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신이 나라를 살림-149화 (149/261)

149. 공주 전하 받아라! (1)

1 좋은 통치를 하자!

1 치안을 바로 세우자!

1 군사권을 통합하자!

1 원기윤 제독을 조지자!

그런 기치 아래 나와 구호는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잠시 후, 구호가 고개를 슬그머니 기울였다.

“근데 어떻게?”

- 갓 승계한 데다가 휘하 영지기사들도 서로 쌈박질이나 해대는 존망 영지의 꼬무래기 후작 각하가 뭘 어떻게 해야 왕국 제함도 주둔군 총 사령관을 조질 수 있나요?

“너 내 자문사 아냐?”

- 니가 생각해야지?

구호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불끈 쥐었던 두 주먹을 내렸다. 내가 그런 구호를 다독였다.

“너무 걱정 말고. 내 영지잖아.”

- 나도 생각해볼게.

어떻게 저 새끼를 내 세끼 식사거리로 조져버릴지 두뇌를 전력 가동함으로써 말이다.

◈          ◈          ◈

‘원기윤 제독.’

천사님의 과거시를 통해 알아낸 놈의 삶은 단순하고 얕았다.

‘상현 공작가의 지원을 받는 명가 태생. 그 아비가 나시파 변경백의 부관으로 만수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어 그런 지원에 보답한 바 있음.’

그렇듯 아비는 반생을 전사로 용맹하게, 나머지 반생을 군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다 간 걸물이었지만, 불행하게도 자식 농사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애초에 이 새끼가 해군으로 배치된 것 자체가 문제 있단 소리란 말이지….’

왕국군의 꽃은 기병이다.

이건 당연한 거라 더 해설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투아를 병탄하며 흡수한 기술력으로 해군과 궁병 규모도 무시할 수 없이 커졌다지만, 기병 우선주의를 버리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왕국군의 군사 계통에서 영달을 꿈꾸는 이들은 자연히 기병을 목표하게 마련이다. 원기윤 같은 경우 그 아비가 기병대에서 이름을 날린 전쟁공신인 만큼 아예 멍석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으로 빠진 거다.

어째서?

‘탈 말이 없을 만큼 살이 찐 통에 기병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대체 무슨 3류 희곡에나 나올 법한 얄팍한 설정인가 싶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원기윤은 실존하는 인물이었다.

[첫 번째 은월: 음…. 군사 계통이니 병과니 하는 건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이 섬 주둔군을 통째로 맡고 있는 제독이면 꽤 대단한 거 아냐? 먹는 걸 좋아해서 살이 쪘을 뿐이지 머리는 쌩쌩 돌아갈 수도 있잖아.]

‘원기윤 지장(智將)설을 밀면서 반전 매력을 꿈꾸는 우리 소연아. 그런 대단한 새끼가 주둔군 제독이면 제함도 꼬라지가 지금 이 불타는 게 껍질보단 낫지 않았을까?’

[첫 번째 은월: 그러게. 잠깐만, 그럼 어떻게 제독이 됐대?]

‘1 집안을 잘 타고 나서. 2 줄을 잘 타서. 3 아첨을 잘 해서.’

그렇다.

원기윤 제독에게 재능이 있기야 했다. 왕국에 이로운 재능이 아니었을 뿐이지, 그에게는 줄을 잘 타는 재능과 뇌물을 받아먹는 재능, 꼬리를 잘 흔드는 재능과 이빨을 잘 터는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간신 조련사: 이 무슨 그림으로 그린 것만 같은 간신….]

‘용서할 수 없지요….’

[간신 조련사: 그러게 말입니다, 간신이여….]

‘조져야만….’

나는 의분으로 가득 찼다.

그리하여 마차에서 내린 나는 그 천벌 받을 간신배 새끼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아유우우우! 제독님 안녕하신가요오오!”

나는 두 손을 모은 채 열심히 고개를 꾸벅거렸다. 바다 바람을 맞고 자라 갈라진 입술에는 활짝 웃음을 매달고, 분칠로도 숨길 수 없을 만큼 퀭하니 그늘진 눈매에는 흠뻑 미소를 적시면서.

