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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이 나라를 살림-145화 (145/261)

145. 자모신 3.0 패치 업데이트 (2)

저승 하늘이 벌어져 빛이 흘렀다.

쏟아져 내린 빛이 넘쳤다. 수로와 수로 사이의 물줄기를 따라, 건물과 건물 가운데 대로를 따라, 빛은 세세하게 스몄으며 거침없이 흘렀다.

그리하여 저승 왕국은 저 너머까지 확장되었다.

“이건 저번에도 있었던 일이네요.”

실시간 업데이트 경험자였던 아리야가 턱을 치켜세우며 아는 체를 했다. 반면 그런 경험이 없는 다른 입주자들은 당혹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야 뭐?”

“뭔가… 뭔가 벌어지고 있음.”

그런 와중,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드리워진 빛이 워낙 많았다. 정확히 그에 반대되는 면적만큼의 그늘이 생겼다. 그 그늘이 하나 둘 일렁이더니, 그 속을 거닐던 망령들이 하나 둘 질서를 갖추고 섰다.

[ 자모신 3 패치는 입주자 편의성 위주로 진행됩니다. ]

그런 메시지와 함께, 망령들이 입주자들 앞에 질서를 갖추고 섰다.

[ 1 입주자 강화 ]

[ 더 이상 거치적거리기만 하는 망령은 없다! 아직 입주 조건을 채우지 못한 망령들이 간단한 노동을 대신해줍니다! ]

[ 이들에게 노동을 시키는 걸 망설이지 마세요. 지내다 보면 언젠가 ‘어라, 이 망령 이 사람 아닌가?’ 하고 망령의 정체를 꿰뚫어볼 때가 올 것입니다. 생전의 친족, 또는 부하, 혹은 벗이든, 아예 적이든…. 그러면 그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들이 형체를 갖추고 설 것입니다. ]

[ 혹시 여러분과 사이가 껄끄러운 사람인가요? 그럼 그냥 이름을 부르지 말고 부려먹으세요! 선주자 우선주의는 여기서도 유효하답니다. ]

[ 그리고 그렇게 부려먹다 보면 언젠가는 그 사이를 개선하고 싶어질 때도 오지 않겠어요? 여러분들에겐 시간이 있답니다. 금세 끝나 버릴 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영원할 수도 있는 시간이 말이에요! ]

“오오!”

“잃었던 수하들을 되찾을 수 있다는 뜻인가?”

“아버지를 다시 만나 뵐 수도….”

“내 동생!”

입주자들 사이에서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나는 가볍게 신음했다.

‘금세 끝나 버릴 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영원할 수도 있는 시간이라….’

대충 짐작이 가는 것은 있었다. 천사님이 그것을 구체적인 말로 풀어놓았다.

“당신이 임무에 실패하면 끝. 그리고 당신이 마지막 임무를 달성하면 영원이지요.”

“예에,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거 어깨가 무거워진다. 저승 입주자들의 처지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하는 동시에, 이 모든 공지가 또 한 가지 의미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입주자 숫자가 늘어나겠네.’

그것도 그냥 늘어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 굴리듯 불어나게 생겼다. 새로 들어온 입주자들도 누군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므로.

‘건물 관리에는 좋은 일이지만….’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마찰도 늘어나는 법이다. 지금이야 입주자들의 숫자가 워낙에 적었고, 또 선주자들이 세 은월부터 시작해 워낙 전설적인 경력을 가진 덕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도 과연 괜찮을까?

‘특히 야리소연이 알아볼 사람들과 아리야가 알아볼 사람들, 비류아랑 시우가 알아볼 사람들, 마나가 알아볼 사람들…. 세대마다 다른 세상을 살다 온 거나 다름없을 텐데.’

지금까지 입주자들의 경향성을 보면 내 분투가 어느 정도 공유되는 모양이니 최소한의 공감대는 가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자니, 바로 다음 공지가 떠올랐다.

[ 2 소통력 강화 ]

[ 입주자들 사이에도 채팅 기능이 추가됩니다. 보다 간편해진 소통을 마음껏 즐기도록 하세요! ]

[ 다만 VIP 채팅방에서는 여전히 VIP 여러분들(김충신, 간신 조련사, 첫 번째 은월, 최초의 성녀, 개천의 시왕)만 채팅 입력이 가능합니다. ]

“채팅? 그게 뭐야?”

“세 은월님들께서 전갈을 보내시던 거시긴가?”

“그럼 VIP는 세 은월님들을 뜻하는 거겠네.”

입주자들 사이에 그런 이야기가 오갈 적에, 나와 천사님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천사님…. 그 닉네임 언제 바꾸실 겁니까?”

“당신이나 먼저 바꾸십시오…. 솔직히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당신 메시지 뜨는 거 볼 때마다 얼마나 등신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압니까? ‘김충신’이 아니라 ‘김등신’이겠지 하는 생각부터 든단 말입니다. 그리고 대체 그 김이라는 수식어는 뭡니까?”

“별 의미는 없습니다요.”

‘그보다 이건 대체 어떤 이득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네.’

