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대단하신 신붓감들 (2)
15년 전, 알실라의 대표단은 우리들이 나투아와 손을 잡고 자신들을 칠까봐 두려워했다. 또한 그렇게 될 경우 결국 자신들이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라 실토했다.
그것은 왕국도 똑같다.
거듭, 왕국은 원하는 것이 많다.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전쟁이라는 원론적 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 왕국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외교적 수단을 강구하는 이유는, 단순히 군사력만으로는 양국의 어느 쪽도 압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리와 기술과 군사적 훈련에 의해서, 삼국은 지금 절묘한 군사적 평형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삼국 중 양측이 손을 잡고 다른 한 측을 치는 순간, 그 한 측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비류아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개천의 시왕: 수성의 이점이 있다고는 하나 대하에 자리 잡은 도읍지를 내주고 하얀 머리 산 근처까지 몰리는 것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 뒤에는 기병을 굴리기 좋은 지형이 되니 한 판 붙어볼 만 할 테지만, 문제는 역시 내가 없다는 것이로군.]
[최초의 성녀: 비류아의 지휘력 없이는 기병전에서 패할 거란 말인가요?]
[개천의 시왕: 아니. 지휘력만 따지고 보면 시우도 나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도력의 문제다.]
[첫 번째 은월: 아항. 내가 호랑이 부족 사건 때 나한테 느꼈던 그걸 다른 애들이 니 남편한테 느낄 거라 이거지? 너한테 지도자 자격이 있느냐 뭐 이런 거.]
[개천의 시왕: 남편이 아니라 부인(夫人)이다만, 그렇다. 한 차례 밀리면 시우의 지도력에 대한 이의 제기가 나올 테고, 씨족 군락, 지금은 부(部)라 명명하는 그것들이 왕국으로부터 독립하려 시도하겠지. 그걸 어찌어찌 수습한다고 해도 결국 대하에 인접한 곳들을 내주게 될 것이다. 되찾기 위해서는 수십 년의 인고가 필요할 테고. 수습하지 못한다면….]
‘뭐 다시 수십 개의 씨족으로 쪼개져서 왕국 자체가 소멸하겠네요. 핵심 권력층만 월족이라는 부족으로 다시 남을 테고. 정복으로 세력을 불린 전쟁 집단의 태생적인 한계군요.’
내가 내린 건조한 평가에 비류아 역시 담담하게 동의했다.
[개천의 시왕: 당장 나도 정복당한 씨족의 핏줄이니까 말이지. 그들의 심정은 잘 이해할 수 있다.]
정리하자.
“이 모든 걸 감안한 상태에서 우리들의 선택지들을 말해볼래요?”
제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 맞선을 보고 결혼을 받아들입니다. 이 경우의 이점은 지금의 삼국 평형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결혼한 측과 조금 더 문호 개방 상태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점은 국내 정치에 다소의 소요 사태가 발생하리라는 거고. 다음.”
“둘째, 맞선을 거부합니다. 이 경우 문호 개방 상태 진전은 어려워지며, 지금의 삼국 평형이 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국이 손을 잡고 쳐들어오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국내 정치고 뭐고 간에 왕국이 끝나겠지요. 잘 말했어요.”
나는 마른세수를 했다.
“결혼해야겠네요.”
제사장이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그 편이 이득도 확실하고, 단점도 적은 것은 분명합니다.”
“제 맞선 상대들. 언제쯤 도착한다나요?”
내 질문에, 똘똘이 제사장은 한차례 더 한숨을 짓고는 팔짱을 끼었다.
“양측 모두 곧 도착할 겁니다.”
음.
“그렇다면 태부님을 뵐 정도의 시간은 남아있겠네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역정을 내실 텐데.”
“감당해야지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 ◈ ◈
“법왕. 내가 진짜 좀 하나만 물어보지.”
왕국의 태부, 시우가 뒷머리를 긁었다.
“예, 시우 님.”
“정말로 이 처자들 중 하나랑 결혼하고 싶은가?”
시우는 나투아와 알실라, 양측의 처자들이 그려진 양피지들을 들어올렸다.
한 쪽은 외팔이. 한 쪽은 얼굴의 화상.