“제함도에 오신지 벌써 3년이 지나셨죠오. 죄송해요. 제가 제 때 제 때 인사를 못 드려서 차암. 이제야 좀 공식적으로 인사를 드리게 됐네요.”

바로 1분 전에 조져버리자고 결의했던 새끼에게 아부를 떠는 내 모습을, 구호는 괴이한 것을 보듯 보았다.

[최초의 성녀: 아, 저 눈빛. 기억나네요. 임무 돌입한 시점에 예언자님한테 제가 보냈던 거랑 똑같은 눈빛….]

반면 원기윤 제독은 허허 웃었다. 그 웃음에 따라 투실투실한 살집이 파도쳤다.

“으허허. 새로이 작위를 맡으신 후작 각하 아니십니까. 상중에 참 공사가 다망하십니다.”

“네에. 그치만 상중이라고 어찌 거를 수 있겠어요? 상은 집안 일이고, 이건 국가 일인데요. 공사가 다망할 적에는 마땅히 공을 우선해야지요.”

“이거이거 이 왕국 최남단에 이렇게 충심이 가득하신 분이 계셨다니. 참으로 이 왕국의 홍복이올시다.”

“어머어머 저야말로요. 상현 공작가에서도 귀히 대접받으시는, 왕국 해군의 핵심 중의 핵심이신 원기윤 제독님께서 이렇게 제함도에 부임해 계시다니. 실로 제 생의 영광이에요.”

“으허허허허!”

“우후후후후.”

나와 돼지는 그렇게 기분 좋은 환담을 나누었다.

[간신 조련사: 이렇게 전력으로 아첨을 해대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군요.]

[최초의 성녀: 그러게요. 예언자님, 그 동안 아첨하실 기회가 많이 부족하셨지요.]

[첫 번째 은월: 니들 왜 마치 훈훈한 풍경을 보듯 말하냐?]

[개천의 시왕: 심지어 뭔가 선배라도 된 것 같은 얼굴이군. 팔짱을 낀 채 뻐기는 모습이 마치 우리한테 ‘니들 이거 정식으론 처음 보는 거지?’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저승에서는 저렇게 기분 나쁜 잡담이 오갔지만, 그거야 내가 알 바 아니다.

나는 눈앞의 돼지에게 집중했다.

‘일단 이렇게 보이지만 완전히 바보 새끼는 아닐 거야.’

그런 놈은 기껏 타고난 집안빨과 인맥빨도 제대로 이용해 먹지 못한다. 제독씩이나 됐다는 것 자체가 머리가 좀 돌아간다는 증거다.

‘그리고 제독이 될 정도라면 권력욕은 쩔겠지.’

문관이나 신관으로 가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지식과 신앙은 각각 하현 공작가와 잔월 공작가의 영역. 또 아직 왕국에서 군사력보다 귀하게 대접받진 못하는 분야였다.

‘보신욕도 쩔 테고.’

집안빨과 인맥빨을 활용할 수 없는 데다 한계가 뚜렷한 부분에 투신하느니 확실하게 긁어모을 수 있는 부분에서 노력할 줄 아는 새끼. 그것이 바로 원기윤 너란 새끼.

‘그런 새끼가 지금 날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1 와! 이렇게 갑자기 날 떠받들더니 내가 좀 쩔긴 하나 보다.

2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당연히 2번이지.’

과연 허허 웃는 그 눈동자 저편에 원기윤 제독은 경계심을 띄워놓고 있었다. 내 꿍꿍이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원래 적에 대해서는 적이 가장 잘 아는 법.’

이 돼지의 생태에 대해 망국의 충신인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전무하리라….

[첫 번째 은월: 뭐지? 거울 보나?]

[간신 조련사: 자기에 대해서는 보통 자기가 잘 아는 법이니까요….]

천사님은 중얼거리더니, 곧 무언가 깨달은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간신 조련사: 과연. 이제 고돔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을 할 차례겠군요. ‘이거다’ 하고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속내를 드러내어 착각하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중간의 헛소리들이야 어쨌건 이제야 좀 풍월을 읊으시는군요.’

