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괴물 사냥 (1)
[개천의 시왕: 상대의 격이 그대보다 높다.]
비류아가 말했다.
[개천의 시왕: 그대의 주력 전투법인 도끼술 Lv.3으로는 승부를 낼 수 없다. 그대가 그 기술로 방어에만 집중한다면 5분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상대가 근접전만으로 상대해 줄 때의 이야기다.]
단도 던지기.
[개천의 시왕: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모래 뿌리기.
거리 벌리기.
옷자락을 펄럭여 시야 가리기, 불 지르기, 급소 노리기, 인질 잡기 등등….
[개천의 시왕: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이들 또한 할 수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마땅히 그대가 할 수 있는 온갖 속임수 또한 상대 역시 쓸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은월: 상대의 호흡을 무너뜨린다…. 주의를 다른 곳에 쏠리도록 유도한다…. 뭘 사냥하려고 할 때도 반드시 거쳐 가는 길이구, 그 녀석, 굉장한 사냥꾼일 테니까.]
암살자.
인간 사냥에 특화된 존재.
[개천의 시왕: 일순간 호흡이 무너지면 그대는 죽는다. 주의를 집중하지 못해도 그대는 죽는다. 설령 어떤 요행이 있어 상대가 정정당당하게 근접전만으로 상대해준다고 해도 5분이 지나면 그대는 죽는다.]
결론: 정면으로 싸우면 반드시 죽는다.
[최초의 성녀: 그렇다면 정면으로 맞붙을 수는 없겠고…. 역시 병사들을 불러 석궁으로 무장시킨 다음 들이치는 것이?]
[개천의 시왕: 그렇게 해서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석궁은 자책수가 될 수 있다. 석궁을 장전하는 데에는 너무 긴 시간이 걸린다.]
[최초의 성녀: 앞에 방패병을 밀집시켜 깔고, 뒤에 석궁수를 두면….]
[개천의 시왕: 돌파당할 거다. 저 정도 수준의 전사라면 사람이나 벽을 발판삼아 달릴 수 있다.]
비류아는 잠시간 침묵했다가 덧붙였다.
[개천의 시왕: 단창이 낫겠다. 방 입구, 복도 등 좁은 곳에서 병사들을 밀집시켜 빽빽하게 창벽을 친다면 진로를 제한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두 가지로군.]
첫째, 그마저 돌파당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둘째, 결정타를 먹일 방법이 없다.
대치상황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최초의 성녀: 창병 뒤에서 활을 쏘고 또 쏘다보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리야가 제안했다.
[최초의 성녀: 사호가 피하고 또 피하더라도 어디든 한 발만 맞춘다면 승리는 확정된 거나 다름없잖아요?]
고통은 빈틈을 낳는다. 출혈은 장시간에 걸쳐 상대의 의식을 혼탁하게 한다.
다리나 어깨, 하다못해 손 같은 곳에 맞는다고 해도 분명한 신체적 제약이 발생하게 된다.
[첫 번째 은월: 그러게. 내가 볼 때 쟤의 최대 강점은 신들린 것 같은 몸놀림이야.]
[첫 번째 은월: 그걸 약간만 느리게 만들 수 있다면 도끼술 Lv.3으로 대적할 수 있게 될 거야.]
내가 강해질 수 없다면 상대를 약하게 만든다.
[최초의 성녀: 그리고 사실 몸놀림을 제약했다면 예언자님께서 고생하실 필요도 없어요. 그 방법으로 상대를 손상시킬 수 있음이 증명된 거니까, 되풀이하면 그만이에요. 손상이 누적되면 사호는 자연히 무력화당할 테고요.]
좋아.
“변경백. 북벽 안에 상비병이 얼마나 있습니까?”
“상시 주둔하는 이들은 83명입니다. 병영으로부터 기초적인 훈련들은 모두 받았습니다.”
정예병 83명.
“부르면 더 증원이 옵니까?”
“예. 1시간 내로 50명이 올 것이고 6시간 내로 100명, 하루 내로 150명. 그렇게 총합 300명이 올 겁니다. 이틀 뒤에는 여기에 200명이 추가되고 사흘 뒤에는 다시 200명이 추가됩니다. 그 뒤로도 계속 올 텐데, 그때쯤에는 왕도에도 연락이 갔을 테고 따라서 왕국 전역에서 병사들이 올 터이니 추가적인 계산은 무의미하겠습니다.”
“실질적으로는 50명 증원이 한계선이겠군요.”
80명이 머무는 요새에 50명이 추가되면서 생겨나는 소음은 적지 않다. 사호쯤 되면 기척으로 이변이 벌어졌음을 알아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느 쪽으로 구르든 다음 증원이 도착할 때까지는 결판이 나있겠지.
