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To the moon (3)
저승에서도 이승에서도 소란이 벌어졌다.
그 소란이 가라앉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기다렸고, 좀 오래 기다리게 되었지만, 지루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신관들을 돌려보냈다.
빈 손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았다. 나는 산호 옥좌를 가리켰다.
“그거 가져가.”
울불루 신관과 다른 신관 몇몇이 묵묵히 산호 옥좌를 짊어졌다. 그렇게 옥좌와 사람이 떠나간 알현실은 휑뎅그렁하게 변해버렸다.
자문사 구호가 의문을 제기했다.
“각하. 지금 들려 보낼 필요 있었어? 경비대장이 거품을 물 텐데.”
“석마갈의 말을 심해교 인사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증거물이 필요할 테니까. 그리고 걔는 원래 거품 잘 물잖아.”
“경비대장이 게를 좀 많이 먹어서 그래. 아무튼 각하가 앉을 자리가 없어졌는데….”
“그거 아니, 자문사야? 솔직히 그 산호 옥좌 거지같이 불편했단다. 차라리 진짜 거지 위에 앉는 게 더 편했으리란 거 인정?”
“음… 인정.”
“응. 그러니까 그냥 적당한 의자 하나… 시아람아. 니가 가서 가져와라.”
시아람은 고개를 수그렸다.
“예. 저번에 잡았던 흑열도 흑구 놈들 기함에 괜찮은 것이 있기에 챙겨 두었습니다.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그렇게 시아람이 내가 앉을 의자를 가지러 떠나가자, 알현실에는 나와 비은공주, 구호, 석마갈 넷만 남았다.
“시아람 경이 말한 의자. 그거지? 바다 거신의 뼈와 암초 괴수의 이빨로 틀을 잡고 상어 가죽으로 치장한 그거.”
“응. 검둥이 두목놈 엉덩이 밑에서 고생하던 녀석이 이제야 걸맞은 주인을 모시게 된 거지. 산호 위에서 고생하던 내 엉덩이도 이제야 좀 편해지고.”
“바다 거신? 암초 괴수는 또 뭔가요?”
비은공주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자문사 구호가 대답했다.
“고래라고 있어. 암초 괴수는 바다코끼리라고 해.”
“고래라면 그 엄청 크다는 물고기 말이군요. 바다코끼리는 처음 듣는데.”
“좀 크고 이상하게 생긴 거 있어. 바다랑 섬도 좀 안정됐으니까 운 좋으면 몇 년 안에 한두 마리 정도는 잡힐 거야. 갓 죽은 건 그 때 가서 구경해보고, 이빨 보고 싶으면 시아람 경이 의자 가져왔을 때 봐.”
“네!”
그렇게 조카님 상대를 마친 구호는 석마갈을 흘끗하더니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각하. 명품 의자 쓰게 된 건 좋은 일인데, 역시 산호 옥좌를 선불로 땡겨 준 건 과했어.”
쓰게 웃는 석마갈 대신 내가 대답했다.
“응. 원래 쟤가 새 옥좌를 바치고, 그 결과물로 하사하기로 했었거든.”
“그렇게 하면 됐을걸. 아니면 석마갈 딸려 보내서 직접 말을 전하게 하거나.”
“상황이 변했으니까. 그리고 석마갈을 남게 한 건 할 이야기가 있어서고.”
그 말에 구호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석마갈을 향해 말했다.
“잘 했어.”
석마갈은 고개를 수그렸다.
“시아람 경께서 도와주신 덕이지요.”
“걘 도왔다는 생각 자체가 없을걸. 그냥 알아차린 걸 말한 거고, 그걸 기회로 삼은 건 그대의 순발력이지. 덕분에 종교 문제도 잘 갈무리되었으니, 나는 그대를 상찬한다.”
석마갈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내가 이리 금칠부터 하는 이유를 짐작했기 때문이겠지.’
나는 이 녀석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이 녀석 역시 그렇겠지. 내가 꺼낼 말을 또한 이 녀석은 짐작하고 있을 것이었다.
여실히 느끼면서도 나는 말했다.
“정말로 배에 탈 생각이야?”
석마갈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비은공주와 구호, 그리고 나와 석마갈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서 말했다.
“타면 죽을 거야.”
하늘에 비친 달 같은 것은 없다.
해상낙원은 없다. 월족의 시조가 도래해온 고향섬 같은 것 역시 당연히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 곳을 향해 떠나봤자 닿지 못할 뿐이야.”
그런 내 말에 석마갈은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처럼 그는 고뇌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타야지요. 떠나야 하고요.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이 흘러간 뒤에 말했다.
“가지 않아도 돼.”
나는 이어서 설명했다.
