진형을 갖추어 알실라 기병들을 맞이할 만한 시간은 없었다.

‘상관없나? 일단 성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아니, 그래도 좀 더 시간을 보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뭔가 방법이….’

그 때 아저씨 등 위에서 흔들리던 내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조금 전 어떻게 해보려다 말아서 어정쩡하게 장전만 된 화포였다.

“잠시 정지!”

십인조가 멈춰 섰다. 나는 일반 채팅방을 보았고, 성벽 위의 추격자들이 아직 초소탑 앞에서 발목이 묶여 있음을 확인한 다음 다시 화포를 보았다.

십인조들도 그것을 보았다.

성은대군이 감탄했다.

“과연! 조금 전 이 화포에 대고 무언가 했던 것은 이때를 위한 안배였군요.”

‘전혀 아닌뎁쇼….’

“자!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도련님!?”

‘나도 몰라…. 이거 조준은 뭐 어떻게 하는겨?’

나는 턱을 짚은 채 심사숙고했다. 심사숙고해봤자 뭐 ‘이건 아닌데’ 하는 심정만 겁나 들었지만, 에라이.

“그… 일단 불을 준비해 주십시오.”

조금 전 새들 다리에 맨 줄에 불을 붙였던 것처럼, 우리는 불을 일으킬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었다. 병사 한 명이 그 도구를 꺼내어 불을 일으켰다.

희희낙락한 웃음이 입가에 매달려 있는 것이 꼭 처음 불장난을 하는 어린 아이마냥 순진무구했다.

‘그렇게 웃지 마….’

절로 드는 죄책감을 누르면서 나는 화포를 바라보았다.

‘던지고 바로 튀면 설마 무슨 일은 안 나겠지. 좋아. 그렇게 가자.’

나는 지시했다.

“그 불을 화포 안에 던져주십시오. 그 다음에는 이 자리를… 아니 제가 지시하면 넣었어야죠! 지금 바로 이탈합니다! 성문 바로 위를 향해서!”

지시는 기겁한 외침으로 끝났다. 십인조는 그것마저 지시로 알아들었다.

“예, 성소년이여! 별의 인도를 따라!”

그렇게 우리는 다시금 성벽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시아람 등에 달팽이처럼 매달려서 눈을 질끈 감았다. 망할, 역시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걸 그랬나? 포구만 반대로 돌려놨을 뿐이지 조준도 뭣도 안 됐는데. 발사가 됐다고 해도 그냥 폭음만 울리지 않을까? 역시 모르는 건 손대는 게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화포 쪽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뭐야, 오발인가?’

나는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아저씨의 흔들리는 등 위에서 바라본 화포는 그저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뭐 어설프게 건드려서 엿 되는 것보다는 이게 더--.’

바로 그 순간, 폭음이 터졌다.

동시에 성문을 향해 달려오던 알실라 기병대 우측이 그대로 뭉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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