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잡배들의 영주 (3)
그렇게 나는 제함도 후작령의 영지기사들과 마주했다.
경(卿)의 칭호를 가진 일곱 기사들이 공(公)의 칭호를 가진 후작, 즉 나를 바라보았다.
“으와따, 아가씨. 신수가 훤해지셨네예. 우짜쓰까잉.”
날건달 같은 말이 날아왔다. 날건달 같이 생긴 놈이었다.
“야 임마. 아가씨가 뭐냐. 후작 각하시지.”
꼰대 같은 일침이 뒤를 이었다. 꼰대 같이 생긴 놈이었다.
“하이고 아재요. 아재는 진짜 입에 담는 말마다 노랑내가 나네. 노랑내가 나. 좀 더 인생을요, 예? 여유롭게 사세요, 아재.”
촉새 같은 조잘거림이 있었다. 촉새 같이 생긴 놈이었다.
“모차 경의 말씀은 실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여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 문제이지요. 후작 각하…. 저를 부르신 건 좋다 이 말입니다. 은월의 피에게 인사를 드린다, 이것도 아름다워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제 봉토 꼴이 말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예? 하실 말씀 있으시면 얼른 하시고, 은월의 피, 그 분도 빨리 소개해주십쇼. 얼른 말입니다. 제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어서요.”
웬 개소리가 그 다음이었다. 개 같이 생긴 놈이었다.
“참으세요, 미노타 경. 미노타 경의 인내심이 바닥났다간 여기 모인 우리 모두 무사할 수가 없을 테니까.”
똥폼 잡는 추임새가 들어갔다. 똥 같이 생긴 놈이었다.
“….”
그나마 조용하게 입 다물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조용해 보이는 놈이었다.
“그… 상을 맞이하신 데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달 드리는 바입니다. 후작 각하.”
마지막으로 제정신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제정신 같아 보이는 놈이었다.
[최초의 성녀: 와.]
천하의 아리야가 이런 반응을 보일 만큼 개판이었다.
나조차 할 말을 잃은 가운데, 비류아가 말했다.
[개천의 시왕: 다 죽이지.]
[첫 번째 은월: 아니… 음. 아니…. 비류아. 그래도 쓸 수 있는 사람은 써야 하잖아…. 그 왜 농사? 지으면서 똥도 거름으로 쓰고 막 그런다매.]
[개천의 시왕: 사람도 거름으로 쓸 수 있지. 그러자면 일단 죽여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은월: 아니아니아니아니… 가리비수. 이거 음, 예상한 상황이지?]
그렇다. 예상한 상황이다.
이 영지가 정상이 아니라는 거야 익히 경험한 사실 아닌가. 설마하니 아리야가 이끌던 시기의 월족보다 더 거지 떼 같을 줄은 몰라서 충격이 왔을 뿐.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썩어도 되는 환경이 되면 대부분의 인간은 푹 썩어버리는 것이다.
[간신 조련사: (귓속말) 잠시만. 그 생각은 너무 나간 것 같군요, 간신이여. 자신이나 이들이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인간’ 운운하며 도매급으로 모는 것은….]
나는 일반 채팅방을 흘끗했다.
[대장군 두오: 크으…. 정말이지 이거, 술이 쓰군요. 시왕 폐하 말씀처럼 어서 죽이지요.]
[국모님 상현후: 저 섬에 갔던 건 대부분 하현의 입김이 닿은 아이들이었지. 정말이지 상현 아이들과 하현 아이들의 격을 알겠구나.]
[경국의 하현후: 응~ 상현의 격 = 원기윤 제독~]
[장막의 신월후: 그래도 원기윤이는 말이라도 통하지 않았어요? 저건 뭐 재활용이 불가한 수준인데.]
[시왕의 부인: 그러게 말이군. 역시 부군께서 말씀하신 바가 옳다. 모두 목을 치도록 하지. 내 인내심이 바닥나려 한다.]
[천마의 무왕: 참으십시오, 아버님. 아버님의 인내심이 바닥났다간 여기 모인 우리 모두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요.]
[무너진 수로의 영웅 1: 동의합니다.]
