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To the moon (2)
개소리를 하면 미친 놈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개소리를 진지하게 하면 진지하게 미친놈 취급을 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규모의 차이가 있는 법.
“그렇소. 우리들은 달로 갈 것이오!”
이 어마어마한 개소리에 절절한 진지함이 갖추어지자, 사람들은 말 그대로 넋이 달로 날아가 버린 것 같은 얼굴을 보였다.
울불루 신관은 그 중에서도 달의 뒷면을 견식하고 돌아온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달로 가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이 석마갈께서는 그렇게 말했소.”
“배를 타고 말씀이십니까…?”
“배를 타고서 말이오.”
심지어 석마갈은 잘생기기까지 했다. 잘생긴 놈이 진지하게 말하니 반박하기 어려웠다.
울불루 신관이 더듬거렸다.
“어… 하지만 달은 하늘에 떠있는데….”
석마갈은 산호 옥좌에 기대어 앉은 채 침통하게 말했다.
“사람들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오.”
이 말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은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것 아니냐?’는 것이었겠지만 그런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홀린 듯 이야기를 듣거나, 일부 그렇지 않은 이들 역시 자기 아닌 누군가가 먼저 그런 말을 꺼내 주지 않나 싶어 눈치를 볼 뿐이었다.
그 틈을 타 석마갈은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 석마갈께서 심해에 가라앉은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시고자 하니, 다들 귀를 말미잘 주둥이처럼 활짝 벌리고서 말씀을 따라오길 바라오.”
“예, 예에….”
“생각해 보시오. 제일 질긴 주홍나무로 만들어 가장 키가 큰 사수가 쏘아 올린 화살도 결국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소? 해풍에 휘말려 올라갈 만큼 가벼운 모래 알갱이조차 언젠가는 땅 위로 떨어지고 말이오. 그런데 저 커다란 달이 어떻게 하늘에 떠 있을 수 있겠소? 울불루 신관, 그대는 그것을 설명할 수 있겠소?”
“어, 그건….’
울불루 신관은 당연히 설명하지 못했다. 사실 나조차 설명하지 못할 일이었다. 달이 뜨고 지는 이치야 천문학으로 역법을 세워 해결할 수 있다지만, 떠 있는 원리 자체는 500년 뒤의 태학관에서도 밝혀낼 수 없었던 것이니까.
[간신 조련사: 공간상에서 질량을 가진 두 물체는 서로를 끌어들입니다. 달은 현재 당신이 거주하는 이 행성의 인력에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 거리가 멀어 떠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사실 광대한 우주에는 하늘도 땅도 없이 그저 천체들 간의 인력으로 인하여---]
보라. 신의 대리자인 천사님조차 저렇게 알아듣지 못할 헛소리를 늘어놓지 않는가?
모르면 모른다고 하실 것이지, 참 추했다.
[간신 조련사: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이번 역시 용서해 드리지요. 저는 관대하니까요.’
[간신 조련사: 이런 빌어먹을….]
천사님의 입이 점점 걸어지는 가운데, 울불루 신관은 설명하지 못하는 이가 흔히 하는 일을 했다. 질문에 답하는 대신 반문을 꺼내든 것이다.
“달이 어떻게 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태양도 떠오르지 않습니까? 별들은 또 어떻고요? 설마하니 그것들도 떠 있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울불루 신관은 제 정신이 박혔다면 그런 말은 못할 거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석마갈은 여전히 제 정신이 박힌 자라면 하지 못할 말을 늘어놓았다.
“허어. 바로 그렇소. 그것들 또한 떠 있는 것이 아니라오. 그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진실은 전혀 다른 것이지.”
울불루 신관의 표정이 점차 거칠어졌다.
“무슨 진실 말씀이십니까? 설마하니 저 거짓 신의 사도들이 주절거리는 것처럼, 하늘의 별들이 저 거짓 신의 신도들이 공덕을 쌓아 영령이 된 것이라고 말씀하실 생각이십니까?”
비교적 온건한 심해교 신관들이 기겁했다.
“아니, 울불루 신관….”
“해웅 합하께 그리 거친 언사를….”
하지만 울불루 신관처럼 성난 얼굴로 석마갈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극단주의자는 울불루 신관 하나만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석마갈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산호 옥좌에 앉은 채 석마갈은 손짓으로 시아람을 불렀다.
“거기 서 있는 기사. 탁자 위에 놓인 물그릇을 울불루 신관 앞에 가져가시오.”
그리고 시아람은 석마갈 목 위에 놓인 대가리를 나한테 가져오진 않았다.
