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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이 나라를 살림-147화 (147/261)

147. 나라를 살리는 여덟 번째 방법 (2)

이쯤에서, 왕국이 보낸 지난 25년을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그 25년은 영웅들의 시대였다.

호국의 영웅과 정복의 영웅.

먼저 전자부터 살펴보자.

첫 번째 호국의 영웅은 나시파 변경백이다.

왕국 정벌군이 나투아 본토를 침공하고 있을 적에, 대륙의 군사력은 북벽에 집중되었다. 희곡 속에 묘사되는 북벽 수성처럼 양동을 거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전력으로 북벽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파상공세였다.

아마 이 또한 예정보다 일찍 나투아 영토에 발을 디딘 영향이었을 거다.

그리고 여기서 자모신 시스템이 북벽 수성에 더 이상 변수가 없다고 판단한 이유가 드러났다.

나시파 변경백이 자신의 역량을 증명해낸 것이다.

위치. 대륙군이 1만 3천에 달하는 군사를 잃는 대가로 얻은 것은 도저히 교환비 면에서 맞아 떨어지지 않는 적은 수의 왕국군 시체들과 성벽 쪼가리들뿐이었다.

시기. 그러는 동안 겨울이 깊어졌다. 나와 현성대군이 체험했다시피 북부의 겨울은 험악하며, 나른한 벌판은 말 그대로 벌판이어서 그 추위를 피할 곳이 없다.

행동 1 여기서 나시파 변경백은 편지를 두 통 썼다. 그 중 하나는 성 제국과 손이 잡았음이 분명했던 북방 야만족들에게 전달되었다. 그 편지는 야만족장들에게 아주 자그마한 번뜩임을 주었다. 북벽에 고기방패로 돌격하느니 성 제국의 보급대를 터는 것이 더 짭짤한 벌이라고 느끼게 된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며, 또한 단순히 사실이기에 성 제국에게 불행한 일이었다. 혹독한 겨울에 보급로도 온전치 못하게 된 것이다.

행동 2 나시파 변경백의 편지 중 나머지 한 통은 그런 불행을 겪은 성 제국 북벽 공략대 총 지휘관인 우중무(于仲武)에게 향했다. ‘여러분은 충분히 노력했어요.’ 대충 그런 뜻을 미사여구로 치장한 편지였다. 독서가 취미라는 데에서 알 수 있듯 나시파 변경백에겐 문재(文才)가 있었으며 사호로부터 얻어냈던 정보처럼 우중무는 명예욕이 강한 인물이었다. ‘이기지도 못할 전쟁에서 이만한 편지를 받아냈으니 승전 아니냐?’ 과연 그런 생각을 할 만큼 빡대가리는 아니었겠지만,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켰다고 우중무는 판단했던 모양이다.

성 제국군은 회군을 시작했다.

행동 3 나시파 변경백은 북벽의 문을 열었다. 개국 이래 공식적으로는 처음 열린 북벽의 문은 예상한 것보다 부드럽게 열렸다. 그것은 문 보수를 위해 불려왔던 기술자들에게 좋은 일이었고, 북벽 책임자 나시파 변경백에게도 좋은 일이었으며, 뛰쳐나갈 기회만 노리고 있던 왕국 기병들에게 가장 좋은 일이었다.

바닥에 얕게 깔린 눈더미가 달빛을 되비쳐 하얗던 어느 밤, 왕국 기병들은 성 제국군을 황천강 일대인 만수에서 따라잡았다. 차후 만수대첩이라 불리는 이 결전으로 인해 왕국은 3만 명의 제국군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았다. 총 지휘관 우중무 또한 사로잡았다. 대승이었다.

두 번째 호국의 영웅은 신월 공작과 다물 재상이었다.

성 제국의 수뇌부는 바보가 아니었다. 바보들은 자기 영토 바깥으로 대군을 내보내지 않으며, 다른 나라와 군사 동맹을 맺지도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대륙 입장에서는 동해, 왕국 입장에서는 서해에 해당하는 해역으로 병사들을 내보냈다. 나투아의 세 함호 중 하나가 붙어 이를 도왔다.

왕국 해군은 분전했다. 하지만 왕국 해군은 그 역사가 일천했고 장비도 좋지 않았다. 그러니 두 나라의 해군력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왕국 수군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으며 후퇴해야 했고, 서해는 나성 군사동맹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나성 군사동맹 해군 연합은 여기서 세 가지 선택지를 강요받게 됐다.

1 왕국 본토에 상륙할 것인가?

2 장악당한 대하를 다시금 장악하려 시도할 것인가?

3 나투아 영토에 군을 내려놓아 결사대가 실패했던 보급로 장악을 다시 한 번 시도해볼 것인가?