지금 존재하던 채팅창도 주된 이용자 입장에서 평가하자면 정신 사나울 때가 많았는데 말이다.

‘뭐 가끔 머리 식힐 때 들여다보면 좋을지도…. 급할 때는 세 은월들 통해 전달받는 것보다 빠르기도 할 테고.’

이번 역시 걱정이 앞섰다.

‘소통이 빨라진다는 건 말로 인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늘어난다는 건데….’

달 그림자 임무 때 언급했던 것처럼 칼보다 날카로운 것이 말이다. 당장 나만 해도 세 은월과 천사님들의 거침없는 언행에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어왔던가?

“네?”

나야 타고난 성정이 고운 데다가 꿋꿋한 노력을 거듭하여 이겨냈다지만, 당장 저 등신 언니 같은 녀석은 어떨 것인가. 추종자들 앞에서 망신이라도 당했다간 저승 대로 저 편까지 데굴데굴 굴러다닐 게 뻔히 보였다.

그런 걱정들을 불식시켜 주기라도 할 기세로 다음 공지가 떴다.

[ 3 신전 강화 ]

[ 입주자 여러분, 잘 들으세요. 여러분은 죽었습니다. 더 이상 뭔가를 먹을 필요도 마실 필요도 없다는 뜻이죠. ]

[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서로 이야기만 나누기는 지루하셨죠? 수로에 흐르는 물만 마시자니 지겨우셨죠? 사실 잘 필요도 없는데 피곤하면 주무셨잖아요? ]

[ 그런 여러분들을 위해 신전에 ‘무한한 연회장’이 추가됩니다! 울적해지시거든 언제라도 연회장에 들어가세요! 생전에 드셔본 적 있는 것은 언제든지 드실 수 있습니다! 생전에 드셔본 적이 없는 요리라도 입주자분들끼리 공유해보시는 등 어떻게든 드셔보신다면 곧바로 ‘여러분을 위한 연회장 목록’에 등록됩니다. ]

[ 아예 생 식재와 부엌을 제공해드릴 테니 직접 만들어 보시는 것도 한 가지 방법! 식재의 종류와 부엌의 시설은 차후 문명의 발전 정도에 따라 달라지니 앞으로도 기대해 주세요! ]

“술!”

“구운 고기를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는 건가!?”

“안 그래도 과일을 먹고 싶었는데!”

“알실라 호박엿!”

입주자들 사이에 다시 한 번 탄성이 터졌다.

나는 그 중 마지막 탄성을 지른 사람을 바라보았다.

“제사장….”

제사장이 정신을 추스르며 헛기침을 했다.

“그, 그치만 달콤했는걸요….”

굳이 제사장이 아니어도 체통머리 없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찌 됐든 식욕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것이 거의 무상에 가까운 조건으로 충족될 수 있다면 분란의 소지는 그만큼 적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건 순수하게 낭보가 맞아.’

낭보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 병영 강화! 앞으로는 병영의 투기장에서 마음 편히 대련하세요! 자신의 의지로만 입장 가능한 이 시설에서는 심지어 죽거나 다칠 수도 있어서 정당하게 승부를 가릴 수 있습니다! ]

[ 제가 지금 죽거나 다친다고 말했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승부가 날 시에는 금세 부활할 수 있으니까요! ]

[ 장차 발전 정도에 따라 군대를 지휘하는 모드도 추가될 예정이며…. ]

승부욕과 명예욕.

[ 태학관에 무한한 붓과 종이와 먹이 제공됩니다! 역시 차후 발전 정도에 따라 구비되는 것들이 달라지므로…. ]

지식욕과 추구욕.

[ 수로 강화! 목욕탕이 추가됩니다. 저승의 수로를 흐르는 물처럼 결코 더러워지지 않는 이 곳에서 마음껏 온수와 냉수를 쓰시면서…. ]

그리고 목욕욕 등. 만약에 그런 단어가 있다면 말이다.

그 밖에도 지어진 건물들마다 저승 한정 추가 효과가 붙었다. 그렇게 추가되는 대부분이 서두에 고지된 것처럼 ‘입주자 편의성 강화’, 더 정확히 말하면 ‘입주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중점을 둔 것들이었다.

‘어디까지나 지어진 건물들과 발전 정도에 따라 한정되지만….’

쏟아졌던 빛이 세세히도 스민 것처럼, 그 욕구 역시 세세한 것 하나하나를 빠뜨리는 일 없이 챙겨졌다. 악용될 소지 역시 ‘병영 투기장에 자의로만 입장 가능’과 같은 부가 조건으로 최대한 막은 다음,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쐐기를 박아 넣었다.

[ 그 밖의 관리 기능은 VIP ‘간신 조련사’ 님께 일임됩니다. ]

객관적으로 보면 결코 흔들릴 일도 편애할 일도 없는 중립자, 신의 사도에게 그 관리가 맡겨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은 뭡니까?”

그야 주관적으로 보면 아리야에게 역린이 눌려 참 빠르게도 투닥거리거나, 내게 자꾸만 불이익을 주고 싶어하는 등 외교관 거부 특권을 사용하고 싶은 인물이었지만, 어쨌든 입주자들 중에서는 가장 중립적인 존재가 맞았다….