“그냥 울불루 신관 같은 놈들만 태워 보내. 심해에 가라앉은 아버지의 명령이니 뭐니, 그래서 석마갈 니는 이 제함도에 남아야겠니 어쩌니. 지저귀려면 지저귈 수 있잖아.”
“….”
“쓰레기 치운다고 생각해. 배에 띄워 눈에 먼 곳으로 보내 버린다는 식으로. 그러면서 꿀 좀 빨고… 지금껏 고생했다매? 보상 좀 받아야 하지 않겠어?”
“감사하신 제안입니다.”
어느덧 밤이 왔다. 흘러든 달빛이 석마갈의 얼굴을 덮었다. 쓴웃음으로 주름진 입가에 그늘이 괴었다.
“하지만, 제가 어찌 대답할지 아시겠지요.”
그야 시대에 뒤떨어진 노친네들마저 살리기 위해 협상을 걸었던 남자가 어찌 대답할지 나는 알고 있었다.
날건달 기사를 잘라낸 후작으로선 할 말이 많았다. 나는 그 많은 말들을 생각했고, 그 중의 하나만을 추려내어 입에 담았다.
“네가 필요해.”
나는 구호를 곁눈질했다. 조금 전, 그녀가 한차례 더 옥좌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나와 이야기해야 할 석마갈에게 부담감을 덧씌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실제 이야기가 시작된 지금은 잠자코 입 다물고 있는 것일 터였다.
“구호는 정말이지 좋은 자문사지.”
좋아하는 책을 읽는 대신, 익숙지 않은 장부를 뒤적이며 늙어버린 여인을 바라보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25년이라는 경험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구호의 본질은 행정가보다는 학자에 가까워. 하지만 석마갈. 내가 보기에 너는 뭐라고 하나… 타고 났어. 왕국 입장에서도 제함도 후작령으로서도 놓치기 아까운 인재다.”
석마갈은 조용히 고개를 수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이유 또한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짐작하면서도 계속하여 말했다.
“너를 등용하고 싶다.”
“….”
“알아. 존망섬의 가신이 되라니. 매력적일 리 없겠지. 심지어 상사가 나 같은 녀석이니 더더욱. 그래도 제안하거니와, 석마갈. 그 제안에 응할 생각 없나?”
“과분한 제안이십니다.”
“너는 그만한 가치를 증명했어.”
“그저 제가 잘 하는 짓을 한 것뿐입니다.”
말하면서, 석마갈은 모자로부터 토끼를 꺼내 보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비은공주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러고 보면 그것,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알려드리면 더는 신비하지 않을 겁니다. 신비하지 않은 건 재미도 없게 마련이지요. 전하께선 재미있는 것을 즐기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뒤따랐다. 중년을 목전에 둔 이의 염려를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에 들어선 이가 가슴을 펴고 받은 것이다.
“알려주면 본인이 신비해질 수 있겠죠! 그럼 재미는 그 쪽에서 찾을 수 있을 테고요. 그러니까 알려주세요. 네?”
석마갈은 더 말리지 않았다. 순순히 공주의 요청에 따랐다.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모자 아래에 공간을 만들어 둔다거나, 낙낙한 소매를 사용한다거나… 하지만 골자는 똑같습니다. 자, 보십시오.”
석마갈은 모자와 토끼를 따로따로 들더니 손을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기묘했다. 나와 구호, 비은공주 셋 모두 집중하여 바라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몇 번이나 대체 어떻게 토끼가 모자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는지 놓쳤다.
[최초의 성녀: 저거 진짜 어떻게 하는 거죠?]
[개천의 시왕: 그러게 말이군. 흑치사라조차 곤혹해 하는데.]
심지어 시야각에 있어 한층 자유로운 저승 입주자들조차 처지가 비슷했다. 가장 눈이 좋은 야리소연만 겨우 알아차린 듯 했다.
[첫 번째 은월: 움직이는 왼손이 아니라 가만있는 오른손을 봐봐. 정확히는 딱 오른손만 봐.]
‘오른손만?’
[첫 번째 은월: 응. 사실 그 손이 가만히 있지 않아.]
그렇게 한 나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할 수 있는 평가는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개쩌네.’
하지만 그 평가를 내리는 대신, 나는 툭 던지듯 말했다.
“오른손이 중심이군. 왼손은 거들 뿐이고.”
그 말에 비은공주와 구호 역시 토끼와 모자 사이의 상관관계를 알아차렸다.
“와, 진짜 그렇네요!”
“석마갈 기술도 개쩔지만 각하도 개쩌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턱 끝을 올렸다. 마치 척 보고 알아냈다는 것처럼.
[첫 번째 은월: 와… 인성….]
‘구호의 자문이 곧 후작으로서의 내 역량이듯, 네 조언 역시 곧 임무 수행자로서의 내 역량 아닐까?’
