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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이 나라를 살림-59화 (59/261)

59. 자모신 2.0 패치 업데이트 (1)

저승으로 돌아오자마자, 임무 달성을 알리는 문장들이 떠올랐다.

[ 축하드립니다! ]

[ 역사변이점 ‘개천’ 완료! ]

임무 창이 꽃무리처럼 흐드러지면서 새로운 문자들을 피워냈다.

[ 왕국이 건국되었습니다. 메인 미션 클리어! ]

‘좋아.’

[ 은월의 핏줄이 혼약자를 맞이했습니다. 왕가(王家)가 결성되었습니다. 서브 미션 클리어! ]

‘좋아, 아주 좋아.’

[ 삼국과 일시적인 동맹 관계를 체결하였습니다. 히든 미션 클리어! ]

‘완벽해!’

온몸에 들어차있던 긴장이 그제야 쭉 풀려나갔다.

기간만 따져도 무려 한 달에 달하던 임무를 달성해낸 것이었다.

“솔직히 고생했다고 해야겠습니다.”

드물게도 치하의 말을 건네 오는 천사님.

나는 당당히 그 치하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믄요. 무려 노예로 시작한 임무였으니까요.”

“노예로 시작한 이유는 당신이 지난 임무를 그런 식으로 끝냈기 때문이었습니다만.”

방금 치하의 말을 건넨 것이 무색하게도 부리나케 딴지를 걸어오신다.

나는 무시하고 말했다.

“30년 전 썩어빠진 제사장 일당이 저지른 반역, 그로 인한 숙청의 후폭풍으로 식자층이 궤멸했다는 절망적인 상황조차 극복해냈지요.”

“그 제사장이 당신이었고, 그 반역세력이란 것도 당신이 날조해낸 것이었습니다만.”

“심지어 가리비수라는 사악한 마신을 추종하던 분탕종자들을 관리 체제하에 넣는 것으로 내부 정비까지 단행했지요.”

“그 가리비수도 당신이었지요.”

“그렇게 내부 정비를 하는데 계명이 가장 걸림돌이 되었지요. 그걸 우회하기 위해 꾀를 낸 것도 저였습니다.”

“그 계명도 당신이 날조해낸 것이었고요.”

나는 가슴을 쭉 편 채 말했다.

“정말 모든 것이 저의 업적이군요.”

천사는 어깨를 늘어뜨린 채 말했다.

“정말 모든 것이 댁의 업보입니다.”

어째서 천사님은 날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인 걸까? 신의 대리자조차 시기와 질투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까? 명백한 사실로부터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며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천사님의 모습을 보자니 내가 다 침통해질 지경이었다….

“예언자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호다닥 달려온 아리야가 내 손을 잡고 폴짝 뛰었다.

인지부조화에 빠진 천사님과 달리 사실을 인정할 줄 아는 도량을 가진 성녀의 모습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허허, 아니오. 물론 내가 고생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리야. 그대의 조언도 도움이 됐다오.”

“아니요,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요! 전부 다 예언자님께서 해내신 일이랍니다! 예언자님은 정말 완전 개 쩌는 분이에요!”

폴짝폴짝 뛰는 아리야의 모습을 본 내 흐뭇한 미소가 짙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가슴을 펴고 자랑할 일이 맞았다.

“그렇소이다. 아리야. 내가 좀 쩌는 사람이라오.”

“네, 예언자님! …어, 근데 쩐다는 게 결국 어떤 뜻인지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굉장하고 대단하며 타의 추종이 불가하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오. 아니 그렇습니까, 천사님?”

천사님은 한숨을 푹푹 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 모습이 다소 추했지만, 개 쩌는 내겐 그 정도 추함은 인정할 만한 도량이 있었다. 나는 턱을 치켜세운 채 말했다.

“아이고, 왜 그렇게 한숨을 지으십니까요. 수고했다, 고생했다! 아니, 당신 같은 인재는 정말이지 처음이다! 저 대륙의 유촉제가 제갈장량을 얻은 것과 같은 기쁨이 제 심장을 채우는구나! 이런 말씀을 해주실 때가 아닐는지요.”

“정말 당신이란 작자는 그 주접만 좀 어떻게 하면….”

“주접이 아니라 현실입지요. 천사님, 말해보십시오. 아아, 그대여!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마저 히든 미션까지 달성하다니, 바야흐로 이제 그대에게 임무 초과란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극적인 어조로 서사시를 읊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위대한 선조들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새겼습니다. 스페셜 미션 클리어! ]

“오잉?”

“힉?!”

“무슨….”

나, 아리야, 천사가 한 마디씩 당혹한 티를 냈다.

뭐지?

“천사님, 설마 히든 미션 다음도 있었던 겁니까?”

