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족장, 비류아 (3)
말을 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이 자신의 다리로 설 수 있다는 게 기이하다 느꼈을 무렵부터 그러했다.
하물며 그 체중을 다른 생물에게 맡길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생물이 그 체중을 받아줄 수가 있단 말인가?
말에 탈 때마다, 비류아는 자신이 들어 올리느라 낑낑거렸던 물동이를 떠올렸다.
말에게 자신은 그런 물동이와 같지 않을까? 언어를 말하며 고삐를 당기고 채찍질을 하는 짐짝.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그 말에 대고, 아비는 비류아의 어깨를 잡은 채로 말했다.
“말과 교감하려무나.”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지, 비류아는 알 수 없었다.
“말이란 무릇 충성스러운 동물이다. 기수의 마음을 알아주고, 기수의 인도를 따라주는 것이야. 적들이 앞세운 창칼과 쏘아낸 화살촉 앞에서도 굴하는 일 없이 기수와 한 몸이 되어줄 수 있는 이를, 나는 말 외에는 모른다.”
비류아는 말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몰랐다.
모르는 것들은 그밖에도 많았다.
말을 타고 나간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수많은 약탈품과 포로들을 데리고 돌아온 뒤가 그러했다.
목에 줄이 매인 채 원독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포로를 볼 때마다 비류아는 거기서 자신의 어머니를 보았다.
채찍을 맞으며 노동하는 노예를 볼 때마다 비류아는 거기서 어머니의 동포들을 보았다.
“잘했다, 비류아. 네가 거둔 전과가 실로 크구나.”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많았다.
“저들과 교감하거라, 내 딸아. 내 아들아. 장차 월족의 군주가 될 아해들아. 저들의 충성을 받아내라. 그리하면 군주의 마음을 알아주고, 군주의 인도에 따라줄 게다. 고된 노동을 대신하여주고, 적들과의 싸움 앞에 앞장설 것이다. 그리 하여 월족은 더욱 융성할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았다.
“월족이 융성해졌구나.”
배워야겠다고, 비류아는 생각했다.
◈ ◈ ◈
“어떻게 무의미하다고 단정하십니까!”
깡! 시우가 휘두른 검집이 불티를 튀겼다.
“모를 일입니다!”
깡! 한 번 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깡! 다시 한 번 더, 시우는 검집을 휘두른 다음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모레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난격이 이어지는 동안, 비류아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검을 쥔 손목을 슬쩍 비틀거나 기울이는 것만으로 모든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비류아 님께서는, 모르시지 않습니까….”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마주한 이들이 대개 그러하듯, 시우의 목소리에서 힘이 끊겨나갔다.
숨을 고르는 친위대장을 앞에 두고서, 월족의 군주는 말했다.
“그래, 나는 모르는 것이 많다.”
그 자체로 손길과 같아 촛불을 흔들리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그러기에 나는 아는 것을 안다.”
시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되신 것이, 자신이 어차피 아이를 갖지 못하리란 것입니까.”
“이해가 빠르구나. 시우. 하긴 너는 검을 배울 때부터 빠른 아이였으렷다.”
“그 또한 모를 일입니다. 이 세상엔 신비로운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신비에 의존하신다면….”
“하얀 머리 산에는 영험한 기운의 호수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었지.”
비류아의 말이 시우의 말을 목울대 즈음부터 쳐 날렸다.
“함부로 발 들인 자는 벼락에 맞아 머리가 팔순 노인처럼 허옇게 새어버리기에 하얀 머리 산이라고 불린다는 말부터, 그 산정에 있는 호수의 물을 마시면 백년장수할 수 있다는 말까지. 그러나 그 산정 호수 안에는 지혜를 가진 위대한 용이 거하여, 자격 있는 자에게만 오직 한 모금의 물을 허락한다는 소문까지.”
하지만, 이라고 말하면서 비류아는 검집 째 검을 뿌렸다.
“하얀 머리 산에 살던 용은 그저 우둔한 괴물에 불과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는커녕, 제 몸무게를 감당치 못해 호수 바깥으로는 한 발도 빠져나오지 못하던 커다란 괴물에 지나지 않았던 거다.”
“….”
