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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이 나라를 살림-63화 (63/261)

63. 나라를 살리는 다섯 번째 방법 (1)

그래서 임무 달성 보상으로 어떤 건물들이 주어졌는지, 야리소연을 어느 건물에 배치했는지, 같은 것을 이야기할 타이밍 같지만 그건 천천히 말할 기회가 있겠지.

중요한 건 내가 다음 임무에 들어왔다는 거다.

+

<역사변이점>

- 건국 15년

[ 은월을 지켜라 / 난이도 B ]

[ 삼국 협상 / 난이도 B ]

[ 맞선 / 난이도 B ]

+

무려 세 가지 임무가 하나로 합쳐진 종합 선물 한상차림.

심지어 잔여시간도 나와 있지 않았다.

왜 이 따위일까? 대체 건국 15년에 무슨 지랄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것은 임무에 들어가자마자 알 수 있었다.

“법앙, 법앙, 이리 와바.”

쪼끄만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네, 폐하.”

마치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것처럼 가느다란 목소리가 내 빙의체의 목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렇다.

“법왕이 갑니다.”

지금 나는 ‘법왕’이다.

지난번에 2연속으로 똑같은 은월을 모셔야했다면, 이번에는 2연속으로 똑같은 빙의체에 빙의해있는 것이다.

현재 시각 건국 15년.

건국 0년 당시 10대 초중반이던 소년은 이제 20대 후반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어릴 때 못 먹은 탓인지 체질이 그런 것인지, 어엿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선이 가늘고 비리비리했다….

[첫 번째 은월: 아마 둘 다겠지. 애미 애비부터가 비실이였을거야.]

[최초의 성녀: 그러게요. 반역이랑 숙청이 있었던 연도와 첫 빙의 당시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이미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애라는 거 이야기니까요….]

[개천의 시왕: ….]

음.

머릿속에서 아우성이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최초의 성녀: 비, 비류아! 아니에요. 비류아를 탓하려던 건 아니고, 그러니까 그게….]

[첫 번째 은월: 난 탓하고 싶은데? 가오 잡는 게 은혜 갚기보다 중요했냐? 대박 깬다 너 진짜.]

[개천의 시왕: ….]

나아갔다.

[간신 조련사: 그렇습니다, 간신이여. 신경 쓰지 마십시오. 지금은 임무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나아갔….

‘천사님….’

[간신 조련사: 예, 간신이여?]

‘그… 닉인지 명패인지. 하여간 천사님 쓰시는 그것 좀 바꿔주시면 안 됩니까?’

[간신 조련사: 어째서입니까? 마침 2,0 패치도 끝났는데, 새로운 기능을 실험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노릇 아닙니까.]

‘왜 조련사입니까! 그냥 ‘천사’라고 하면 되잖습니까!‘

나는 머릿속으로 벌컥 성을 냈다.

엉뚱한 녀석이 대답했다.

[첫 번째 은월: 아니, 그치만 야. 쟤 입장도 생각해줘야지. 자기 자신을 천사라고 부르는 건 좀 머리에 꽃 꽂은 것 같잖아.]

[최초의 성녀: 방금 하신 말씀은 왜인지 저를 은근하게 공격하시는 것 같은데요….]

[첫 번째 은월: 너 피해망상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누가 무당 아니랄까봐. 그치? 가리비수. 쟤 너무 앞서나가지?]

‘야리소연 말에 동의하는 건 드문 경우지만, 아리야. 야리소연의 말이 맞소. 야리소연은 누군가를 비꼴 만한 사람이 아니외다. 야만인이라 돌대가리거든.’

[첫 번째 은월: 니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스킬을 쓰려던 순간 그 스킬이 들어있는 건물을 뽀개버릴 거야.]

‘야 임마!!’

[첫 번째 은월: 뭐 임마!]

‘나 없는 틈에 건물 부순다니 뭔소리야!’

[첫 번째 은월: 빈집털이 개꿀! 니가 가르쳐준 거잖아!]

‘자기 집을 털어서 뭘 어쩌자고!’

[첫 번째 은월: 야만인이라 돌대가리라 니집 내집 못알아봐서 그렇다 왜?]

‘아 나 진짜….’

머리를 싸매고 있자니 다시금 조그마한 목소리가 날 현실로 끌고 왔다.

“법아아아앙!! 얼른 와아아아!”

돌겠네.

이마를 짚은 채, 나는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이 시대의 은월 앞에 이르렀다.

“부르셨나이까, 폐하.”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수그리자, 조그마한 손이 올라왔다. 그 손은 한참을 올라오고도 부족해서 엉덩이를 조금 들썩인 뒤에야 내 머리에 닿을 수 있었다.

“응, 법앙.”

고개를 내리자 초롱초롱한 은빛 눈동자가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 쉬야하고 싶어.”

그렇다.

이것이 이 시대의 은월.

올해 4살이 되는 쪼무래기 중의 쪼무래기였다.