석마갈이 다급히 내게 눈길을 보내고 나 또한 눈짓으로 회답한 결과, 시아람은 조용히 물그릇을 들어올려 울불루 신관 앞에 가져갔다.
“석마갈 님, 이건 무슨…?”
당황하는 울불루 신관에게 석마갈은 태연히 말했다.
“그 안을 들여다보시오.”
“아니 왜….”
“어허. 이 석마갈께서 시키는 대로 하시오. 아니면 혹시 그러기 겁이 나는 거요?”
이미 대놓고 석마갈에게 대거리를 한 이상 그 말을 듣고 물러날 수는 없었으리라. 울불루 신관은 이를 악문 채 물그릇을 들여다보았다.
“보았습니다. 이게 뭡니까?”
“무엇이 보이오?”
“그릇에 담긴 물이 보입니다만….”
“거기에 비친 그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소?”
울불루 신관이 멈칫했다.
석마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답을 얻었을 거라 믿소. 그렇소. 달도 별도 저 태양도 사실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아니오. 그저 수면 위에 드리워진 잔영 같은 것일 뿐. 그대가 방금 들여다 본 그대의 얼굴처럼 말이오.”
석마갈은 힘차게 말했다.
“달은 하늘에 비친 섬이며, 그러기에 배를 타고 나아가 도달할 수 있는 해상 낙원인 거요!”
울불루 신관은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그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늘에 비쳤다…?”
“운치 있는 말이기는 한데….”
“확실히 본인도 의문스럽게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그 커다란 것이 어떻게 물 위도 아니라 하늘에 떠 있겠나요?”
일부는 긴가민가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일부는 혹한 표정을 지었으며, 일부는 아예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듯 콧김을 팍 뿜으면서 가슴을 폈다.
구호와 나는 그중 마지막 인물을 바라보면서 소곤거렸다.
“각하. 저 조카님 말야. 설마 진심으로 말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 마, 자문사. 그냥 재미 삼아 기름 붓고 있는 걸 거야….”
그러나 곧 우리는 공주 전하를 염려할 처지가 아니게 되었는데, 조용히 듣고 있던 시아람이 중얼거렸던 것이다.
“과연, 그랬던 것입니까.”
‘얜 또 왜 이래.’
“신화에 따르면 공주 전하와 같은 은월의 핏줄들은 달에서 오신 분들이라 되어 있지요.”
‘그거 언제 적 설정인데 지금 가져오고 그래….’
“그 달이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바다 위에 있는 섬이라면… 그렇군요. 그 신화는 시왕 폐하와 그 선조 여러분께서 먼 곳으로부터 배를 타고 도래해 왔음을 알리는 것이었군요. 이제야 모든 것이 완전하게 납득됩니다. 달의 여신 교단의 신화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내내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시아람은 이제야 알겠습니다.”
‘진짜 왜 저래 쟤….’
유리아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 그 잘 휩쓸리는 왕궁기사 나리가 있었다면 신화의 편린 속에 잠든 역사의 진실을 엿본 듯한 감격에 휩싸여 난데없는 기도회를 열지 않았을까.
[간신 조련사: 기뻐하십시오, 간신이여. 당신이 만든 이야기에 알아서 살 붙여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 않습니까. 하무스트라 신학 식으로 표현하자면 2차 저작 수익만으로도 먹고 살겠군요.]
‘아니 천사님. 하무스트라 신학이 뭔진 여전히 모르겠고 2차 저작 수익이란 것도 감이 안 오는 개념인데 말입죠. 일단 말해두자면 제가 만든 설정 아닙니다. 저 살아있을 적에도 왕족들은 달에서 왔다고 배웠고, 그래서 달의 여신 교리 세울 적에 그대로 전했을 뿐이라구요.’
[첫 번째 은월: 나도 일단 말해두는데 나랑 내 부족들은 전부 다 아주아주 오래 전부터 숲에서 살았음.]
‘알아 이것아.’
야리소연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것, 왕족의 시조가 야만족이었다는 사실에 느꼈던 충격 따윈 더 이상 없었다. 순진무구하던 나도 참 때가 탄 인간이 된 것이다. 신화를 듣고 자라나는 게 아니라 이용하기 위해 만드는 입장으로선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대의 말이 참으로 옳소.”
석마갈은 그런 시아람의 깨우침에 맞장구를 치면서 한 층 더 약을 풀었다.
