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나라가 목적하는 곳 (1)
왕자와 왕녀 임무 당시에도 나는 빙의체의 사망을 통해 임무를 끝맺었다. 벌거벗겨진 채 광장 속으로 내던져진 것만 같은 이 느낌은 제사장으로 죽었을 때와 똑같았다.
다만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중대한 차이점이 두 가지나 있었다.
첫 번째 차이점.
‘뭐가 이리 조용해?’
그때와 달리 저승 입주자들의 반응이 없다는 것이었다.
‘음.’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허(空虛)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할 어둠이 한가득 깔려 있었다.
“천사님?”
대답이 없었다.
“아리야? 야리소연? 시왕님?”
이번 역시 대답이 없었다. 나는 난처한 기분에 빠졌다.
‘뭐 대답이 없으면 없는 대로 다음 걸 생각해야겠지만서도….’
두 번째 차이점.
‘임무 결과가 왜 안 뜨는 거지?’
지난 번 같은 경우 금세 임무 결과가 뜨면서 저승의 풍경이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메시지가 뜨지 않는 것이었다. 자연히 공허도 걷히지 않았다.
심히 뻘줌했다.
‘좀 기다리지 뭐.’
나는 다리를 꼬고 편하게 앉았다. 아무래도 오래 걸릴 모양이니까.
‘아프진 않아서 다행이네.’
죽기 전에는 오질나게 아팠는데 말이다. 제사장 임무 때도 그랬지만 죽는 것보다도 죽어가는 과정이 더 힘든 것 같다.
‘배도 안 고프고.’
심지어 시간도 한가했다. 잡생각을 하기에는 최적의 순간이었다.
‘조용하네….’
입주자들이 들어오기 전의 저승 풍경이 딱 이랬지 하는 생각이 드니 만감이 교차했다.
‘생전에도 죽으면 이런 느낌이 되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사람이란 배부르고 한가하면 이상한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노동과 가사 대신 독서와 토론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이들이라면 마땅히 돼냥이들 못지않게 배부르고 한가한 사람들인 법이다.
따라서 내 생전의 태학관 동기들은 날 빼면 죄다 이상한 생각에 몰두하는 이들이었다.
-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사후에 무엇이 있을 것인가를 주제로 담론이 오가는 경우가 있었다.
- 뭐 다시 태어나지 않으려나…? 그러니까 달의 여신께서 비추는 무엇으로든간에 말야. 사람이라거나, 아니면 벌레라거나. 그도 아니면 주홍빛깔 나무나 풀 뜯는 짐승일 수도 있고. 우리 똘똘이가 될 수도 있고.
차후 법왕의 자리에 앉게 되는 사람, 야리소연에게 아리야의 지능과 책임감을 더하면 나올 것 같은 선배는 활짝 웃으며 그렇게 추측했었다.
- 착한 녀석은 천당에 가고, 나쁜 녀석은 지옥에 떨어질 거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은 천당에 가는 한편, 너 같은 녀석은 지옥에 떨어진다 이거지.
차후 은월 수호기사단장 역할을 맡게 되는 녀석, 시우와 비류아를 합해서 반으로 나누면 나올 것 같은 동기는 그렇게 말했었다.
- 글쎄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대체로 그렇게 '최후의 심판'과 '윤회', 둘 중 하나로 수속되었다. 삶에서 찾지 못한 공정함과 얻을 수 없는 공평함을 죽음에서 구하려는 행위를 비웃는 것은 너무한 처사일 터였다.
- 뒈지면 그냥 없어지겠지요.
그 너무한 짓을 나는 구태여 저질렀다.
- 생각해 보십쇼. 선인과 악인을 심판할 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다면 왜 좀 더 일찍 오진 않는 겁니까? 그리고 윤회는 더 말이 안 되는 게, 대체 여름만 되면 대하에서 윙윙거리는 저 날벌레 떼들마다 죄다 영혼이 있다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그러면 사후에 대해 논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벌레 씹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 하여간 똘똘이 넌 과제할 때는 도움이 되는데 이럴 때는 주둥이를 뜯어버리고 싶어지더라.
- 참으로 동감합니다, 선배님. 제가 그런 선배님의 의지를 대행하겠습니다.
- 읍읍! 읍읍!
사후세계에 대한 담론은 그렇게 나한테 폭력을 행사하는 걸로 끝나고는 했다. 내게는 몹시도 부조리한 일이었지만 그것 자체가 일종의 정례화된 의식 같은 것이어서 항의하진 않았다. 어차피 배부르고 등 따신 귀족 자제들이 머리라도 식힐 겸 나눈 잡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것에 대고 항의하는 것도 바보스럽다.
한가롭기 그지없는 돼냥이들의 뒹굴거림.
다만.
- 네….
후배 중 한 명은 내 의견에 호응했다.
- 없어질 거예요….
노을이 질 무렵이었다.