“병과들은 어떻게 됩니까?”
“궁술과 투석입니다.”
“북벽을 지키는 이들이니 당연하겠군요. 투석이라… 무릿매를 씁니까?”
아연한 채 서서 책을 들여다보던 현성대군이 입을 열었다.
“무릿매가 뭐야?”
“돌을 던지는데 쓰는 도구입니다. 줄과 가죽으로 만드는데, 거기에 돌을 싣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놓습니다. 그러면 돌이 더 세게, 더 멀리 날아갑니다.”
“왜?”
“왜냐면 원심력이라는 것이 보조를… 아니지. 그보다는 이편이 이해하기 쉽겠군요. 어깨와 팔과 손의 움직임을 보조하는 도구입니다.”
모든 도구는 사람의 몸을 보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창을 든 인간은 길쭉하고 딱딱한 팔과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생물이 되고, 칼을 든 인간은 예리하고 기다란 손톱을 가진 생물이 되며, 방패를 들고 갑주를 입은 인간은 무섭도록 두꺼운 피부를 가진 생물이 된다.
“같은 이치에서 무릿매를 쓰면 더 강력한 어깨와 더 긴 팔을 갖게 되는….”
어.
잠깐만.
“…저하?”
“시현군…?”
나시파와 현성대군이 나를 불렀다. 잠시간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을 모아주십시오.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계획이 섰습니다.”
◈ ◈ ◈
“전하께서는 여기 계십시오. 위험합니다.”
“이 사람도 가고 싶네만….”
“세자 전하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으음… 알았어.”
현성대군은 더 고집부리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시파 변경백을 돌아보았다.
“변경백. 같은 이치로 당신 역시 여기 남아 세자 전하를 돌봐주시면 좋겠습니다만….”
나시파 변경백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전사이고, 사호는 제가 불러들인 재앙입니다. 이곳은 제 관할지역이며, 시현군께서 데려가시고자 하는 것은 제 병사들입니다. 그러니 가겠습니다.”
‘남아있지 좀…. 댁한테 문제가 생기면 북벽수성 실패가 확정되는 걸 텐데….’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지만 나시파 변경백은 단호했다. 하긴 북벽 책임자인 그녀로서는 자신이 아니라 손님, 그것도 군호를 받은 왕자님께 흉수사냥을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도리어 이렇게 말해왔다.
“오히려 저하께서 남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자 전하를 지키고 계십시오. 금방 끝장내고 돌아오겠습니다.”
‘의기야 좋다만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임무 목표 중 어느 것에도 달성 표식이 찍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아직 이 사안에 대해 내가 주도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한다.
“아니요, 저도 가겠습니다.”
“하지만 저하….”
“갑시다.”
나시파 변경백은 한숨을 지었을 뿐 더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얼마 후, 준비가 끝나자마자 나와 나시파 변경백은 병사들을 이끌고 사호가 안내된 방으로 향했다.
[첫 번째 은월: 아직 방 안에 있어.]
좋아.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병사 중 한 명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는 들고 온 것들을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돌바닥 위에 놓인 땔감들, 그 위에 횃불이 불을 붙였다. 타닥, 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연기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약 3분 정도 기다린 다음, 병사가 우렁차게 외쳤다.
“불이야!”
방 안쪽이 일순 소란스러워졌다. 곧 다른 병사들도 합세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불! 불이 났다!”
“젠장! 물 있는 대로 가져와! 모래도!”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바로 그 순간, 문이 벌커덕 열렸다. 그리고 그 안으로부터 사호가 뛰쳐나왔다.
“무슨 일-”
동일한 순간, 열 명의 병사들이 동시에 석궁을 발사했다.
열 개의 쇠뇌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사호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뛰쳐나온 기세 그대로 사호가 굴렀다. 쒜에에에엑! 일부러 조금씩 각도를 비틀어 쏜 쇠뇌들 중 일부는 천장에 부딪혔고, 다시 일부는 바닥에 부딪혔으며, 나머지는 허공을 날았다. 그 중 어느 것도 사호의 몸에는 맞지 않았다.
구른 그대로, 탁, 오른손과 길게 뻗은 오른발로 바닥을 짚은 채 멈추어선 사호가 나와 나시파 변경백을 보았다. 붉은 눈동자에 아주 약간 놀라움이 담겼다가, 곧 극도의 냉정함 속으로 침전해 들어갔다.
나시파 변경백이 소리쳤다.
“돌!”
어깨를 젖히고 있던 일곱 명의 병사들이 팔을 휘둘렀다.
