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신이 나라를 살림-80화 (80/261)

80. 태부, 시우 (1)

나는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그제야 난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 깨달았다. 빵 부스러기 하나하나가 혀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고마워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정말 놀랄 정도로 솔직하게.

“맛있네요.”

“법왕님께서는 입맛이 까다로우셨지요. 그런 분께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다니. 숙수가 기뻐하겠습니다.”

제사장이 살짝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좀 먹고 해요.”

삼국민들이 모여들었다. 나만큼이나 지쳐 있던 그들도 광주리에서 나온 먹거리들을 달갑게 먹었다.

“왕국 요리가 맛대가리 없기로 유명하다더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우리가 지쳐서 그런 거 아녀? 여기 대사로 부임하는 게 다 좋은데 먹는 것 때문에 지옥 같다잖어.”

“요 뱃놈들아. 니네가 먹거리에 너무 사치스러운 게다.”

횃불 아래 먹거리를 나누면서 오가는 대화가 서로의 그림자들을 이리저리 뒤흔들었다.

나는 빵을 다 삼키고 가죽 푸대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 쪽 상황은 어때요?”

어차피 이 동굴 안에서 소리를 낮추어봤자 들을 사람은 듣는다. 그래서 대놓고 한 말인데, 그걸 알아서인지 제사장도 대놓고 대답했다.

“좋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무엇이 좋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인지 설명했다.

“사와라 부가 일으키려던 소요 사태는 진압됐습니다. 바울 부장이 다시 바울 부를 장악한 덕이 컸습니다. 걱정했는데, 법왕님께서 내리신 결정이 옳았던 셈입니다.”

다행이다.

하지만 그런 티를 내는 대신,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밖에는요?”

“법왕님 지시대로 아삼 부장은 태부 각하께서 건재하시다고 꾸며 부장들을 휘하에 규합했습니다. 그리고 그 규합이 끝난 다음에야 태부 각하께서 행방불명됐다는 걸 밝혔고요. 불순한 마음을 품을 부장이 있었다고 해도 그 때는 이미 휘하에 들어온 상태이니 어쩔 수 없었지요. 그렇게 체계가 잡히자, 구조 작업에도 활력이 붙고 있는 상태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태부 각하만 무사하시면 되겠군요.”

그렇지 않으면 아삼 부장 휘하에 왕국 전체의 군사력이 집중된 상태가 된다. 아삼 부장은 좋은 꼰대였지만, 휘하의 군사력은 그 숫자와 비례하여 사람을 회까닥하게 만드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제사장은 말이 없어졌다.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무사하실 겁니다.”

잠시 후 한 차례 더 반복해서 말했다.

“무사하실 겁니다. 태부 각하께서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신 분 아니십니까? 자그마치 용 살해자를 부군(婦君)으로 모시었고…. 이세 폐하께서도. 그러니,”

바로 그 때였다.

[간신 조련사: 간신이여.]

음.

‘네, 천사님.’

[간신 조련사: 찾았습니다.]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법왕님?”

제사장이 당혹하여 말했다. 두런두런 떠들던 삼국민들도, 흑치사라와 하누리도 당혹하여 나를 보았다.

나는 소리 내어 말할 뻔했다가 가까스로 속으로 말했다.

‘어딥니까?’

사방에 흙이 있었다. 우리들은 이미 파내었던 굴을 따라 파고 있었다. 하지만 천사가 그들을 찾았다면, 좀 더 직선으로, 좀 더 빠르게 파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방향입니까. 어느 쪽으로 파면….’

그런 내게 천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간신 조련사: 직접 보도록 하십시오.]

언젠가 늙은 제사장과 주온 왕자의 풍경을 보여주었을 때처럼.

그녀는 내게 대답을 보여주었다.

◈          ◈          ◈

그곳에는 그리운 얼굴이 있었다.

시우였다. 그는 이세를 목마 태우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친위대원들이 철통같은 경호를 서고 있었다.

“국본이시여.”

시우가 웃으며 꺼낸 말에, 이세는 방실 웃으면서 그 머리를 끌어안았다.

“응, 아빠마마.”

“보이십니까?”

“응! 나 막 두근두근거려! 모험하는 거 가태.”

동굴에 처음 들어선 4살짜리가 그렇듯 이세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시우는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서 파낸 물이 도읍지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리고 도읍지를 지나 대하로 흘러가겠지요.”