[무너진 수로의 영웅 2: 재청합니다….]
나는 천사님의 반응을 기다렸다.
[간신 조련사: (귓속말) 음… 임무나 수행하십시오.]
‘넹.’
그래, 어디 수행해보자.
‘본 후작은 너희들에게 실망했다.’
대충 이런 문구로 대변될 수 있는 말을, 다만 좀 더 충격이 있게끔 말이다.
◈ ◈ ◈
‘소연아.’
[첫 번째 은월: 응, 비수야?]
‘너 욕 좀 하지? 나 필요해서 그러는데 도와줄 수 있냐?’
[첫 번째 은월: 어, 도와줄 수야 있긴 한데….]
[최초의 성녀: 그… 뭘 하시려는지 알겠는데요, 예언자님. 그치만 뭐랄까, 야리소연의 욕은 찰지긴 하지만, 너무 좀 정직한 구석이 있지요.]
‘아, 듣고 보니. 음… 그럼 아리야. 거 일반 채팅방에 공고해서 입주자들 중에 욕 좀 잘하는 사람들만 모아주시오. 천사님은 그 사람들 외에는 당분간 채팅 못하게 잠금해 주시고. 그리고….’
물밑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기사들은 떠들고 싶은 대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니 왜 말씀이 없습니꺼? 불러놓으셨으면 말씀을 하셔야지예.”
“제 말씀이 바로 그거란 말씀입니다, 후작 각하…. 저, 바쁜 사람이란 말씀입니다….”
“미노타 경, 참으세요. 참으셔야 합니다. 미노타 경의 분노란 대저 성난 바다와 같은 바, 모두를 휩쓸리게 할 지어니….”
그때쯤 밑 준비가 끝났다.
[욕 잘하는 병졸: 초안이 나왔습니다. 이거면 아주 효과가 직빵일 겁니다요.]
‘훌륭하구만.’
그렇게 일반 채팅방에서 준비해준 초안을 답안지처럼 옆에 딱 펼쳐 놓고서, 나는 천천히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말했다.
“야 이 개새끼들아.”
왁자하게 떠들던 기사들이 움찔했다.
고요해진 속에서 나는 턱, 양 손으로 탁자를 짚고는 으르렁거렸다.
“뭘 꼬라 봐, 이 잡놈의 새끼들아. 확 그냥 모가지를 똑똑 따다가 귤나무 아래에 파묻어 버릴까보다 이 염병할 쌍것들이.”
“어, 어어….”
기사들이 당황했다. 나는 이를 드러냈다.
“어어는 뭐 어어야, 이 새끼들아? 상어한테 던져주면 와 인간님 감사합니다 이게 웬 떡이래? 하고 한 입 뜯어먹은 상어가 와 엿간새끼 날 뭘로 보고 이딴 걸 던져줘 하면서 엣퉤퉤 뱉어버릴 게 뻔히 보이네 아주 이 잡것들아. 말미잘도 니들 보면 삼삼오오 무리지어 쌍욕을 퍼부을 거다, 이 호로새끼들아. 어디 기사라는 놈들이 무슨 뒷골목에 모여 난장질 칠 궁리만 하는 파락호 새끼들마냥 굴고 있니, 이 빌어먹지도 못할 개자식들아?”
“아, 아니… 후작 각하. 그, 말씀이 좀 너무하신 것 아니십니까!?”
꼰대처럼 생긴 놈이 얼굴을 붉힌 채 벌떡 일어섰다.
내가 말했다.
“앉어 새끼야.”
꼰대처럼 생긴 놈은 앉지 않았다. 대신 삿대질을 했다.
“앉으라니요! 제가 무왕 폐하께 직접 술잔을 받아본 사람입니다! 그런 제게 그런 모욕을 하셔놓고 앉으라는 말씀을 하시다니 후작 각하께서는 예의라는 것을--”
그래서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손도끼를 집어던졌다.
탕…!
튕겨 나간 손도끼의 날이 허공을 갈랐다. 일어선 꼰대의 뺨을 스치고서, 쾅…! 응접실 벽에 처박혔다.