나성 군사동맹은 2번을 선택했다. 대하를 장악하고 있던 왕국 수군에 왕국 해군의 잔존 병력이 더해진들 자신들보다 많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2를 성공하면 자동으로 3 역시 성공하는 것 아닌가. 기회를 보아 1을 시도할 수도 있다.

당연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판단은 마땅히 예측할 수 있는 법이다.

왕국도 그때는 이미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 무엇인가에 대한 감을 잡았다. 후방 부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으면서 얻어낸 교훈이니 빠르게 퍼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왕국 수뇌부 또한 더는 바보가 아니게 됐다는 뜻이다. 온천에서 돌아온 신월 공작은 다물 재상과 함께 나성 군사동맹 해군 연합을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서해로부터 대하를 타고 들어와 왕도 앞 유역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만(灣)을 하나 지나야만 했다. 이 만은 두 개의 자그마한 섬과 하화도(河華島)라 일컫는 커다란 섬이 맞물려 만들어낸 것이었다.

본디 왕국에선 커다란 환난이 있을 때마다 이 하화도로 천도를 하여 비상 체제를 갖추곤 했는데, 그건 지금 말할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이 하화도로 인해 만으로부터 대하로 유입하는 유역이 좁아진다는 사실이다.

대하에 깔려 있던 왕국 수군은 바로 그 유역을 포위한 채 기다렸다. 그 유역을 좁게 만드는 원인, 곧 하화도의 북쪽 곶과 왕도의 남서쪽 곶에도 궁병들이 자리 잡았다. 그들은 그 좁은 유역을 지나려는 배들에게 아낌없이 화살 세례를 날려주었다. 본래 왕국궁보다 나투아 대궁의 사거리가 더 긴 만큼 장거리 교전은 왕국 측에 불리했으나, 이제 왕국에는 노획한 나투아 대궁이 많았다.

아주 많았다.

익숙지 않은 탓에 부러뜨려 먹어도 그냥 새 걸 쓰면 될 정도로 많았다. 거기에 나투아 투항병이 가르친 불화살 사용법이 더해지자 서해로부터 대하를 통해 진입하려는 배들을 저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영원히 그럴 수는 없겠지만. 나투아 전역이 기마에 짓밟히고, 그로 인해 더 나투아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 성 제국이 군사동맹을 손절하고 빠져나갈 때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투아는 이빨과 발톱을 모두 잃은 채 홀로 남았다.

아신군. 두오 대장군. 현성대군. 이세 등.

이미 날뛰고 있던 정복의 영웅들이 날뛰기엔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다.

결국 나투아는 제함도를 거점 삼아 최종 방어를 펼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알실라가 뒤늦게 참전 의지를 피력해 왔다. 이제 와서 나투아를 도와 삼국 간의 균형 어쩌고 하기에는 때가 늦었다는 걸 모두가 알았으므로, 그 참전은 오직 새로이 반도의 패자가 될 왕국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함이었다.

알실라 최대 항구 부악(釜岳)에서 첨저선들이 출항했다. 그 칼날 같은 배들은 남해를 가로질러 제함도를 둘러쌌다. 썰었다.

쌈박한 놈들의 쌈박한 공격 앞에 제함도는 무너졌다.

나투아는 그렇게 멸망했다.

멸망한 나투아의 시체 위에 영웅들이 남았다.

그리하여 논공행상이 시작됐다.

수성의 영웅들, 나시파 변경백과 신월 공작, 다물 재상을 치하하는 것은 간단했다. 명예와 재물과 노예와 권한을 더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특히 다물 재상의 경우 시현군을 대리하여 다스리던 하현 공작가를 아예 정식으로 넘겨받게 되었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복의 영웅들의 경우에도 문제가 없었다. 왕국은 나투아를 정벌함으로써 새로운 왕토를 얻었다. 이제 그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영주들을 임명할 필요가 있었다. 왕국군의 약탈과 청야작전으로 인해 썩 매력적인 땅은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땅은 땅. 영주는 영주. 영주 임명은 충분히 공에 대한 포상을 갈음할 수 있었다.

다만, 가장 큰 영웅 시현군이 전사했다는 사실만은 문제가 되었다.

시현군이 받을 포상을 자기한테 대신 달라고 요구하는 용사가 있긴 했다. 아신군이었다. 그리고 아신군이 현성대군의 갈굼 속에 개박살나자 더 그것을 요구하는 이는 없어졌다. 시현군의 공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으며, 현성대군과 무왕이 시현군을 각별히 여겼다는 것 또한 모두가 알게 된 바였고, 이제 와서는 그 정체가 비밀도 아니게 된 현성대군의 주머니칼 사호는 무척 날카로웠다.

이런 상황이면 보통 그 포상은 왕가가 가져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왕실의 종친에게 주어지는 것이 합당했다. 또한 시현군은 그 자신이 종친이면서 하현 공작가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이였다. 따라서 하현 공작가를 배려하는 것이 타당했다.