“왜 여기서 물 파? 그냥 대하 물 쓰면 안 대?”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대하는 낮은 곳에 있고 도읍지는 그보다 좀 더 높은 곳에 있습니다. 물론 대하에서도 물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여기서도 물을 파서 연결시킬 수 있게 되면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법왕이 말한 바 있습니다. 물도 대하의 물보다 여기서 나올 물이 더 깨끗하다고 하던가요.”

“법앙이 그래?”

“예. 똑똑한 녀석이니까요. 그 녀석 말이 뭐든 다 옳겠지요.”

시우.

허허 웃는 그에게, 나는 무어라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열 입이 없었고 자연히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볼 수만 있었다.

“정말 똑똑한 사람이니만큼 참. 많은 걸 할 수 있었을 텐데….”

맑은 웃음은 그렇게 쓴웃음으로 변했다. 그것을 느꼈는지, 이세가 시우의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아빠마마는 법앙이 결혼하는 거 싫어?”

“그냥 좀… 싫다기보다는. 그 녀석이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지 않을 거 가태?”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시우는 그렇게 답하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그 녀석이라면 행복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애초에 내가 그 녀석이 뭘 해야 행복한지 아는가 싶기도 하고….”

숫제 한탄이었다.

시우. 그는 4살짜리 아들내미에게 한탄을 할 수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이세는, 그런 아비의 한탄을 잘 들어줄 수 있는 애기였다.

“그럼 도와죠!”

“도우라고요?”

“웅! 법앙이 행복할 수 있게!”

언젠가 말했듯, 깊은 웅덩이일 수록 단순히 쏟아진 물로도 메워지는 법이었다.

고뇌에 차있던 시우의 입가에 다시금 허허 하는 미소가 걸렸다.

“그렇군요. 하긴 그래야겠지요.”

“웅웅! 법앙도 막 애기 낳겠지?”

“법왕이 낳는 게 아니라 그 신붓감이 낳겠지만 말이지요. 누굴 택할지,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궁금하긴 하군요.”

“가서 물어보자!”

“예, 예. 국본이시여. 자, 그럼 충분히 둘러보았으니 돌아가도록 할까요.”

그러며 시우는 몸을 돌렸다. 시우를 목마타고 있던 이세도, 그들을 둘러싼 친위대원들도.

그들은 그렇게 지금까지 들어왔던 수로를 되돌아 나오려 했다.

‘시우.’

되돌아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세.’

얼마 지나지 않아 지진이 일어나, 이 굴은 지진에 휘말릴 테니까.

‘왜 하필 지금.’

물론 나는 ‘왜’에 대한 해답을 알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세계는 무관심했고 자연은 무의미했다.

그러기에.

‘아아.’

굴 벽이 달그락, 자그마한 소리를 냈다.

“음?”

시우가 고개를 돌렸다. 굴벽에서 흙이 싸락눈처럼 떨어졌다. 천장에서도.

“엣취!”

흙을 뒤집어쓴 이세가 기침을 했다.

친위대원들이 당황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게 무슨?”

“지금 좀 흔들리는 것 같은….”

곧, 그 흔들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친위대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굴이 통째로 요동쳤다.

“으악?!”

이세가 비명을 질렀다. 친위대원들은 본능적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엎드린 그들 양옆으로 돌쩌귀가 떨어졌다.

“모두 달리….”

입구로 달리려 명하려던 시우는 곧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흔들려 제대로 설 수도 없는 상황, 심지어 천장으로부터 소낙비처럼 흙들이 우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쏟아진 흙들은 바닥에서 한 번 튕겨 올라 주변을 안개처럼 메웠다. 매캐한 흙먼지에 사방에서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머리를 감싸라!”

결국 시우는 그렇게 소리쳤다. 분명히 크게 소리를 질렀을 텐데, 땅이 지르는 소음에 목소리가 파묻혔다. 굴벽에 박아 넣은 나무 기둥이 우지끈 부러졌다.

나는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시우의 다급한 경고도, 이세의 비명도 쏟아지는 흙과 돌덩어리에 휩쓸렸다.

“태부 각하, 피하십…!”

친위대원 중 한 명이 시우에게 달려갔다. 밀쳤다. 그 순간 떨어진 돌조각이 그의 머리를 때렸다. 쿵 소리가 나고, 휘청, 그리고 털퍼덕,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 목숨이 죽었다.