“나른한 벌판은 어떠했는가? 내가 기병을 이끌고 그 곳을 휩쓸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비밀과 소문이 그 속에 잠들어 있었는지 아느냐? 날 악몽으로 여기는 여덟 부족들은 어떠한가? 그들 각자에게 전해 내려오던 비밀스러운 관습들 중 이제 와서 내 친위대가 모르는 것이 있던가? 나는,”
비류아는 살짝 고개를 틀었다. 주름진 입술 너머, 날을 잃지 않아 늑대의 그것을 닮은 송곳니가 드러났다.
“이 세상 누구보다 많은 신비를 먹어왔노라.”
주춤, 시우가 한 걸음 물러섰다. 소나무처럼 굳건한 그 어깨가 한파를 맞은 듯 떨렸다.
“그런 내게 신비를 말했느냐, 나의 친위대장이여?”
시우는 무어라 입을 열려 했다. 다물었다.
더 이상 무어라 말해야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말을 할 수 없는 자가 검을 이어갈 수는 없는 법. 서서히 다가오는 비류아 앞에서, 시우는 꼼짝도 못한 채 서서 숨을 앓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나는 한 걸음 나섰다.
‘으.’
힘든 걸음이었다.
- 이 아이가 월족에 재앙을 가져오리라.
첫 번째 임무에 들어섰을 무렵, 날 제외한 세계가 뒷걸음질 치던 그 때와 같았다. 천사가 보여주는 비류아의 과거들이 수도 없이 내 옆을 흩날려 지나치고 있었다.
- 월족은 이 아이로 인해 무너질 것이다.
어떤 과거는 독처럼 심장에 스미었다.
- 비류아.
- 내 딸아.
- 네가 족장이 되어라. 그리하여 이 어미의 한을,
어떤 과거는 빛처럼 눈을 할퀴었다.
- 비류아 님.
- 족장에 어울리는 분은 오직 당신뿐.
그리고 어떤 과거는, 창칼처럼 몸을 찌르고 또 찔렀다.
- 어째서 내 부족을.
-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 말을 탄 악마년.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 파편들이 내 몸을 찢고 지나갔다.
녹았다가 다시 언 눈보라처럼, 무수한 칼날에 찢길 때마다 비류아의 과거가 내 혈관을 타고 퍼졌다. 뻗었다.
‘빌어먹을.’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시우야, 임마…. 밀리면 안 되지 여기서.’
심호흡을 하고서, 나는 말했다.
“님이시여.”
비류아가 멈추었다. 칼끝을 추어올리듯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나는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서 말했다.
“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신비를 먹어치우셨으나, 정작 가장 큰 신비로부터는 눈을 돌리고 계시어요.”
그것은 아마도 비류아가 알고 있을 말이었다.
그렇게 답을 알고 있을 말을, 비류아는 모르는 양 입에 담았다.
“무엇이냐?”
모르는 양 입에 담은 그 말의 답을, 나는 되돌려주었다.
“예언이어요.”
나와 비류아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님께서는 저를 필요로 하셨지요.”
내가 예언자의 핏줄이라는 것, 정확히는 내게 예언의 힘이 있음을 알았기에 그녀는 나를 필요로 했다.
은인의 후예가 아닌 예언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방금 역시, 님께서는 저의 예언을 자신의 승리에 대한 근거로 삼으셨어요.”
시도해보았으나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는 비류아의 경험치를, 시우는 충격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사실 시우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한 말이긴 했지.’
[그렇습니까? 여군주가 후계자를 갖기 위해 동침자들을 불렀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만.]
[[최초의 성녀 아리야 역시 동의합니다. 아이를 갖고자 노력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숨길 일도 될 수 없다고 아리야는 주장합니다.]]
아리야의 전언이 다시금 간략화 되었다. 천사님이 돌아와서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저도 그 부분을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비류아는 평소 금욕적인 이미지였습니다. 그 왜,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쇼. 어허, 이거 안 되겠네. 백성들의 부담이 너무 큰 것 아닌가. 세금을 좀 낮추고 구휼미를 풀도록 하세나, 라고요. 다들 제 정신 상태를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자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둘 중 하나만 해주시겠습니까?]
‘사람은 원래 이중적인 생물입니다.’