결과: 시현군의 핏줄에게 그 포상이 돌아가게 되었다.

시현군은 전사 당시 독신이었다. 공식적인 아이는 없었다. 혹시 사생아가 있다고 해도 너무 어릴 터였다.

반면 친형제는 두 명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2대 법왕이었던 유미의 양자로 들어가 3대 법왕이 되어 있었다. 왕도를 떠날 수가 없었다.

나머지 한 명은 망나니였다. 다행히 시현군이 나투아 정벌에 나서기 전 대대적으로 벌였던 내부 정리 당시 걸려든 쾌락 살인마마냥 구제할 수 없는 또라이는 아니었다. 2대 법왕 유미처럼 적당한 망나니였다.

하여, 제함도가 그 망나니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는 포상이기도 했고 유배이기도 했다.

이 절반 포상, 절반 유배는 계속 반복될 표현이니 한 번 풀고 넘어가자.

제함도는 나투아의 본거지였다. 그런 곳을 영지로 받았으니 당연히 포상이었다. 하지만 또한 나투아는 반도와 격절된 섬이었다. 왕국 수뇌부가 호위 세력을 딸려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곳인데, 지리적인 특성 상 이 호위 세력이란 곧 감시 세력이기도 했다. 이러니 유배였다.

때마침 성 제국 육군 총 지휘관 우중무와 교환하는 형태로 사호의 여동생 구호가 왕국에 발을 디뎠다. 몇 개월 뒤 사호는 현성대군의 비(妃)가 되었고, 구호는 망나니를 따라가게 되었다. 이는 망나니에게 취해진 것과 비슷했다. 세자비의 유일한 외척이 된 구호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이자, 또한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게 호위 겸 감시 세력과 구호를 동반한 망나니는 제함도에 오자마자 나투아 전 최고 지도자인 해웅의 차녀와 결혼해야 했다. 이는 현지민들을 다독이기 위한 조치였지만 그 효과가 있는 지는 의문이었다.

확실한 것은 두 사람 모두 바라지 않았던 결혼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망나니 왕자와 망국의 공주가 나눈 결혼 생활은 불행했고, 불행한 가정은 그 자녀들의 불우한 유년기를 만들었다. 둘은 네 명의 아이를 가졌지만 그 불행을 견디고 성년이 된 것은 결국 첫째 딸인 휘영뿐이었다.

즉, 나였다.

[ 인과 포인트를 빙의체뿐 아니라 왕국 내 다른 인물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

[ 빙의체가 빙의 당시 행사했던 ‘영향력’과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또한 해당 인물이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일수록 소모되는 인과 포인트가 커집니다. ]

‘이것도 마지막 패치 내용 중 하나였지….’

그 내용을 지금 떠올리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축적된 인과 포인트 중 대부분을 지금까지 설명된 정세를 만들기 위해 털어 넣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오늘을 맞이하는데, 그렇게 맞이한 오늘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걸지도 몰라. 저 하늘 위의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만들어낸 오늘일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나는 우울하게 말했다. 그 말에 구호가 반응했다.

“무슨 헛소리야, 후작 각하?”

“아무것도 아냐. 그보다 그 친사 양반이 탄 배 말인데, 언제쯤 온대?”

“해지기 전에는 오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영주성 창밖을 가리켰다.

“그럼 저것들 그 전에 정리할 수 있을까?”

“잠깐만.”

구호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내가 가리키는 ‘저것들’을 보았다.

“산호 옥좌가 여인의 피로 더럽혀진 바, 심해에 가라앉은 아버지가 진노하셨다!”

“곧 뭍과 물이 뒤바뀔 것이다!”

현재는 이단 종교가 된 나투아 전통교의 성직자들.

“아이고! 흑구 놈들이 또 왔습니다요!”

“어떻게 좀 해주십쇼, 나리들!”

흑구의 노략질을 피해 도망쳐온 영민들.

“(팔러 온 물건들을 돗자리째 도둑맞았습니다! 마을 한복판에서요! 뭐 이런 도적 소굴이 다 있습니까?)”

“(아버님 말씀이 도둑, 거지, 대문이 없을 만큼 치안이 좋은 섬이었다던데! 순 거짓부렁이었구만요!)”

영민들에게 피해를 입고 공권력에 사정하러 온 대륙 상인들.

“오오! 해웅의 손녀님이여!”

“우리를 이끌어주소서! 이 고통에서 구해주소서!”

무슨 착각을 한 건지 나한테 역적질 좀 해달라고 두 손 모은 채 절절히 비는 노파들까지.

구호는 내밀었던 고개를 뺐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각하랑 같이 하면.”

음.

“그래, 하자….”

나는 두 팔을 걷어붙였다.

왕이 보낸 친사를 맞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오늘의 일과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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