벽에 박힌 도끼 자루가 부르르 떠는 가운데, 꼰대처럼 생긴 놈 뺨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힉.”
꼰대처럼 생긴 놈은 물론이요, 다른 기사들도 어깨를 움츠리며 대경실색했다.
내가 말했다.
“앉어 새끼야!”
꼰대처럼 생긴 놈은 허물어지듯 자리에 앉았다.
정적이 자리잡았다.
나는 한동안 어깨로 숨을 쉬다가 말했다.
“그래… 니들이 무슨 죄가 있겠냐?”
기사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못 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기사들이 모여 앉은 원탁을 빙빙 돌았다. 배 주변을 맴도는 상어처럼.
“25년이다, 25년.”
언급했듯, 나투아 공주의 피를 이어받은 내 빙의체는 기럭지가 길쭉했다. 창가에서 흘러든 노을에 내 그림자는 그보다 길쭉하니 늘어졌다.
“니들이 여기 온지가 25년. 니들 부모가 여기 온지가 25년이다.”
걸으면서 말을 흘릴 때마다, 해초처럼 늘어진 내 그림자가 그들을 빙글빙글 휘감았다.
“니들 중에 나이든 새끼들은 그냥 하던 대로 해왔겠지. 그렇게 해도 됐으니까. 니들 중에 어린 새끼들은 그걸 또 보고 배웠겠지. 보고 배울 거라고는 그것뿐이니까. 하던 대로 해왔는데 뭐가 문제냐, 본 대로 배웠는데 뭐가 불만이냐…. 그런 억울하다는 반응, 나올 수 있다는 거 본 후작은 충분히 이해한다.”
개처럼 생긴 놈과 똥처럼 생긴 놈 사이에 나는 고개를 들이밀었다. 제대로 씻지도 않는 건지 막 불려와서 그런 건지 곧장 개똥 같은 냄새가 풍겼지만 참았다. 어차피 창문을 열 때마다 지린내와 비린내가 흘러드는 판국이다. 이해해야겠지.
“지금은 이해한다 이거야.”
그 둘의 귓가에 대고 나는 으르렁거림을 흘려 넣었다.
“더는 못 해.”
고개를 뗐다.
“안 해.”
다시금 빙글빙글 원탁 주변을 돌면서 앉아있는 기사들 모두에 대고 말했다.
“알아 들었니 새끼들아?”
기사들은 말이 없었다. 그래도 본토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는 녀석, 가령 이세한테서 술잔을 받았었다고 으스대다가 나한테 도끼날을 받았던 꼰대는 고개를 푹 수그린 상태였다. 벌겋게 달아오른 그 얼굴에는 분노나 모멸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 특유의 자각이 깃들어 있었다.
‘한 놈은 됐고.’
제정신 같던 놈도 비슷한 자세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두 놈.’
미노타 경인지 뭔지, 성난 바다의 분노를 가졌다는 개 같이 생긴 놈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못 낼 만큼 쫄아 있었다.
‘원래 나대는 새끼일수록 겁이 많은 법이지. 이걸로 세 놈.’
촉새 같이 생긴 놈과 똥 같이 생긴 놈은 무한 눈치 보기에 들어간 상태였다.
‘이런 것들도 어차피 분위기 따라가는 놈들이니 됐어. 다섯 놈.’
하지만 일곱 놈이 모이면 꼭 두 놈이 문제를 일으키는 법이다.
그 중 한 놈, 날건달 같이 생긴 놈이 말했다.
“후작 각하… 너무한 거 아니어예?”
“너무하다고?”
“예, 너무하지예. 아니 거, 쫀심 상하셨다는 거 이해를 합니더. 그치만 우리도 쫀심이 있다 아닙니꺼? 아니. 우리가 무슨 이단자 새끼들도 아니고예. 그렇게 윽박질러놓고 해싸면, 기 죽어서 못 살지예. 돌아가서 영민들을 우째 봅니꺼? 그리고 우리가 영민들을 못 보면은, 후작님이라고 영민들 볼 수 있을 것 같어예?”