피가 튀었다. 바로 눈앞에서, 한 뼘이면 닿을 거리에서, 그러는 와중에도 이세는 제 아비가 말한 ‘머리를 감싸라.’는 말을 것을 꾹 지키고 있었다. 히끅거리며 울면서도 계속. 그런 이세를 시우가 품에 안았다.

“폐하,”

“태부 각하!”

다시금 친위대원 한 명이 시우 앞을 막아섰다. 부러진 기둥이 튕겨 나와 그 친위대원의 몸을 꿰뚫었다.

“커헉--”

본디 흙빛이던 나무 기둥은 그의 등을 꿰뚫고 붉어졌다. 유독 새빨간 피를 토한 채 그는 죽었다. 한순간에 절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지진이 멈추었다.

사방에서 먼지가 떠올랐다. 신음과 기침이 그것을 흔들었다.

“이세?”

시우의 목소리였다.

“이세, 괜찮냐? 이세야, 이세….”

태부가 아닌 아버지의 목소리로 시우가 거듭하여 이세를 불렀다.

“으, 응… 괜찮, 괜찮아, 아빠마마….”

아들의 목소리가 품에서 들려왔다. 그 말에 시우의 안색이 다소 펴졌다.

오래는 아니었다. 고개를 든 그를 맞이한 것은 자신을 대신하여 죽은 두 사람의 시신이었다. 그 외 친위대원들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다들 괜찮으냐…?”

잠시 후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 저는… 태부 각하, 다치지 않으셨습니까…?”

“아무것도 보이지가… 태부 각하, 이세 폐하, 괜찮으십니까?”

친위대원들이 목소리를 내었다. 그 숫자가 현저하게 적었다.

“아디루… 바라야문. 너희 목소리가 안 들리는구나. 시보라. 미파랑. 너희들은?”

시우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괜찮으냐? 괜찮으면 대답을….”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지독한 먼지가 사방을 덮고 있었다. 먼지를 들이마신 목소리에 탁한 기침이 섞였다.

시우가 먼지에 가려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친위대원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시우는 알더라도 나는 몰랐다. 법왕은 알겠지만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대답하지 못한 이들은 모두 다 쓰러져 있었다. 흙더미에 파묻혀서, 쏟아진 벽에 삼켜져서, 피를 흘리며, 때로는 피조차 없이 땅속에 매몰되어 죽었다.

그렇다는 것을, 시우도 깨달은 것 같았다. 몇 차례나 대답 없는 이들의 이름을 부르던 시우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내려앉은 침묵을 채운 것은 흐느낌이었다.

“으, 으우….”

이세가 훌쩍였다.

다행히 이세는 무사했다. 시우가 줄곧 그를 껴안고 있었다. 무너진 천장과 돌쩌귀도 모조리 그가 받아냈다.

그래서 시우의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빠… 괜찮아…? 아빠… 우….”

“음.”

시우가 미소를 지었다.

“음, 물론입니다. 국본이시여.”

목소리에도 미소가 묻어났다. 말투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시우는 이세를 조금 더 강하게 안았다. 크게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코앞에서 오랜 시간 함께한 수하들이 죽은 것을 목격하였는데도, 시우는 자신의 아들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었다.

“모두 괜찮습니다…. 다들 괜찮습니다.”

“응… 으응, 그, 근데 왜 대답이 없어…?”

“다쳐서 대답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두 괜찮습니다.”

시우가 이세의 등을 쓸어내렸다.

모두 괜찮습니다.

시우는 한동안 그 말만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도 시우는 이세의 얼굴을 가슴에 꾹 끌어들여서 절대로 이세가 주변을 둘러볼 수 없도록 막았다.

“으… 아우, 읏… 아빠마마….”

그 말을 듣고도 이세는 그저 시우의 품에 파고들어 울었다. 시우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간신히 횡액을 피한 친위대원 중 한 명이 이를 악물었다.

“태부 각하. 어서 여기를 피하셔야 합니다.”

“어렵겠구나.”

시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벽과 천장이 동시에 무너진 탓에 그들은 말 그대로 굴속에 갇혀버렸다.

그들이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 벽 속에 박아 넣은 기둥들이 서로 교차하여 무너지면서 자그마한 틈새가 생겨난 바, 그들은 그 틈바귀에 껴 있었다. 시우가 말했다.

“여기서 누군가 구조하러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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