“그게… 말씀드렸지만, 저도 이 시스템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는 터라.”

천사님은 그렇게 당황하여 손을 내저었지만, 아리야는 그야말로 펄쩍 뛰었다.

“개 쩔어요 예언자님!!”

확실히 이건 좀 개 쩌는 것 아닌가?

아니, 개를 넘어 완전 용 쩌는 것 아닌가? 용 쩐다는 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없다면 바로 이 순간 날 위해 만들어지기 위해서 없었던 것 아닐까?

[ 지금부터 역사변이도를 측정합니다. ]

[ 50%… 70%… 100%… 120%…. ]

[ 역사변이도 180% 달성! ]

그리고 다시금, 처음 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 신역(神域)이 확장됩니다. ]

빛이 흘러들어왔다.

강렬하지만 부담 없이 스며드는 빛이었다. 나는 빛이 안개처럼 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봤다. 그림자로 뒤덮여 있던 저승. 아무리 불이 밝혀져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던 저승의 그늘을, 빛이 서서히 물리쳤다.

그리고, 시야가 개였다.

“어….”

저승이, 명백하게 한층 더 넓어져 있었다.

“이건 무슨….”

아리야가 당혹한 가운데, 상황을 정리한 것은 천사님이었다.

“자모신께서 내려주시는 힘이 한층 강해졌습니다.”

“강해졌다구요?”

“예. 당신이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저승에 자모신의 신력이 강해지고 있다는 말씀은 지난 임무 수행 중에 한 차례 드린 바가 있었지요?”

“넵. 그래서 천사님이 비류아의 과거를 살피는 동안, 지지난 임무 도중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길게 아리야로부터 대화식으로 조언을 받을 수 있었습죠.”

“바로 그것입니다. 지난 임무명과 같이 나라를 세우는 것을 개천(開天)이라 표현하는데,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함으로써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천사는 한 손으로 목가를 감싸더니 선언했다.

“마호스 신학 용어로 말하자면, 자모신 2,0 패치가 업데이트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나는 떨떠름해졌다.

“대체 그 마호스 신학 용어란 건 뭡니까? 아리야가 들어왔을 때에도 한 번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혼잣말입니다.”

그때와 똑같은 대답이었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 음. 그래서 그 자모신 2 패치인지 뭔지의 기능이 뭡니까? 설마하니 이렇게 시야만 좀 넓어지고 끝나는 건….”

대답은 천사가 아닌 다른 쪽으로부터 들려왔다.

“가리비수우우우우!!”

뒤쪽, 그리고 위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내가 뒤돌아 올려다보기도 전에,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서 있던 곳-- 궁전의 지붕으로부터 펄쩍 뛰어내렸다.

처음에는 그림자가, 그 다음에는 높이 차에 따른 질량이 나를 덮쳤다.

“커헉?!”

마치 흑표범에게 짓눌린 사슴이 된 것만 같은 기분.

당혹하여 올려다본 내 눈에 비친 것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야, 야리소연?”

그랬다.

시초의 은월, 야리소연이 활기찬 얼굴로 내 위에 올라타 있었다.

◈          ◈          ◈

“아핫, 반갑다 야! 가리비수! 내 서방아!”

야리소연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전투 화장으로 울긋불긋한 얼굴 아래 도드라진 송곳니가 고양이과 육식동물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첫 번째 임무에서 보았던 인상과 똑같았다.

“야리소연… 너 여긴 어떻게?”

“음? 여긴 어떻게는 뭐가 어떻게야. 있기는 여기 쭉 여기 있었는걸?”

그렇게 말한 야리소연은 양손을 뻗어 내 뺨을 잡고 이리저리 부벼댔다.

“부르기도 계속 불러댔구, 만지기도 계속 만져댔는데. 우와, 이제야 좀 부르고 만질 수 있게 됐네!”

“부, 불렀다구 계속?”

“응!”

“언제부터?”

“언제부터긴, 니가 쩌~기 있는 저… 어디야? 하여간 저게 아직 되게 쪼그맣구, 쟤도 여기 없을 때부터지.”

그러며 야리소연이 가리킨 곳은 궁전이었고, 가리킨 사람은 아리야였다.

‘이런 미친.’

불현듯 나는 저승에서 보냈던 첫날밤을 떠올렸다.

야리소연의 말마따나 움막집이 궁전인 척하던 시절, 어찌어찌 잠자리에 들려 노력하던 중에 얼핏 들었던 그 소리를.

- 가리비수….

들었다.

확실히 들었었다.

내 귀에 대고 누군가가 ‘가리비수’ 하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나는 유령들의 신음들 틈바구니 속에서 확실히 들었던 것이었다.

“그게 너였어?”

“응! 나였어!”