[개천의 시왕: 어떤가, 귀엽지 않은가? 나와 시우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니 귀엽지 않을 수가 없을 터. 내가 잘생겼고 시우도 그럭저럭 잘생긴 편이니 필히 8할 이상 잘생긴 아이로 자라날 것이다. 그뿐인가, 내가 강하고 시우도 그럭저럭 강한 편이니 역시 8할 이상 강한 아이로 자라날 테지. 매력과 위력을 모두 갖추었으니 필히 위대하고도 강력한 왕이 될 것이다. 내가 세운 왕국을 이 아이, ‘이세’가 반석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것으로 2대에 걸친 왕업이 뿌리를 내리고 왕국은 천년, 아니 만년, 아니 억조 년의 영화와 영광을 맞이하여….]

‘아가씨. 자식 자랑 즐거운 건 알겠지만 자중해주세요.’

[개천의 시왕: 네.]

제사장일 때처럼 말하자 그 시절의 왕녀처럼 곧바로 수긍하는 비류아.

그 모습에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쪼무래기, 이세가 내 코를 당겼다.

“법앙. 나 쉬야. 웅?”

“네. 전하….”

나는 이세를 안았다. 애 돌보는 건 정략 결혼한 태학관 동기 녀석 애를 처음에 잠깐 봐주었던 이래 어째 많이 해보게 됐던 일이어서, 나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세를 안아 다독이며 외칠 수 있었다.

“여봐라! 누구 없느냐!”

집무실 바깥에서 예, 소리가 들려왔다. 친위대원 중 한 명일 테지.

“매화틀을 대령하여라!”

매화틀이란 쉽게 말해 이동 가능한 국왕 전용 변기였다.

나는 저승의 시설 창을 띄워보았다.

+

[ 시설물: 궁전 ]

레벨: 3

문명 수준: 전제 군주제

담당자: 비류아 (개천의 시왕)

효과: 통치술(Lv.3), 예법(Lv.1), 즉각숙청(소모성, 임무 당 1회) 부여

플레이버 텍스트: 법왕은 허리를 수그린 채 말했다.

“무릇 변하는 것을 논할 때에는 변치 않는 것에 기반하여야 합니다.

가령 예(禮)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같은 은월의 피를 마주한다 하여도 숨 한 번 쉬기 벅찬 전장에서 대하는 것과 노을이 느긋하게 번져가는 광장에서 대하는 것이 같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반면 의(儀)란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것입니다. 달의 여신을 믿는 자라면 누구든 어떤 자리에서건 은월의 피를 존중하는 마음은 결코 변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원컨대 이러한 의(義)에 기반한 예(禮)를 만들고자 하니 윤허해주소서.”

시왕(始王)은 초승달 같은 미소를 지은 채 비답을 내렸다.

“이제 좀 은월의 피가 귀한 줄 알 것 같구나.”

+

패치의 영향이었다.

15년 전, 비류아가 아직 족장으로 불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궁전 크기부터 시작해서 많은 게 바뀌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예법(禮法)이었던 것이다.

[개천의 시왕: 그대가 열심히 일한 덕이다.]

내가 빙의로부터 빠져나온 뒤에도 법왕은 열일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기특하다고 생각했는데….’

곧 바깥으로부터 대답이 들려왔다.

“법왕 예하, 매화틀 담당자가 현재 6문을 넘었다 하옵니다! 조금만 기다리소서!”

‘아니 무슨….’

“예하, 매화틀 담당자가 현재 5문을 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사오니….”

“예하! 매화틀 담당자가 현재 4문에서 암구호를 제대로 대지 못하여서 다소의 지체가 발생될 것을 고하오니….”

“예하, 매화틀 담당자가 이제 3문에 지나는 중이오며….”

‘너무 열일한 거 아니냐고….’

내 품에 안긴 이세가 꼬물꼬물 거렸다. 어린 얼굴에 불안감이 가득했다.

“법앙, 아직이야? 나 마려운데….”

덕분에 나도 불안해졌다.

갓 태어난 강아지를 안아본 적이 있다면 지금 내 심정을 즉각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안고 있는 동안은 따뜻하고 좋지만 언제 이 녀석이 쉬야를 지릴지 모른다는 박진감 넘치는 시간을 보내게 될 테니까.

‘시발 좀 빨리 와라….’

물론 이세는 올해 4살의 건아. 갓 태어난 강아지와 단순 비교하는 건 억울한 일이겠지.

[첫 번째 은월: 강생이한테 억울하지. 강생이는 빡치면 삶아먹을 수라도 있다지만 애는 그럴 수도 없잖아. 아… 말하니까 개고기 먹고 싶네.]

‘얜 또 뭔 미친 소리야.’

[최초의 성녀: 괜찮아요 예언자님! 옷은 갈아입으면 돼요!]

‘아니,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거 아니오?’

[개천의 시왕: 아리야. 이세는 내 피를 이은 아이다. 방광의 유혹 따위에 넘어갈 리 없는 것이다.]

‘빨리 이 임무 깨서 모자상봉 시켜주든지 해야지….’