아무리 좋게 봐도 좋은 결혼 상대들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이 시대 최고의 아첨꾼을 찾아가 이 처자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장점과 단점이 확실하군요. 그만큼 마음은 아리따우실 겁니다.’ 따위의 대답이나 들을 수 있을 거다.
“네.”
그럼에도 나는 이들 중 하나를 일생의 동반자로 선택하기로 했다.
[간신 조련사: 정확히는 ‘법왕’의 동반자지만요.]
[첫 번째 은월: 그리고 다음 임무의 엄마 또는 할머니.]
[최초의 성녀: 야리소연, 웃음소리가 너무 커요.]
[첫 번째 은월: 어쩌라고. 완전 웃기는데. 솔직히 너도 좀 웃기지 않음?]
시우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법왕, 자네쯤 되면…. 왕국의 권력자이고, 이세의 보호자인데…. 내 부군(婦君)께서 총애하셨거늘…. 그걸 생각하면, 세상에.”
“시우 님.”
“아니아니. 이 처자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상주의 맏딸이라니! 화로지킴이의 맏딸이라니! 나투아에서는 마땅히 함호나 해웅의 여식을 보내야할 것이고, 알실라에서는 강철 수호자의 여식을 보내야지! 그래야 격이 맞지! 그런데….”
“시우 님.”
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결혼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아니, 그렇다고 해도….”
왕국의 태부, 시우는 앓는 소리를 냈다. 이마를 짚었다.
나는 그에게 숨 돌릴 기회를 좀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쁜 결혼은 아니에요. 이 처자들 꽤 괜찮아요.”
“뭐라고?”
“제사장이 정리해준 정보들에 따르면요.”
나는 우선 나투아 상주의 맏딸이 그려진 초상화를 가리켰다.
“보세요. 나투아 상주의 딸이라는 말은, 나투아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따님이라는 뜻이에요. 그것도 한 쪽 팔이 없어 혼처가 마땅치 않은 맏딸이지요. 그런데 왕국 권력 제 2위인 제 정처로 받아들인다?”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끝이에요. 더 따질 것도 없지요. 나투아 상주에게 그건 분명한 은혜로 작용하게 될 거예요. 상주는 맏딸을 좋게 시집보내서 좋고, 제 가문은 지참금… 으음, 아직 제 가문이랄 건 없으니, 신전의 우두머리로서 달의 여신 신전에 대한 헌금을 두둑하게 받아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게 이런 뜻이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쪽 팔이 없는 게 어떻게 사람 구실을 하겠나!”
시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최초의 성녀: 저건 좀… 아니 많이 심한 말이네요….]
[개천의 시왕: …음, 이해해다오. 시우는 전사다. 그리고 전사는 자신이 신체적으로 뛰어난 만큼, 신체적 장애를 앓는 자를 못마땅하게 여기기 쉽다.]
[첫 번째 은월: 와. 지아비라고 눈물의 변호 쳐주는 것 좀 보소.]
[개천의 시왕: 그저 사실을 말한 거다.]
비류아는 시우에 대해 말할 때면 묘하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자신이 잘못된 남편감을 고르지 않았노라 생각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하겠으나, 좀 더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는 마음이 우리 시왕님께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간신 조련사: 그러니까 저 둘을 붙여놓았던 게 당신입니다. 간신이여.]
[첫 번째 은월: 언제 어느 때나 자기 자신을 가장 큰 적으로 두게 되는 우리 가리비수. (완전 큰 웃음)]
어쨌든, 전사를 설득할 때는 ‘전사의 용어’를 쓰면 그만이다
“그것, 상어라는 바다괴물과 싸우다가 그렇게 된 거래요.”
전투의 훈장이라는 말에 시우가 움찔했다.
흉터가 많은 전사가 존중받게 마련인 것처럼, 싸움에서 다친 상이군인은(이 시대에 아직 본격적인 ‘군인’은 없다지만) 존경받게 마련인 거다.
나는 거기에 ‘아버지의 용어’를 보탰다.
“그리고 확실치는 않지만, 그 부상, 바다에 빠진 어린 동생을 구하려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모양이에요.”
[최초의 성녀: 어라, 정말인가요? 그렇다면 정말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
‘구라요. 방금 대충 지어냈지.’