방긋 웃은 야리소연이 다시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내 온몸을 더듬으면서 마뜩잖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근데 가리비수, 너 진짜 뭐라 그러나… 비리비리하다 야. 나랑 있을 땐 안 그랬는데 왜 여기 들어오니까 이렇게 빼빼 말라서는…. 좀 잘 먹고 운동 좀 하지. 그래야지 그 때처럼 볼품도 있고, 털도 막 나고 그런 전사가 되지 지금은 영….”

훅 들어오는 성추행에 내가 할 말을 잃어버린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그렇게 정절의 위기에 처한 나를 구해낸 것은 아리야였다.

“자, 잠깐만요! 예언자님한테서 좀 떨어지세요!”

“아얏!”

팍, 밀쳐난 야리소연이 데구르르 옆으로 굴렀다. 오래잖아 고양이과 동물처럼 양 발바닥과 오른쪽 손바닥으로 척, 동시에 땅을 짚어 균형을 잡더니, 초승달 같은 눈동자로 아리야를 노려보았다.

“앙? 뭐야 내 딸내미의 아들내미의 딸내미의 또 딸내미의… 하여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갓난쟁이가, 하늘같은 큰 어미를 밀쳐?”

“크, 큰 어미라니요?!”

“큰 어미지! 야! 내가 얘랑! 애 막 낳고! 그 애들이 또 애 낳고! 다 해서 너 낳았어 인마!”

야리소연이 양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일갈했다.

아리야는 읏 소리를 냈지만 반박하길 포기하진 않았다.

“그, 그래도요! 그렇게 따지면 예언자님은… 어, 예언자님도 저랑 아이를 막 낳았거든요!”

‘아니, 아리야….’

“앙. 그거야 알지. 근데 그건 얘가 아니라 네 남편네였잖아? 모서아인지 무서워인지 하여간 개!”

‘응. 그래. 맞아… 아리야랑 애 낳은 건 걔지 내가 아니라구….’

“그렇게 따지면 당신도 똑같죠! 당신과 아이를 가진 건 예언자님이 아니라 가리비수인지 아리수인지잖아요!”

‘이 말도 맞구…. 야리소연 너랑 결혼한 건 내가 아니라 가리비수니까 말이야….’

즉, 나는 여전히 정절을 지킨 청백한 몸.

그 누구에게도 몸과 마음을 허락지 않은, 마치 하얀 머리 산의 산정호수처럼 청정한 남자였다….

“비류아가 말하길 그 산정호수에는 용인 척하던 우둔한 괴물이 살고 있었다지요. 그렇게 따져보면 정말이지 기분 나쁜 남자군요.”

천사님이 외야에서 헛소리를 하는 동안에도 두 여인의 말다툼은 격해져갔다.

“아앙?! 요 쪼끄만 꼬맹이가 자꾸 까불어?!”

“마, 말로 안 되니 폭력을 휘두르시려는 건가요! 야만스러워요!”

“아이고, 너 같은 비실이를 내가 때리겠냐?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말야.”

“비실이 아니거든요! 애 많이 낳고 키웠거든요! 그리고 지금 몸이 아닌 말로 폭력을 휘두르고 계시거든요!”

“그건 폭력이 아니라 훈계를 하는 거지! 내가 니 엄청 큰 어미라니깐. 어디서 말대꾸하고 앉아있어, 확 씨 아주.”

“으으으읏! 그, 그래도 저는 월족의 족장이었다구요! 지도자였다구요! 성녀라고 불렸거든요! 그에 비해 댁은! 댁은 진짜 예언자님 없었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면서!”

“이제는 댁이라네. 야. 그러는 비실이 넌? 우리 가리비수 없었으면 자존심 때문에 부족 다 말아먹고 머리에 꽃 꽂았을 거라매? ‘아아~ 그렇군요~ 저희는 저주받은 일족이에요~ 처음부터 신 따위는 없었어요~ 기대하지 않았으면 실망도 없었을 텐데~’ 어쩌고 하면서 막.”

“그그그그그 말씀 하신다 이거죠! 하셨다 이거죠!”

마치 격화되는 고부갈등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

“당신이 어떻게 중재 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천사님이 툭 내던진 한 마디에, 야리소연과 아리야 둘 모두 홱 나를 돌아보았다.

“야! 가리비수! 누구 편이야?!”

“예언자님! 절 지지해주실 거죠?!”

음.

‘대체 왜 태학관 시절이 떠오르지….’

나투아의 상주를 대할 때보다도 긴장감에 가득 찬 내가, 신중하게 말을 고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두 선조님 모두 채신머리가 없으시군.”

또 다른 곳으로부터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적당히들 하시는 것이 어떻겠나.”

비류아.

개천의 시왕(始王)이 저승의 대로를 걸어오며 날려 온 일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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