선배가 늦었다면서 돌아가고, 동기는 훈련 일정이 있다면서 빠져나가 태학관 존월각(尊月閣)에 내가 홀로 남으면 그 아이는 슬그머니 나타나 그런 말을 던지고는 했다.
- 죽으면 존재 자체가 사라지겠지요.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이.
어둡고 습한 아이였다. 그 부분에서는 흑치사라를 닮았다. 그러나 흑치사라가 사람이 끌고 다니는 그림자에 가까웠다면 그 아이는 사물이 늘어뜨린 그늘과 비슷했다.
달빛조차 스미지 않는 곳에 서서야 그 아이는 조심스레 말을 입을 열어 말했다.
- 그러니까, 살아있을 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녀석은 그렇게 했다.
- 정말로 열심히 말이에요.
개똥밭에 구르더라도 이승이 낫다는 옛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누구보다 철저하게 실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걷는 녀석 앞에 뛰는 녀석이 있다는 옛말도 있다.
- 카한.
여러 가지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내가 걷는 녀석에 불과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뭐합니까?”
음.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면포로 얼굴을 가진 인물이 그 자리에 있었다.
“천사님. 일부러 찾아오신 겁니까?”
“예, 그렇게 됐습니다.”
묘한 목소리였다.
태학관 터줏대감 누렁이가 사라졌을 적에 엄지손톱을 물어뜯던 선배가 꼭 저런 느낌의 목소리를 냈었다.
나는 슬쩍 웃었다.
“제가 걱정되셨나봅니다? 아니면 최소한 신경이라도 쓰이셨던가.”
놀리려고 꺼낸 말이었지만 나는 조금 놀라게 되었다. 대꾸 없이 다가온 천사님이 내 곁에 앉았던 것이다.
“뭡니까요 천사님? 여기선 ‘그럴 리가 있습니까, 간신이여. 당신 대가리는 정말이지 도원향이 따로 없어서 지랄이 흉작 들 날이 없나 보군요.’ 하고 쏘아붙일 타이밍 아닙니까. 이렇게 순순하시면….”
“시간이.”
천사님이 내 말을 잘랐다.
잠시 면사포가 들썩일 만큼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해서… 그래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음.
“천사님께서 일부러 절 여기 잡아 두신 겁니까?”
“예.”
과연.
생각해 본 가능성 중의 하나였지만, 사실로 드러나니 좀 반응하기 뭣했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왜 그러셨습니까, 천사님?”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왜 그러셨습니까?”
천사님의 말에는 가시가 돋아나 있었다.
“설명해 주십시오, 간신이여. 저는 그 설명을 들어야겠습니다.”
“다짜고짜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저로서도…. 저는 설명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설명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요.”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해왔으니 요령이 생겼을 테지요.”
그러니 자신이 뭘 궁금해할지야 뻔히 알 거 아니냐는 소리였다.
‘뭐 그렇기야 하지.’
나는 한숨을 짓고서 볼을 긁적였다.
“일단 두 가지에 대해 궁금해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볼을 긁던 손가락을 하나 펼쳤다.
“첫 번째는 이것만이 임무를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는가. 또는 이로 인해 임무가 실패하면 어떻게 할 셈인가.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을 가지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그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일단 제가 제법 임무에서 구른 경험에서 볼 때 그 함호 녀석만 처리하면… 음. 이렇게 말해도 그건 직감의 영역이니 신뢰가 안 가신다고 말씀하실 수 있겠죠. 그러니 좀 더 안전하게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천사님은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태학관 흑치사라 고유 스킬 오판 예지가 사용되었을 때, 저는 이런 시스템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 과반 이상의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
“시사하는 바가 많은 말이지요. [임무에 실패했다]가 아니라 [과반 이상의 임무에 실패했다]는 것을 구태여 공지한다는 것은, 전체적인 임무의 성공 여부가 [모든 임무]가 아닌 [과반 이상의 임무]에 좌우된다는 걸 의미할 겁니다.”
나는 천사님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저는 이미 과반 이상의 임무에 성공한 상황이었지요.”
은월을 지켜라와 북벽수성에 방점이 찍힌 상황이었다.
“그러니 혹시 함호놈만 잡으면 끝날 거라는 제 예측이 빗나갔다고 해도, 그리해서 이 세 번째 임무 대하대첩이 실패한다고 해도, 그걸로 왕국이 아예 망해버리거나 하진 않을 겁니다.”
나는 힘차게 말했다.
“무왕 이세가 있습니다. 비류아와 시우의 아들답게 장단점이 뚜렷하지만 잘 컸습니다. 다음 대의 은월인 세자 현성대군도, 어린 티가 납니다만 자신의 부족함을 빨리 깨우칩니다. 사람을 부리는 것도 타고 났어요. 사랑받을 사람입니다. 사랑받는 임금님이 되겠지요.”
천사님은 말이 없었다.
내가 계속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개노답 삼정승은 일단 뒤로 뺍시다. 북벽에 나시파 변경백이라는 걸물이 박혀 있지요. 그리고 아신군의 형님, 그 신월공 말입니다. 몸이 약한 것만 빼면 대가리 완전 쌩쌩 잘 굴러가지 않았습니까? 왕국에는 인재가 많습니다. 구태여 제 빙의체였던 시현군이 아니어도 말이죠.”