[최초의 성녀: …네?]
‘그래서 ‘확실치는 않지만 그렇다는 모양이다’라는 식으로 둘러쳐둔 거라오, 아리야.’
[최초의 성녀: 왜… 그런 거짓말을?]
‘그야 눈앞에 있는 시우를 보시오.’
어린 가족을 지키기 위한 영웅적인 분투의 결과라는 말은, 아들바보를 입 다물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디 그 뿐일까, 시우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수그리며 이렇게 중얼거린 것이었다.
“내가… 말이 심했군.”
‘시우야…. 여전히 참 와 소리나게 쉬운 남자구나 너….’
그 쉬운 남자는, 그러나 다시금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여기 이 여자는 어떠냐!”
시우는 알실라 화로지킴이의 맏딸이 그려진 초상화를 보란 듯이 쿡쿡 찔러댔다. 손가락에 조금만 더 열정이 실렸으면 아마 양피지에 구멍이 송송 났을 거다.
“박색한 것에도 정도가 있지! 얼굴이 이래서야 어디… 이런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고 해봐라. 아이 얼굴이 어떻게 되겠냐!”
[첫 번째 은월: 응?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야? 화상 입은 애가 애 낳으면 애도 화상 입은 채로 태어나?]
[최초의 성녀: 그… 남자애라 그런 게 아닐까요?]
[첫 번째 은월: 아니, 이건 성별 상관없이 그냥 쟤가 빡대가리라 그런 거 아냐?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쟤랑 결혼한 애 대체 누구야?]
[개천의 시왕: ….]
음.
나는 헛기침을 했다.
“시우 님…. 방금 하신 말씀.”
시우는, 15년 전에도 몇 차례 말했지만, 정말 놀랍게도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다. 곧 자신이 천 년 전의 야만인에게조차 싸대기를 얻어맞을 만큼 등신 같은 소리를 했음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아니 내 말은… 음, 이런 것이다. 법왕. 너와 이 처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엄마를 올려다 볼 적마다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럽겠나? 나는 그냥, 뭐랄까, 그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은….”
“하지만, 이 처자도 좋은 혼처인 것은 확실해요.”
나는 말했다.
“알실라는 아시다시피 쌈박한 사람들이에요. 장인들이지요. 그리고 장인이라는 계층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들이 필요해요. 왕국이 군인들을 유지하기 위해 농사와 건축에 전념하는 노예들이 있는 것처럼, 알실라는 장인들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단순 작업에 종사하는 노예들과 기술을 전수받는 특권계층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어요.”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건 ‘남녀’라는 성별에 따라서가 아니라 ‘계층’에 따라 역할을 나눈다는 것이에요. 화로지킴이의 맏딸은, 말하자면 알실라 왕족의 방계 옹주에 가깝고, 그만큼의 기술과 비밀 또한 전수받고 있을 거예요. 결혼 자체만으로도 알실라와의 문호 개방은 진전되겠지만, 거기에 더해 이 처자가 자신이 배운 비밀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면….”
시우는 끙 소리를 냈다.
“어디까지나 우리한테 알려준다면 하는 이야기지.”
“그것은 제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겠지요.”
나는 가슴을 폈다.
“하지만 단단한 금속도 꾸준한 열을 가하면 결국은 녹고야 마는 법이에요. 만약 이 처자와 결혼하게 된다면, 시우 님. 저는 그만한 사랑을 꾸준하게 쏟아줄 자신이 있답니다.”
“…이런 외모를 가진 처자를 상대로 말이냐?”
“예.”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최초의 성녀: 멋지네요, 예언자님….]
‘아니 뭐… 임무 기간이 명기되어 있지 않으니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소만 말이오. 법왕이 알아서 잘 노력하지 않겠소?’
[최초의 성녀: …음. 그, 그래도 멋지네요, 예언자님.]
[간신 조련사: 아리야. 슬슬 자신에게 학습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게 어떻습니까? 구체적으로는 저 간신이 뭔가 그럴 듯한 소리를 할 때 칭찬부터 하고 보는 걸 그만두는 겁니다. 그것만 해도 자신을 다잡는데 쓰는 노력 중 8할을 아낄 수 있을 겁니다….]
[첫 번째 은월: (아주 큰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