천사의 딴지를 그렇게 넘기고서, 나는 바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들 그 이중성을 잘 숨기고 살지요. 그래서 그런 이중성을 의도적으로 까보였을 때, 사람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비류아가 의도한 것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지금 시우를 비롯한 좌중에게 ‘충격’을 주려 한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분명, 방금 내가 말한 것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예언.’
이 단어가, 비류아의 삶 전체를 옭아매고 있음을 나는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다면, 비류아가 저런 표정을 지을 리 없을 테니까.’
비류아는, 언뜻, 무표정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아랫입술에 파고든 송곳니가 보였다. 배어나온 핏물도.
그것을, 아마도 시우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개입이 비류아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 그로 인해 다시금 시우에게 입을 열 기회를 준 것은 확실했다.
“아는 것을 아신다 하셔도, 족장님….”
시우는 숨을 골랐다.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숨을 타고 말도 계속하여 흘러나왔다.
“모르시는 것은, 역시 모르시는 것입니다.”
시우는 검을 추스르며 말했다.
“당장 오늘 아침만 해도, 저와 법왕이 음식을 싸들고 오리란 걸 모르셨지 않습니까. 법왕이 법전을 만들자 말하리란 것도, 마신 추종자들과 관련하여 계책을 내리라는 것도, 그 계책이 먹혀들리라는 것도 모르셨지 않습니까….”
비류아는 친위대장이 숨을 고르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래서 시우는 계속 말할 수 있었다.
“어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법왕을 거두리란 것도, 마신 추종자들이 습격하리란 것도…. 족장님, 비류아 님! 저의 주군이시여.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어찌 아시겠습니까!”
말하는 동안 시우의 목소리에는 힘이 돌아왔다. 무지를 희망으로 갈음할 수 있다는 것은 젊은이의 특권이었다.
시우는 아직 그만큼 젊었고, 그 젊음은 이제 단풍의 시간에 들어선 전쟁 군주를 한 걸음 물러서게 했다.
하지만 그 뿐.
비류아는 더 물러서지 않았다.
“예언이라.”
늑대가 양의 무릎 연골을 되씹는 것처럼, 용 살해자는 그렇게 으득거렸다.
“확실히 그것은 올바른 말이로다. 결국 그것만이 내가 마지막까지 정복하지 못한 신비이니.”
“하다면!”
외치는 시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족장님! 그 신비에 몸을 맡기십시오! 저와 마음을 함께 해주신다면, 그렇다면 기필코….”
시우의 말이 멎었다. 화색이 스러졌다.
비류아의 얼굴은, 지금 중 어느 때보다도 차갑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비류아 님…?”
“너는,”
비류아가 말했다.
“너는 모른다.”
“무엇을 모른다는….”
“말해봤자 모를 것이다.”
비류아의 발이 바닥을 박찼다.
그림자가, 달빛 내린 복도를 뒤덮었다. 이어지는 일격을, 캉…! 시우는 간신히 한 걸음 물러서며 막아냈다.
“비류아 님, 말씀해주신다면,”
“말이란,”
“제가 듣고, 생각을,”
“덧없고 흩어지는 것이다.”
“비류아 님!”
“말이 많구나!”
비류아의 검이 시우의 허리를 후려쳤다. 커헉, 비명을 흘리며 나가떨어지는 시우, 그러나 비류아도 곧바로 덮치지는 못했다. “하아,” 격해진 호흡. 지금까지 기술만을 사용해서 시우의 검격을 방어해온 데에는 체력을 온존하기 위한 것도 있었던 것이다.
시우가 몸을 일으키고, 비류아가 호흡을 고른다.
소강상태.
‘아냐.’
그 속에서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아냐, 그게 아니야. 지금 비류아가 말하지 않는 건, 말해봤자 이해받지 못할 거라든지 그런 게 아냐. 이해받지 못하기에 말을 꺼내지 않는 게 아냐.’
그렇다면?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그러나 무엇을?
무엇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비류아 님…!”
시우가 외쳤다. 달려들었다. 휘두르는 검로를 따라 벽에 걸린 횃불들이 요동쳤다.
이지러진 그림자 속으로 스쳐가는 비류아의 과거를 나는 보았다.