날건달 같은 놈이 날건달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서라.”
“서예? 하이고. 저 아재한테는 앉으라 캤다가, 내한테는 서라 캤다가.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지 참말로 모르것네. 모르것어. 아, 혹시 이단자 새끼들이 뭍과 물이 뒤바뀌니 하는 기 이긴가? 후작님이 여자라 변덕이 죽 끓듯 할 거니께 알아서들 조심해라 뭐 그런….”
“서라고 새꺄.”
날건달 같은 놈이 벌떡 일어섰다.
“아, 예! 섰습니다! 우얄 낀데? 우얄 낀데요!”
시뻘개진 채 성을 내는 날건달 같은 놈을 꼰대가 말렸다.
“아니 이 사람아, 후작 각하께 그게 무슨 태도인가.”
제 정신 같은 놈도 끼어들어 말렸다.
“그래 임마.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태도가 도리어 날건달 같은 놈에게는 자신의 힘을 확인해주는 것으로 여겨진 듯했다.
날건달 같은 놈은 아주 기세가 등등해져 외쳤다.
“아 지금 흥분 안 하게 됐소? 우리가 뭐요? 기사요 기사! 근디 저 아가씨가 우리한테 기사 대우를 안 해준다 아닙니꺼! 대우를 안 해주는데 와 대우를 해줘야겠나! 아가씨! 말을 해보이소, 말을! 그래예 안 그래예!?”
응, 그래.
‘넌 사형이다.’
이런 놈은 분란만 일으킨다. 억지로 결투를 걸어 때려 눕혀봤자 이 자리에서만 조용해질 뿐 돌아가서는 호박씨를 깔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아무리 인재라도 체계를 뒤흔드는 놈은 필요 없는 것이다.
‘보나마나 능력도 없겠지만.’
빨리 쳐내버리자.
‘각 저승 입주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저 날건달 같은 놈이 곧 저승 입주 자격을 갖추게 될 예정입니다. 혹시 입주하게 될 경우 참교육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그렇게 고지한 다음, 나는 허리춤에 매인 도끼자루를 부여잡았다. 방침은 섰으니 시행한 남았다.
‘다짜고짜 머리를 쪼개? 아니지. 겁부터 집어먹을 놈들이 세 놈 있어. 너무 움츠러들면 부리지도 못한단 말이지. 구호랑 경비대장 불러서 불경죄로 가둔 다음 조질까? 흠. 그게 가장 낫겠네. 한 일주일 들여야겠지만….’
하지만 내가 일주일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조용해 보이는 놈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게 고개를 수그렸다.
“죄송합니다, 후작 각하.”
“음?”
“실례하겠습니다.”
그 실례가 무엇인지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빛이 터졌다.
조용해 보이는 놈이 허리춤에서 검을 빼어 휘두른 것이었다. 그 동안에도 기세가 등등하던 날건달 같은 놈은, 기세가 등등하던 모습 그대로 픽 옆으로 쓰러졌다.
“히, 히익…!”
“으아앗…!”
한 박자 늦게 소란이 벌어졌다. 튀어 오른 피에 기겁하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의자를 뒤로 끌면서 비명을 지르는 기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 소란에 동참하지 않는 이가 둘 있었다.
가령 날건달 같은 놈은 어떤 식으로도 동참하지 못했다. 죽은 자는 그렇게 많은 것을 할 수 없게 되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 소란을 벌인 장본인, 조용해 보이는 놈은 말없이 피에 젖은 칼을 닦고서 집어넣었다.
‘칼솜씨만 놓고 보면 사호급….’
달인의 경지를 넘어 초인의 영역에 달한 칼솜씨로 날건달 같은 놈을 처리한 그 조용해 보이는 놈은, 조용히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조용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거듭, 죄송합니다. 후작 각하. 함부로 움직인 무례를 벌해주십시오.”
음.
“너.”
“예.”
“이름이 뭐냐?”
조용해 보이는 놈은 조용하게 답했다.
“시아람이라 합니다, 각하.”
“시아람 경인가….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여섯 놈.’
그리고 쓸 만한 인재를 딱 한 놈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