나는 우물쭈물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런데 제독님. 제가 한 가지만 여쭈어 보아도 괜찮을까요?”

“어떤 겁니까, 후작 각하?”

“그게에. 참 말씀드리기 민망한 일이지만서두…. 이번에 폐하께서 친사를 보내셨는데, 어떤 일로 오시는지는 정확히 전달을 받지 못해서 말이예요….”

“어허허허. 그래서 제가 혹시 아는 게 없는지 여쭈고 싶으신 겁니까?”

“예에. 혹시 제가 준비를 못해서 실수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그럼 폐하의 성총에 누가 될 테고…. 또 아시다시피, 으음, 제 아버지가 좀 모자란 사람이었나요? 아주 많이 모자란 사람이었잖아요? 저, 후작위를 승계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렇게 아버지 같은 사람으로 취급당하긴 싫어서 말이에요….”

자, 이거다.

제함 후작가는 정보력이 일천하다. 파견 나온 왕국군 제독인 당신이 아는 사실을 제함도 후작씩이나 되는 내가 모를 정도다. 처참하지 않은가.

그러니 대가 바뀐 것을 계기로 나는 당신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

단, ‘후작가’와 ‘왕국군’과의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만약 제독님께서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다면….”

어디까지나 원기윤 제독, ‘당신’과 ‘나’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나를 도와달라.

“‘저’도 차후 제독님을 도와드릴 수 있게끔 노력할 텐데….’

그렇게만 하면 나도 ‘개인적으로’ 사례하겠다.

“어떻게 좀, 안 될까요…?”

나는 맞댄 손끝을 꼼지락거리면서 눈치를 보았다. 왕국 종친과 나투아 공주의 피를 이어받은 만큼 내 빙의체는 원기윤보다 훨씬 컸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 동작엔 일종의 과장된 느낌이 깃들었다.

원기윤 제독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물론이지요, 후작 각하! 각하께서 그런 창피를 당하시는 걸 이 원기윤이가 좌시할 리 없지요.”

그 웃음에는 ‘동족’을 발견한 사람 특유의 친근감이 있었다.

‘실로 구역질이 날 만큼 역겨운 오해….’

[간신 조련사: 네?]

하지만 바로 그 역겨운 오해가 나로서는 불감청일지언정 고소원이었다.

생태계에서는 동족이 서로를 배척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그 배척은 어디까지나 나눠 먹을 것이 없을 때 벌어지는 것이며, 또 그렇더라도 그 이빨은 ‘대등한’ 동족에게 향하게 마련이다. 확실하게 굽히고 들어와 빚을 청하는 동족은 환영받는다.

‘특히 그것이 정보에 대한 빚이라면 더더욱.’

자신의 정보 우위를 확인한다는 것은 대단히 기꺼운 일이다. 모자란 자에게 자기 지식을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이다.

[첫 번째 은월: 잠깐, 너. 뭔가 설명할 수 있는 상황만 되면 갑자기 신이 나서 설명충 되는 것도 혹시…?]

[간신 조련사: 대단히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타고난 성품이 간사할수록 그런 것을 기분 좋게 여기는 바, 과연 원기윤 제독은 만면에 미소를 띤 그대로 말을 이었다.

“후작 각하께서는 줄곧 이 제함도에 계셨지요?”

나는 뺨을 짚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예에. 어릴 적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제가 후계자 책봉을 받기 위해 입조(入朝)해야 할 적에, 아버지 손을 잡고 한 차례 왕도에 들른 적 빼고는 줄곧 여기에 있었답니다. 본래대로라면 산호 옥좌를 계승할 적에 인사드려야 했을 텐데….”

“사람의 명운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정정하던 선대 후작 각하께서 그렇게 갑자기 훙(薨)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도 참, 제 집안 일이지만 믿기지가 않아요…. 아, 혹시 그 승계를 정식으로 인정해 주시기 위해 친사님을 보내신 걸까요? 세상에, 그러면 어떻게 해요? 마땅히 제가 상이 마무리되는 대로 입조하여 주상드려야 하는 일을….”