[ 간신 조련사 님께서 관리 기능을 발동합니다. ]

[ 김충신 님께서는 어떠한 추가 기능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

“천사니이이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어어어어!”

“앞으로 조심하십시오.”

[ 간신 조련사 님께서 관리 기능을 발동합니다. ]

[ 김충신 님의 기능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 ]

이리도 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과연 이 인물이 관리자로서 적합한가 의심스러운 것도, 앞으로 저승 운영이 과연 제대로 될지 걱정되는 것도 마땅한 노릇이었다.

[ 간신 조련사 님께서 관리 기능을 발동합니다. ]

[ 김충신 님께서는 어떠한 추가 기능도…. ]

“천사니이이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어어어어!”

“앞으로 조심하십시….”

“그대들 모두 적당히들 하라.”

비류아의 타박에 나랑 천사님 둘 다 머쓱하니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 속에서 입주자들이 환호를 터뜨렸다.

“연회장 내가 1등!”

“아니, 나부터!”

“하누리! 병영 가자! 투기장!”

“잠깐만! 대장간 들러서 무기 들고 가자!”

저승 입주자들은 신이 났다.

마나는 추종자들을 끌고 연회장으로 들어갔고, 흑치사라는 태학관을 점검하러 갔다.

시우는 망령들을 여럿 부리면서 자신과 최후를 같이 했던 친위대원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를 찾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한낱 아해로 돌아가 어버이를 찾는 이들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좋아. 분란이 벌어질 가능성은 확실히 적어졌네.’

이래도 벌어질 분란이라면 3 업데이트 패치 자체가 없어도 벌어질 터였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길잡이여, 뭔가 좀 배알이 꼴린다는 표정이군.”

“에이 시왕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날 속이느니 귀신을 속여라. 이미 내가 귀신이긴 하다만.”

“아이고오! 우리 시왕님의 꿀맛 나는 농담에 아주 그냥 천하의 제가 뒤집어지고 자지러지고 배꼽이 막 있었는데 없어지고….”

“적당히 하라고 했다.”

“넹.”

나는 적당히 하고 본심을 말했다.

“저승이 너무 좋아졌는뎁쇼.”

뭔가 이건?

말 그대로 무릉도원이 됐다. 아직 삼국 통일도 제대로 못한 지금조차 이러한데, 앞으로 건물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그리고 또 건물 레벨이 올라할 때마다 그 쾌적함은 얼마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는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무엇이겠는가?

“확실히 이대로는 그대가 임무에 들어가기 싫겠군.”

비류아가 싱긋 웃으며 말한 그대로였다!

“안 그래도 이번 임무 끝내면 좀 쉬고 싶었습니다만은….”

바로 몇 번째 임무 전까지만 해도 황량하고 음습하여 지옥이 따로 없던 곳이 저승이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호다닥 임무에 기어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건물이 좀 늘어나고 사람이 북적거리면서 지낼 만한 곳이 되더니, 이제는 아주 그냥 영원히 쉬고 싶은 곳이 된 것이다.

그럼 왜 쉬면 안 되는가? 쉬고 싶다. 목욕탕에 몸 지지고 미친 듯이 먹은 다음 태학관에 틀어박혀 흑치사라랑 책이나 쓰고 싶다. 심심해지면 야리소연이랑 마나랑 좀 놀다가 아리야한테 부둥부둥 받고 싶다. 그 과정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묘사하고 싶다. 그런 내 이야기에 제목을 붙일 수 있다면 ‘충신이 천국에서 놀고먹음’ 정도로 붙이고 싶다.

“아니, 마지막 생각은 개헛소리 같습니다만….”

“치유물로 수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천사님?”

“그건 제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로군요. 아무튼 임무는 하러 가셔야지요? 조금 쉬는 거야 그렇다 쳐도 이렇게 향락에 젖어버려서야 본말전도….”

“그렇다 쳐도 이렇게 향락에 젖어버리는 것이 인간…. 저도… 어쩔 수 없는 인간입니다요….”

“늘어지지 마십시오! 돼냥이입니까! 생전에도 그렇게 굴더니만은!”

“늘어집니다아아….”

“진짜 장난 아니고 기능 다 잠궈 버립니다! 당신한테 한정해서!”

“헹. 어디 해보십쇼. 비 맞은 고양이 꼴로 조르면 풀어줄 거 다 압니다.”

“아, 이 간신이 진짜…!”

실제로도 천사님은 발을 동동 구를 뿐 어쩌지 못했다.

‘솔직히 내가 이번 임무에서 좀 고생했나. 많이 고생했지.’

언젠가는 정말 모든 기능을 잠궈 버리겠지만 대충 2년은 뭉갤 수 있을 것이다.

‘아주 꽉 채워서 뭉개줘야지.’

이런 내 이야기에 제목이 아니라 부제를 붙일 수 있다면 다음 편부터는 ‘2년 후’ 같은 부제가 붙도록 하리라. 내가 그렇게 마음을 단디 먹었을 때였다.

[ 마지막. 저승의 주인 강화. ]

“응?”

마지막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새하얀 빛이 나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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