“입에 고기를 문 채 수면을 들여다본 개가 거기에 비친 자신을 보고 입을 벌리는 것처럼 허상에 속아 넘어가지만, 이 석마갈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진실을 깨우친 것이지.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고도 그 사실을 깨우치는 이가 월국에 있었다니, 역시 나투아와 월국은 본디 하나였다는 사실을 이 석마갈께서 잘 알겠소.”
“그저 논리를 따라 추론했을 뿐입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도구지요.”
시아람은 조용하게 답했다. 신학적으로 경건하며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문답이었지만 죄다 헛짚었다는 걸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참 뭐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헛짚었든 아니든 간에, 이 이야기는 그럴 듯했다. 그리고 그럴 듯한 이야기는 진지한 개소리보다 더 약빨이 잘 먹히는 법이다.
“월국 왕의 선조들이 살던 섬이 저 바다 어딘가에 있다는 건가?”
“즉 석마갈 님께서는 진짜 달로 가는 게 아니라 그 섬을 찾아나서시겠다고….”
“아니아니. 달이라는 게 하늘에 비친 그 섬이라는 이야기잖아? 그러니까 진짜 달로 향하는 거기도 한 거지.”
“아니, 솔직히 그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말이 왜 안 돼? 석마갈 님 말씀처럼 달이 그럼 어떻게 저 하늘에 떠 있겠어?”
“구름도 잘만 떠 있잖아….”
“구름은 결국 비로 쏟아지잖아. 달에서 돌가루 떨어졌다는 소리 들어봤어?”
삽시간에 후작성 알현실은 갑론을박을 벌이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반응 좋네….’
[첫 번째 은월: 반응 좋다니? 아까는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서로 다투고 있잖아.]
[최초의 성녀: 아뇨, 좋은 반응이 맞아요. 찬반이 나뉜다는 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거든요.]
아리야의 말대로였다.
박력 있는 구라에 어어 하며 끌려가는 것도 한두 번이다. 지금이야 어찌저찌 여기 있는 사람들을 납득시킨다고 해도, 그 사람들로부터 여기 없는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건너가는 순간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는 것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스스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 나름대로 지금 나온 이야기들을 믿게 되었다는 증거였다.
‘이 녀석, 진짜 제법인데.’
나는 새삼 석마갈에게 감탄했다.
‘달의 여신 교단과 나투아 교단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합쳤잖아?’
심지어 이전 내가 가리비수 등을 사도성좌로 올렸던 때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
첫째, 나투아 교단의 신들을 단순하게 달의 여신의 하급자로 삼은 것이 아니라 결이 다른 두 신화를 촘촘하게 얽었다.
둘째.
‘시아람 덕분에 얻어걸린 거지만, 바다 먼 곳으로부터 도래해 왔다는 이야기가 현실성을 더했지.’
내가 법왕 자리에 올랐던 시기로부터 어언 85년.
왕국이 건국되었다. 태학관도 설립되었다.
실록은 아직 편찬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현재는 신화의 시대가 아니라 역사의 시대였다. 그 속에서 ‘납득할 수 있는 기원(起源)’은 분명한 가치가 있었다.
‘신을 믿는 자에게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말로. 신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현실에 닿아 있는 설명으로.’
그렇게 각각 납득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 두 개의 신화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그리하여 석마갈이 근엄하게 말했다.
“아버지의 말씀과 사람의 논리가 합쳐진 자리이니, 월국과 나투아를 나누어 부르는 것도 무의미하겠지. 나 석마갈께서 말씀하는 바, 월국민과 나투아 인은 나와 네가 아니라 다만 우리가 될 것이며,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곳을 단지 왕국으로 지칭해야 할 것이오.”
그것은 두 나라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었고.
“나 석마갈께서는 이 산호 옥좌를 싣고서, 왕국의 대표로서 그 해상의 낙원을 찾아 나설 것이오.”
또한 석마갈이 구체적인 계획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위험한 항해가 될 것이오. 심해에 가라앉은 아버지 곁으로 갈 가능성이 높겠지. 하지만 그만큼이나 가치 있는 항해가 될 것임을 이 석마갈께서는 보장하겠소.”
석마갈은 깊은 눈동자로 울불루 신관을, 그리고 그 주변의 극단주의자 신관들을 둘러보았다.
“울불루 신관. 그대는 다만 뭍에 남아서 나와 내 이야기를 의심할 수 있소. 또는 나 석마갈과 함께 그 배에 올라 그 진위를 직접 확인할 수도 있겠지.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영웅 중 하나로서 말이오. 심해교의 벗이여. 어떻게 하시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