[간신 조련사: 간신이여. 방금 당신이 한 생각은 풀어 설명하자면 아들내미 황천길 빨리 건너게 도와주겠다는 것 같은데, 그거 윤리적으로 괜찮은 생각 맞습니까?]

‘아니 이 천사는 왜 또 남의 생각을 읽어….’

[개천의 시왕: 잠깐, 무슨 생각을 했다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가씨. 저를 굳게 믿어주십시오.’

[개천의 시왕: 네.]

역시 시간 없을 때에는 제사장처럼 말하는 게 비류아에게 즉효다.

[간신 조련사: (귓속말) 방금 건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당신의 생각을 읽을 때는 이런 느낌으로 전하겠습니다. 당신도 비슷한 느낌으로 전해주시면 됩니다.]

‘(귓속말) 이렇게요?’

[간신 조련사: (귓속말) 예, 습득이 빠르시군요. 그래서 윤리적으로 볼 때 당신의 생각은 좀 어떻습니까.]

‘(귓속말) 그 전에 이 임무 깨면 둘이 모자상봉할 수 있을 만큼 시간 흐르는 게 맞긴 한가요? 전 그게 제일 궁금한데.’

[간신 조련사: (귓속말) 당신에게 윤리를 기대한 제가 잘못했습니다.]

“응, 으움….”

그러는 동안에도 시시각각 이세의 꼬물거림은 강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예하, 매화틀 담당자가 문 앞까지 왔사옵니다!”

친위대원이 소리쳤다. 나는 바로 외쳤다.

“어서 들라하라!”

“네, 예하. …하오나 문제가 하나 있사온대.”

“무슨 문제?”

“그… 이 매화틀 담당자가 온지 얼마 안 된 터라, 혹시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태부(太夫)님께서 함께 드셔야만 하시겠다고, 잠시 정지시켜두라는 전갈이 도착했사옵니다.”

‘와.’

“그냥 묻는 건데, 지금 태부님은 어디에 계시나?”

“지금 급히 바울 부(部)로부터 말을 타고 돌아오고 계시다고….”

“말 타고 30분 거리 아닌가?”

“맞습니다….”

“매화틀 필요하다는 건 어떻게 알리고 전갈은 또 어떻게 일찍 왔는데?”

“알린 것은 봉화로, 전갈은 송골매가 전해주었습니다.”

음.

“즉, 지금 이 문 바깥에 매화틀이 있지만 그걸 들여올 수는 없다? 태부께서 오실 때까지?”

말하면서 스스로 병신 같아지는 문답이 있는데, 지금 것이 딱 그런 종류였다. 문 바깥을 지키고 선 친위대원도 동감하는지 목소리가 움츠러들었다.

“그렇습니다, 예하….”

“그냥 잠깐만 문 열면 안 돼? 잠깐 안고 나가서….”

“죄송합니다. 예하. 국본(國本)이신 이세 폐하의 안위를 위해 결코 이세 폐하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하여서는 안 된다는 태부님의 엄명으로 인하여….”

“그럼 그냥 내가 갖고 들어올게.”

“그, 그것도 불가하옵니다. 현재 태부님께서 부재하시는 바, 국본을 지킬 자는 오직 태부님께서 신뢰하시는 법왕 예하밖에 없는 관계로… 태부님께서 돌아와 자신과 교대하시기 전까지 법왕 예하와 이세 폐하를 항상 같은 곳에 있게 하라는 말씀을….”

음.

‘법왕이 열일한 게 아니네.’

열일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뭐랄까….

[최초의 성녀: 빡대가리랑 일하자면 고달프지요 원래….]

그냥 그거다.

[첫 번째 은월: 아리야. 너 왜 그 말하면서 날 보냐?]

[최초의 성녀: 음, 글쎄요. 제가 어딜 보든 상관없는 일이지요. 그거야말로 망상 아니실까요…?]

[첫 번째 은월: 아 진짜. 야. 근데 그보다 말야. 그 빡대가리라는 거. 그러니까 태부(太夫)인지 뭔지 하는 놈이 결국 누군가 하면….]

[개천의 시왕: ….]

[최초의 성녀: 아, 아니요 비류아! 비류아를 뭔가 우회적으로 공격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

저승에서 그런 대화가 오가는 동안 나는 절로 초연해졌다.

그런 내 목깃을 자그마한 손가락이 쥐고 끌었다.

“법아아앙, 나 마려워어….”

이세가 울먹였다.

나는 이세를 안아든 그대로 마음을 편히 먹었다. 얼굴에 절로 편함이 묻어났다.

“편해지십시오.”

“우으, 그래두 돼애…?”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이세 역시 편해졌다.

잠시 내가 옷을 갈아입느라 불편한 시간이 있었을 뿐.

‘돌아버리겠네….’

나는 왜 임무에 들어올 때마다 이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알 수 없다. 불가해한 세상의 악의에 오늘도 한 명의 충신이 신음하고 있었노라고, 아직 없는 실록에 한 줄 기록할 수 있다면 그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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