천사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니, 음, 어쩌겠는가.
“…여기까지 말했는데 묵묵부답이신 걸 보니까, 예. 알겠습니다.”
결국 나도 한숨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의문이군요. 예…. 말을 나눠야 할 것 같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요.”
내가 함호를 칠 작전을 짜내기 직전, 천사님은 묘한 침묵을 내보였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침묵. 나는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아마 천사님이 그런 침묵을 내보인 이유는 임무 수행에 방해가 될 까봐 우려했기 때문이겠지요.”
“맞습니다. 그러기에 저승으로 돌아온 다음에 이야기를 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승에 왔구요.”
“예. 이야기를 나눌 시점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천사님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고개를 조금 수그린 채 말했다.
“이미 한 차례 해결된 의문이긴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야리소연과 아리야, 그리고 비류아가 모두 각자 대답을 해주었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천사님은 침묵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것이 제가 굳이 저승 입주자들을 빼놓은 이유입니다. 당신과 나와 둘만 나눠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위를 바라보았다. 주저앉은 바닥과 둘러싼 주변처럼 위쪽도 그저 공허했다.
내가 말했다.
“나라를 살리는 게 올바른 건지 고민하셨다는 거겠죠.”
“의미가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천사님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야리소연의 임무 때는 좀… 편했습니다. 아리야의 임무 때도 그랬습니다.”
“야리소연 부족은 약조가 일방적으로 파탄 나 공격받는 입장이었고, 아리야의 부족은 지배층으로부터 학대당하고 있었지요.”
“물론 약자라고 해서 선한 것은 아닙니다. 바로 제가 당신에게 드렸던 말이니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리야의 부족은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하나 여러 가지 악업을 쌓아왔지요. 다만 그래도 여전히… 뭐라고 하나, 편했단 말입니다.”
“뭔가 이쪽이 정의로워 보였다 이거지요.”
천사님은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긁었다.
“그치만 뭐. 우리의 시왕님 비류아의 비극적인 태생부터 시작해서, 비류아가 전쟁군주로서 쌓아 올린 압도적인 무훈. 그건 곧 다른 씨족과 부족의 피이고 악몽이니. 이번 전쟁 역시, 걸려온 싸움을 받아 친 것이라고 하나 손속이 독하지 않았는가. 그렇게까지 몰아갈 일이었는가. 왕국이 정의의 편이긴 한가. 뭐 그런 생각이 드실 법도 합니다.”
“들고 있습니다. 물론 나투아나 성 제국이 정의라고도 생각지 않습니다만….”
“어느 쪽도 정의가 아니라면, 누가 이기든 대체 뭔 상관인가. 왕국이 살아나든 나투아가 반도를 먹든 성 제국이 세계를 제패하든 무슨 상관인가. 이렇게 개처럼 굴러다닐 필요가 있는가. 뭐 그런 생각 역시 드실 법도 하지요.”
“…들고 있습니다.”
나는 머리를 긁던 손을 뗐다. 그리고 천사님을 바라보았다.
천사님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면포는 빈틈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다만 얇아서 시선만은 똑바로 마주쳤다.
내가 말했다.
“저차원적인 대답을 바라십니까, 고차원적인 대답을 바라십니까?”
“둘이나 있습니까?”
“넹. 일단 저차원적인 대답부터 드리도록 하지요. 제가 이 개짓거리를 안 해서 왕국을 살리지 못하면요. 천사님. 누가 뒈집니까? 제가 뒈집니다.”
구체적으로는 영원히 저승의 왕국을 헤매는 망령 신세가 된다.
소멸이고 죽음이다.
“천사님. 그 부분은 천사님 스스로가 아주 확실하게, 초장부터 모시는 자모신 이름까지 써가면서 명시 해놓은 사항이라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요. 저는 뒈지기 싫고, 그래서 왕국이 정의든 아니든 왕국을 살리려고 굴러다닐 겁니다.”
물론 임무 수행 중에는 이 거지같은 왕국 그냥 망하는 게 인류한테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그냥 차라리 깔끔하게 뒈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때가 왕왕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인류 전체의 이익보다 내 목숨이 중요하다. 또한 거듭,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에서 구르는 게 낫다. 여기가 과연 이승인가 하는 철학적인 담론 따윈 나중에 저승 왕국에 가서 흑치사라랑 하더라도 말이다.
천사님은 할 말을 잃은 듯 말이 없다가 고개를 수그렸다.
“그건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로군요.”
“에이.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아니라 부정하시면 천사님 양심에 털 나신 거죠. 아주 코털 뽑듯 한 가닥 한 가닥 뽁뽁 뽑아버릴라니까 그런 소린 더 하지 마세요. 알겠습니까?”
천사님은 과연 더 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것을 물어왔다.
“고차원적인 이유는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