“하하, 아마 그것도 있을 겁니다. 현왕 폐하께서는 어질기 그지없으니까요.”

‘참조: 간신이 왕을 두고 어질다고 평가하는 건 등쳐먹기 딱 좋다는 뜻입니다.’

[간신 조련사: 과연. 언제 기회가 오거든 반드시 참조하겠습니다.]

“하지만 후작 각하. 그것만은 아닙니다.”

후덕한 살집 곳곳에 웃음기를 매달고 말하는 원기윤 제독의 모습에는 니가 모르는 걸 나는 알고 있지롱, 하는 우월감이 가득했다.

나는 그 우월감을 살살 긁어주는 태도로 맞장구를 쳤다.

“세상에. 그렇다면요…?”

“왕도에서 한 차례 난리가 있었습니다.”

“어머나, 난리라면….”

“예. 지금 왕실에는 군(君)과 옹주(翁主) 저하가 아니라 대군(大君)과 공주(公主) 전하가 각각 한 분씩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 왕실에는 은월의 피가 둘 있다.

‘그거야 구호에 대해 설명할 때 이야기했던 거였지만, 그걸 갖고 난리가 있었다면….’

“혹시 대군인가, 공주인가를 두고 다투기라도 했나요…?”

승계권을 놓고 다툼이 있었냐는 질문에 원기윤 제독은 미소 지은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참, 흉한 일이기는 합니다만은…. 4대 공작가 측에서 각각 지지한 후보가 달랐다지 뭡니까. 제가 속한 상현 공작가는 먼저 태어나신 왕자 전하를 지지했다는데, 거참. 반대를 위한 반대인지 뭔지, 어디라고 말은 못하겠는데 공주 전하를 지지한 공작가도 있다고 참….”

음.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

현재 왕국 정세를 만들기 위해 인과 포인트를 쓸 적에 생각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두 가지로 이유로 크게 걱정하진 않았지만….’

첫째. 두 은월 모두 정실인 사호가 낳았다는 것.

[개천의 시왕: 어미부터 달랐던 나와 주온과는 경우가 달랐다 이거군.]

둘째. 이런 간신을 제독으로 임명하고 심지어 어질다는 평가를 받는 현성이…보다는 그 아내로 밀어 넣었던 사호를 믿어서였다.

[최초의 성녀: 아무리 그래도 내전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 여기신 거지요.]

그 생각이 옳았다. 원기윤 제독은 함박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그게 좀 심각하게 가려나 싶었는데, 적절할 적에 적검후(赤劍后)께서 중재를 하셨답니다.”

듣고 있던 구호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도 속으로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역시 사호!’

사호는 간첩이다. 전향한 간첩과 왕의 사랑. 희곡 소재로야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첩실까지가 한계였을 것이다. 아무리 그 공이 크더라도 말이다.

‘인과 포인트를 총합 14 들여 정실로 만든 보람이 있었어!’

이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아직 현성이 대에서는 외척 관리가 될 것 같지 않아 아예 정치적 지지기반이 전무한 사호를 올린 것 절반, 이럴 때 어떻게든 해줄 거라고 사호의 실력과 인품을 믿은 것 절반이었는데, 둘 모두 옳았다는 게 증명된 셈이었다.

다만.

“으음… 제독님께서 이렇게 기분 좋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혹시…?”

원기윤 제독의 웃음이 짙어졌다.

“예. 일이 순리대로 흘렀습니다. 대군 전하께서 세자 책봉을 받으셨지요.”

음.

“그렇다면 공주 전하께서는….”

“당분간 왕도를 떨어져 있게 되셨습니다. 왕실은 여염집과 같을 수 없는 바. 그런 일이 있었는데 함께 있기란 민망할 노릇 아니겠습니까?”

으- 음.

“그 공주 전하께서, 혹시…?”

원기윤 제독이 활짝 웃었다.

“예. 이 섬에 머무르실 예정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멀찍이서 친사를 태운 왕국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 *와! 공주 전하! +3점 (은월의 눈동자를 이어받으신 공주 전하께서 무기한으로 머무르실 예정입니다!) ]

‘와.’

3점짜리 공주님을 떠맡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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