일곱 개의 석탄(石彈)이 쏘아지듯 날아갔다.
“잇,”
사호가 잇소리를 냈다.
무릿매를 쓰지 않고 순수하게 어깨와 완력에만 의존한 돌팔매질. 그러나 순수하게 어깨와 팔로 던지는 만큼 공간도 많이 필요하지 않았고, 그것은 그만큼 한 번에 많은 돌을 던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정확성 또한 무릿매와 비할 데 없이 높았다.
“젠,”
사호가 다시 굴렀다. 빡…! 빠박…! 역시 천장과 벽, 바닥에 부딪힌 돌들이 불똥을 튀겼다.
이번 역시 사호에게 맞은 돌은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하앗!”
내가 엇박자로 도끼를 집어던졌다. Lv. 3 도끼술의 효과로 정확하게 날아드는 도끼를 피하기 위해, 사호는 다시 한 번 굴러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곳이 막다른 길이었다.
나시파 변경백이 소리쳤다.
“2조, 3조! 엇박자!”
각기 7명씩으로 구성된 두 개 조가 차례로 돌을 집어던졌다. 역시 어깨 힘만 써서 이루어진, 그러나 눈의 조준을 정확히 받아 쏘아진 돌들. 병사들 역시 바보가 아닌 만큼 피할 만한 곳을 예측하여 던져진 돌멩이도 있었다.
교묘한 시간차를 두어 날아드는 14개의 돌멩이를 모두 피한다는 것은 단순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큭…!”
기어코 돌멩이 하나가 사호의 귓불을, 다른 하나가 어깨를, 또 하나가 사호의 다리를 맞추었다. 이 중 마지막 것이 정통으로 들어갔다. 빡…! 사호가 숨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반복!”
곧장 무자비한 돌팔매질이 이어졌다. 처음에 쇠뇌를 쏘았던 이들 역시 석궁을 내려놓고 돌멩이를 꺼내어 던졌다. 나는 틈틈이 도끼를 집어던져 사호의 움직임을 제한시킴으로써 그것들을 도왔다.
“(이런 젠,)”
사호는 경이적인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웅크려 급소들을 지키는 한편, 피할 수 있는 것들은 피해낸 것이다.
하지만 돌멩이의 숫자가 많았다.
너무 많았다.
“하윽…!”
빡, 빠박…! 빡…! 연속으로 피탄 당한 사호가 기어코 무릎을 꿇었다. 그 중 하나는 손끝에 맞았는지 손가락 하나가 이상한 각도로 뒤틀린 채였다. 그녀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언뜻 무력화 된 상태.’
그러나 누구도 사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오기 전에 단단히 일러두었다. 절대로 섣불리 다가가지 말라고. 나 역시 다가가지 않았다.
내가 외쳤다.
“마무리!”
그물 두 개가 동시에 허공을 날았다.
“(개 같은,)”
무릎을 꿇고 있던 사호가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를 박찼다.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반응속도, 그렇게 그녀는 그물 두 개를 피해냈지만, “다음!” 엇박자로 던져진 다음 그물은 피하지 못했다. 그물에 휘어 감긴 사호는 비로소 완전하게 기동력을 잃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계속!”
이미 그물에 뒤덮인 사호를 거듭하여 새로운 그물들이 덮쳤다. 그물에 그물이 겹쳐지며 사호를 옭아맸다.
수성전을 위해 북벽에 마련되어있던 그물들이었다. 다만 그것은 너무 크고 무거웠으므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 대인용으로 다듬었다. 무게추로 쓴 것은 석탄들이었다. 지난 임무 보상으로 지어진 시설물 효과 중에 수공업 Lv.2가 큰 도움이 됐다.
이윽고 가져온 그물들이 모두 소진되자, 사호는 거미줄에 휘감긴 나방처럼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그제야 조금 숨을 놓았다.
“고생하셨습니다.”
◈ ◈ ◈
사호는 몸을 몇 차례 뒤틀었다. 오래지 않아 포기했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힌 채 나와 나시파 변경백을 바라보았다.
“저하… 각하. 대체 무슨 일이냐요? 갑자기 왜… 채, 책과 돈을 바라시는 거면 다 드리겠다요? 그러니,”
“이제 와서 말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나?”
나시파의 반응은 싸늘했다. 나는 이미 사호가 첩자라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했던 것이다.
사호 본인 또한 제압당하기 전까지 일개 책장수 따위가 보여줄 수 없는 몸놀림과 상황 판단력을 거듭하여 보여주었다.
사호 역시 그것을 깨달았는지 말이 없다가, 곧 한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알았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