[첫 번째 은월: 쟤들이 저승 오면 바로 폭로해 버릴 거임.]
‘그러려무나.’
단순히 찬양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또한 필요해서 하는 일이었다.
그런 내 생각이 전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석마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잘 하는 짓이지요.”
자신을 포장하는 것.
상대방의 주의를 돌리는 것.
그리하여 ‘지금, 여기’가 아닌 ‘언젠가, 어딘가’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
“그리고 이 잘 하는 짓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제가 그들과 함께 가야 합니다. 그들의 곁에서, 그들을 이끌며, 그들을 다독이며, 계속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석마갈은 힘없이 말했다.
“오직 말이 아닌 행동으로만 가능한 일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그것을 이상을 향한 도전이라 부를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망상에 빠진 침몰이라 부를 것이다.
나도, 석마갈도 그것을 망상이라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부분에서는 동일할 것이다. 나와 영혼의 쌍둥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쌍둥이는 결국 장본인이 아니며, 나와 석마갈 또한 같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기어코 가겠단 말이지. 실존하지도 않는 곳을 향해서, 닿지도 못할 항해를 말이지.”
“어쩌면 닿을 수도 있겠지요.”
“어디에?”
“어딘가에.”
석마갈은 웃었다. 그 웃음은 여전히 씁쓸했고 허허로웠다.
“그래도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곳에 말입니다.”
여전히 즐겁지 않게 웃으면서 석마갈은 스스로 믿지 않을 말들을 입에 담았다.
“익히 아실 겁니다. 이제 달의 여신 아래 흡수될 우리 교단의 신화에서, 심해에 가라앉은 아버지는 최초의 항해자였다지요. 한편 바다에는 용이 살고 있었고 말입니다.”
“들어 안다.”
“드넓은 바다는 모두 용의 강역이어서, 물의 창살이 제함도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넘실거리는 파도는 탐욕스러운 용의 혓바닥이었지요. 사람들은 섬 안에 갇힌 죄수였으며, 접시 위에 놓인 생선이었지요.”
“들어 알아.”
“그분께서는 접시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가라앉았지.”
“예.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석마갈은 턱수염을 쓸어 만지고서 말을 이었다.
“그 분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이들이 접시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또 다른 이들이. 다시 또 다른 이들이 그 바깥으로 나섰습니다.”
거듭되는 출항. 이어지는 항해.
“그리하여 누군가는 건너편에 가서 닿았지요.”
민물을 대표하는 노파, 처녀, 소녀. 세 여인의 지원 하에 이루어진 그것은, 마침내 누군가를 그 너머에 보내는 데에 성공했다고 했다.
“드넓은 바다는, 그러나 결국 무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물은 뭍이 되었다.
“그런 일이 거듭되었습니다. 물을 건너면 그 너머에는 뭍이 있었습니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용의 강역은 그 때마다 조금씩 줄어들었지요.”
호수의 용.
“물로 우리를 둘러싸 가두었던 용은 그렇게 뭍에 둘러싸인 죄수로 전락했습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 그것이 나투아의 신화가 갖는 함의였다.
“같은 일을 저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석마갈이 말했다.
비은공주조차 흐름을 끊지 못하여 쭉 이어진 그 말을, 나는 남김없이 귀로 받아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잖아.”
나는 석마갈을 바라보았다.
“그건 다 구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잖아.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잖아. 심해에 가라앉은 아버지는 만용을 부린 것이라고, 그래서 무의미하게 뒈진 것뿐이라고, 자신도 그렇게 뒈질 거라고 생각하잖아.”
“….”
“그런데도?”
“그런데도.”
석마갈은 웃었다. 이를 악문 채로, 악착같이, 정말이지 힘겹게 웃었다.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가득 찬 소시민의 미소를 지은 채, 석마갈은 반복하여 말했다.
“그런데도.”
“어째서.”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없는 이들 중에, 저는 그래도 축복받은 편이니까요.”
해웅의 사생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무는, 계승자가 되지 못해 떠밀려온 공주가 있었다. 그런 조카의 어깨를 짚어주는, 뜻하지 않게 외척이 되고 원하지 않게 자문사가 되었던 여인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사슬들이 이들을 옭아매고 있었다. 자유로워 보이는 공주 전하조차 그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후작과 맞먹을 수 있는 외척조차 그러하지 못했다.
나는 어쩐지 사호가 보고 싶어졌다. 현성이도.
아마도 이 임무를 마치면 볼 수 있을 것이지만, 못해도 그 다음 임무 이후에는 보게 되리란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아무튼 보고 싶어졌다.
석마갈이 말했다.
“산호 옥좌를 실을 배. 되도록 튼튼한 배를 준비해주십시오. 배에 오르겠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쥐어짜듯 말했다.
“그렇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